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예!
마25: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축구 선수가 골을 넣는 순간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는 반사적인 움직임의 결과입니다. 생각하고 공을 차면 이미 늦습니다. 이같은 반사적인 행동은 수없이 반복된 훈련의 결과입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딤전4:7는 말씀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경건은 끝없는 반복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벧전2:3
우리 뇌에는 반사적인 행동을 주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갓난아기가 걷기 전에 먼저 수 없이 넘어지며 일어서기를 반복합니다. 의식적으로 넘어지지 않고 걸으려고 수 없이 반복하다가 마침내 의식하지 않고 걷기에 이릅니다. 이처럼 하나님 사랑도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노력하다가 나중에는 의식적인 노력 없이 부지중에 하나님 사랑을 실천합니다.
하나님 사랑을 의식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부지중에 예수님을 대접하기가 어렵습니다. 의식하고 행하는 선행은 자아의 자랑이 되지만, 반면 하나님 사랑이 몸에 밴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행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살전4:10
평소 예수님께 함께 살고 예수님과 함께 죽는 훈련이 되지 않고서는 무의식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행한 것은 기억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행한 것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무의식적으로 살아갑니다. 의식하고 사는 삶의 부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경상도 말에 아니라고 대답할 때 쓰는 언제예라는 사투리가 있습니다. 의인들은 주님의 말씀에 언제예라고 대답합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우리는 그런 적이 없다는 대답입니다. 그들은 평소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하나님 사랑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반면, 영벌에 처해지는 사람들은 내가 지금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면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는 선행에 민감했지만, 평소의 무의식적인 삶은 자기 이기적인 삶이었던 것입니다.
뇌신경학자인 티머시에 의하면 사람의 뇌가 좋아지는데 최소한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마6:3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려면 먼저 자기가 한 선행을 자랑하지 않고 함구하는 훈련에 몰두해야합니다. 선행이 자아의 자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뇌가 바뀌면 사람이 바뀝니다. 사람이 바뀌면 이제는 의식하고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7:17
의식적으로는 누구나 좋은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는 아무나 되지 않습니다.
“은혜가 흐를 길을 만듭시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읍시다. 어쩌면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죽음이 우리를 바짝 따라오고 있습니다. 죽음을 잘 준비합시다. 우리는 한 번은 죽기 마련인데 거기서 실책이 있으면 만회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연습> 세 번째 편지 “Let us make way for grace; let us redeem the lost time, for perhaps we have but little left, death follows us close, let us be well prepared for it; for we die but once, and a miscarriage there is irretrievable.”)
부지중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자신이 행한 하나님 사랑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평소 자신이 행한 선행을 자랑하지 않고 도리어 부끄러워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23. 9. 2. 장기옥 목사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