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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제1~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늘 문이 열린 이유?입니다..
(계3:7~8절)
11월 주제가 열린 문을 향하여 들어가라!!입니다.
오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늘 문이 열린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둘째: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늘 문이 열린 이유는?
셋째: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1.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1) 하늘 문이 열린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라는 말은 “형제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늘 문이 열린 교회입니다.
7절에 보니까 그 교회 사자에게 편지가 왔는데 예수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십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졌습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사람이 없는 예수님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8절에 보니까 빌라델비아 교회에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주님께서 문을 열어놓았기 때문에 절대로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교회가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빌라델비아 교회만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연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교회 믿음을 한번 보겠습니다.
2) 적은 능력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8절에 내가 너의 행위를 안다.. 주님은 우리의 행위를 보십니다.
우리가 돈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리고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믿음을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내 말을 지키며..
로마서를 보면 어떤 사람이 성도입니까?
주님을 믿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름 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예수만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도 아빠, 엄마라고 잘 부르지만 부모님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이다..
적은 능력이라는 것은 교회의 규모나 숫자나 성도들의 어떤 재정이나 뭔가를 할 수 있는 육신적인 힘이 작은 교회라는 겁니다.
아주 적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말을 지키고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적은 교회인데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순종하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작은 교회가 믿음을 지키면서 인내하면서 왔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현대의 교회는 너무나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고 말씀을 지키지 않고 믿음을 지키지 않고 쉽게 배반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일날에 교회에 앉아 있는 다고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믿음이 아닙니다. 마음은 이미 다른 것을 사랑하고 내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고 말씀을 두기를 싫어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설교를 듣지 않습니다.
다른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내가 이르는 것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열리고 영으로 들어야 됩니다. 생명입니다. 육신적인 이론이나 지식가지고 들으면 들려오지 않습니다.
믿음도 안자라고 안 생깁니다.
예배 끝나고 나가면 나가는 즉시 잊어버리고 다른 생각하고 다른 일하고 육신적으로 살아갑니다. 자기 이성적인 판단과 자기 지식과 경험으로요.
3) 유대인들의 핍박과 훼방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름도 배반치 않는 이유가 9절에 보니까 굉장히 사단의 훼방이나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었습니다.
(계2:9절)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서머나 교회도 굉장히 환난을 많이 당하고 가난합니다. 궁핍합니다. 사실은 주님께서 너희가 부요한자고 왜 너희가 어려움을 당하는지.. 유대인이라는 자들에게 훼방을 당하고 사단의 훼방을 받고 핍박을 받습니다.
왜냐면 믿음이 작으면 핍박을 못 견딥니다. 훼방을 못 이기고 돌아섭니다.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남편으로부터 아내로부터 핍박을 받으면 못 견디고 돌아섭니다.
늘 교회를 훼방하고 핍박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보십니다.
마지막까지 보십니다. 마지막1초까지 보십니다. 1초까지 생명이 붙어있는 순간까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유대인들의 훼방과 사단의 훼방과 핍박입니까?
현대의 유대인은 믿는 자들입니다.
적은 믿음.. 주의 말씀을 지키고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죽는 것만 순교만 배반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견딜 수 없는 훼방과 핍박과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겁니다.
얼마나 유대인들의 훼방과 핍박이 심했으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형제끼리 사랑하고 아름다운 일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힘들어서 주님이 보실 때도 너무 작은 사람들 너무 작은 수..주님이 이 교회를 선택합니다.
수가 적지만 그들의 사랑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말씀을 지키는 그 믿음..
10절에 보면 인내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인내하면서 지켜야 됩니다.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되고 장차 올 세상에 임하는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
그러시면서 11절에 내가 곧 올 테니까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면류관을 빼앗기지 못하게 하라..빌라델비아는 면류관을 받은 교회입니다.
적다고 믿음이 적고 크다고 믿음이 큰 것이 아닙니다.
작은 교회 큰 교회를 왜 따지느냐.. 교회면 다 똑같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하나님이 주신 은혜, 하나님께 부름 받아 어디든지 가서 달란트를 활용하면 되는 겁니다.
큰 교회라서 하나님이 계시고 작은 교회라서 하나님이 안계시고 이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도 문을 닫았습니다. 재정의 문제가 생겨서 작은 교회 8천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적은 능력으로 주의 말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니 참 가슴이 메어졌습니다.
2. 빌라델비아 교회에 문을 왜 열어줄까요?
1) 주님의 나라로 주님 앞으로 초청입니다.
마11장에 보면 수고하고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의 초정이 있었습니다. 내게로 오라는 겁니다.
그 적은 식구들이 서로 똘똘 뭉쳐서 서로 핍박을 견뎌내고 훼방을 이겨내기 위해서 그들이 얼마나 수고의 눈물을 흘리며 수고의 씨를 뿌리며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통가운데 있었겠습니까?
이제 그들을 더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그 수고하고 무거운 것을 주님께서 안식으로 바꿔 주시고 그들을 위로하고 초청하기 위해서 문을 여셨습니다.
여기에 와서 너희들이 먹고 마시고 웃고 힘을 내라는 겁니다.
위로하시는 겁니다. 격려하시는 겁니다.
이사야서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고 고난 가운데 있는 네 백성을 위로하라..
사람들이 왜 좋은 말만 합니까? 야단도 치고 꾸중도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는 혼내고 야단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위로와 격려입니다.
이겨내야 됩니다. 살아나야 됩니다. 살아남아야 됩니다.
염려를 하는 이유와 염려를 하지 않는 이유를 새벽에 말씀드렸습니다.
소유가 많을수록 더 많은 소유를 원한다면 더 많은 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가운데 주님과 즐겁게 동행하고 즐겁게 교제하기보다 주님 만날 그날까지 우리는 염려 속에 살아야 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비록 적은 교회이고 적은 능력으로 부자도 없고 유명한 사람도 없고 잘 나가는 사람도 없는 교회지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핍박과 환난과 고난과 훼방 앞에서 살아나는 것, 믿음을 지키는 것, 견뎌내는 것을 적응할 수 있는 것.. 이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끝까지 보시고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그리고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고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얼마나 주님의 사랑을 입고 있는지를 알리는 겁니다.
그들을 더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새로운 힘을 주시기 위해서 더 능력의 옷을 입히기 위해서 주님이 초청하셨습니다.
그 수고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주님의 위로를 받들어 주심께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부으시고 잔이 넘치게 하셔서 새 힘으로 무장 시켜 주셨습니다.
문이 열렸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교회를 갈 때도 예배를 드릴 때도 지성소로 간다고 이야기 합니다.
지난번에 성소를 배웠습니다. 뜰이 있고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성소는 우리가 예배하는 곳이고 뜰은 누구나 들어와서 있는 곳입니다. 환난의 시대에 성소보다 뜰에 있는 사람은 힘들어집니다.
문을 열어서 초청해서 들어오라는 것은 지성소까지 교회를 들어오도록 이 교회가 믿음을 지키고 인내하고 배반하지 않았지만 다음단계는 주님 앞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가서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하도록 초청하는 겁니다.
예배는 차원이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응답하시고 도와달라는 것에 포인트를 둡니다.
지성소로 들어가면 이런 것에 포인트를 두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마르다 집에 갑니다. 마르다는 대접하려고 바쁜데 마리아는 주님 발 앞에 앉아서 주의 말씀에 경청합니다.
2) 지성소로 들어와서 주님을 만나라는 겁니다.
지성소로 들어오라.. 지성소까지 가야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예수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주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아는데 힘을 쓰라고 합니다.
너무 돈을 버는 데만 힘쓰고 너무 운동하는 데만 힘쓰고 먹는 데만 힘쓰고 노는 데만 힘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데 힘을 쓰라는 겁니다.
지성소에 초대입니다.
주님께로 들어와서 조금 더 주님을 알도록 말씀을 지키는 것에서 더 들어가서 주님과 하나 되어 그 발 앞에 엎드려서 주님 옆에서 주의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의 그런 수준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도 어린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들을 낳는다고 하니까 깜짝 놀랍니다. 천사가 와서 육신적으로 낳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낳게 된다고 합니다.
어린소녀가 순종합니다. 육신적으로 주님 발 앞에 엎드릴 수가 없고 지성소로 못 들어갑니다.
믿을 수도 없습니다. 주님 옆에 있으면 중요한 것을 듣게 됩니다. 음성을 듣게 됩니다. 놀라운 것을 듣게 됩니다. 들어오는 자에게는 모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일단 그 집으로 들어가면 그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구경할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고 돌아올 때 선물을 받아서 가져 올 수도 있습니다. 다 할 수 있습니다.
남의 집에 가면 집을 다 스캔합니다.
여기에서 열린 문은 그 동안에 지상에서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수고한 그들이 주님의 지성소로 들어가서 주님을 알게 되고 주님을 만나게 되고 천국을 구경하게 됩니다.
천국을 본 자와 안 본 자는 다릅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지고 주님이 우리에게 시청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잊어버립니다.
꿈속에서라도 주님의 얼굴을 보고 꿈속에서라도 천국을 보고 꿈속에서라도 주님과 만난 사람은 꿈같은 신앙.. 영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빌라델비아 상이 어마 무시합니다.
3) 앞으로의 될 일을 보여주십니다.
지성소에 들어와서 주님을 만나도록 주님 옆에서 주님이 소곤거리는 음성을 듣도록 천국을 구경하도록 문이 열리고 주님이 초청하면 다 구경을 시킵니다.
(계4:1절)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계4:2절)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보좌위에 앉으신 이를 봅니다.
열리 문 하늘로 올라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하늘의 물을 열고 오라고 합니다.
사도요한이 하늘에 열린 문을 봤습니다.
여러분이 열린 문을 보면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주님의 음성을 분별을 해야 됩니다.
열린 문이 있으면 우리만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도 오십니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도 할 때는 멀리만 계시는 주님 같지만 옆에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주님도 올수도 있고 갈수도 있습니다. 주님과 교통을 나누고 실제적으로 주님의 나라를 구경할 수 있는 상이 축복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4장에 보면 이 열린 문으로 성도들이 들어가고 사도요한도 들어갑니다.
열린 문의 놀라운 축복은 무엇인가?
1절에 보면 이리로 올라오라..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너에게 보이리라
이 열린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분명히 마땅히 될 일을 보게 됩니다...
네 자녀의 장래에 될 일을 나에게 물으라고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뭔가 우리가 많이 드렸기 때문에 함께 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적은 능력으로도 주의 말씀을 믿고 믿음을 지키고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세상적으로 실컷 놀다가 갑자기 돈을 100억을 낸다고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헌금을 많이 내도 나 자신을 드리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온전히 기뻐하시겠습니까?
여기 앉아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자신을 드리지 않는데요..
내가 너에게 너의 일을 보이리라..
우리가 불안한 이유가 뭡니까?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주님께서 기뻐하실까?
가장 우리가 불안하고 궁금한 것이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장래의 비밀을 네가 어떻게 할 것을 너에게 보인다..
문을 열어놨으니까 들어가서 얼마든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세상적으로 푹 빠져서 돈을 버는데, 먹고 사는데 푹 빠져서 자기 소명을 잊어버리고 재주가 뭔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믿음을 못 지킵니다. 쉽게 배반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리로 올라오라.. 차원을 높여 경배로 지성소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내가 너에게 알려 줄 것이 있다.. 내가 미래의 될 일을 보여준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많이 받고 훼방을 받고 사단의 훼방을 많이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앞으로의 미래를 보여주고 미래의 될 일을 알려준다면 많이 예비가 되고 준비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능성을 다 열어놓았기 때문에 열린 문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골2:2절)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골2:3절)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예수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내가 받은 소명이 무엇이고 내가 받은 재주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얼마든지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네가 무엇을 할 것인가? 너의 가능성을 알기 위해서 문을 다 열어 놨다..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재주가 없습니다. 못한다고 합니다.
이번에 “나도 작가”라는 문을 열어줬습니다. 동참했습니다. 문을 열어주니까 할 사람은 다 했습니다. 내용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일단 했다는 것입니다. 문을 열어주니까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주셨으니까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주님 안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어떤 재주가 있는지 이것을 할 수가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러분.. 걱정 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을 지켰으니까 비록 적은 능력이지만 이 믿음을 지키려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려고 형제가 서로 사랑해서 연합이 잘되어 있으니까 더 차원을 올리자..올라오라~ 경배로 들어가자.. 나를 더 알아라.. 천국을 구경하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놨으니 필요한 것을 다 가져가라..
능력의 옷을 입힌다, 은사의 옷을 입힌다, 너희 앞에 먹을 수 있는 상을 차려놨다, 부족한 것이 없을 것이다 가져가라..
성경에 지혜로운 종은 옛 곳간과 새 곳간에서 양식을 다 가져와서 부린다고 했습니다.
양식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끄집어내서 힘을 얻고 받을 수가 있습니다.
왜 말씀을 마음에 두라고 하겠습니까? 말씀이 먼저 나가야 됩니다.
말씀이 나가면 능력이 같이 나갑니다. 기름부음이 같이 갑니다.
너희가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땅 끝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영원히 함께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재주가 없어서 아무것도 못해가 아닙니다.
열렸습니다. 이제 문을 열어놨습니다. 누구든지 들어가면 됩니다. 문제는 뭡니까?
여기도 못 들어가고 항상 문 앞에서 배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앞자리 한번 못나오고 맨날 뒷자리만 앉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앞에 다 앉지 않습니다. 뒤에만 앉았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앞자리에 앉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담대함.. 담대하게 걸어와서 앞자리에 앉아야 됩니다.
학교도 그렇습니다. 앞에 앉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합니다.
뒤 자리에 앉은 학생은 핸드폰이나 보고 졸다가 갑니다.
3. 왜 못 들어가는지 보겠습니다.
1) 순종하지 않고 믿지 않으므로 못 들어갑니다.
(히3:18절)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히3:19절)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히4:6절)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믿지 아니하여 가나안땅으로 못 들어갑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사람은 못하지만 하나님은 다 하십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믿고 주님 안으로 들어갈 때 지성소로 들어갈 때 꿈꾸는듯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전에는 나는 못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4장6절을 보면 복음을 먼저 받았지만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먼저 받았습니다. 예언을 받았습니다. 계시를 받았습니다. 순종을 안 합니다.
순종을 안 해서 못 들어가고 믿지 않아서 못 들어갔습니다.
2)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지만 알지 못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롬2:4절)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롬2:5절)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라도 그렇고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바람과 풍랑 등.. 우리를 회개케 하기 위해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인간의 방법으로 문제만 풀어나갑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는 안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을 회개를 해야 되는데 5절에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하는 마음 때문에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6절에 보니까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상하십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는 영생을 얻고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좇는 자는 노와 분으로 하십니다.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지만 하나님은 외모로 취하지 않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었습니다.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지성소로 들어가면 앞으로 될 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도 안했던 꿈꾸는 일들이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권사님!항상녹취해주어서다시한번읽고새겨보게되니너무좋아요!감사합니다 ^^
항상힘주셔서감사합니다~♡♡♡
아멘 ㅡ아멘 ㅡ아멘
감사드려요 ㅡ수고하셨어요~~^^
잘하셨어요!!축복합니다
~~^^그손에능력은주님의축복입니다~~~
아멘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