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 이탈리아의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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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09.10. 06:27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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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이탈리아의 애니메이션
요약 이탈리아의 애니메이션은 미술계의 미래파 운동에서 영향을 받으며 시작되었다. 밀라노와 로마는 애니메이션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는데, 브루노 보제토(Bruno Bozzeto), 귀도 마눌리(Guido Manuli), 엠마뉴엘 루자티(Emanuele Luzzati)와 줄리오 자니니(Giulio Gianini) 콤비가 대표 작가로 손꼽힌다.
■ 미래파 운동과 애니메이션의 발아
1909년 미술계에서 시작된 미래파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예술형식이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미래파 운동은 움직임과 속도 같은 역학적 현상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다중 시점, 빛의 진동, 사물의 이동과 분열을 통해 뛰어난 조형성을 선보였다. 특히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는 공간, 형태, 빛, 움직임을 독창적으로 연출해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애니메이션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단편보다 장편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모미의 전쟁과 꿈(La guerra e il sogno di Momi)>(1916)은 이탈리아 최초의 애니메이션으로, 조반니 파스트로네(Giovanni Pastrone)가 특수효과 전문가인 세군도 데 코몬(Segundo de Chomón)과 함께 만들었다.
픽실레이션(Pixilation: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나 동물, 혹은 일상사건 등을 프레임 촬영 방식으로 기록해 만든 애니메이션) 기법의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상이 결합된 작품이며, 분량이 무려 70분에 달한다. 이후 안토니오 보티니(Antonio Bottini)가 애니메이션에 사운드를 입히고 코시오(Cossio) 형제가 셀 애니메이션(cell animation: 셀 위에 그린 연속적인 그림을 한 프레임씩 끊어서 촬영한 후 정상 속도로 재생함으로써 연속적인 움직임을 창조하는 방식) 기법을 도입하는 등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다.
<피노키오의 모험(Le advventure di Pinocchio)>(1936)은 동명의 동화를 각색한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라울 베르디니(Raoul Verdini)와 움베르토 스파노(Umberto Spano)가 제작을 진행한 작품이다. 그러나 여러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작품 제작이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1940년에 베르디니는 이 작품을 컬러로 재작업해서 완성하려 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같은 해에 디즈니사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1937)를 잇는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피노키오(Pinocchio)>(1940)를 개봉한다.
<피노키오의 모험>의 한 장면
현재 필름은 유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본과 프레임 몇 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 애니메이션의 산업적 태반, 광고
1940년대에 미국의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이 이탈리아에 수입되자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이에 대해 상영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디즈니사의 <미키 마우스(Mickey Mouse)>만은 예외적으로 계속 상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은 1950년대 말 이후에야 본격화되었다. 국가 소유인 이탈리아 방송 RAI(It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에서 광고 방영을 허가하자, 1957년부터 광고와 오락이 결합된 프로그램인 <카로셀로(Carosello)>가 전파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회전목마’라는 뜻인 <카로셀로>는 실사와 인형극, 애니메이션을 아우른 형태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광고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지역적 특색이 가미된 서부영화를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s)’이라 부르는데, 이에 빗대어 ‘스파게티 애니메이션’으로 통칭되는 이탈리아의 애니메이션이 산업적 기반을 닦기 시작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
■ 로마 vs 밀라노
이탈리아에서 영화 산업의 중심지가 로마였던 데 비해, 애니메이션 산업은 밀라노에 더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광고주인 기업의 본사가 상당수 밀라노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밀라노 이외에 로마, 피렌체 등에서도 애니메이션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로마에서 활동한 작가로는 줄리오 자니니와 엠마뉴엘 루자티 콤비를 꼽을 수 있다.
<카로셀로>에서 방영된 모카포트 광고의 장면
오른쪽 그림은 캐릭터가 ‘EXPRESS’의 ‘R’ 발음을 하는 순간으로, 캐릭터의 입 모양과 대사의 알파벳이 일치하도록 연출했다. ‘카로셀로’는 1970년대 중반까지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카로셀로>의 성공은 애니메이터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확보하고 다양한 스타일과 기술적 실험을 통해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촬영감독 출신인 자니니와 무대 디자이너였던 루자티는 <프랑스의 기사(Paladini di Francia)>(1960)로 데뷔한 이후 조아키노 로시니(Gioachino Rossini)의 음악을 배경으로 한 <도둑까치(La Gazza Ladra)>(1965)로 크게 주목받았다.
페이퍼 애니메이션(paper animation: 셀 위에 그림을 그리는 대신 종이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촬영해 움직임을 만드는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선명한 색채와 독특한 율동감으로 음악과 이미지를 조화시킨 수작이다.
자니니와 루자티는 37년 동안 예술적 여정을 함께 하며 <알리바바(Alì Babà)>(1970), <풀치넬라(Pulcinella)>(1973), <마술피리(Il flauto magico)>(1978)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도둑까치>(왼쪽)과 <풀치넬라>(오른쪽)의 한 장면
둘 다 로시니의 음악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선명하고 환상적인 색채와 독특한 율동감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한편 밀라노에서는 브루노 보제토와 귀도 마눌리가 코믹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활약했다. 보제토는 이탈리아의 전통적 희극과 현대의 그래픽디자인을 접목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이탈리아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보제토는 첫 작품인 <타품, 무기의 역사(Tapum! La storia delle armi)>(1958)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저명한 애니메이터인 존 할라스(John Halas)와 조이 배첼러(Joy Batchelor) 부부로부터 애니메이션 기법을 전수받았다.
밀라노로 돌아온 보제토는 1960년 보제토 필름(Bozzetto Film)을 설립하고 TV 시리즈물과 광고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제작했다. 보제토의 작품들은 신랄한 유머로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려 주목을 받았다. 특히 신경질적이고 강박적인 캐릭터 로시(Rossi)는 시종일관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대중적 인기를 끌며 보제토의 단편에 꾸준히 출연했다.
<로시 씨, 자동차 사다(Il signor Rossi compra l’automobile)>(1966)의 한 장면
소형차를 산 로시 씨가 도로에서 겪는 총체적 환난을 그린 작품으로 1968년 칸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보제토의 이름을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은 단연 <알레그로 논 트로포(Allegro non Troppo)>(1975)라 할 수 있다. 디즈니의 <환타지아(Fantasia)>에서 형식을 빌려 대담하게 패러디한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네오 판타지아>라는 제목으로 개봉되기도 했다.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드보르자크(Antonín Leopold Dvořák), 스트라빈스키(Игорь Фёдорович Стравински), 라벨(Maurice Ravel)의 음악과 다채로운 영상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현실과 환상,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걸작이다. 보제토는 “모든 예술 중 10초나 20초에 한 인간의 생애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애니메이션뿐이다”라는 말로 애니메이션이라는 예술형식이 지닌 함축성을 높이 평가했다.
<알레그로 논 트로포>에서 ‘볼레로’에 맞추어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왼쪽)과 비발디의 협주곡에 맞추어 꿀벌의 식사를 보여주는 장면(오른쪽)
조형적 스타일과 분위기가 현저히 다르다.
귀도 마눌리는 보제토 필름에서 20여 년간 핵심 인력으로 일했으며, 독립한 이후 <히쿱 씨(Mr. Hiccup)>(1983), <+1-1>(1987), <볼레레 볼라레(Volere Volare)>(1990)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마눌리는 언뜻 평온해 보이는 일상의 위태로움과 부조리함을 독창적이고도 냉소적인 유머로 풀어냈다.
<+1-1>의 한 장면
한 사람의 존재와 부재에서 비롯되는 우연과 필연에 대한 질문을 특유의 블랙 유머로 풀어냈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배상준. 2006.『유럽 애니메이션 대표작가 24인』. 쿠북.
한창완. 1998. 『애니메이션 영상미학』. 한울.
황선길. 1998. 『애니메이션 영화사』. 범우사.
Bendazzi, Giannalberto. 1996. Cartoons : One Hundred Years of Cinema Animation translated by Anna Taraboletti-Segre. Bloomington, Ind.: Indiana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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