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극장폐관
국제극장이 문을 닫는다.
지금상영중인 「사막의 라이온」을 끝으로 14일 밤 영화간판을 내린다.
광화문일대의 재개발사업에 따라 극장이 내주 중 헐리고 그 자리에 20층
매머드빌딩이 들어서지만 (87) 극장측은 새 건물에 개봉관시설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
국제극장은 지난 57년 9월 「국제문화관」으로 문을 열었다가 59년 3월
마리오란차의 「세레나데」를 상영하면서부터 개봉관이 됐다.
현 건물은 50년대 숨은 알부자 김부전씨가 건축가 이천승씨의 설계로
지은 것.
그때로는 현대식 건물이어서 광화문의 명물로 돋보였었다.
그후 신효순씨에게 운영권이 넘어갔고 다시 동아흥행이 인수, 주인이 3번
바뀌었다.
27년간 국제극장에서 상영된 영화는 890여편으로 동원된 관객은 4천 2백
15만명, 현재의 우리나라인구를 웃도는 숫자이다.
이 극장에 얽힌 얘기로는 「춘향전」사건을 꼽을 수 있다.
한국영화가 한장 꽃을 피우기 시작하던 61년 신정, 당시 라이벌이던
홍성기감독.김지미씨와 신상옥.최은희 두커플이 「춘향전」과 「성춘향」을
다투어 제작, 국제극장과 명보극장에서 맞붙었다가 「춘향전」이
참패했었다.
그후 홍감독은 여러번 재기를 노렸으나 결국 영화계를 떠나야 했고
아내였던 김지미씨까지 다른 배우에게 빼앗겨야 하는 불운을 겼었으며
극장은 경영난에 봉착, 현재의 동아흥행으로 운영권이 넘어갔다.
국제극장이 낳은 스타는 신성일과 문희.
신성일은 61년 「로맨스빠빠」에 출연, 이 영화가 대히트를 하면서 이름이
알려졌고 다음해 「아낌없이 주련다」에 주연으로 뽑혀 신인배우에서 일약
스타가 됐다. 문희는 65년 이만희감독에게 픽업되어 주연한 「흑맥」이 이
극장에서 크게 히트, 청춘스타가 됐다.
현재의 중견감독인 최인현씨도 64년 한.춘합작 「달기」로 이 극장에서
관중동원에 성공, 기반을 잡았다.
외화인 「엑소시스트」상영 때는 관객이 기절, 물의를 빚었고 「대부」는
폭력을 그렸다해서 수입 때부터 찬 반론이 일었었다.
「쟝글북」 「나는 살고 싶다」 「러브스토리」 「포세이돈어드벤처」
「킹콩」 「007시리즈」등도 이 극장에서 개봉됐던 명화 등.
대형빌딩의 화재를 다룬 「타워링」상영 때는 서울시내의 전소방관들이
객석을 메운 날도 있었다.
동아흥행의 실제주인은 재일 동포 이건우씨(73).
국내의 이씨 인척들이 번갈아 회사대표를 맡아왔는데 어느 날 사장이
전무로 강등되는가하면 전무가 부사장직을 뛰어넘어 사장이 되는 등
운영방식도 별났었다.
어쨌든 광화문의 낭만으로 표현되던 국제극장이 사라지는데 대해
영화계는 무척 서운한 표정들이다.
일요일인 14일 하오 9시 5회 상영 때 입장하는 사람들이 국제극장의
마지막 관람객이 된다. <김양삼>
최종 편집: 1985년 04월 13일
카페 게시글
은막의 여신들
국제극장이 낳은 스타는 신성일과 문희 (펌)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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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1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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