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대통령기 독서감상문대회 광주지역 최우수상 수상작]
평화를 부르는 용기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읽고
호남삼육중학교 1-3반
권수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 미국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 는 것을 자명 한 사실로 여기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 라는 꿈이 있습니다…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저희 네 자녀가 피부색이 아 니라 성품으로 평가될 날이 올 거라는, 오늘 저에게는 그런 꿈이 있습니다.”
킹 목사의 이 연설은 세상을 움직인 최고의 명연설로 꼽힌다. 이 연설이 흑인인권을 지키고, 노벨상을 타게 해 명연설인 것은 아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다시 들어도 가슴을 울리는 진정성과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폭력과 차별이 난무하던 60년대 미국에 평화를 부른 주문이었다. 나는 지금 어떤 ‘꿈’으로 차별과 폭력에 맞설 힘을 키우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소통하며 살고 있다.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다보면, 자신과 관점이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비하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이 사실을 많은 이들이 인지하지만, 먼저 손을 내밀어 갈등을 풀려는 사람들은 드물다. 개인주의 사고와 ‘귀차니즘’ 때문에 사람들은 아침밥을 거르듯 사람 사이의 예의와 관계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파편화되고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보다 아집과 독선으로 된 벽을 쌓는다. 그러는 사이 ‘평화’ 또한 멀어진다.
미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백인에게 무시받아, ‘인종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신념이 컸다. 그는 1955년 보스턴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흑인들은 몽고메리에서 운영하는 버스에 탈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규정을 백인들이 만들려고 하자 강하게 반대하였다. 이를 계기로 많은 흑인들과 힘을 합쳐 흑인 해방 운동에 참여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옥에 갇히면서도 흑인 인권운동 외,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도 목소리를 냈다. 차별과 폭력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킹이 있었다. 그 결과 1964년 10월 14일, 킹은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고정관념이 사회적 제도를 억누를 때 그 누구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할 때 그의 ‘꿈’은 잔잔한 물결이 파도가 치듯 두렵고 힘없고 약한 흑인들의 가슴을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평화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너무나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였기 때문이다.
다이빙대에서 뛰겠다는 의지가 있어도, 막상 위로 올라가서 뛰어 내리려고 하면, 자신이 겪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워, 사람들은 다이빙대에서 한 발짝 두 발짝 멀어지게 된다. 자신이 겪어야 할 위기를 뛰어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와줘서 구출해 줄 것이라면서 헛된 기대를 품는 것은 어리석다. 뛰어야 할 다이빙대는 높아 보이지만, 그 공포를 뛰어넘는다면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 다이빙대는 우리가 삶을 살면서 의무적으로 넘어야 할 벽이기도 하다. ‘인종차별’이라는 다이빙대에 서서 순간의 어려움과 두려움을 참고 뛰어든 마틴 루터 킹처럼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이끌어 환하게 빛나게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불평등에 맞설 수 있는 날카로운 칼을 우리의 손으로 직접 뽑지 않는 이상, 용맹한 용사들은 영화에 나오는 마법사처럼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다르게 마틴 루터킹은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앗아가는 ‘인종차별’에 맞서 싸웠다. 그 결과 흑인은 그들을 둘러싼 굴레 하나를 더 벗었다. 지금도 우리들은 마틴 루터 킹의 용기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세계는 민족, 종교 역사갈등과 난민문제와 테러까지 휩싸여 여전히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다. 이 속에서 평화를 지켜낼 사람은 줄 마틴 루터 킹 같은 미래의 진정한 용사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세계를 보는 눈을 키우고, 망설임 없이 행동으로 옮길 용기를 기를 때 우리를 둘러싼 평화를 지킬 수 있다.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소박한, 그러나 간절한 꿈, 그리고 용기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