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420
■ 2부 장강의 영웅들 (76)
제7권 영웅의 후예들
제 10장 필(邲)에서 크게 이기다 (2)
초(楚)나라 좌광 대장 굴탕(屈蕩)의 추격에 앞만 보고 달리던 진(晉)나라의 조전(趙旃)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모두 어디로 갔는지 따르는 자가 10여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저 멀리 뒤에서는 여전히 초군의 추격대가 악착같이 따라오고 있었다.
양 갈래 길이 나타났다.
조전(趙旃)은 다급한 김에 갑옷과 투구를 벗어 오른편으로 나 있는 길에다 내던지고는 왼편 길로 병차를 몰았다.
잠시 후, 굴탕(屈蕩)이 갈림길에 당도했다.
그는 오른편 길에 조전의 갑옷과 투구가 팽개쳐져 있는 것을 보고 그 길로 달려갔다. 그러나 조전의 모습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뒤늦게 속은 것을 깨달은 굴탕(屈蕩)은 병차를 되돌려 조전(趙旃)이 버리고 간 갑옷과 투구만을 챙겨 초장왕에게로 돌아갔다.
초장왕(楚莊王)이 굴탕과 함께 본영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저멀리 북쪽 들판에서 한 떼의 병차대가 나타났다. 그것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초장왕을 호위하고 있던 반당(潘黨)이었다.
"저기에 진(晉)나라 대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속히 피하십시오."
사실 그 병차대는 조전(趙旃)을 구출하기 위해 뒤늦게 진군 영채를 출발한 순앵(筍罃)과 그 군사들 이었다.
그러나 반당(潘黨)은 순간적으로 착각하여 그것을 진(晉)나라 대군으로 본 것이었다.
반당(潘黨)의 다급한 외침에 초장왕의 얼굴은 대뜸 흙빛이 되었다.
굴탕을 돌아보며 탄식했다.
"너무 깊숙이 조전(趙旃)을 쫓아온 모양이다. 여기서 진나라 대군을 만났으니, 이를 어찌 헤쳐나가면 좋을꼬?"
그때 이번에는 남쪽에서 북소리가 하늘을 뒤흔들듯 일며 한 무리의 군대가 초장왕을 향해 달려 왔다. 초군 장수 오삼(伍參)이 이끄는 중군 부대의 일부였다.
그제야 초장왕(楚莊王)은 안심하는 얼굴을 하며 병차에서 내려오는 오삼(伍參)을 향해 물었다.
"그대는 진군이 오는 줄 어찌 알고 과인을 구하러 왔는가?"
"신(臣)은 진군이 오는 줄은 몰랐습니다. 왕께서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시지 않기에 혹여 잘못된 일이라도 있을까 염려하여 달려온 것뿐입니다.
하지만 왕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지금 우리의 3군이 모두 이리로 오는중입니다."
과연 잠시 후 영윤 손숙오(孫叔敖)와 중군대장 우구(虞邱)가 이끄는 초나라 대군이 그 곳에 당도했다. 오삼(伍參)이 북쪽 들판을 살펴보다가 외쳤다.
"저기 오는 적은 대군이 아닙니다. 아마도 조전(趙旃)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소수 부대가 분명합니다."
초장왕(楚莊王)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과연 그러했다.
그는 이제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영윤 손숙오를 돌아보며 물었다.
"본영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여기 대군을 몰아 진군 대채를 들이치는 것이 좋을까?"
"혹 복병이 있을지 모르니 본영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손숙오(孫叔敖)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삼(伍參)이 피를 토할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안 됩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내가 먼저 적을 칠지언정 적에게 쫓기지 말라' 하였습니다.
우리 대군은 이미 여기에 이르렀는데, 어찌 적을 피해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왕께서는 속히 돌격 명령을 내리십시오.
만일 진(晉)나라 중군만 쳐서 무찌르면 나머지 적의 상하군은 저절로 무너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삼의 간언에 초장왕(楚莊王)은 마침내 결심했다.
3군 장수들을 불러모아 영을 내렸다.
- 좌군 대장 영제(嬰齊)와 부장 채구(蔡鳩)는 수하 군사를 거느리고 진나라 상군을 쳐라!
- 우군 대장 공자 측(側)과 부장 제(濟)는 우군을 거느리고 진나라 하군을 공격하라!
- 나는 중군과 좌우 양광(兩廣)을 거느리고 직접 순림보의 대영(大營)을 공격하겠다.
초장왕(楚莊王)은 친히 북채를 들고 북을 쳤다.
그것을 신호로 각 군의 고수들이 일제히 북을 울렸다. 북소리는 우렛소리처럼 천지를 진동했다.
초나라 3군 병차대는 기세좋게 진군 진영을 향해 돌진했다.
이렇게 필(邲)의 전투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전투라기보다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가장 먼저 당한 진군 장수는 조전(趙旃)을 구출하러 갔다가 초나라 대군과 직접 맞닥뜨린 순앵(筍罃)이었다.
그는 오로지 조전(趙旃)만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에 무작정 전방에 나타난 초군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는 어마어마한 바윗덩어리에 부딪쳐 튕겨나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것이 초장왕(楚莊王)이 친히 이끄는 초나라 대군인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몸을 빼내기가 늦었다.
별안간 초군 장수 웅부기(熊負羈)가 달려들며 쌍도끼를 휘둘러댔다.
순앵은 간신히 도끼를 피했으나 병차가 부서져버렸다. 말이 주저앉으며 순앵(筍罃)의 몸은 허공으로 높이 날아올랐다가 땅바닥에 팽개쳐졌다.
그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억센 밧줄이 그의 전신을 친친 감았다.
진군 원수 순림보(筍林父)는 조전을 구하러 간 조카 순앵(筍罃)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난데없는 북소리와 함성을 들었다.
"이것이 무슨 소린가?"
"초군이 급습해왔습니다."
"병력은 얼마쯤 되고 어디쯤 왔는가?"
"이미 필(邲)의 들판에 새카맣게 깔렸습니다."
그때부터 순림보(筍林父)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신이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도, 어떻게 초군을 맞아 싸웠는지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바다가 성난 듯, 산이 무너지는 듯,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뒤집히는듯한 어마어마한 힘에 휩싸였다는 것만을 기억할 뿐이었다.
그가 탄 병차는 폭풍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조각배인 양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린 채 떠돌다가 급기야 황하 강변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