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일이나 허라.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은 풀이여’
삽을 짚고 서서 답을 하지 않으면 깽판 칠 듯 쳐다보자 마지못한 대답입니다.
하우스 비닐을 치다가 벌어진 일, 삽 속의 흙에서 알뿌리가 몇 개 나왔습니다.
외래종인지 자생종인지 궁금했습니다. 수선화는 아니고 상사화일까?
상사화가 여기에 살고 있다니 가능한 일일까?
상사화를 처음 본 것은 군에서였습니다.
깡졸병이었던 여름, 연병장과 이웃한 건물 화단에서 꽃 핀 걸 봤습니다.
뛰어다니면서도 흘끔거리면서 이파리가 없는 것은 알았습니다.
꽃 위에 앉아 있는 뽀얀 먼지, 남의 부대 앞이고 꽃 볼 여유는 없는 처지라 다음을 기다렸습니다.
1년이 오긴 올까. 그때도 꽃은 필까. 자대(自隊)에 들어가서 무척 고생할 때의 위안거리였습니다.
‘그거 저 디 하시녜.’ 친구가 돌무더기를 가리킵니다.
밭을 정리할 때마다 나와서 돌과 같이 갖다 버렸다고 합니다.
제초제에 견디는 모록(무릇)처럼 씨 지우지 못해,
틈 날 때마다 마대에 담아서 한곳에 버리고, 입구에 있는 것은 밭 올레에도 삐었다고,
그런데 생명이 질겨서 길섶에 살아난 놈이 있다고 말합니다.
할망들은 가끔 모록을 길가에 방치합니다. 바퀴에 깔리도록.
모록으로 취급한 상사화, 이 근방에 얼마나 많았을까.
이 밭의 과거를 물었습니다. 촐 비고 소낭 몇 개 있는 그냥 널어진 밭이라면서, 삽질이나 하라고 재촉합니다.
상사화는 먼저 잎이 자라고 나중에 꽃대가 나옵니다. 서로 볼 수가 없죠. 그래서 상사화라고 합니다.
달리 생각하면 둘은 원수지간입니다. 한 뿌리에 나온 줄기와 꽃인데 죄면(조면)한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꼴 볼기 싫은 형, 말 안 통하는 동생.
둘이 ‘따로국밥’인 것은 살아 남기 위한 어떤 사연이 있을 겁니다.
상사화는 오름의 색과 닮았습니다. 다른 식물들처럼.
제주 토양의 양분이 색을 만들고 제주 바람이 뿌리의 견고함을 만들었습니다.
여기 사는 곤충들과 함께 진화했습니다. 아마 말을 한다면 제주말을 쓸 겁니다.
씨는 왜 없을까. 어떻게 번졌을까. 누가 이 오름 저 ‘뱅디’에 나눠줬을까.
한때는 개상사화로 불렀습니다. 오름이나 들판에 종종 보이던 개상사화.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형편없습니다. 왜 못하다는 개로 시작할까.
여기 식물은 여기 나름의 이름이 있는데 개라니 口口口.
제주상사화 Lycoris chejuensis K.H.Tae &S.C.Ko
토평 ‘가시나물’에서 일하다가 제주상사화를 봤습니다. 논문을 쓴 두 분 고맙습니다.
알뿌리 두 개를 챙겼습니다. chejuensis, 오래전 일입니다.
첫댓글 재미있게 스토리 짜 가시네요.
야책표 꽃이야기~~~ 엄지척입니다.
글 솜씨가 좋아서 야책표 꽃이야기~~~엄지척 2 입니다.
다음 글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