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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흩어진 나그네” 말씀에 이어서 두 번째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 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확실한 믿음안에 서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칭찬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흩어진 나그네”란 평범한 나그네가 아닙니다. 하늘의 목적을 두고 복음의 씨를 뿌리며 흩어져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을 앞두고 사도들에게 전한 마지막 멧세지가 있습니다. 사도행전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강력한 말씀은 사도들 가슴에 부딪쳐 핍박중에 예루살렘을 떠나~~~~ 땅 끝까지 흩어져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로 나아가 나그네로써 삶을 살 때 비겁하거나 숨어 지내지 않았습니다.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담대하게 증거하는 확실한 믿음을 가졌기에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7절 말씀을 보면 칭찬하고 있습니다.
7절....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그러나 사도 베드로가 초대교회 성도들의 순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칭찬하지만 그가 처음 예수님을 만나 제자로써 따를 때 “믿음”에 있어서 신앙적 트라우마가 있었던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4:22-33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갈릴리바다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광풍을 만나 위태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먼저 오셔서 건너편 지역에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다가 광풍을 만난 겁니다.
광풍으로 제자들이 탔던 배가 아수라장되어 있는데 그 때가 밤 사경 새벽 저 멀리서 낯선 한 사람이 거친 파도 위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놀라 유령이 온다며 무서워하니까 행동이 먼저인 베드로가 그 즉시 유령처럼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뛰어내리는데 순간 스쳐 지나간 바람 때문에 예수님을 놓쳐 버린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예수님 베드로가 빠지는 순간 그를 붙잡으시며 배에 오르는데 거센 풍랑이 순간 잔잔해 지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말씀하시는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마14:31)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이적을 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이런 기적의 사건을 베드로는 세월이 지나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손에 붙잡혀 배에 다시 오른 그 생생했던 체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천둥같은 예수님의 목소리 믿음이 작은 베드로야~~~ 왜! 의심하느냐 자신에게만 들려오는 책망의 말씀으로 기억하며 평생 잊을 수 없기에 지금은 거룩한 트라우마로 가슴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베드로는 그랬을 것입니다. 사역할 때마다 교만해지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과 믿음의 현주소를 점검하게 만드는 강력한 영적 거울이 되었을 것입니다.
20세기 유명한 영성신학자 헨리나우엔이 쓴 상처 입은 치유자란 책이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상처 입은 치유자'는 자신의 상처를 숨기거나 완벽한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부서짐과 상처를 끌어안고 그것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며 치유의 통로가 되는 사람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헨리 나우엔은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책을 썼고 그의 제자들 그리고 공감하는 사람들로 부터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내면은 늘 심각한 우울증과 '성공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인정 투쟁, 그리고 깊은 고독이라는 상처(트라우마)로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교수직을 내려놓고 캐나다의 발달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레이크(L'Arche Daybreak)'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그가 맡은 일은 말도 하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며 가끔 발작을 일으키는 중증 발달장애 청년 '아담 아네트(Adam Arnett)'를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아담을 씻기고 밥을 먹이는 단순한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해 나우엔은 자신의 무능함과 밑바닥을 처절하게 경험합니다. 하버드 교수라는 타이틀은 그곳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나우엔이 무엇을 성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곁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온전히 받아주었습니다. 나우엔은 아담의 가장 연약하고 상처 입은 모습 속에서 오히려 평화와 위로를 얻었고, 평생 자신을 짓누르던 불안과 고독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후 나우엔은 "내가 아담을 돌본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아담이 나의 내면을 치유한 진정한 영적 지도자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과거의 의심했던 믿음의 흔적들이 오히려 다시 세워지는 견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자신 있게 금보다 더 귀한 변함없는 확실한 믿음이라고 칭찬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9절 말씀을 보면 확실한 믿음의 결국은 무엇이라고 했나요? 곧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베드로는 격려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목적이 지금 '육신의 평안'이나 세상 형통'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작은 폭풍 앞에서도 끊임없이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고백처럼 신앙의 최종 결과가 '영혼 구원에 있기에 오늘도 내영혼의 건강을 위해 진단하고 살피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사도베드로가 초대교회 성도들을 칭찬한 확실한 믿음은 무엇이었는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①부활의 산 소망에 뿌리를 둔 믿음입니다.
3-4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사도 베드로의 위로의 편지는 부활의 산 소망입니다. 부활의 산 소망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인류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는 기독교에서만 있는 특별한 사건입니다. 부활의 산소망의 주인공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살아 있는 산 소망의 종교입니다.
여기 4절을 보면.... 부활의 산 소망되신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부활에 대해 열거한 3가지가 있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나라의 유업을 천국에서 간직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①썩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외부의 부패 작용을 받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물질이나 육체 덩어리 우리 몸은 시간이 지나면 썩고 부패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결코 부패하거나 파괴되지 않는 본질적인 영원성을 말합니다.
②더럽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죄나 도덕적, 종교적 오염으로부터 완전히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얻는 성취나 재물, 소망은 오염되어 탐욕, 죄악, 불의한 방법으로 더럽혀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부활의 산 소망은 어떠한 죄나 이기심도 침투할 수 없는 거룩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③쇠하지도 않습니다.......부활의 산소망은 시간이 지나도 시들지 않고 아름다움 가치를 유지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들을 보십시오 그렇게 화려했던 인기도, 건강도, 젊음도, 영예도 시간이 흐르면 꽃처럼 시들고 빛을 잃습니다. 그러나 산소망 부활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결코 그 빛깔과 가치가 퇴색되지 않고 영원히 찬란합니다.
며칠 전 어머님 6주년 추모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의 흔적이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면서 설교 중에 천국에 계신 어머님이 이 땅에서 믿음을 지켜던 흔적들을 가족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권사임직패, 성경필사노트, 헤어져 있는 성경책 모두가 오래되어 보였습니다. 앞으로 10년 후에 다시 본다면 더 남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님이 소유하신 부활의 산소망의 믿음은 지금도 천국에서 빛을 발하고 있음을 믿기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부활의 산 소망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②불순물이 제거된 믿음입니다. (6-7절)
6-7절.....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정금은 처음부터 땅속에서 그 상태로 캐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원석을 1064도 이상의 뜨거운 용광로에 집어넣어 불순물을 남김없이 태워버리는 혹독한 제련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원석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 단단했던 것이 녹아 액체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원석이 고열에 녹아 액체가 되면, 비중의 차이로 무거운 금은 아래로 가라 앉고 금보다 가벼운 은, 구리, 철 등의 불순물은 위로 떠오른다고 합니다.
제련하는 사람은 도구를 사용해 표면에 뜬 불순물들을 조심스럽게 걷어내는데 순도가 높아질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순물을 태워버리고 순도 99.9%의 정금만 남긴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을 주님이 영적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불순물이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는 마음, 기복적인 신앙, 나의 유익과 안위만을 구하는 이기적인 동기, 얄팍한 생각 등 육의 소욕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영적 불순물 여러 가지 시험을 기꺼이 인내하며 받아드리며 우리는 훈련받으며 통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광야40년 순례자로 살아갈 때 시험을 당할 때 광야에서 훈련받으며 나아갔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원망하지말고 기쁘게 받아드려야합니다. 그것은 훈련을 쌓는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약1:2-3......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목회자요 소설가인 조지 맥도널드 (George MacDonald)말하기를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보다, 고난을 통해 그분과 닮은 거룩한 존재로 빚어지는 것에 훨씬 더 깊은 관심을 가지신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믿음의 확신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귀하여 주님 강림하실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것을 믿습니다.
③보는 것 보다 보지 않고 믿는 영광스러운 즐겁고 기쁨 하는 믿음입니다.
8-9절....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사람은 보통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을 믿고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육신의 눈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육신으로 직접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박해 속에서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믿음을 의심했던 한 사람 도마가 있습니다. 그가 제자들이 함께 있던 공동체에서 이탈하여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제자였습니다. 도마가 이탈한 것을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겁먹고 숨을 곳을 찾다가 방황하다가 다시 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니 어떠합니까? 도마는 동료들에게 보아야 믿겠다고 장담하지요 그런데 정말 예수님 8일뒤 도마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이때 예수님 도마를 보시고 직접 상처를 만져보라 하시며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니까 예수님 말씀에 압도된 도마 신앙고백을 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완전히 엎드려진 온전한 고백을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자가 복되도다 말씀 하셨습니다.
이 선언은 단순히 도마 한 사람을 향한 가벼운 책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 승천 이후, 물리적으로 예수님을 직접 볼 수 없는 오늘의 모든 성도들을 향해 미리 내려주신 축복의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에 보이는 증거나 표적에 의존하지 않고, 말씀과 성령을 통해 주님을 깊이 신뢰하는 성숙한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확실한 믿음 칭찬 받기를 원하십니까?
부활의 산 소망에 뿌리를 둔 믿음으로 사십시오.
불순물이 제거된 믿음으로 사십시오.
보는 것 보다 보지 않고 믿는 영광스럽고 즐겁고 기뻐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