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4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언약의 사자 (使者) 》
말 3:1~6
<몇 밤 자면…>
“몇 밤 자면 설날이예요?”
어린 시절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몇 밤 자야 해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한 밤, 두 밤,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어린 시절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지난 연말, 여섯 살 바울이에게는 “몇 밤 자야 산타할아버지 와요?” 이게 젤 중요했어요!
그때마다 유채는 입이 간질간질했습니다. ‘그거 할아버지가 사온 선물이야!’
어른들이 윽박질렀습니다. “바울이 꿈을 깨면 안 돼!”
“몇 밤 자면…”
이것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은 “몇 밤 자면…” 이 화두를 가지고 계십니까?
생각해 보니, “몇 밤 자면…” 이것은 삶에서 매우 소중한 꿈이요, 기대입니다.
설교 준비를 하면서 저 스스로를 진단해 봤습니다.
요즘 저에게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몇 밤 자면…”
이것이 다 나이 탓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 드는 것을 싫어하는가 봅니다.
저에게 “몇 밤 자면…” 이것이 있을 때는 늘 설레었습니다. 늘 기다려졌습니다.
“몇 밤 자면…” 다가오는 그 날의 기쁨이, 그 몇 밤들을 아름답게 수 놓았습니다.
인생에서 “몇 밤 자면…” 이 기대를 가지고 있을 때, 그때가 아름다운 인생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몇 밤 자면…” 이 사라졌습니다. 인생이 메말랐다는 뜻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몇 밤 자면…” 이것을 회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그러고 보니, “세 밤 자면, ‘너구리의 피난처’에 간다!”
가슴이 따뜻해져 옴을 느낍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수요일을 주시고, 주일을 주신 뜻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 밤 자면 수요일이다!” “네 밤 자면 주일이다!”
☞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시간을 흐르게 하신다>
몇 밤 자면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인데, 뭘 선물할까?
이렇게 가슴이 설레는 것, 이것이 행복입니다.
몇 밤 자면 내 생일인데, 아내는 나에게 어떤 선물을 해 줄까?
가슴이 설레야 하는데, 무덤덤해지고 말았습니다.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지구를 만들고, 해달별도 만들었습니다. 공기도 만들었습니다.
지구에는 온갖 생명체들을 만들어 살게 하셨습니다.
엿새째 날 사람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실까요?
바로 이것입니다. “몇 밤 자면…” 이 희망으로 살아라!
☞ “몇 밤 자면…” 밤이 하나 둘 지나간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다!”
사람들은 이 시간이 저절로 흐르는 줄 압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시간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요?
“하나님이 시간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시간을 흐르게 하십니다!”
마치 시계에 건전지를 넣어서 시계바늘이 돌아가게 하듯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시계에 밧데리를 새것으로 교체해 주지 않으면 시계는 멈추고 맙니다.
하나님이 시간이 흐르도록 섭리하시지 않으면, 시간도 멈추고 말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이전부터 시간은 흘러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는 시간도 없었습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저절로 흐르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시간은 하나님이 흐르게 하시기 때문에 흐릅니다.
시계에 밧데리를 새로 갈아끼우듯이 하나님이 시간을 흐르게 하시기 때문에 흐릅니다.
하루하루 날이 바뀌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__“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__“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창 1:8)
☞ 하나님이 날이 가게 하시고, 사람은 “몇 밤 자면…” 이 기대로 살게 하셨습니다!
<최고의 소망>
우리가 “몇 밤 자면…” 이 기대로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하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은 바로 “약속”입니다.
우리를 “몇 밤 자면…”이라는 기대로 살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약속”을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약속 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하루 하루 ‘시간을 흐르게 하시는 것’ 약속 때문입니다.
약속이 없다면 우리에게 “몇 밤 자면…”이라는 기대가 없습니다. 꿈이 없습니다.
약속을 성경에서는 ‘언약’이라고 합니다. 언약, ‘말로 하는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 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약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몇 밤 자면…” 하면서 삽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여러분!
☞ 하루가 지나면, 한 주가 지나면, 한 달이 지나면, 한 해가 지나면, 십년이 지나면…
이 소망이 지금 여러분에게 없다면, 속히 이 소망을 회복해야 할 줄 믿습니다.
저도 이 설교 준비하면서 ‘이 소망을 되살려야지’ 하고 다짐을 합니다.
어떻게 이 소망을 되살릴 수 있습니까?
사람이 나이들어감에 따라 하나, 둘 내려놓다보면,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소망이 점점 사라지고 나중에는 죽음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삶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당초 의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이렇게 살다가 한 평생을 마감하도록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갈 때, 죽는 순간까지도 소망을 갖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소망을 내려놓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소망을 붙잡고 죽어야 합니다.
그 소망은 ‘천국’에 관한 소망입니다. 할렐루야~
사실, 소망 중에 최고의 소망은 천국에 관한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살라고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소망 중 최고의 소망은 천국 소망입니다!”
<구원과 천국>
(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창조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그러니까 구약시대입니다.
구약시대 최고의 소망은 바로 메시아 예수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메시아가 오신다!” “구원자가 오신다!” “그 분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한다!”
이것이 최고의 소망이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예수님 오시기 400여 년 전,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使者)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우리가 시대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는 분명히 차별성이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메시아 예수가 오시기 이전의 시대입니다.
구약시대의 소망은 신약시대의 소망과 같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신약시대에 살고 있으니 신약시대의 소망을 잘 붙들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최고의 소망입니다.
최고의 소망아래 하위 개념의 소망이 있습니다.
어린시절에는 “몇 밤 자면…”이 최고의 기다림이요, 최고의 소망이었습니다.
점점 자라면서 몇 밤이 몇 주가 되고, 몇 달이 되고, 몇 년이 됩니다. 이렇게 성장합니다.
철이 덜 든 아이는 ‘구원’이 인생 최대의 소망이고, ‘천국’이 큰 기다림인 것을 모릅니다.
점점 자라면서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시간을 흐르게 하는 시대에도 구별이 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의 선포대로 2천 년 전 ‘언약의 사자’가 오셨습니다.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넘어왔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없었던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님이 선포하셨습니다.
☞ 이 시대 우리는 어떤 소망의 기다림으로 가슴 설레야 합니까?
<신약시대의 설레임>
어린 시절에는 “몇 밤 자면…” 최고의 설레임이었습니다.
자라면서 “몇 밤 자면”에서 “일주일 후에” “한 달 후에” “일 년 후에”로 확장됩니다.
“십년 후” “이십년 후”의 기대감도 키웁니다.
유채 바울이가 테블릿과 할아버지 핸드폰으로 온라인 게임을 즐깁니다.
할아버지가 핸드폰을 주지 않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할아버지는 맨날맨날 핸드폰하는 데 왜 나는 안 돼요?”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나도 어른이 되면…”이라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소망은 세상적인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생명, 거듭남이 없습니다. 영원한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영생”을 주셨습니다.
“죽으면 끝인데 뭘~” 이렇게 살 것이 아니라, 죽어도 사는 영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망이 아니라 영생을 선물로 주신 분입니다.”
2천 년 전 “언약의 사자”가 약속대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구약에서는 알지 못했던 “천국”을 선포하셨습니다.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구약성경에는 ‘천국’이 나오지 않습니다. ‘지옥’도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고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회개의 길”을 열었습니다.
회개의 길을 여시고, 천국 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은 회개의 길을 여시고 천국 문을 여신 분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언약의 사자를 파송하셨습니다.
언약의 사자로 오신 예수님은 재림, 파루시아를 약속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우리에게 재림을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
우리는 이미 성인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역사도 제법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오로지 천국 소망만으로 살아야 합니까?
그렇게 살기에는 이 세상이라는 녹록치 않은 현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가졌던 “몇 밤 자면…” 이 기대를 굳이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도 이 기대감, 이 소망은 매우 유익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 밤을 잤으니 이제 “몇 밤 자면 그 날”이라는 기쁨을 가져야 합니다.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설레는 가슴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번주 토요일에 우리 교회가 금산에 있는 ‘너구리의 피난처’에 가기로 했습니다.
어린 시절 소풍날짜 기다리듯이 기다리면서 설레어도 누가 나무라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는 재미입니다.
소소한 행복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이어서 한 달 후, 일 년 후, 그때를 향한 기다림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년 후, 이십년 후, 그때를 향한 기다림도 새롭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누리십시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구원받은 기쁨, 천국 소망이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영생을 모르는, 영생을 받지 못한 불신자와 다릅니다.
가장 길게, 생활에서 가장 멀리는 ‘영생’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을 현재부터 지금부터 누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마 11:12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기쁨을 찾아 누리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몇 밤 자면…”도 중요합니다. 한 달, 일년, 오년, 십년 후의 행복을 지금 누리십시오!
그리고 천국의 기쁨도 지금 누립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