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 마을 / 이헌 조미경
2박 3일 동안 문학기행을 영주 선비촌으로 다녀왔다. 옛 선비들이 글을 읽고 배우며, 문학에 대한 열정과 학문을 집대성한 학자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지금의 교육시설인 학교 역할을 했던 서당과 서원 등을 두루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노래하고, 시류를 논했던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긴 선현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영주는 선비의 고장답게 곳곳에서원과 문학의 향기가 곳곳에 배어 있어, 사립문에 들어서면 낭랑하게 들리는 학동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영주 선비촌은 실제 선비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그곳에 심어진 나무들은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비와 바람과 눈보라에 비록 가지가 꺾이고, 휘어져 아픔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지만, 마당에 심어진 매화 한그루에는 옛 선비들의 풍류와 기백이 느껴지고 체험하는 시간으로 고즈넉함과 실제 선비가 걸었던 발자취를 따라 걸으니 마치 과거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영주 선비촌은 한국 유교문화 발상지인 소수서원과 바로 접하여 있다. 선비촌은 선현들의 학문 탐구의 장소 및 전통 생활공간을 재현하여 우리 고유의 사상과 생활상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만들어졌다. 1995년 경상북도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의 하나로 영주시가 2004년 준공하였다. 이곳에서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모습과 생활상을 재현하여 유교문화를 직접 체험 및 학습할 수 있다. 영주 선비촌은 한국 유교문화 발상지인 영주 순흥 소수서원과 바로 접하여 위치한 곳으로 선현들의 학문 탐구의 장소 및 전통 생활공간을 재현한 곳이다. 마을 내에서 하룻밤 머무르며 옛 선비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한옥 숙박 체험과 전통문화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선비촌은 양반들이 주로 기거했던 기와집이 즐비했고, 그곳은 실제로 사람이 살았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이 잘 되어 있어 후대에 와서도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가구며 마당에 심어 놓은 나무 한 그루까지 깊은 의미가 있다.
선비촌 마을은 지체 높은 양반들이 기거했던 기와집,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양민이 거주했던 초가집이 있었다. 그곳에는
농사를 지어 일용할 양식을 충당했던 농기구들이 그대로 전시되고 있었다. 영주 선비촌 마을은 다른 민속 마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고택이었다. 영주의 고택들은 집주인의 벼슬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듯이, 건물의 위용이 남달랐다. 그곳에서 인상 깊게 가슴에 각인 된 것은, 넓은 마당 한 편에 심어있는, 선비의 상징인 매화였다. 매화는 추운 겨울에 피어 추위와 싸우면서 은은한 꽃을 피우는 선비 정신을 담고 있다. 사계절 자연의 변화 속에서 배우고 익히기를 단, 한순간도 놓지 못하는 선비 정신이 오롯이 깃든 선비촌에서 시 한 편, 삶과 철학 정신이 깊게 베인 수필 한 편, 인간의 희로애락을 허구라는소설을 통해 시대를 풍미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독자들에게 보여 주는 것 또한 문인이 해야 할 가치라 생각했다.
양반가 기와집 높은 처마는 나무를 섬세하게, 조각해서 하늘을 떠받치듯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조선시대
건축양식의 미적 아름다움을 감상했다.ㄷ긋자 모양의 집 구조에 넓은 마당 한 가운데에 있는 평상은, 더위를 쫓던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평상에 누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며 땅으로 쏟아질 듯 한 하늘을 수 놓은 별들을 바라보면, 알퐁스 도데 소설 속 스테파니 아가씨가 불현듯 떠오른다. 적막한 사위에 고요가 찾아 오고 대문을 나서면 길가에 피어나 향기를 피우는 풀꽃들. 시나브로 무더운 여름은 어둠이 주는 고요가 좋았다.
고택 중에서 여성들의 공간은 밖에서는 볼 수 없도록 하는 현재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이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시대가 말해 주듯이, 조선시대 아녀자의 삶이 어떠 했을지, 상상이 되었다.또한 집안에서 살림과 자녀 육아 위주로 지내는 여성과 달리, 주로 책을 읽고 출세해서, 집안을 일으키는 남성들의 공간인 현재의 서재에 해당되는 공간이 확연하게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고택으로 지정된 기와집 마당은, 계절마다 갖가지 꽃들이 피어, 시를 짓고 읊으며 세상을 아름답고 수놓을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그릴 수 있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고택 마루에 올라 너른 평야를 바라보면 곡식들이 알알이 익어 춤추고 있고, 하늘을 나는 새들은 학당에서 공부하는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에, 긴 날개 퍼덕 거리다 고이 접어 점잔을 빼더라.
늦은 저녁 고요한 선비촌 마을에는 희미한 불빛만이 깜빡거리고 사위는 고요함에 빠져 있는데
불빛을 찾아 날개짓 하는 나방은 짧은 밤을 아쉬워하고, 풀밭에서는, 달빛을 등지고 앉아
달맞이꽃이 향기를 피우니 ,이곳이 무릉도원이듯이 아름답기만 했다.
선비촌 마을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많은 것을 담아 보았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눈으로 보고 느끼며 학문에 정진하던 선비들,
특히 선비촌 마을과 소수서원이 나란히 접해 있어 선비 정신과 더불어 서원에서 머물며 학문에 정진 조선을 유교와 성리학 등을 받아들여, 후대에 이름을 널리 알린 학자들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 같은 것을 배웠다.또한 조선시대 천재들의 탄생 배경이 된, 소수서원 병산서원, 도산서원 등을 관람하면서 현재의 나 자신, 앞으로 문학 공부를 정진함에 있어, 더 많은 것을 보고 익혀야 하는 것과, 무릇 선비란 늘 겸손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각인하는 시간 되었다.
문인은 늘 깨어 있어야 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는 것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것을 새삼 깨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