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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오 영 수
국군 창설 당시부터 휴전협정 다음해까지, 그동안 허벅지 관통상으로 이십팔 일간의 입원 외에는 하루도 군복을 벗어본 일이 없었다.
줄곧 전선(前線)으로만 돌았다.
같은 동기로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전우가 몇 사람이나 될까? 아마 열 손가락도 다 꼽지 못할 게다. 생각하면 나도 죽을 운수는 지독히도 못 타고난 놈이야. 하기야 꼭 죽었어야 할 고비도 여러 번 넘겼고, 차마 눈뜨고는 보지 못할 험한 꼴도 수없이 보아왔다.
한창 전투가 치열했을 때 진부령 어느 골짜기에서는 적의 포위를 벗어나지 못해 무더기 죽음을 당한 꼴도 보았다. 적의 인해전에 고성능 폭탄을 퍼부어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말하자면 분해가 되어버린 몸뚱어리가 흙먼지와 함께 하늘로 튀어오르는 것을 불과 몇백 야드 앞에서 장시간 지켜보기도 했다.
돌격전으로 어떤 고지를 점령하고 보면, 미처 옮겨가지 못한 시체가 그대로 버려져 있고, 그중에는 아직도 숨이 붙어 있어 손을 내밀고 물을 달라고도 했다. 그러나 유기체로서 수만 기록하고는 한 구덩이에 그대로 묻어버리기도 했다.
내가 쏜 총탄에 적이 몇이나 쓰러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의 접근을 잠복 대기하고 있다가 사정 내에 들어오면 침착하고 여유 있는 조준으로 발사, 그와 함께 마치 나무토막이나처럼 어처구니없이 나동그라질 때는 흥분과 통쾌가 거의 절정에 이른다.
이런 심정은 맹수 수렵가들에게나 이해가 될까? 직접 전투에서 적과 맞부딪쳐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인간의 생명이 한낱 돌조각이나 나무토막으로밖에 보여지지 않고 느껴지지 않던 내 전력(戰歷)을 돌이켜볼 때가 때때로 있다. 그러나 별 회오도 가책도 없다. 어쩔 수 없지 않았던가? 내가 쏘지 않으면 상대방이 나를 쏘니까, 이렇게 간단히 체념해버릴 수가 있고 또 시일과 함께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갈 뿐이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 지나갈수록, 잊어버리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생생하게 눈앞에 다가서는 환상과 기억이 있다.
이것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면서 나를 괴롭힐는지도 모른다고 제대군인 박중위는 이렇게 술회를 하년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수·순천 사건에 뒤이어 제주도 반란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따지고 보면 사상적 이념, 이런 것보다는 경찰의 지나친 신경과민(물론 여수·순천 사건의 전철을 미연 방지하는 처사이기도 했겠지만)에 민간의 반목을 좌익 프락치들이 이용한 사건으로 보는 것이 옳을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이 사건의 진압에, 거의 제주도 출신으로 편성된 제주도 주둔 11연대(?)가 당했으나 결국 그 일부가 반도(叛徒)와 합세하게 되자 사태는 심상찮아졌다.
그래서 본토〔大田〕에서 급거 출동한 연대가 바로 박중위가 소속한 ×연대였다. 이 연대는 바로 여수·순천 사건의 진압에 공훈이 많은 연대이기도 했다.
그때 박중위의 계급은 중사, 직책은 군기 관계였으나, 제주도 작전 때는 연대장의 직속 운전수였다.
이 연대장과 박중위의 형과는 동향 동창인 관계도 있었지만, 박중위에 대한 연대장의 신임은 각별했다.
박중위는 연대장의 임시 관사에서 조금 떨어진 민가 바깥채 방 한 칸을 빌려서 숙소로 정했다.
박중위가 빌려 든 이 민가 바깥채 옆방에는 오래전부터 늙은 어머니와 삼십이 넘은 그의 딸이 들어 있었고, 안채에는 주인인 역시 늙은 노인이 어린 손자 하나를 데리고 살았다.
안팎이 다 딱할 정도로 어려운 살림이었다.
박중위는 부대에서 식량을 타다 옆방 모녀에게 밥을 붙여 먹었다. 식량은 매달 한 가마 정도였다. 이것으로써 방세와 식비는 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모녀는 늘 송구해하는 눈치였고, 제 깐으로는 정성을 다하는 것 같았다.
박중위는 찬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으나, 밥만은 좀 넉넉히 달라고 했다. 그것은 ‘진’ 이란 개를 한 마리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친데, 주둥이가 짧은 대신 귀가 쫑끗 서고, 꼬리를 도르르 말아올린, 그리고 배 밑만이 조금 흰 노랑털이었다.
모두 순종 진도견이라고 했다. 정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퍽 영리한 개였다.
이 진은 주인이 방에 들어 있는 동안은 방문 밖을 떠나는 적이 없었다. 또 낯익은 사람이 아니고, 주인이 뭐라고 하기 전에는 누구 할 것 없이 사생결단 앞을 막아 앙탈을 부리고 비켜주지를 않았다.
혹 밤중에라도 잠이 깼을 때 ‘진!’ 하고 부를락치면 어김없이 꼬리로 방문을 툭툭 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문 앞을 지키고 있으니 안심하고 자라는 것 같았다.
이 집 사람들도 참 기특한 개라고 귀여워했고, 더구나 주인네 소년은 무척도 진을 좋아했다.
박중위의 근무시간 중에는 대개 이 소년이 진을 데리고 놀았고, 박중위는 또 부대에서 늘 건빵을 타다 소년을 주곤 했다.
한 달이 좀 지났을까? 어느 날 밤중에 박중위는 퍼뜩 잠이 깨었다. 분명 무슨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박중위는 거의 반사적으로 머리맡에 둔 권총을 잡아 쥐고 상반신을 일으키면서 방문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똑 똑! 순간 박중위는 어떤 긴박감과 함께 재빨리 안전장치를 풀어 총구와 함께 방문을 응시했다.
한순간이 지나자 또똑똑……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진이 아무런 기척이 없는 것이었다.
진이 있으면서도 짖지 않는다면 이건 분명 아는 사람이 틀림없었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 안심은 되나, 그렇지 않고 진이 없어졌다면? 박중위는 그만 등골이 오싹해왔다. 그러나 그 어느 편이건 이미 피할 도리는 없었다. 박중위는 문과 엇비슷이 몸을 틀면서 진! 하고 개부터 불러보았으나 그와 함께 끙! 하고 진이 꼬리로 문을 툭툭 치는 것이었다.
박중위는 비로소 마음이 좀 놓여 천장으로부터 달아 내린 램프에다 불을 붙였다.
방이 밝아지자 이번에는
“선생님, 문 좀 열어주시요!”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였다. 옆방 늙은이 딸인가 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누굴까? 안팎 두 늙은이 목소리는 더구나 아니었다.
“누구요?”
“문부터 좀 열어주시요!”
박중위는 팔을 뻗고 문고리를 끌러 가볍게 밖으로 밀었다. 그와 함께 들이미는 여인의 얼굴, 박중위는 하마터면 악!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바로 유령이었다. 흔히 그림책에서 본, 머리만 흐트러졌으면 바로 그대로의 유령이었다. 전신에 소름이 확 끼쳤다. 이불 밑으로 권총자루를 고쳐 잡았다.
유령 같은 여인은 무르팍으로 방 안에 들어앉으면서 박중위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그만 고개를 꺾고 어깨로부터 들먹거리기 시작했다.
박중위는 여인의 일거일동을 놓치지 않고 주시하면서
“도대체 당신이 누구요?”
그러자 여인은 기어코 방바닥에 이마를 비벼대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어쩌면 가물가물 꺼져들어가는 어쩌면 또 오장의 어느 깊은 데서 견디다 못해 새어나오는 그런 울음소리였다.
박중위는 달막거리는 여인의 앙상한 어깨를 한동안 지켜보다가 또
“당신은 누군데 왜 이러오?”'
“……”
이러고도 한동안이 지나서야 여인은 고개를 들고,
“선생님, 날 좀 살려주시요!”
박중위는 비로소 불빛을 받은 여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바로 해골이 납으로 만든 살갗을 쓴 것밖에는 보여지지 앓았다.
“살려주다니 무슨 이야긴데요?”
그제서야 여인은 앉음새를 고쳐 저고리 고름을 여미고 뒤로 방문을 닫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여인은 바로 이 집 주인 늙은이의 며느리라는 것이었다.
박중위는 이 집 며느리라고는 보지도 못했고, 며느리가 있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혹시 옛날이야기처럼 억울하게 죽은 며느리의 원귄가 했다. 그렇다면, 박중위는 또‘ 한번 등골에 소름을 느끼면서 이불 밑으로 권총자루를 다시 잡아 쥐고는 약차하면 쏘아벼릴 작정을 했다.
여인의 남편은 착실한 국민학교 교사였다.
바로 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난 어느 날 한밤중이었다.
잠을 깨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총구멍이 가슴을 노리고 있었다. 꼼짝 말라고 했다. 꼼짝하려도 몸뚱어리가 굳어지고 혀가 오그라들었다. 옆에 누운 남편도 와들와들 떨고만 있었다.
식량을 털고 옷가지를 걷어 쌌다. 모두 세 사람이었다.
만일 경찰에 고자질이라도 하는 날에는 몰죽음을 당할 테니 그리 알라고 했다.
세 사람이 나가고 얼마 안 있어 총소리가 연달아 여러 번 들렸다. 총소리를 듣고도 한동안까지 그대로 떨고만 있었다.
다음 날 내외는 경찰서로 끌려갔다. 부역죄라고 했다. 빨치산의 앞잡이라고도 했다. 누구누구더냐고 이름을 대라고도 했다. 그동안 몇 번이나 보급을 대주었으며 이번에는 무슨 연락이 있었느냐, 바른대로 대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다. 당한 대로만 말을 했다. 도시 엉뚱한 모를 일들이었다. 그래서 모진 매를 맞고, 부끄러워서 말을 못할 고문을 당하다가 이십 일 만에 풀려나왔으나, 남편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목포 형무소로 이송했다는 말도 있었으나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생사를 모른다.
이런 뒤로 여인은 경찰의 감시 밑에서 문밖출입도 제대로 못했다.
어느 날은 밭에 거름을 내고 돌아오는 바로 그길로 끌려갔다. 거름통을 든 채였다. 그러나 거름통은 눈가림이고 무슨 연락을 하고 받은 것이라고 우겼다. 정말 가슴을 쥐어뜯고 싶도록 억울하고 답답했다.
이번에도 모진 고문을 당했다. 죽고 싶었다. 죽여달라고 했다. 이틀 뒤에 절뚝거리면서 나오긴 했으나, 반란사건이 일어나던 바로 그날로 여인은 또 끌려갔다.
이번에는 심문도 고문도 없었다.
열흘 뒤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휴치장 밖으로 불려나갔다. 트럭에 태웠다. 이십 명 가까운 사람들을 싣고 트럭은 비행장 쪽으로 달렸다. 그중에는 여자도 몇 사람 있었다. 누구 한 사람도 말이 없었다.
도두리 터에서 내리라고 했다. 모두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고 입술이 까맣게 탔다.
비로소, 죽으러 왔구나!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그만 눈앞이 흐려지고 머릿속에서 뭣이 훌훌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때는 벌써 해가 지고 발밑이 어두웠다.
시꺼먼 구덩이를 앞으로 둔덕에 일렬로 앉혔다. 등 뒤로부터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그 뒤로는 기억이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쯤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나,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귓속에서 나는 소리인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마치 주전자 물이 끓기 직전에 내는 찌잉 하는 그런 소리 같았다.
이 소리가 뭘까? 뭘까? 하는데 희미하게 별빛이 보였다. 아리송한 속에서도 어젯밤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살았구나! 내가 죽지 않았구나! 그와 함께 마음 같아서는 벌떡 일어나려고 몸을 뒤쳐봤으나 딴 몸뚱어리들이 이리저리 포개졌다. 떠밀치려고 하나 오른쪽 팔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왼쪽 팔로 포개진 몸뚱어리들을 밀치고 비집고 밟고 하면서 간신히 구덩이 속을 기어나왔다. 오른쪽 팔은 나무토막 같기만 했고 뭔지가 민글민글 엉켰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꼭이 어디가 쑤신다든가, 저린다든가 하는, 즉 아프다는 생각을 통 몰랐던 것이었다. 다만 못 견디게 갈증이 나고, 혓바닥이 입천장에 짝 붙어 버리도록 입속이 탔다.
어디서 닭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날이 새기 전에…… 바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왼손으로 오른쪽 팔과 어깨를 누르고 일어섰다. 그러나 채 몇 걸음 떼놓기도 전에 쓰러졌다. 자꾸 눈앞이 흐려오고 정신이 아리송해갔다. 아리송한 정신 속에서도 등 뒤에서 뒤통수를 겨눈 총구멍이 있었다. 또 이를 앙다물고 일어섰다. 저만치 앞에서 시어머니와 아이가 빨리 오라고 발버둥을 치고 손짓을 했다. 다가가서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또 쓰러졌다. 총구멍이 다가왔다. 그로부터는 기기 시작했다.
집 앞에 닿기까지 몇 번이나 쓰러졌고, 얼마를 기고, 얼마를 걸었는지는 통 몰랐다. 머릿속에는 총구멍과, 날이 새기 전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시어머니와 아이뿐이었으니까.
바깥채 사람들이 알까 싶어 담장을 끼고 돌았다. 안채 시어머니 방문과 제일 가까운 낮은 담장에 한 손을 걸고 발돋움을 하면서 아이 이름을 불렀다.
두 번 만에 시어머니 방문이 열렸다. 다가오는 시어머니의 거친 숨소리를 느끼자 여인은 그만 또 아물아물 까무러쳐버렸다.
여인은 그날 밤으로 마룻장 밑 광 속에 숨었다. 광은 고구마, 감자, 이런 씨앗을 간수하는 곳이었다.
보리밥과 해묵은 된장과, 또 무슨 나무뿌리로 만든 조약(造藥)*으로 상처를 동였다. 상처는 두 군데였다. 겨드랑 밑 젖가슴 옆으로 살이 찢어졌고, 한 곳은 바로 어깨 밑 팔부리 짬이었으나 뼈는 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상처가 아물기까지 근 두 달이나 걸렸다.
그동안 여인은 줄곧 광 속에서만 살았다.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은 걸로 되어 있고, 살아왔다는 것은 그의 시어머니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잠이 든 한밤중을 타서 시어머니가 마룻장을 들고 오지독 뚜껑을 옮겨주면 고양이처럼 기어나와서는 자는 아이의 얼굴을, 그것도 먼발치로만 바라보고, 다리가 굳어지는 것 같아 마당을 조금 거닐다가는 들어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마당을 거닐 때도 누가 보거나 표가 날까 싶어 검정 보자기를 둘러썼다.
박중위가 방을 얻어 들었을 때도, 군인이라 거절은 못했지만 무척 경계를 했고, 밤에나마 제대로 나오지도 못했다.
이렇게 석 달이 지났다. 더 견딜 수가 없었다. 광 속에서 죽는 수밖에는 없었다. 광 속에서 죽으면 시체도 내갈 수 없고, 그대로 광 속에 묻히는 수밖에 없었다. 광 속에 묻히기는 싫었다. 석 달이 넘도록 햇볕을 못 보고, 죽어서도 또 응달 광 속에 묻힌다는 것은 정말 견딜 수 없었다. 죽어서만은 어느 햇볕 바른 양달에 묻히고 싶었다.
그동안 수없이 이 군인, 즉 마음씨 좋아 보이는 박중위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매달려볼까도 했다. 어떤 때는 방문 앞에서 귀를 기울이고 숨소리를 들으면서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견디고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호롱불 기름이 말라가듯 자지러지는 목숨을 여인 자신이 더 잘 알 수 있었다.
이왕 며칠 남지 않은 목숨일 바에야 빨갱이가 죽이건 법에서 죽이건 아랑곳없이, ‘나는 살았노라’고 뛰쳐나가기로 마음을 도사려먹었다. 그래서 우선 박중위에게 하소연을 해보는 것이었다.
박중위는 개가 짖지 않은 까닭을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목숨이 모질어 석 달이 넘도록 마루 광 속에서 견뎌봤으나 인젠 목구멍에 물도 잘 넘어가지 않고, 다리 오금이 굳어져 걸음도 제대로 못 걷겠어요!”
“……”
“선생님, 사람도 햇볕을 못 보면 죽나보지요?”
“……”
“자식을 눈앞에 보고도 말을 못하고…….”
여인은 또 입가장이 일그러지고 목이 멘다. 고개를 떨구고 두 손으로 얼굴을 싼다. 얼굴을 싼 손가락이 거미발같이 길고 가늘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번진다. 저렇게도 말라 파인 눈에서도 눈물이 나는가 싶다.
박중위는 말없이 담배만 붙여 천장으로 향해 연기를 뿜는다.
밖에서 후두둑 빗발치는 소리가 들린다.
여인은 안으로 흐느끼면서 고개를 들고
“선생님, 제 몸뚱어리 반은 벌써 다 죽었어요. 꼬집고 비틀어도 아픈 줄도 몰라요. 살갗을 집어 올렸다 놓아도 제대로 펴지지 않고, 가슴 밑만 빨락빨락 살았을 뿐이에요.”
“그런데 선생님, 이왕 죽어가는 몸이니 며칠만이라도 자식과 함께 햇볕이나 쬐다 죽고 싶어요!”
문이 희붐해왔다. 박중위는 끌려두었던 시계를 집어다 보면서 태엽을 감는다. 네시를 좀 지났다. 그러고 보니 날이 새고도 꽤 시간이 지난 모양이었다.
“네 선생님, 죽이지 않더래도 죽을 테니요.”
“……”
시종 말이 없는 박중위를 바라보는 여인의 눈에 절망이 어린다. 이윽고 여인은 또 손바닥으로 얼굴을 싸고 소리 없이 흐느끼면서 문 쪽으로 몸을 돌린다.
박중위는 그제서야
“아니 가만…… 그대로 계쇼!”
하자, 여인은 흠칫 놀라면서 박중위를 돌아본다.
박중위는 부지런히 옷을 입기 시작한다.
여인은 눈에 뜨이게시리 오들오들 떨면서 박중위의 거동을 지켜본다.
박중위는 옷을 입고 나서도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고 담배를 붙이고 하는 것이 몹시 초조해 보인다.
“날이 새버리면 전 이젠 광 속에도 못 들어가요!”
“……”
“옆방 사람들도 일어났나보지요?”
비가 제법 줄기차게 내린다.
박중위는 담배를 비벼버리고, 우장과 군화를 들고 방문을 연다. 날씨 관계로 아직도 밖은 그리 밝지 않다.
박중위는 방문턱에 걸터 군화끈을 졸라매고는 여인에게 우장을 입으라고 한다.
여인은 흐린 눈으로 한동안 박중위를 올려보다가 그만 고개를 떨어뜨리면서
“인제 가면 다시는 못 오겠지요?”
“어떻게 될지, 좌우간 가봅시다!”
비는 더 세차게 펴붓는다.
여인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가야지요, 어떻게 안 갈 수 있겠어요!”
그러고는 우장을 뒤집어쓰다 말고
“그런데 선생님, 아이나 한번 보고 가겠어요.”
“시간이 없다니까요!”
박중위는 이렇게 약간 어세를 높이면서 우장으로 여인을 머리로부터 덮어씌우고는 일어나라고 부축을 한다. 그러나 여인은 다리 오금이 펴지지 않아 일어서지를 못한다.
박중위는 보다 못해 그만 여인을 둘러업어버린다.
박중위는 아무리 하기로서니 사람 하나의 무게가 이토록 가벼울까? 하면서 빗속을 마구 걸었다.
연대장은 아직 자고 있었다.
깰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그러나 박중위의 안절부절 초조해하는 것이 심상찮아 연대장 부인이 연대장을 깨웠다.
잠옷 바람으로 건너온 연대장에게 박중위는 새벽부터 찾아온 사과를 하고, 이어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시작한다.
담배 연기로 눈을 찌푸리면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연대장이 불쑥,
“아니, 가만…… 자네 좀 흥분한 것 같은데, 냉정히 사실만을 얘기 해!”
“네, 들은 그대롭니다만……그럼 직접 본인에게 들어보시렵니까?”
“아직도 긴가, 얘기가?”
“요약해서 말씀드리죠!”
“그럼 계속해!”
연대장 부인은 밭은 침을 삼키면서 무슨 보따리처럼 우장에 싸인 여인에게로 연신 눈을 주고 있다.
박중위는 대강의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여인을 싼 우장을 벗겨 보인다. 그와 함께 연대장 부인은 그만 소리를 지루고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옆방으로 달아나버린다. 그러나 연대장은 태연히 한동안 여인을 바라보다가 담배를 비비면서
“때가 때인만큼…… 그러나…….”
그러고는 박중위를 향해 법무관을 부르라고 한다.
연대장의 이 때가 때인만큼이란 경찰의 두 눈이 아니라, 연대장 자신이 지구 진압과 치안의 총책임을 맡은 계엄사령관으로서, 어쩌면 연대장 자신에 의해 더 많은 이런 예를 들 수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이를테면, 작전상 무엇보다도 반도의 보급망부터 끊어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보급이 계속되는 것은 해상 보급으로 단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상을 봉쇄했다. 일체의 선박 출입을 엄중히 단속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도 주민들의 보급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만일 반도에의 보급이 도 주민들로부터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부락 단위로 축담을 하고 감시대와 보초를 세우는 조치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도의 한 사람인 남편이나 아들이 이 보초망을 뚫고 나타났을 때, 그의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사실이 탄로됐을 때 군경은 이 가족을 어떻게 할 것이며 또 어떻게 했는가. 여기에 이념도 사상도 아닌 또 하나의 비극이 있었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이러한 더 대규모적인 예로서 거창 학살사건을 들 수 있다.
법무관이 왔다.
연대장은, 즉각으로 경찰에 연락해서 이 여인에 대한 신원과 처결에 대한 조서를 알아보라고 했다.
법무관이 나가자 연대장은 박중위를 보고 턱과 눈짓으로 ˙여인을 데리고 가라는 시늉을 한다.
박중위가 여인을 다시 우장으로 우벼 싸고 부축을 하면서 나서자,
연대장이 ,
“인젠 숨고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한다.
그러나 엉겁결에 제대로 거수도 못한 채
“핫, 넷!”
하는 박중위의 꼴을 보고 연대장은 피식이 웃으면서 돌아선다.
박중위는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연대장이 신분 보장을 해주는 이상 겁낼 게 없었다.
여인의 무게는 더 가벼워진 것만 같았다.
박중위는, 툇마루에서 멍하니 빗발을 바라보고 앉았는 그의 시어머니 앞에 여인을 내려놓고는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고부와 아래채 모네까지 얼린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박중위는 다시 연대장 관사로 나갔다.
법무관의 말인즉, 반란이 일어난 직후의 혼란중의 일이라 조서도 처결 날짜조차도 모르겠다는 것이었고, 다만 여인의 신원에 대해서는 ‘부역자’ ‘반도 앞잡이’로 되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연대장은 법무관에게 명령조로 다시 가서 여인에게 즉각 ‘양민증’을 발급하도록 하라고 하고 박중위에게는 순시를 나갈 테니 차 정비를 하라고 한다.
박중위가 엔진 조절을 하고 있자니까 연대장이 누군가를 호통하는 고함 소리가 들린다.
보아하니 전화였다.
“……생사권이 경찰에 있는 줄 알아? 총책임은 나에게 있어…… 즉각 해보내, 알았어?”
이러고 난 한 삼십 분 뒤에 법무관이 양민증을 가지고 왔다.
연대장은 양민증을 받아 힐끗하고는 박중위에게 건네면서
“동정은 좋지만, 군인으로서 감상은 금물이야.”
한다. 박중위는 얼른 말뜻을 몰라
“네?”
“빨리 갖다주고 와!”
여인네 집에서는 법석이었다.
이웃 사람들이 벌떼처럼 엉켜 울고 있었다. 거의가 노인과 아낙네들이었다.
넉 달 전에 죽은 사람이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총을 두 방을 맞고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래서 여인은 이날부터 광 속을 면했다.
밤낮없이 사람들이 뒤끓었다. 심지어는 몇십 리 밖에서도 구경을 왔다. 총을 두 군데 맞고 넉 달 만에 살아왔다는 소문이었다.
날이 지날수록 여인의 얼굴에는 조금씩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여인과 그의 시어머니의 박중위에 대한 정성은 극진했다.
박중위는 이웃 사람들에게까지 귀찮을 정도로 치하의 인사를 받았다. 장하고도 고맙다는 것이었다. 박중위를 볼 때마다 합장을 하는 늙은이도 있었다.
이런 뒤 얼마 안 있어 박중위는 새로 창설된 군기창으로 전속이 되었다.
여인은 자꾸 울기만 했다. 그의 시어머니는 박중위의 무르팍을 쓸면서
“오래오래 같이 살 줄만 알았더니……”
하고 연신 목이 메었다.
이웃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모두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이집 저집서 아침 아니면 저녁 대접을 받았다.
박중위가 떠나는 전날 밤, 여인과 그의 시어머니는 오래도록 이야기를 하면서, 박중위가 없더라도 괜찮겠느냐고 걱정을 했다.
박중위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러나 박중위 역시, 이 연대가 주둔하고 있는 동안은 모르되, 임무를 마치고 이동을 하게 되면? 하니 역시 불안이 없지도 않았다.
더구나 여인의 양민증 때문에 경찰은 연대장으로부터 호되게 기합을 받았다. 즉 빨치산의 앞잡이에게 어떻게 양민증을 발급하겠느냐고, 해주려면 군에서 해주라는 데서 연대장의 노염을 산 것이었다.
원래가 어디 없이 군과 경찰과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 압력에 양민증을 발급을 하긴 했으나 어쩌면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박중위는 여인에게 정 걱정이 되면 아이만 데리고 육지로 떠나는 게 어떠냐고 해봤다. 그러나 그의 시어머니가 입을 삐죽이면서, 내가 얼마나 살겠느냐고, 아들도 생사를 모르고 저것들마저 떠나면 이 늙은 것이 어떻게 살아가겠느냐고 그러면서
“유자도 뭍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데, 저것들인들…….”
하고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다음 날 부둣가에는 이웃 사람들이 하얗게 모였다. 박중위의 전송을 하기 위해서 였다. 대부분 늙은이와 아낙네들이었다.
배가 떠나자, 늙은이들은 합장을 하고, 그중에는 눈물을 닦는 아낙네도 있었다.
이것을 바라보는 박중위 가슴에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뭔지도 모르게 봄비처림 젖어드는 것이 있었다.
끝까지 아스라이 남은 몇 점은 진과 소년과 늙은이와 그의 며느리에 틀림없었다.
박중위가 군기창으로 전속한 지 꼭 5개월 뒤에 6·25가 벌어졌다.
날이 갈수록 전세는 불리했다.
UN군의 참전이 있었으나 물밀듯 닥치는 적을 막을 수 없었다.
적의 선봉이 호남지방을 위협하자, 군기창은 제주도로 소개 명령이 내렸다.
최남단 기지 부산에서 다시 제주도로 소개를 해야 하는 거의 절망에 가까운 이 절박한 사태 속에서도 박중위의 마음 한구석에는 유연히 떠오르는 한 씬이 있었다. 그 집, 여인, 늙은이, 소년, 이웃 사람들, 그리고 ‘진’……
부대가 제주도에 닿자, 박중위는 건빵 두 봉지를 가지고 가슴을 울렁이면서 여인네 집을 찾아갔다.
전날 그대로였다.
박중위는 제집에나 온 것처럼 서슴지 않고 들어섰다.˙
늙은이 즉 여인의 시어머니만이 마루끝에 앉아 오징어 발을 우물우물 씹고 있다가, 박중위를 보자 흠칫하고 놀란다.
박중위는 웃음과 함께 거수경례를 하면서
“나요, 박중위요!”
늙은이는 한동안 눈만을 깜짝거리고 박중위를 빤히 쳐다보다가 그만 군복 앞자락을 검잡고는 울기부터 한다.
거의 다 세어버린 헝클어진 머리 밑으로, 마치 구겨진 유지처럼 내다보이는 목덜미에 퍼런 힘줄만이 두드러져 보인다.
늙은이는 연신 뭐라고 울음 섞어 지껄이나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박중위는 늙은이 어깨를 흔들면서, 며느리와 손자는 어디 갔느냐니까, 늙은이는 그제서야 울음을 멎고 한동안 멍하다가, 바다로 데리고 갔시요! 하고는 또 울기를 시작한다.
“바다라니요?”
아래채 모녀가 뛰어나왔다.
이웃 사람들도 한둘씩 모여 왔다. 모두가 반색을 하면서도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린다. 그들의 이야기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경찰에서는 재빨리 부역·귀순·반도의 가족부터 검거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목포를 위시해서 고성·삼천포·통영이 연달아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그다음 날 다 질 무렵, 여인은 어깨에 돌을 달아 덴마선”을 타고 바다로 떠났는데, 어둑해서야 사공은 호위를 해 간 경관만 싣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박중위는 관자놀이가 찌잉하고 눈앞이 흐려왔다. 흐린 눈앞에 그날 밤의 창백한 여인의 뒷모습이 아물아물 멀어져가기도 한다.
박중위는 부르르 환상을 떨어버리듯 몸짓을 하고는 소년은 어디 갔느냐니까, 누가 옆에서, 바닷가에 나갔을 게라고 한다. 그러자 늙은이가, 제 에미를 찾기에, 성산포 외갓집에 양식을 가지러 갔는데 쉬이 온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소년은 해만 설핏하면 바닷가로 나가서 제 에미를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박중위는 머리로 치솟는 피의 역류를 가까스로 감당을 하자 다음 순간 가슴 한복판이 시꺼먼 구멍으로 뚫리는 것 같은 공허감을 어쩔 수 없었다. 바닷가로 나가 우선 소년이나 만나고 싶었다.
박중위는 다시 오겠노라고 하고 돌아서다가
“진은……?”
하고 마당귀를 살피자, 이웃집 누가, 그날(여인이 끌려가던 날) 개가 죽자 하고 앙탈을 부리니까 순경이 그만 쏘아 죽였다고 한다.
박중위는 또 한번 멍하니 바다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데, 누가 또, 개도 개지만 아이가 가엾어서……죽은 개를 끌어안고 왼종일 울고 날뛰던 꼴이란 쯧쯧……
박중위는 돌아섰다. 무슨 생각에 골똘하면서 부듯가로 간다는 것이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엉뚱한 곳. 박중위는 온 전신의 피가 또 한번 머리로 모여드는 것 같았다.
박중위는 한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망설이면서 이곳으로 가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무슨 사고를 내고야 말 것만 같았다.
『현대문학』 66호(1960. 6): 『현대한국문학전집』 1권(신구문화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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