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을대문 거북 둔테에서 빗장이 열린다. 광거당 육중한 나무문이 옆으로 비껴 선다. 당연히 탁 트인 마당이 반기리라 상상하며 안으로 들어섰는데 질박한 담이 가리고 섰다. 여느 담처럼 사방으로 둘러치진 않았다. 대문짝만한 담벼락은 무논에 벼 심듯 깨진 기와를 흙과 섞어 열 맞춰 쌓았다. 처음 눈길이 머무는 곳에는 굽은 기와 조각을 박아 소담스럽게 꽃 한 송이를 피웠다. 설핏 보면 도도한 물결 따라 꽃송이가 떠다니는 그림 한 폭 걸어둔 것 같다.
헛담이라 했다. 낮은 토담 덕분에 건물 안에서는 대문을 드나드는 이들이 보이지 않고 들어서는 이는 지붕과 누마루가 보일 뿐 안의 풍경을 가늠할 수 없다. 안과 밖이 마주치지 않으니 담 곁에서 옷매무시를 만지고 헛기침 소리라도 내어주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담을 끼고 몇 걸음 걸으면 그제야 정원이 열리고 ‘수석과 묵은 이끼와 연못이 있는 집’이라는 현판이 선명하다. 팔월의 뙤약볕은 마당으로 바싹 다가섰고 이글거리는 불볕에 배롱나무 붉은 꽃이 타들어간다. 회화나무는 우물 뚜껑을 자수판 삼아 노란 꽃잎을 쏟아내기에 바쁘고 익기 전에 떨어진 연두 풋감이 흙담 아래에서 나뒹군다.
망망대해에 떠있는 듯한 삶이 젊은 날에 있었다. 지하도에서 상담으로 생계를 이어갈 때 계단 아래로 불어오던 휑한 길바람은 매서웠다. 지나는 이들의 힐끗거리는 눈길이 부끄러워 어딘가로 숨고 싶었고 혹여 누군가 알아볼까봐 전전긍긍하였다. 궁여지책으로 기다란 우산을 준비해 두었다가 상담을 시작하면 앞을 가렸다. 목수 일을 하는 손님이 합판 두 장을 자르고 아래에서 떠받칠 수 있도록 두툼한 나뭇조각에 홈을 파서 가져왔다. 지하도 벽을 등지고 양옆으로 합판을 일으키니 근사한 헛담이 만들어졌다. 비록 덩그러니 길바닥에 놓였지만 그 안에서 추위도 피하고 마음 편히 상담을 할 수 있었다. 움직이는 헛담은 싣고 다녔다.
길바닥은 오물이 내려앉고 흙먼지가 떠돌았다. 사람들은 그저 길거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업신여기거나 가볍게 대하곤 했다. 가끔 술에 취한 이들이 시비라도 걸어오면 속수무책이다. 그럴 때마다 가까운 곳에 계시던 스승님은 단숨에 달려와 믿음직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지인들은 따끈한 어묵 국물을 사들고 오거나 맛난 김밥을 말아와 신문지 한 장 펴 놓고 길바닥에서 서슴없이 나와 함께 먹었다. 지하도를 벗어나면 직원을 거느린 당당한 사장님이거나 제자로부터 존경받는 선생님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삶은 비록 내리막이었지만 그들은 나의 곁을 둘러싼 헛담 역할을 자청했다.
어느 날 찾아간 친구 사무실 책상 주변으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지막하지만 앞 책상과 옆 사람 사이를 충분하게 분리해 주었다. 친구는 사적인 공간이 생겼다며 무척이나 들떠했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처리해야 할 일정과 연락처 등을 메모지에 적어 칸막이 벽면에 붙여두며 활용하였다. 외부인에게 보이면 안 되는 중요한 파일도 켜 놓을 수 있어 편리하고, 허리만 일으켜도 한눈에 보이는 동료들과 얼마든지 의견을 나눈다 했다. 따로 또 같이 일하는 일터였다. 길바닥에서 올라온 후 조용한 사무실을 구하여 입주하였다. 상담실과 대기실이 필요했지만 방은 하나였다. 이 사실을 안 가까운 지인이 양면으로 된 특별한 책장을 짜서 선물해주었다. 사무실 헛담이 탄생되었다.
어깨를 감싸 안았던 날들이 아득하다. 숨어 있는 풍광을 찾아 떠나던 여행도 멈췄다. 뜻 맞는 이들끼리 한 차를 타고 산이나 바다를 찾아다녔고 언제든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당연했다. 마주 앉아 노래를 부르거나 때로는 춤을 추며 살아있음을 누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를 만나거나 거절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었다. 갑자기 찾아든 재앙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이 텅 비었고, 머리 맞대던 수업은 거실 한쪽 컴퓨터 안으로 들어갔다. 달마다 토론하던 독서모임도, 숨소리가 거칠어지도록 운동을 한 후 들이키던 시원한 맥주 맛도 사라졌다. 낯선 이를 만나면 선뜻 다가서기보다 뒷걸음질 쳐야 하는 현실이다. 그리움을 꾹꾹 눌러 대던 핸드폰은 점점 잠잠해져 간다. 밥벌이마저 사라진 거리는 한숨만 차오른다.
집을 나설 때면 마스크부터 집어든다. 무심코 대문을 나섰다가도 뛰어서 되돌아오기 일쑤다. 미처 챙기지 못하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주범이라도 되는 양 흘기는 눈총을 받는다. 한여름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에는 얼굴을 덮은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백신과 더불어 건강을 지키는 유일한 가리개라 믿는다. 자신을 보호해 줄 현대판 헛담을 두르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을 대면하는 곳마다 헛담이 놓였다. 책상 위에 설치된 투명 아크릴 판은 학생들 사이를 띄워 놓고 관공서에 들어서면 가림막 너머 직원들과 볼일을 마무리 짓는다. 줄 서는 곳도 거리 두기를 실시한다. 바닥에 친절하게 발자국 스티커를 붙여놓아 자연스럽게 간격을 두는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가림막 또한 전염병 시대를 건너가게 하는 헛담이다.
그동안 ‘헛’이 붙은 것들은 진짜가 아니라 여겼다. 직접적인 돈벌이와 관계없는 일은 헛짓거리한다며 혀를 찼고, 매사에 실수라도 잦은 이에게는 헛똑똑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애써 진행한 일에 보람이 없으면 헛수고였고, 만날 날은 정하지 않은 채 그저 언제 밥이나 먹자며 던지는 헛말은 공허했다. 그러나 인흥마을 광거당 헛담을 보고서 ‘헛’이라는 가짜가 결코 부정적인 뜻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헛담은 아버지 등처럼 미덥다. 거센 세파는 막아서고 땡볕 같은 삶의 고단함은 가려주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든다. 있는 것은 지키고 너머를 꿈꾸게 한다. 때로는 슬그머니 휘어 돌아 다른 이보다 앞서려는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행여 지나는 길이 무료할까봐 담벼락에 슬쩍 그림 한 조각도 그려놓는다. 산수화의 선이 여백을 만들 듯 헛담은 기역자로 꺾어 놓았을 뿐이다. 숨기지 않으면서도 통로를 열어 어느 한쪽이 갇히지 않도록 했다. 뚫고 넘어야 하는 벽이 아니라 자유로이 넘나들며 전체를 품는다. 헛담은 안채와 바깥채를 경계 지으면서 드나드는 이들이 서로 조심하도록 한 옛 사람들의 배려였다. 기댈 언덕처럼 다붓한 헛담이라면 차곡차곡 쌓아도 좋으리라.
모두들 공들여 쌓고 있는 덕분일까. 코로나 확진자가 줄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아직은 팬데믹 상황이다. 헛담을 다잡아 세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