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3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충고와 맹세만큼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살라고 충정어린 말로써 충고해주는 경우는 그 충고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충고해주는 사람이 서로 진심으로 충고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충고는 참으로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말은 아주 간단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지만 충고하는 사람의 본심을 알지 못하고 앙심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충고는 충고를 하지 않은 편지 더 나을 수도 있답니다. 그래서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충판해탐’(忠告, 判斷, 解釋, 探索)을 성공적인 인간관계에서 조심해야 하는 네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온몸으로 경청한 다음에 아주 조심스럽게 활용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금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자 요한은 헤로데에게 여러 차례 그의 부당한 행동을 꾸짖습니다. 그의 이 꾸짖음은 하느님 중심의 뜻으로 충고라기보다는 하느님을 대신한 참된 예언자로서 꾸짖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언자의 말씀을 충간(忠諫)하는 것입니다. 그가 정말 이스라엘의 영주답게 하느님의 올바른 자녀답게 살기를 바라는 호소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예언자의 입을 봉하려고 감옥에 가두어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구실을 만들어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다고 변명하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매일 많은 맹세를 하고 살아갑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주님께 약속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그리고 매 시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마음 아파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결혼할 때도 맹세하였고, 세례 때도 미사에 참석할 때도 수없이 약속하고 지키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헤로데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또한 주님의 앞에서 함부로 맹세하였습니다. 생일 날 춤을 춘 독부의 딸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맹세(盟誓)는 성경에서도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주 너의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하여라.”(신명기 6, 13)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되 그 이름에 경외심을 가지고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헤로데는 주님의 이름으로 함부로 맹세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지도자나 랍비들이 맹세에 대하여 함부로 맹세하기 때문에 주님은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마라,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다. 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하지 마라. 예루살렘은 그 크신 임금님의 도성이다. 너희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마라.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다.” (마태오 5, 34~35)라고 강력하게 맹세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서로 상충되는 것 같은 구절이지만, 이것은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그릇된 맹세관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주신 교훈입니다. 또한 맹세를 가볍게 여기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꾸짖으심입니다.
맹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묵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서 맹세하게 되거나 증언하게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신중하여야 하겠습니다. 위증, 거짓 맹세, 맹세와 서약의 위반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형제들과의 친교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형제들의 신앙생활이나 가정생활을 서로 얘기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이 모든 것입니다. 금전적으로도 함부로 맹세할 수 없는 것이지요. 돈이 거짓말하지 사람이 거짓말 한다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둘째는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헤로데의 경솔하고 감정에 사로잡힌 맹세는 정말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맹세한다면 그 것은 하느님께 올바른 예배가 될 것입니다. 신앙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불필요한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어려서 친구들과 말할 때 ‘천주께 맹세코 진실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였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맹세가 주님을 크게 상심케 하였음을 요즘 깨닫고 있답니다. 특히 감정에 사로잡혀 말을 함부로 하거나 하느님을 증인으로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하는 것을 하느님께 전가해서야 되겠습니까?
셋째는 우리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경솔하고 불경스럽게 맹세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장난스런 호소를 하는 것은 아주 큰 잘못입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의 어린양으로 치부할 수 없으며, 변명하거나 덮어 줄 여지가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한 맹세는 버릇없는 마음의 소치에서 오늘 것입니다.
넷째는 진정으로 한 맹세나 서약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것이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피조물을 들어 맹세하는 것도 하느님 자신을 들어 맹세하는 것만큼이나 위험스러운 일입니다. 피조물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입니다. 소나무를 두고 맹세한다든지, 하늘의 별을 보고 맹세한다든지, 금반지를 보고 맹세한다든지 아무리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피조물은 변한답니다. 그러므로 증거물은 증거의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맹세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맹세가 되고 우리가 한 맹세가 주님께 불경스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언제나 우리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 동안 헤로데와 같이 함부로 맹세하고 주님을 아프게 하였음을 고백하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