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다양한 학생생활지도 강화 방안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이의 성공을 위해서는 교원의 교육 외적 업무, 즉 행정업무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안양옥 교총회장과의 신년 대담에서 학교 내 각종 위원회 정비, 불필요한 업무 폐지·이관 등을 통해 행정업무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시․도교육청별로도 교원업무경감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교원들이 느끼는 잡무의 범위와 업무경감 방안의 선결조건을 알아봤다.
행정보조 전문성 부족…업무별 담당자․절차 매뉴얼 필요 구성원 판단 존중, 교과서‧행사‧결재 간소화 등 노력해야
서울시교육청이 관내 1269개 학교 중 1004개 학교에 교무행정지원사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12일 발표했다. 강원·전남교육청 등이 지난해부터 운영해온 이 제도는 교무행정업무 부담을 덜어 교원들이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다른 시도들 역시 명칭과 역할에 차이는 있지만 이와 유사한 행정보조 인력을 배치·활용하고 있다. 중앙정부차원에서는 연차별로 학교규모에 따라 행정직 1~2명을 증원, 2014년까지 총 1만5319명을 배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장 교원들은 이런 행정지원 인력 배치에 대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는 등 제도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변혜진 제주남초 교사는 “학교 행정업무가 대부분 교육활동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교원들도 일정부분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하지만 업무 범위가 명확치 않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1년 단위 비정규직을 채용하다 보니 전문‧자발성이 부족해 실제 업무감축 효과가 크지 않고, 업무분장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학교 구성원 간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변 교사는 “배치인력을 단순행정전담요원이 아닌 교무보조 인력으로 채용하고 중앙정부 또는 교육청 차원의 명확한 업무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현석 고려대 교수는 ‘교무실 업무분석을 통한 교원업무 경감의 방향과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교무실 업무를 교육전문성이 필요한 핵심 업무와 그렇지 않은 부수업무로 분류하고 부수업무를 교무행정지원인력이나 행정실, 교육청에서 전담 또는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표 참조>
여기서 핵심 업무란 교육적 판단이 반드시 필요하거나 교육활동을 설계하고 진행하는 일, 교원의 전문성을 신장시키는 일, 직접적인 교육서비스와 관계되는 업무를 의미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상벌, 포상, 징계 등 학생선도위원회 업무는 핵심 업무로, 효행 및 선행 학생 표창에 관한 부분은 부수 업무로 분류된다.
업무매뉴얼 활용 우수학교로 꼽히는 서울 청담중 장명희 교감은 "업무별 담당자와 절차를 정확히 명시한 매뉴얼을 활용하니 선생님들이 업무에 대해 부담을 덜 느끼는 것 같다"며 "학교마다 이런 매뉴얼이 보급되고 선생님들이 잘 활용한다면 행정업무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상급기관, 국회의원, 지자체 등에서 남발하는 각종 공문도 현장 교사들이 꼽는 업무경감 1순위 과제다. 교과부는 이렇게 외부기관에서 내려오는 공문 중 교육정보공시, 교육기본통계 등에서 관리하는 정량적 항목은 올해부터 학교로 공문이 내려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본지 1월2일자 보도) 이에 대해 교총 정책지원국 장승혁 연구원은 “실제로 이행된다면 교사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수업결손을 초래하는 당일 자료 보고 요청을 없애고 최소 1일 이상 충분한 제출기한을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매학기 반복되는 교과서 분배업무도 그렇다. 학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학생 1인당 15~20권(고1 기준)의 교과서를 신청부터 분배, 반품, 정산까지 담당교사가 도맡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 업무가 집중돼 담당교사의 육체·정신적 고통이 크고 이로 인한 수업결손도 심각하다. 최근 선택과목이 늘고 e-교과서까지 생기면서 부담은 한층 커졌다. 이숙희 교과서담당교사협회장은 "교과서를 납품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직접 배부하는 것이 순리"라며 "올해 교과서대금이 크게 인상된 만큼 온라인 결제시스템과 택배시스템을 구축해 학교는 선정·주문만 담당하고 학부모 온라인 결재 후 검정협회 등이 직접 분류·배송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행적으로 추진돼온 각종 대회나 행사, 필요성이 떨어지는 위원회 등을 줄이고 업무절차를 간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교과부, 교육청 등 상급기관의 노력이 중요한 부분이지만 학교 자체의 노력으로 상당한 업무 절감효과를 거둔 예도 있다.
서울강명초는 과학의 달 행사, 민족공동체의식행사, 불조심 행사 등 그동안 의례적으로 진행돼온 행사를 교육과정 속에 포함시켜 폐지하고, 실질적 자치 없이 형식적으로만 운영해 왔던 전교어린이회를 없애 사안 발생 시 전체 또는 학급별 학생회의를 여는 방식 등으로 업무를 절감했다. 경기 수원 이목중은 '담당-부장-교감-교장' 순으로 되어 있는 초과근무 결재과정을 담당-교장으로 간소화하고, 운동장 조회 대신 담임중심 훈화를, 상장 수여식 등의 행사는 홈페이지 칭찬게시판을 통해 안내하는 방식으로 바꿔 성과를 거뒀다. 김영동 서울강명초 교장은 "학교 구성원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해 형식적인 부분을 하나씩 줄여나간 것이 업무 효율화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나이스, 에듀파인과 같은 행정시스템에 대한 불만 역시 적지 않다. 불편한 인터페이스와 복잡한 결재 절차, 접속량 증가 시 속도 저하 등 현장의 요구를 수합한 교총의 개선 요구에 교과부는 작년 12월초 ▲예산요구절차업무 간소화 ▲사업담당자 성립 전 예산요구절차 삭제 ▲지출품의 유형 일원화 ▲예산과목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공립 초·중등학교 회계규칙 개정 표준안'을 만들어 각 시도로 시달하고 3월까지 규칙을 개정하도록 했다.(본지 12월12일자 보도) 그러나 2월 중순인 지금까지도 규칙을 개정하지 않은 시도가 많아 이런 사실을 현장은 제대로 인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과부는 이렇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거나 이미 시행되지 않고 있는 정책인데도 처리되고 있는 업무 등을 모니터해 프로세스를 정리해 주는 프로그램을 포함한 업무경감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교과부 교원정책과 최흥윤 행정사무관은 “지난해 11월 발족한 교육정보통계위원회(위원장 이상진 교과부1차관)에서 통계‧행정자료에 대한 주기적 수요 및 활용도를 조사해왔다”며 “이달 말 구체적 교원업무경감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