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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으로 일어섭시다(눅 24:1-12)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 부활절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의 심령 속에 늘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죽음이라는 인간0의 마지막 원수이며 가장 큰 원수를 물리치시고 살아나셔서 예수님이 생명의 주라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내신 날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끝난다면 너무 슬프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3년동안 따라다녔던 제자들, 십자가 앞에 모두가 절망하고 주저 앉았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돌아가신지 사흘만에 무덤문을 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40일동안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부활과 함께 천국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주간 내내 고난받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이 났다면 기독교는 허망한 종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 우리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안식 후 첫날 주일 새벽에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에 찾아갔다가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로마병정들에게 붙잡혀서 잔인하게 매를 맞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장례절차도 제대로 치루지 못했음을 안타까와 하며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첫날 새벽에 향품을 가지고 길을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해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굴러져 있었습니다.
저들은 깜짝 놀라서 무덤에 들어가보니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놀라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곁에 서 있는 것이 보였고 여인들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 때 찬란한 옷을 입은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5-6절,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예수님은 과연 천사의 말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새벽에 일어난 주님의 부활사건은 우리에게 승리의 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의 권세를 이긴 영원한 승리였습니다. 주님은 생명의 창조주이십니다.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사망이 생명이신 예수님을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무덤 속에 그대로 사망에 잡혀 있었다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심으로 생명이신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요10:10절에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생명의 승리였습니다. 이 부활신앙으로 우리도 언제 어디서나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부활신앙은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때로 우리는 그 하나님의 계획과 준비하심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하심이 너무 크고 오묘해서 우리의 머리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무엇을 준비하고 계신지 우리 신앙으로 깨닫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고 깨달아 지지 못한 부분이 많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하나만은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시고 준비하십니다. 때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더라도, 어떤 때에는 그 고통이 너무 길어서 하나님의 손길이 나에게 미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놀라우신 계획을 갖고 오늘도 준비하고 계십니다.
당시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앞에서 절망하고 두려워하며 고향으로 도망갔습니다. 엠마오로, 갈릴리로, 여리고로 자기 본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그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찾아가셨습니다. 목자없는 양같이 제자들만 덩그라니 남아 있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가 부활의 소망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하셨던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증거하셨습니다. 그 때 그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바로 오늘의 교회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부활 때문에 교회가 생겼고 기독교가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40일동안 저들과 함께 계시며 부활의 주님과 천국복음을 증거하시다가 하늘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행 1:3-5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일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8절에서 지상명령을 내리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바로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부탁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모인 숫자가 120명이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기도하던 중에 성령의 불이 저들가운데임했습니다. 이 모임이 교회의 시작이요 기독교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최초의 교회는 마가의 다락방이요, 최초의 교인들은 부활의 증인들인 120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일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일요일, 즉 우리가 말하는 주일은 예수 부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안식일은 날자적으로 토요일입니다. 그런데 왜 안식일인 토요일이 일요일인 주일로 바뀌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배를 드리고 나가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전한 복음은 부활의 복음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전했던 복음은 “예수님이 다시 사셨습니다.”였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후 사도 베드로가 생명을 걸고 예루살렘 거리에 나가서 외칩니다. 행 2:31-32,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그리고 36절에서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이것이 초대교회의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옥에 갇히고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한결같이 전했던 저들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활이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의 복음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았기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부활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의 교회가 시작된 것도, 주일예배를 시작한 것도, 초대교회의 복음의 핵심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유골을 묻어둔 사리탑을 자랑합니다. 사우디의 메카에 있는 마호멧의 무덤에는 이슬람교도들의 순례 행렬이 끓이지 않습니다. 이집트인들은 거대한 고대 왕들의 무덤인 피라밋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빈무덤을 자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인들이 무덤에 찾아갔을 때 예수님의 시체가 없었습니다(24:3). 무덤을 지키는 천사들이 말하기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고 전해 주었습니다(6).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주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에 갇혀 있을 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참 생명이요, 참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 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말씀을 믿습니까? 예수님께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그는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무덤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덤에 잠드실 분이 아닙니다.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그 땅에 붙잡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셨으나,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
찬송가 171장의 제목은 '살아 계신 주'입니다. 영어로 가사를 보면 더 실감이 납니다.
후렴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분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나는 내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분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나는 주님이 미래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삶에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신다는 오직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라는 사실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생명의 주님을 믿고 영생 얻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우리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임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은,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임을 증거해 줍니다. 이 살아계신 주님을 굳게 믿고 나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부활신앙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여인들은 빈 무덤안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들었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경대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7절,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 천사들의 말을 듣고서야 이 여인들도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8절,9절 보십시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 여인들은 빈무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먼저 제자들에게 가서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초대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세상끝날까지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부활신앙은 언제 어디서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것을 ‘임마누엘’이라고 말합니다. 지금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실의에 빠져있을 때에도 부활의 주님은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관념적으로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믿는 우리 주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왜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음을 믿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없이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오늘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주님이시기에 지금도 살아계셔서 저와 여러분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믿고 그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부활신앙은 지금도 우리의 승리를 보장해 주시는 주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제자들은 이 여인들의 부활소식을 듣고서도 믿지 못했습니다. 부활은 결코 이성적으로 합리적사고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여인들의 말을 허탄한 듯이 들렸습니다. 다시말하면 무슨 환상을 본 듯이 실제임을 믿지못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급히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역시 예수님의 시체는 없고 시체를 감쌌던 세마포만 보였습니다. 그 된 일을 보고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달리 무슨 대책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불신하고 두려워 떨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요 20:19,20)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이처럼 부활하신 주님이 저들을 찾아가셔서 평강을 주셨습니다.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루살렘 거리에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습니다. 환란과 핍박속에 죽음을 각오하고 그들이 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두려워 떨던 제자들이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습니까? 이해의 측면이 아닙니다. 체험과 확신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성령께서 주시는 온전한 믿음을 통해서 저들은 담대해졌습니다.
저들은 죽음을 넘어선 부활을 믿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나도 부활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고전 15:51-53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살아있는 자는 홀연히 변화되고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날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승리를 보장해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신앙이 저들을 다시 일으켰습니다. 환란과 핍박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일어섰습니다. 이처럼 부활신앙은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새힘을 주시고 담대하게 일어나 하늘의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인도의 캘커타에 "리"기념병원이 있습니다. "리"씨에게는 학교에 다니는 6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장마비가 퍼붓자 산사태가 발생하여 여섯자녀가 잠자고 있던 집을 순식간에 덮쳐 버렸습니다. 6자녀가 한꺼번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절망입니다. 한없이 원망하고 탄식하던 이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리"씨 부부는 새롭게 결심합니다. 먼저 간 아이들을 대신해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의 집을 더 크게 지어 캘커타의 거리에서 방황하는 부랑아들을 돌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들은 70년이상을 살면서 해마다 5백명이 넘는 부랑아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6자녀가 이제는 수천명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 죽은 자녀들을 위하여 세운 기념비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롬8:37)라고 씌어있었습니다.
그들은 재난을 겨우겨우 비켜간 것이 아니라 재난을 승리로 이끌어 갔습니다. "리"부인은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무 고난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기쁠 뿐이었습니다" 만일 이들의 마음속에 죽음이 끝이고 부활신앙이 없었다면 그들은 인생의 슬픔과 괴로움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6명의 자녀를 잃었을지라도 천국에서 다시 영원한 생명을 함께 누릴 것을 소망하면서 그들은 새로운 승리의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열심히 사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후 하늘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심을 믿고 그 주님의 은혜를 순간순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에 낙심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주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하여 주셨습니다. 나 혼자의 삶에는 실패도 있고 절망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승리하심을 증거하셨습니다. 결코 세상의 위협과 역경으로부터 주저 앉지 않았습니다. 어둠속에서 일어섰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있던 제자들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교회요, 주일예배요, 복음의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부활신앙으로 일어 서십시다.
부활신앙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계신 주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해주시는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닙니다. 이 다음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여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살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 부활신앙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