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연구결과를 적어본다.
신라는 박혁거세의 초기신라와 법흥왕의 중기신라로 나눌수있다.
박혁거세가 세운 신라의 도읍 금성(金城)은 요동반도 서부 해안가에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현재의 요동반도 중부로 본다.

<신라사학회>가 발표한 논문에 근거하면 경주일대를 지표발굴 조사한 결과 3세기이전의 유적과 유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3세기이전의 집터유적은 경주일대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3세기이후에 비로소 확장되기시작했다고 한것이 결정적으로 이연구를 시작하게된 동기이다.
2014년에 학계가 철석같이 믿고있던 慶州 月城을 신라초기유적으로 보고 발굴을 시도했으나 5세기에 이루어진 출토물과 인신공양의 흔적만 나왔다.
신라의 전신 진한을 구성했던 6부가 경상북도 안강(음즙벌국)·영천(골벌국)·경산(압독국)·청도(이서국)·울산(우시산국)·경주(사로국)로 비정하고, 사로국인 경주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소국들이 위치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경주를 중심으로 시작하였다는 신라사를 언급할때 발굴고고학 측면에서 숙제를 남기고 있는 점은 삼국사기 기록처럼 혁거세거서간(재위 B.C 57~4)이 세운 초기신라의 수도 금성金城 유적이 발굴되지 않고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중국사서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내용인 초기신라의 위치는 전한의 낙랑지에 있었다고 했을 뿐 아니라, 진나라말 항우와 진승의 난리에 시달려 동쪽으로 건너온 중국인들이 많았는데, 삼국지(한전)기록처럼 이들이 마한의 동쪽에 자리를 잡아 진한과 더불어 섞여 살았다고 했다. 이들이 조선유민들과 산과 계곡 사이에 살면서 여섯 마을을 이루었고, 이것이 진한의 육부가 되었다. 이러한 진한 6부가 우리학계가 주장하는 경주 주변에 존재했던 소국들 인가 하는 여부는 또 다른 기록과 비교하여 정리하는것이 좋겠다.
학계가 위서로 보는 조선초 이맥李陌(1455~1528)이 지은 태백일사太白逸史로 부터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가문 및 창업과 관련된 내용은 삼국사기보다 낫다.
“그는 옛날 부여 제실帝室의 딸 파소의 아들로 흑룡강성 눈강嫩水지역에서 동옥저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나을촌에 와 닿았다고 한다. 이 때 촌장인 소벌도리가 그 소식을 듣고 집에 데려다 길렀으며, 나이 13세에 이르자 지혜는 빼어나고 숙성하며 성덕이 있어, 진한 6부의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거서간居世干이 되니, 도읍을 서라벌徐羅伐에 세우고 나라를 진한辰韓 또한 사로斯盧라 하였다.”
『삼국사기』는 박혁거세가 부여왕실 출신이라는 사실과 북방에서 진한으로 내려왔다는 타당성 있는 기록과는 먼 애매모호한 난생설화로 기원을 설명했다. 14세기사람 이맥보다 11세기에 살았던 김부식이 옛전거는 더많이 가지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하지 않았다.
신라의 초기상황을 기록한『수서』와 관련사서를 볼때 박혁거세 역시 부여계 인물로 왕족과 그 추종세력 그리고 토착 고조선인들에 의해서 왕으로 추대되었음을 짐작할수있다. 따라서 혁거세거왕이 세운 신라의 초기수도 금성은 경주보다는 진나라 대란이 만든 백성들의 피난루트에 위치한 요서나 요녕지방에 찾아야할 것으로 본다.
이후 한나라말때 일어난 황건적의 난(184)및 동탁의 난(189~192)으로 인한 혼란기에 중국인과 조선인들이 전란을 피해 요동으로 대량으로 넘어오게 되었고 이러한 정세때문에 발해만 지역에 있었던 신라와 도읍 금성金城은 고구려·백제·중국인들이 서로 뒤섞여 지내는 옥저·부여·한·예의 땅과 같은곳이었다.
훗날 저작된 수서隋書에 3세기경 신라왕은 백제사람이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마침내 신라왕이 되었다고 썼다. 이같은 내용이 우리가 알고있지 못하는 초기신라와 대륙백제의 존재와 관련된 역사이자 중국에서 숨긴 대륙백제인 공손도와 손자 공손연公孫淵(?~238)의 관련된 기록이다.
이러한 사실을『삼국지』는 「공손도전」에서 손자 공손연이 금성金城을 차지하였다는 기록을 제시했다.
淵據金城之固,仗和睦之民,國殷兵強,可以橫行。策名委質,守死善道,忠至義盡,為九州表。즉 공손연이 박혁거세가 있었던 신라 금성을 차지하고 그곳을 잘다스려 군사적으로 강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조曹操 역시 공손도때 부터 현토에서 세력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거리가 멀어 건드리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 요동의 강자 공손연에 이르러 조위 무구검의 침략도 격퇴하였는데 이때가 237년이었다.
이곳에 중국사가들이 숨겨놓은 대륙백제인이자 요동의 강자 공손연(公孫淵) 때문에 신라 조분왕대에 金城을 빼앗기고 바다를 통해 230년경 현재의 경주로 천도를 단행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신라왕(조분이사금?)은 경주慶州로 숨어들고 요동에 있던 온조백제가 요녕 남부 및 한반도 서북부로 옮겨오는 사건 때문에 신라의 선대先代가 백제 속국이었다는 기록을 남긴것이다.
문고리.
첫댓글 방장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