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울산, 대구 친구 지리산 합동 시산제 다녀와서
고등학교 졸업한 지가 한 50년쯤 되나? 대구 최용남 친구가 진주중고 933 사이트에 올려주는 부산, 울산, 대구 등산팀 소식 볼 때마다 참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르긴 해도 세 지역 동기 합동 등산모임은 어느 고교에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지리산에서 시산제 한다는 소식 듣자, 서울 서대문 포럼 진서 말마따나 깃털 몇이 안 나설 수 없었다. 인생 70을 눈앞에 두고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았나? 잘났건 못났건 얼굴 알던 모르던 그들을 보고 싶었다. 그들은 한때 우리의 고교 동기들 아닌가.
하필이면 버스 타니 거사 옆의 좌청룡 우백호가 그럴듯하다. 좌측엔 김두진 교수, 우측엔 이종규 장군이다. 한쪽은 무골, 한쪽은 문신이다. 원지 가서 중산리로 전화하니, '거기서 점심 먹고 꾸물거리지 말고, 3만 5천 원 주고 택시 타고 즉시 오이라'. 중산리 도착하니 이병옥 교장이 가져온 닭들이 장작불에 삶아 냄새가 천지를 진동 중이라, 분위기 첨부터 확 일어난다. 이번 시산제 축문 작성한 서울의 강정 선수, 시조창으로 전국 누비는 진주 오태식 교장, 시산제 돼지 대가리 메고 온 부산 강종대 거인, 시산제 주무 맡은 진주 이병옥 교장, 고등학생 시절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가수 대구 최용남, 뉴요크서 근년에 귀향한 김병지 선수가 있다. 붙잡고 악수하는데 부산 갔던 진동인 선수가 누군가 키 크고 젊잖은 신사 하나 데리고 온다. '누고? 얼굴도 모르겠다', '백일선이 모르나? 아마 바둑 최고수 아니가?' 진동인이 말한다. '오매 반갑다' 서로 손잡고 지리산 땅에서 거침없이 자란 싱싱한 나무토막으로 불길 활활 타오르는 뜨건한 난로 옆에 좌정하니, 술은 덕산 양조양 사장 조소길 선수가 보낸 막걸리라, 맛이 텁텁하고 걸쭉한 게 꼭 조소길이 같다. 칼바위 올라간 등산 주멤버가 아직 오지 않아, 우선 뭉텅뭉텅 썬 돼지고기 안주로 잔을 채우는데, 귀한 것 나온다. 송이주와 지리산 산죽주다. 오태식 교장이 들고 온 것이다. 서울서 들고 간 산토리 한 병에 혜근이가 내놓은 곳감도 있다. 서로 한참 떠들기 시합할 때 이윽고 부울대 등산팀 돌아왔다.
진주 강남 천전초딩 전봉길 선수 인사말에, 답사는 서울 이종규 장군이 하고, 덕산 조재현 선수 제안으로 각자 한 마디씩 서분찮게 인사말도 해보는데, 말만 보고 싶다 그립다 해 싸면 뭐 하나? 요렇게 해 삐리야 진짜제.
흥이 한참 고조되었을 때, 진주 목사 강홍열과 문성열 박사만 별도로 왔다. 요대목 후부터는 거사는 정에 취해 송이주와 산죽주와 산토리주 너무 마셔 정신이 알쏭달쏭 하다. 부산 해운대 신사 이건영 화백, 고려대 동기 이걸 선수 왔고, 이때부터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었다. 산골 깊은 밤에 오손도손 정담 나누며 난롯불에 뜨거운 고구마 굽는 방향과 덕산 노래방에 가서 한바탕 불러 젖히는 방향이다.
그런데 누가 결정했는지 모르지만 혜근이가 미리 대기시킨 봉고차로 노래방에 갔다. 가서 인원은 많지 이미 전부 술은 취했지, 멋대로 시키고 멋대로 놀다가 백전노장답잖은 실수도 있었다. 정광무 말마따나 시골 촌닭한테 도시닭 눈깔 빼먹힌 것이다. 깡촌 노래방이 매상 귀백만원 이라 했다. 술값 계산해 준 문박사가 고마웠다. 그러나 명함에 취미라고 노래 부르기 적어놓고 다니는 덕산의 조재현의 박자 완벽한 노래, 그 노래 거사와 쌍벽을 이루는 아코디언 연주가 문박사의 '추억의 소야곡'. 한때 방송국 피디했던 진동인의 노래, 수많은 졸병 거느리고 사단장 한 이종규의 노래, 마산여고 국어선생 백일선의 노래는 참으로 감회로운 것이었다. 그런 귀한 시간이 언제 다시 올 것인가.
이튿날 아침 일어나니, 어젯밤 일이 꿈만 같다. 꿈결에 만난 부산, 울산, 대구 친구들이 다 가버리고나니 쓸쓸하기 그지없다. 당태종이 자기 무덤에 같이 묻어달라고 할 만큼 귀한 천하 보물이 <蘭亭序>다. 그 글은 왕희지가 난정이란 곳에서 자기 친구들과 만나 한 잔 꺾고 지은 글이다. 우리야 왕희지가 없어서 명필 글씨는 남기지 못했지만, 마침 혜근이가 지리산 토굴살이가 쓸쓸한지 방 벽에 붙인 <반야심경> 글씨가 있다. 허전한 김에 거사는 자청해서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 우리의 모든 감각 지식 행동도 원래 다 텅 빈 공이라'는 일장의 반야심경 강의를 했다. 마산 국어 선생 출신 백일선은 '매화는 춥게 살아도 일평생 향기를 팔지 않고, 오동은 천년을 살아도 항상 제 곡조를 지닌다'는 신흠(申欽)의 시로 응답했다.
거사는 전국 아마 최고수 백일선에게 세 점 깔고 신년대국 한 수 지도 받고, 통영서 공수해 온 싱싱한 굴 넣은 떡국 먹고, 산록을 산보했다. 거긴 맑은 공기 무진장 많고, 시원한 물도 무진장 많다. 계곡엔 용처럼 굵은 머루 다래 넝쿨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있고, 집채만 한 바위 아래 푸른 물이 얼어붙었고, 수정 같은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다. 무당이 돌탑 쌓아놓고 정성 들이는 굿집도 있고, 아름 넘는 편백나무 숲은 향기롭기 그지없다. 욕심만 버려라. 그러면 산속에 들어간 혜근이는 부자다.
산책하는 중에 세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온 김에 진주 천황 식당 가서 홍어회에 비빔밥 좀 묵고 가라'는 진주 목사 강홍열의 전화, '자갈치 가서 회 좀 묵고 KTX 타고 가라'는 부산 강종대 전화, '먼 길에 만나서 반가웠고 조심해서 잘 올라가라'는 이건영 화백의 세 번째 전화다. 목석이 아닌 한 이런 전화받고 감동하지 않을 사람 없을 것이다. 나오다가 중산리 등산로 입구 옆 산골식당에서 먹은 시래기 해장국과 순두부와 지짐이가 구수했고, 고걸 서로 계산하겠다고 서울 진동인 선수와 진주 오태식 선수가 티깍때깍 해쌓는 건 정겨운 소리였다. 원지 나와서 진동인, 백일선은 부산으로 가고, 강정, 김두진, 이종규와 거사는 서울로, '너는 하행선 나는 상행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첫댓글 부산,울산,대구.친구 지리산 합동 시산제 디녀와서.엊그저께 일 같이 옆에 있는것 처럼 잘도 써 놓았다.가슴 깊이 새기면서
잘 읽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