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위를 쳐다보면 하늘이 10원짜리 동전만하게 보이는 곳- 이곳이 바로 강원도 평창이다. 해발 700m 이상의 땅이 평창 전체 면적의 65%에 이른다. 서울 북쪽에 위치한 도봉산 정상의 높이가 717m 이니 평창군내 상당수의 마을이 도봉산 정상 부근의 높이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평창군의 넓이도 남한에서는 인제, 홍천 다음의 세 번째인데 평창군 진부면 같은 경우는 그 넓이가 강화도와 맞먹을 정도이다.
고지대가 많은 평창은 한랭성기후라는 독특한 날씨를 보인다. 10월 하순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 이듬해 4월 하순이 돼야 녹으며 , 아주 추울때는 기온이 영하 30도까지도 내려간다. 여름에도 다른 지방의 봄, 가을처럼 선선하다.
이런 기후의 특색은 오히려 평창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 하나가 고랭지 채소의 경작이다. 강원도 대부분의 지역이 그랬듯이 평창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밭농사 위주로 감자나 옥수수, 메밀의 재배가 고작이었을 뿐이다.한데 여름의 날씨는 무우, 배추, 상치 등 각종 채소의 재배에 적합했고 이 채소는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서울 같은 대도시에 신속히 공급됨으로써 이곳 주민은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됐다.
횡계 부근에는 이렇게 해서 한해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농가까지도 있다고 한다.「횡계」가「횡재」를 하게 된 것이다. 또한 황병산 기슭의 완만한 경사지에는 대규모의 축산이 이뤄지고 있다. 삼양목장과 국립목장이 여기에 있고, 많은 축산농가가 증가 추세에 있다. 채소만큼 잘 자라는 풀을 뜯어 먹고 젖소와 육우들도 잘 자라는 것이다.
횡계에서 용평스키장으로 가다보면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를 따라「덕장」이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추운 기후를 이용해 동해에서 건져올린 명태를 시내의 얼음 밑 차가운 물 속에 재워 두었다가 다시 햇볕에 말려 황태를 만든다. 명태가 얼었다가 녹고 다시 햇볕을 받는 과정을 거치며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아지는데 황금빛을 띤다고 해서 황태라 부르는 것이다. 평창의 홍천. 명주의 접경지역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대산이 있다.
철따라 연초록에서 초록으로 그리고 빨강과 노랑으로 다시 흰색으로 변해가는 모습도 장관이려니와 아직도 쭉쭉 뻗은 아름드리 나무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태고의 숲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절경 속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월정사와 상원사 같은 절이다.
6.25의 전란통에 불에 타 버렸다가 근래에 다시 복원된 월정사의 경내에는 국보 48호인 팔각 구층석탑이 있다. 높이가 15m에 이르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 있고 각 층과 꼭대기에는 아름다운 장식도 돼 있어 고려시대의 화려한 불교문화를 나타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월정사에서 하늘을 덮은 전나무숲을 헤치고 계곡을 따라 20분을 달리면 상원사라는 또 하나의 귀중한 절이 나온다. 많은 승려와 신도들이 찾는 이 절에도 두 점의 국보가 있다. 지금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우며 한국 종의 전형(典型)이된 국보 36호의 동종(銅鐘)과 조선시대 세조의 부스럼을 낫게 했다는 문수 보살의 모습을 조각한 국보 221호의 목조문수동자좌상(木造文殊童子坐像)이 그것이다. 상원사에서 오대산의 정상인 비로봉까지는 3km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두 시간을 꼬박 올라야 한다.
오대산에서 뻗어 내린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싼 적멸보궁을 지나고, 도저히 끊일 것 같지 않던 원시림이 조그만 관목 숲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돌무더기가 쌓여 있을뿐인 황량한 비로봉 정상에 서면 끝없이 보이는 것이 산의 물결이고 동쪽 저 멀리 동해가 바라다 보인다. 한국이 산의 나라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각 지방마다 그 지방이 배출한 인물이 있지만 평창을 얘기할 때 뺄 수 없는 사람이 「메밀꽃 필 무렵」으로 현대문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가산 이효석선생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봉평, 대화, 진부는 모두 평창군에 있는 마을들이고 메밀밭, 아름다운 달밤, 널 다리 떠내려간 개울,둔덕 험한 고개가 다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지금도 봉평에 가면 이효석선생의 생가가 산골짝 외딴 곳에 남아 있어 가산을 흠모하는 이들의 발길이 닿는다. 주인이 바뀐지 50년이 넘고 집도 개축을 했지만 뒷동산의 고목 몇 그루는 그대로 남아있다. 허생원과 조선달 그리고 동이가 밤새워 걷던 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 하나 건너는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팔십리 길은 이제 시내버스로 30분이면 족할 뿐이다.
우리나라 어느 곳이나 흔한 것이 산나물이지만 산이 험하고 깊은 평창에서 맛보는 산나물의 맛은 더욱 좋을 수밖에 없다. 평창사람들이 귀한 손님을 맞으면 항상 모시고 간다는 하진부리의 부일식당은 산채백반으로 유명하다.20년간 이 식당을 경영하는 박정자씨(49세)는 할머니와 친정어머니로부터 음식솜씨를 배웠다.
돈 주고 사는 반찬은 하나도 없고 된장에서부터 두부, 도토리묵, 명란젓, 창란젓까지 집에서 정성껏 만드는 것이라든지 ,좁쌀을 약간 섞어 장작으로 구운 밥과 구수한 숭늉을 내놓는 것이 부일식당이 널리 알려지게 된 비결인 듯하다고 귀띔해 준다.
험한 자연환경으로 도시화의 물결이 늦게 몰려온 평창, 이제 관광사업이 활기를 띠고 축산업과 고냉지농업 등이 발전하며, 교통도 좋아져 평창은 옛 모습을 조금씩 벗어 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줄어만 가는 메밀밭과 함께 옛 고향의 정취도 적어지는 것이 아닐까 안타깝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