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산이름에 악(岳)자가 들어가지 않았어도 월출산(月出山)은 바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월출산을 한국의 3대 악산으로 부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바위가 주를 이루다보니 그 바위들은 생김새가 마치 무슨무슨 형상을 닮아있고, 거기다 도드라진 바위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공간이 열려 가슴이 뻥 뚫린다.
조선 최고의 인문지리학자이자 풍수가였던 이중환은 ‘택리지’에 월출산을 ‘화승조천(火乘朝天)의 지세’라고 표현했다.
‘아침 하늘에 불꽃처럼 내뿜는 기(氣)를 지닌 땅’이라는 의미다.
‘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선 구정봉 아래 신령스런 바위가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떨어지지 않아 영암(靈巖)이란 지명이 유래했다고 전한다.
최초의 역사서 <삼국사기>에는 천황봉을 국가 지정 소사(小祠)였던 제사터로 기록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정상에 소사지(小祠址)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번 산행은 새로 개방된 산성대(山城臺)길이다.
필자는 이 루트를 ‘북릉 산성대’로 명명했다.
30년 만에 개방된 ‘북릉 산성대’길은 월출산의 주봉인 천황봉 북쪽으로 뻗어있는 능선길이다.
산성대라는 명칭은 예전에 영암산성(靈巖山城) 봉화대가 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금릉경포대(金陵鏡布臺)는 천황봉과 구정봉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으로, 크고 작은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굽이치며 빚어내고 있는 선경 지대다.
들머리 영암읍 교동리에는 녹동(鹿洞)서원과 낭산기념관이 있고 날머리 ‘금릉 경포대’ 월남사지(月南寺址)엔 ‘월남사진각국사비(보물 제313호)와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제298호)‘이 있다.
녹동서원에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인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 등이 배향돼 있고, 낭산기념관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낭산(朗山) 김준연(金俊淵·1895∼1971)을 기려 조성한 곳이다.
월남사지의 ‘삼층석탑’은 현재 보수중이라 관람할 수 없었다.
산행코스: 영암실내체육관-기체육공원-녹동서원-(산성대능선)-'월출제일관'각자-산성대(485.6)-고인돌바위-광암터삼거리-구름다리갈림길-통천문-천황봉-
돼지바위-남근석-바람재(구정치)-경포대삼거리-금릉경포대-월남사지진각국사비-월남사지삼층석탑-금릉경포대 주차장(8.54m, 4시간 50분)
정확한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카메라의 시간은 에러가 나 1시간 15분이 빠르다)
고도표
<클릭하면 원본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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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엔 '영암실내체육관'을 입력하여 횡단보도 앞에 차를 멈췄다. * 정확한 시간은 오전 11시 40분.
영암실내체육관.
월출산국립공원 입간판 안으로 들면...
주차장 시설.
주차장 사이로 난 길은 '기찬 묏길'. '기찬 묏길'을 따라...
우측 녹색 보도가 깔린 길을...
안내도를 지나고...
아치형 장미터널을 지난다.
이어지는 길은 계속하여 '기찬 묏길'.
'기찬 묏길'과 갈라지는 갈림길. 기찬 묏길은 월출산을 두르는 월출산 둘레길이고, 우리는 산성대 탐방로 입구의 계단으로 오른다.
회원들에겐 곧장 올라가게 하고, 필자는 우측 '기찬 묏길'을 따라 100m쯤 들어가면...
일군의 가족묘지 밑으로 녹동서원이 보인다.
입구에 홍살문이 정문임을 알리고 있는데, 집 뒤로 내려서기에는 적절치 않아 카메라만 둘러가며 주위를 살핀다.
녹동서원(鹿洞書院)은 1603년(선조 36)에 존양사(存養祠)를 창건하고, 최덕지의 위패를 모셨다.
1659년 최충성, 1695년(숙종 21) 김수항, 1711년 김창협을 추가 배향했으며, 1713년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76년 지방 유림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가족묘지 맨 상단에 문/무인석과 석등이 있어 살펴보지만 비석엔 ''전주 최씨 언청(彦淸)'이지만 정확히 누구의 무덤인지는 알 수가 없다.
'최덕지'의 후손으로 추측을 해보지만...
다시 되돌아와 빠른 걸음으로 앞서간 일행들의 뒤를 좇는다.
서서히 기암들이 나타나고...
바위들은 허옇게 배를 드러낸다.
안전시설은 거의 완벽수준.
오랫동안 통제되어오다 개방하였으니 안전시설이 급선무였으리라.
지붕있는 바위 아래 손바닥만한 그늘에서 쉼을 하는 일행들. 휴일을 맞아 동참한 회원들이다.
누가 여기에다 왼발을 올려 발자국을 남겨 놓았남?
능선 좌우로 드러나는 기암과...
기암들.
도드라진 바위에 살짝 올랐더니 멀리 하늘지붕을 받치고 선 봉우리.
천황봉이다.
세 분의 여성회원을 모델로...
천황봉의 氣를 받는다.
입을 꾹 다물고 위엄을 부리는 이 바위는?
'월출제일관(月出第一關)' 각자를 확인하기 위하여 주의를 기울였더니...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지리산에 '지리산 제일관문'이 있듯 월출산엔 '월출제일관문'이 있다.
그러고보니 문(門)자를 쓸 공간이 없어서였을까?
글쓴이는 송은(松隱).
한동안 머물며...
안내판에는 월출산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이자 봉수대 역할도 하였고, 문바위라고도 했단다.
숲그늘에 둘러앉아 식사를 한 뒤 출발. 바위에 뚫린 홈은 인위적인 흔적.
턱을 괴고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
이목구비가 선명한 너는 누구를 닮았니?
천황봉은 차츰 가까이 다가오더니...
살짝 고개를 내민다.
女人과 山은 서로 조화(調和)이지만...
부조화(不調和)?
멀리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능선.
살짝 당겨보니 과연 '화승조천(火乘朝天)'의 지세로고.
천황봉이 2km남짓.
무거운 짐을 진 이넘은 거북인가?
암릉의 등줄기를 타고...
이젠 내려다 본다. 장군봉?
장군봉과 암군.
능선 전체가 전망대 구실.
날등 안전계단을 따르다...
작은 봉우리에 오르지만 쨍쨍 내리쬐는 이른 더위에 숨은 턱에 닿아. 나무라는 게 고작 모질게 자라는 외솔 한 그루.
사방이 뻥 뚫려...
시선이 가는 곳이 그저 선경.
예사롭지 않은 바위는 흡사 고인돌을 닮았고...
장군봉과 사자봉 사이엔 바람계곡이.
기념촬영을 하는 일행들을...
함께 담으면 그게 곧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
침식작용으로 토사가 유실되어 드러난 바위에 또 풍화작용으로 고인돌을 닮게 되었다는 안내판. 산아래 있었다면 그냥 북방식 고인돌이었을 것.
돌아본 고인돌바위.
더운 날씨에 바지를 걷어올린 장수씨의 망중한.
이제 고도를 낮추어가며...
마치 잔도를 걷듯...
암릉구간을 지난다.
예전 비탐지역이었을 때엔 날등을 따랐을 것. 지금은 말그대로 암릉에 달아맨 잔도(棧道)를 타고 가는 길.
고도를 낮추었다가...
오르기를 반복.
뭔가 닮은 이 바위. 목을 길게 쭈욱 뺀 이넘은 나무늘보를 닮아 '나무늘보바위'라 명명했다.
계단을 타고 이어지는 산성대 능선.
인위적인 안전시설이 없었다면 난이도는 최상급.
좌측으로 육형제 바위와 사자봉.
봉우리를 세어 보기도 하고...
이정표를 확인하지만 산성대주차장이 불과 3.3km밖에 안되네.
다른 각도에서 육형제바위와 바람계곡.
사자봉 아래로 출렁다리(구름다리)를 확인하여...
살짝 당겨본다.
사자봉과 좌측 하단에 구름다리.
통천문 갈림길에서 현자총무와 순옥씨가 기다리고 있다. 정상에는 여러번 갔다왔기에...
바로 경포대로 내려갈 참이란다.
구름다리 방향 약 100m 지점에서 경포대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고, 그 길은 약 2.6km라는 이정표.
필자도 여러번 올랐지만 천황봉 오르기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일 것. 이 참에 천황봉 氣 좀 받아야제.
통천문을 통하여...
하늘을 통한 뒤...
뒤돌아 보았다.
아직 하늘길은 100m를 더올라...
세상이 눈아래 있어야만 느낄 수 있어.
정상에는 한무리의 산객들이 고스락을 점유하고 있어 뒷켠에서 '월출산소사지(月出山小祀址)' 표석을 확인한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국가에서 제사를 지낸 소사지 여러곳 중에서 확인된 유일한 곳이란다.
이어갈 능선으로 구정봉을 확인하며 머뭇거리다...
그제서야 자리가 나 기념촬영.
진행능선은 경포대 주차장 3.3km.
두꺼비를 닮은 바위.를 곁눈질하고 내려서다...
돌아보는 천황봉.
하산길에서 보는 바위벼랑.
향로봉과 구정봉.
돌아본 모습.
기암들을 살피다...
돼지를 닮은 이넘.
돼지바위다.
돌아본 모습.
진행방향.
바위를 에돌아...
남근바위 안내판.
거대한 입석을...
돌아보니 그저그런 바위.
일행들 중에서 구정봉 아래의 마애불을 찾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안내판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기가 터닝 포인터인 바람재(구정치)다.
바람재 삼거리에선 경포대 방향 좌측 내리막.
조금 내려오자 물소리가 나더니 맑은 계곡이 드러난다.
발원지가 천황봉인 계곡과 구정봉인 계곡이 합수 되는 지점.
경포대 삼거리다.
경포대 삼거리의 지형지물.
금릉경포대의 안내판을 접한다.
안내판의 각자를 확인하고...
확대 촬영한 뒤...
금릉경포대 안내판을 일별한 뒤...
계곡으로 내려가 보았지만 '금릉경포대' 각자는 확인하지 못했다.
안내판에서 보았던 닮은 바위에는 물살에 깎인 듯 각자의 흔적이 었었고 다만 '성균 박사 청원 이흠'각자만 선명하다.
산길을 내려서면...
족욕장.
게이트를 빠져나와...
월남사지로 향한다.
주차장에 우리 버스가 대기중이고...
4~500m는 족히 될 위치에...
새 집을 짓고 들어 앉은 '월남사지진각국사비(보물 제313호)'. 전체 높이 3.58m, 직사각형 대석 높이 2.6m, 너비 2.3m.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이 창건한 사찰이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진각국사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누구의 비석인지 몰라 월남사지비라고 부르다 1973년 비의 내용을 판독한 뒤 진각국사비로 이름을 정정했다.
거북받침돌 위에 비신을 올린 형태로 편마암으로 된 비몸은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으며 머릿돌은 없다.
거북은 긴 목을 빼고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네 발의 앞뒤 발가락은 모두 4개이며 꼬리는 왼쪽을 향하고 있다.
비문은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으나,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자료요약>
비각은 맞배지붕으로 새단장을 하고 있고...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보수 정비사업 중이라 관람할 수 없었다.
삼층석탑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레일을 통하여 아래 밀폐된 공간에서 정비하고 있는 듯.
비각과 삼층석탑은 모두 재정비 중이라 '다음백과'에서 자료사진을 가져왔다.
<다음백과>
월남사터에 남아있는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제298호)'은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바닥돌 위에 기둥 모양의 돌을 세우고 그 사이를 판돌로 채운 뒤 넓적한 맨윗돌을 얹어 조성하였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매우 높으며, 2층 몸돌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였으며, 밑의 받침은 3단을 두었다.
지붕돌의 윗면은 전탑에서와 같이 계단식 층단을 이루었고,추녀는 넓게 수평의 직선을 그리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탑신의 모든 층을 같은 수법으로 조성하였고 위로 오를수록 낮은 체감률을 보인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받침 위에 꾸밈을 위해 얹은 석재 하나가 남아 있다.
이 탑은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백제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백제탑이라 할 수 있는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비교해볼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에서는 매우 중요한 석탑이라 할 수 있다.
월남사지를 탐방하노라 계곡에서 씻지도 못해 주차장 화장실에서 웃통만 벗고 씻을 수밖에 없었고, 산행거리와 시간은 꼭 비례하지 않더라.
-월출산 견성암-
월출산은 열 사흘이 보름달 보는 날
달맞이꾼들이 견성암에 몰려가서
달빛만 터지게 싸들고 가는데요.
불공(佛供)은 안드리고 달만 훔쳐 간다며
궁시렁거리는 공양 보살을
부처님이 그윽히 지켜보시다
밤에는 달빛이 부처란걸 모르냐고
휘엉청 휘어진 죽비를 들어
보살님 쭈구렁한 궁둥짝을 내리칠 때
춘란(春蘭)이 배를 잡고 깔깔대다가
눈꼽같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말지요.
<장 인 성>
*견성암(見性庵)-월출산 기슭의 달맞이 명소로 이름난 조그만 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