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 구절
사람을 ‘하나님 형상’답게
최영규 신원마을교회 담임목사
진정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7-28)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니 무엇이라 쉽게 말하기 힘드나, 사람은 눈에 보이니 할 말이 많습니다. ‘사람’은 저에게 오랜 묵상거리이고, 고민거리이면서, 사랑의 대상입니다.
공자가 제자 자로와 대화를 할 때 이름에 관해서 나눈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정명’(正名)입니다. 공자 자신이 정치를 하게 되면 이름을 먼저 바로 잡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와 이전 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잘못된 이름이 ‘사람’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사람을 구분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을 사랑해서 사람이 되는 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는 이 신을 죽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동일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 제일주의’의 빠져서 사람은 늘 뒷전에 두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례는 세계 곳곳과 역사 여기저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제일 처음 받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과 자기 민족을 각각 ‘이방인’과 ‘택한 자’로 구분하면서 거대한 분리장벽을 만든 그들이 ‘인간은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구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그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국의 역사 또한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만들어 내고, 종교는 이 구조를 추인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책 《총, 균, 쇠》(문학사상사)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스페인의 작은 군대가 거대한 잉카제국의 군대를 물리치고, 잉카의 왕 아타우알파를 생포하게 됩니다(나중에 아타우알파는 엄청난 몸값을 지불하고도 죽임을 당하지요).
스페인 군대의 리더 피사로는 비센테 발베르데 수사를 시켜서 하느님과 스페인 국왕의 이름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에 복종하고 스페인 국왕 전하를 받들 것을 요구합니다. 이 명을 받은 수사는 잉카인들을 비집고 들어가서 말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사제로서 기독교인들에게 하느님의 일들을 가르치나니 그대를 또한 가르치러 왔소. 내가 가르치는 것은 하느님께서 이 책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들이오. 그러므로 하느님과 기독교인들을 대신하여 그대가 그들과 벗이 되기를 청하는 바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요 또한 그대에게도 유익하기 때문이오.”(위의 책, 98-99쪽)
비단 제국의 역사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너와 나’를 구분하기에 급급했습니다. 피부색이 달라서, 언어가 달라서, 출신지가 달라서, 그리고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 달라서….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의 형상’ 된 인간을 이렇게 구분하고 저렇게 재단할 바에야, 차라리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면 제 속이 편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먼저다
저는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서 네 살 때 부산으로 가서 20년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스물네 살에 현재 살고 있는 고양시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기 전에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했습니다. 긴 사연이 담긴 이력을 간단히 줄여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삼양사 사료공장에서 일용직으로 1년 근무, 난과 화초를 파는 가게에서 5년간 근무, 학원지입차량 운행 2년 반, 2002 한일월드컵 마케팅사업 1년(월드컵 끝남과 동시에 회사는 사라짐), 건축자재 영업 2년 반, 시티은행 카드영업 2년 반….
이렇듯 다양한 직업과 직장을 경험하면서 ‘사람’과 ‘노동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월급을 못 받은 적도 많고, 어떤 때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발바닥이 닳도록 거래처를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들어 간 신학교는 당시 송전탑 문제로 한창 시끄러운 때였습니다. 저 또한 별동대까지 신청해서 방학 때도 송전탑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송전탑에 주목하고 있을 때, 제 눈에 들어온 분들이 청소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어야 할 신학교지만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처우와 대접은 열악했습니다. 변변찮은 휴식 공간도 없었고, 식사도 대충 때우고 계셨습니다. 물론 고용 형태에서도 하청 용역은 기본이었지요. 송전탑 문제가 최대 이슈가 된 원우회 총회의 마지막 순서 기타 안건 시간에 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 후, 청소노동자 분들에 대한 여건이 다소 개선이 되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당시 당직 하사였을 때입니다. 그 날 당직 사령관이 5분대기조를 풀어서 취침 후 30분 내에 이동하는 병력들을 포승줄로 묶어서 데려오라는 것입니다(취침 후 30분 내에는 이동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세면장에서 씻고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포승줄에 묶여서 당직사령실로 끌려갔습니다. 아무리 규율을 어겼어도 사람을 포승줄로 묶어서 데려오라는 것은 납득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가 나서 당직사령에게 반기를 들었고, 당직사령은 저에게 영창 갈 각오하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다행히 그 날 밤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3년 전 부교역자를 사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난 뒤에 고민이 되었던 건 그동안 개인적으로 후원해왔던 후원처 문제였습니다. 교회 개척을 하고 제 코가 석자가 된 상태에서 계속 후원을 할 수 있을지, 이참에 정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망설였던 것입니다. 고민 끝에 아내와 상의했습니다. 저희와 함께 개척에 동참한 가정에도 이런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후원을 포기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금액…. 당시 저희가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는 대상 가운데는 한 달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내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의 밥그릇을 빼앗으면 교회를 개척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교회는 자기 밥그릇 챙기는 곳이 아니라, 남의 밥그릇 챙겨 주는 곳 아니던가요. 그래서 그만둘 수 없었고, 개인 차원의 후원을 교회 차원으로 교우들과 함께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척 당시 ‘너희도 힘든 처지에 무슨 남을 돕느냐?’는 핀잔을 많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교회 앞에 쌀독을 놓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과 개척한 곳이 국민임대 아파트 단지여서 혹시 쌀이 필요하신 분들이 계실까봐 비치해 두었습니다. 현재 저희를 돕는 분들과 교회들이 여럿 있고, 우리 교회에서 후원하고 함께하는 곳도 여러 군데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살아서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형상을 입은 VIP
사람에 대한 고민은 교회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레위기 25장을 보면 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죽은 말씀으로 만들었지만 성경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들은 이 말씀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강원도 태백의 예수원에서 시작된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운동은 ‘희년함께’와 ‘토지+자유연구소’ 그리고 ‘희년은행’으로 흘러내려 왔습니다. 이들에게 레위기 25장은 실제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희년을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여행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교회 형편이 허락하는 한 가정 단위로 여행경비를 드립니다. 안식년이란, 그리고 희년이란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누리는 특별한 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척 당시 우리 교회 이름은 ‘삼송 VIP교회’였습니다. 이름을 이렇게 요상하게(?) 짓게 된 사연은 앞에서 소개해 드린 ‘사람’에 대한 여러 경험 때문입니다.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를 VIP로 대하는 세상의 흐름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평소 소신 때문에 모두가 VIP로 대접하고 대접받는 세상을 꿈꾸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신학교 때 다녔던 제자훈련 동아리 이름이 ‘VIP’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지 영원한 타자가 아닙니다. 땅에 있는 인간들이나 서로 구분하고 재단하지 우주적 차원에서 본다면 이 얼마나 하찮은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인간을 감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당신에게 인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했으면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신이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예루살렘 문제와 분리장벽 문제로 지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저 아프리카의 사막과 초원을 누비는 이들도, 고향을 떠나온 탈북이주민들도, 다양한 삶의 형태를 살아가는 저마다의 사람들 모두에게 이 말씀이 위로가 되기를 빕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 1:27).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VIP입니다.
최영규
총신대 신대원에서 공부했으며, 지금은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소재 신원마을교회를 섬기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에서부터 학원차량 운전, 화초 판매원, 카드 영업사원 등 온갖 직업을 두루 경험하면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로 대하는 일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득했다. 축구를 좋아하여 목회자축구선교단에서 활동하면서, 파주고양 복상 지기로도 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