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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부산과
뮌헨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를 초월해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
결혼한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의미는 이미 그것을
초월하는 관계다. 이번 전시 역시 김영희 작가의 조언에서 출발한 일이다
.
“그 친구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패션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의
전시회를 보여줬어요. 그걸 보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전시가 열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녀가 한번 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더라고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신선한 일은 아니다’라며
쑥스러운 반응을 보이던 배용 디자이너는 이내 여자 친구 김영희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네 자녀를 키우고 사별한 그는 늦게 만난
새로운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황혼에 시작된 사랑에 서툰 감정 소모는 낄 틈이 없다.
지구 반대편에 살면서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의 작품에 영감과 자극을 주는 최고의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일흔의 동갑내기 연인이 좋은 이유
세월은 사람에게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정확하고 깊은
안목을 선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각자의 삶을 만들어온 두 사람은 일흔이 다 되어서도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 동안 자기만의 우주를 충실하게 만들어온 그들은 서로를 알아봤다.
그 나이에 무슨 사랑이냐는, 사람들의 부러움 반 진심 반의 조언은 익숙한 일이다.
“그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좋아요. 만나면 즐거워요. 대화가 잘 통하고,
지식이 풍부하고요. 본인의 직업을 가지고 있고, 자기 분야가 확실한 사람이잖아요.
서로 다른 분야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아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사이다. 파트너로서 아주 좋은 관계다.
“그 사람은 뮌헨에 있고, 저는 부산에 있으니까 자주 만나지 못하잖아요.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예요. 서로 한 번씩 오가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요.
이번에는 제가 전시를 해서 그 사람이 부산에 와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노년의 사랑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함께 좋은 곳에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여행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한국의 시골, 소도시를 다니면서 소소한 추억을 쌓아간다.
“부산 근처에 있는 마산이나 포항 등 가까운 곳에 좋은 곳이 많아요.
맛있는 것도 먹고 또 한국의 멋도 느끼고 그렇게 시간을 보냅니다.”
누구나 상상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경험하는 것은 아닌 황혼의
사랑은 이렇게 평화롭게 흘러가는 중이다.
김영희
나이 칠십이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짙은 회색과 초코렛 색이 혼합된 듯한 중후한 색채의 반팔 원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 짧은 컷트 머리, 시종일관 웃으면서
1시간을 서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피로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마이크도 쓰지 않고 서서, 준비해온 강의 메모도 없이 즉문 즉답의 진행은 매우 신선하다.
마치 이웃집 여인의 삶이야기를 듣는 듯 정겹고 푸근하다.
30대 초반에 남편을 사별하고 그녀의 표현대로 '초년과부'가 되어,
아이 셋을 데리고 독일로 떠난다. 연하의 독일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잘 생긴 얼굴을 빼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남자였다.
10년 안에 집을 사고 예술가로써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왔고, 꿈
은 이루었으나 세 아이와 또 한사람의 큰 소년(남편)을 키우면서 그녀는 서
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대학을 졸업시켰는데도 홀로 설 생각을 하지 않고
끝없이 어리광이 느는(?) 남편과의 불화 속에서 두 아이가 태어난다.
부부의 불화는 아이들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혼을 하게 된 배경이다.
부부는 서로 존경할 때 사랑도 빛을 발한다.
이혼은 아팠지만 아이들을 키우는데 오히려 득이 되었다.
미움과 증오 속에서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이혼을 후회해 본적이 없다. 꽃을 사랑하고 가꾸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8시간씩 작업을 한다는 그녀.
보통 여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질곡의 시간 속에서 아름답게
꽃필 수 있었던 힘은 굳건한 마음과 부지런함, 예술가로써의 긍지가 아니었을까
"불행은 남과 비교할 때 생기는 것 같다. 하루하루 감사 하면서 재미있게 살았다
그녀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 4년 전부터 싹튼 사랑이다.
'품위 있는 친구고 존경한다. 노년의 사랑은 깊은 것 같다.'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에서 70여회의 전시회를 했고,
고국에서는 에세이집 5권과 소설까지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닥종이 인형 전시회도 책 출간에 맞춰 병행하고 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예술로 승화 시킨 김영희씨.
함께 잡은 손이 따뜻하고 듬직하다.
그녀의 전성기는 지금부터 시작인 것 같다.
첫댓글 "그녀의 전성기는 지금부터 시작인 것 같다"
라는 마지막 멘트에 공감합니다.
한국 나이 일흔 일곱!
우연히도 제겐 이 연령대의 친구가
많습니다.
형님이요, 누님인 말띠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