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권기만
달맞이 숨결 외
기/억은 별자리를 따라 돈다 뼛속까지 별의 영토라고 어깨를 툭/툭 치는 비, 접힌 공간축을 펴자 은하가 한 송이 나팔꽃으로 피/어 있다 울/음에 멈춘 작약, 철조망 위에서 바퀴 소리로 덜/컹거리는 장미, 슬픔은 응축되는 물/질이라며 내 몸에 주름을 새겨 어/둠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밤, 서둘지 말라는 주문을 걸고 있는 개구리들의 독경 소리에 은하수가 여/자의 뒷모습으로 걸어간다
세상은 별들의 무/덤에서 탄생하였지만 별이 되어 죽는 사/람이 너무 없다 노란 등을 흔들어 달맞이한 꽃이 고/운 손을 감은 눈에서 뽑았다며 보여준다
불사세포를 이식해 만/년을 산 거북이가 해초에 달라붙은 비닐에 감겨 죽었습니다 흰/눈에 녹아 있는 발광체를 밟고 저녁별이 걸어옵니다 마젤란호를 타고 은하를 횡단해 봤느냐고 물어봅니다 백 광년 동안 공부하고 작성한 리포트에 광/채 한 소절 흘려 완성한 음계를 들고 백마의 전/설에서 태어난 꿈을 가진 여자가 라디아고 행성으로 급하게 이/주를 떠납니다 하프물범의 영/혼에서 추출한 백 광년의 유영술은 지구가 회/전하는 이유입니다
나무에 서/식하던 직박구리 발자국이 저녁을 향해 걸어옵니다 내 눈에 찍힌 직박구리 발자국은 누/가 알아볼까요 숨을 참으면 호흡 속에 살고 있는 나뭇가지가 흔들립니다 숨/결 운전법을 사랑에 숨겨뒀다는 말에 거칠게 몰던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천천히 더 천천히 걸어야 꽃이 다치지 않습니다 아/이라는 꽃, 웃/는 모습이 꽃과 동류라는 걸 알아보았나요 여우족 사내는 너/무 오래 인간으로 변신한 탓에 침묵하는 입/술을 잃어버렸다고 투덜거립니다
청/년 세포를 주사하고 변신을 안정시킨 후 학생으로 위장했지만 잠들면 몽고반점 아래 있는 꼬/리를 꺼내어 흔드는 버릇은 어쩔 수 없습니다 변/신을 들키지 않으려고 걸어둔 최면이 술만 마시면 사라져 노래만 하면 여우 울음소리가 납니다 별 한 귀/퉁이 의식에서 동질의 어감을 꺼내어 덧/니로 보여주면 잠잠해지는 골목, 나긋하고 솔깃한 숨결로 숨어드는 건 언제쯤이나 가능할지 확실한 생존법을 알아내겠다며 유학 간 여동생이 장미에서 건너온 여자와 사/랑에 빠져보라고 합니다
숨/결 한 다발 들고 바퀴 소리도 없이 5월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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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행성
오로라 부스러기 뿌려 키운 꽃으로 만들었다는 여신의 옷자락
꽃을 뿌리면 시냇물에 적셔둔 귀를 꺼내어 보여줍니다
지구로 귀환하라는 기별에 갑각류가 숨어 살던 가슴골에서
폭포 소리가 난다며 P병장이 가슴을 내밀어 보입니다
내 몸에 저장된 중력가속도는 얼마일까요
지구를 떠나 머나먼 우주로 귀향하는 건
벨로시랩터가 번성한 행성에서 뜀뛰기 하는 것과 같지요
목도리도마뱀의 정지된 눈에 오로라가 보이네요
한라산만큼 큰 나무 아래 코끼리 두 배만 한 벌레가 악수를 청하네요
강철로봇 속에서도 호흡이 가쁩니다
오륙도만 한 연꽃에서 잔 잠에 배인 향기는 달만큼 커져 있습니다
내가 휘청한 만큼 시간이 휘어져 떠나온 지 고작 백년에 천년이 흐른 지구
우주의 진정한 안내자는 중력이란 거, 방탄복 입고 서로를 지나쳐 갈 때
화상 입은 꽃이 제 벌건 낯을 흔들어 보인다 자전에 비칠거리며 안부를 묻자
손끝에 닿은 전갈자리가 이팝의 광도로 별의 속내를 보여줍니다
꽃의 짧은 일대기에서 지구가 끈적하게 묻어납니다 다연발 총알을 다
써버린 꽃이 탄피처럼 떨어져 꽃잎으로 밝아졌던 어둠이 야위어가자
아바타에서 태어난 인간이 질주 본능을 꼬리로 세워보고 있습니다
되살린 꼬리로 부드럽게 목을 쓰다듬자 초록귀가 쫑긋 일어섭니다
물의 아들딸로 사는 동안 지구로 귀환하라는 기별은 아직 없습니다
지구가 정말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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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만 2012년 《시산맥》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발 달린 벌』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