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峯山 해맞이 公園 (2010년 1월 1일)에서 푸근한 봄날을 즐기는 野草, 牛步, 海山, 樂山의 모습...10:24:30
野草의 수고로 함창읍 용곡보건지소에 도착하여 출발 준비를 한다...09:10:59
대문 안의 백구가 목줄에 묶인 채 점프를 하며 짖는데 소리는 안들린다...09:14:15
용곡보건지소와 오봉산 생태수련관 및 체험휴양마을이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리다....09:20:43
南原梁씨 墓園 .....09:31:21
28世 南原梁公基煥 配光州盧氏 之墓 자 : 재오
29世 南原梁公在五 配慶州李氏 之墓 자 : 춘석. 윤석. 영석. 인석. 도석. 남석
녀 : 순선. 순분. 만순
30世 南原梁公春錫 配金寧金氏 之墓 자 : 승걸 자부 : 김계순
녀 : 상임. 산순. 상분. 상숙. 희숙. 점자. 경숙. 경분
30世 南原梁公允錫 配晉州姜氏 之墓 자 : 승백. 승국 자부 : 이국언. 김영자
녀 : 상연. 정숙. 선옥
30世 南原梁公仁錫 配安東權氏 之墓 자 : 승배. 승재 자부 : 김진미. 권현수
녀 : 선자. 선희
30世 南原梁公道錫 配 安東金氏 之墓 자 : 승용. 승동. 자부 : 김춘자. 백옥경
녀 : 미자. 영숙. 은주
30世 南原梁公男錫 配淸州韓氏 之墓 녀 : 정아. 영아. 정희
※ 남원 양씨는 서로 다른 두 성씨가 있다.
☆ 남원 양씨 (梁)는 제주 양시(濟州 梁氏)에서 분적 된 양(梁)씨이다.
원래 양씨는 신라 시대 때 제주도에만 왕국을 건설해서 살고 있었는데
그 때 제주도 왕자인 양씨가 신라에 건너가 귀족이 되고 신라시대 5소경인 남원에 가서 살게 됨, 그래서 남원
양씨가 되어서 주로 전라도에 많음.
☆ 남원 양씨 (楊)는 고려 때 지영월군사(知寧越郡事)를 지낸 양경문(楊敬文)을 시조로 하는 양(楊)씨이다.
가파른 오르막 길을 부지런히 오르고 있다....09:35:37
해맞이 공원(2010.01.01)은 조망이 막혀서 2016. 1. 1에 조망이 탁 터인 이곳에 다시 세웠다...09:36:52
해맞이 자리 앞의 붉은 난간에 쌓인 전망대에서 밝게 웃는 樂山, 牛步, 海山, 野草의 모습....09:44:50
오봉산에서 내려보는 공검면 역곡리 마을 모습....09:48:52
오봉산에 "소나무재선충병"의 피해목을 베어서 여러 곳에 피복을 하였다....09:52:08
소나무 재선충병(훈증/그물망)
주의사항 ▲ 본 더미는 소나무 재선충병 방재를 위해 피해고사목 등을 피복한 것입니다.
▲ 소나무류를 이동하거나 판매또는 이용할 경우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제17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처분 받을 수 있습니다.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잘려나간 소나무와 피복한 것이 곳곳에 보인다....09:55:03
오봉산 운동시설 장소에 올라서 잠시 쉬었다가 "해맞이 공원"으로 올라갔다....09:59:47
해맞이공원에 도착하여 간식과 즐거운 담소로 7번째 찾은 오봉산의 정기를 받는다....10:05:26
野草가 감태나무(일명延壽木)을 구하여 양손에 들고 역곡마을 방향으로 내려간다....10:35:49
野草가 낙엽에 가려 있는 원형 모습의 버섯을 채취했다....10:38:57
내려가는 곳곳에 소나무가 부러져 아치를 만들고 있다...10:45:11
대가산 아래 중부내륙고속국도가 보이고 이안리 마을의 牛舍가 보이고 비포장의 오솔길이다...10:48:50
역곡마을 고갯마루에는 길이 포장되어 등 넘어 이안마을과는 다르다...10:48:54
양지바른 마을에는 아스팔트 포장에 햇살이 가득하고 오봉산과 서산에 둘러싸여 아늑해 보인다...10:51:26
역곡 교회는 신자가 없어서 십자가도 없고 휴업 상태로 교회 입간판도 없다....10:53:11
역곡노인 회장님을 만나서 100호 중에 노인이 73명으로 경로당에 모인다고 했다...10:56:09
본 건물 옆에 붉은 벽돌로 10년전에 새로 경로당(태극기보임)을 지어서 이용함.
경로당 옆에 2개의 공적비가 있어 둘러 보고있다....10:59:29
* 역곡숙원사업추진위원장이도형공적비(力谷宿願事業推進委員長李道炯功績碑)
1993년 6월 12일 恭儉面長 崔永根 謹撰(삼갈근 지을찬) 前 楊亭國民學校長 閔孝基 謹書(삼갈근 쓸서)
恭儉面 力谷 洞民 一同 謹竪(삼갈근 세울수)
力谷宿願事業推進委員長 李道炯氏는 鄕里에서 出生하시다. 貫은 慶州요 始祖표암공(瓢巖公) 알평(謁字平字)의 七十五世孫이다 幼年 時節 부터 資質이 英特하여 大成의 氣質을 갖추고 苦難과 逆境에도 불타는 學究心으로 大建學校를 卒業한 後 六二五 戰爭으로 軍에 入隊하여 國土防衛의 任務를 마치시고 除隊 後 法院公務員으로 多年間 勤務하다가 現在 複雜 多大한 法務士 業務를 遂行하면서 法務部長官의 保護觀察所保護委員으로 委囑을 받아 保護觀察을 通한 犯罪者 善導와 地方社會犯罪豫防을 爲하여 獻身奉仕하시고 鄕里宿願인 電氣 架設을 七三年에 完工시켰으며 八一年에는 國庫支援을 받아 恒久的 揚水場을 設置하시어 旱害常習地區를 水利安全畓으로 轉換케 하여 所得增大는 勿論 住民生活安定과 希望을 갖게 하였으며 九一年에 老人會館을 建立케 하여 洞會議室 및 老人亭으로 活用케 하였으며 九二年에는 耕地整理事業을 國庫支援으로 施工하게 하셨다 늘 洞民의 便宜를 圖謀키 위하여 宿願事業推進에 앞장서 不撤晝夜 盡力을 하시어 鄕里 發展에 寄與한 功績이 至大하셨으므로 委員長 任의 愛鄕心을 永遠히 기리기 爲하여 洞民의 精誠을 모아 이 碑를 세우다.
*공검면장최영근공적비(恭儉面長崔永根功績碑)
1993년 6월 12일 力谷宿願事業推進委員長 李道炯 謹撰(삼갈근 지을찬)
前 楊亭國民學校長 閔孝基 謹書(삼갈근 쓸서) 恭儉面 力谷 洞民 一同 謹竪(삼갈근 세울수)
恭儉面長 崔永根氏는 靈山國師峰의 正氣를 타고 恭儉面栗谷里에서 出生하시다. 貫은 慶州요 文昌候致遠先生의 二十九世孫이시다 幼年時節부터 資質이 英特하였으나 六二五戰爭이 일어나 學業을 마치지 못하고 軍에 入隊하여 赫赫한 戰功을 세우고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하였이며 除隊後는 地方公務員에 投身하여 四十餘星霜을 오로지 獻身奉公하던 중 一九八八年에 本面面長으로 부임(赴任)하면서 卓越한 行政力과 독실(篤實)한 創意力으로 面政에 많은 功績을 남겨셨다. 특히 力谷里는 山村谷磵마을이다. 이 落後된 마을에 農路를 擴張鋪裝補修하여 市內버스가 들어오게 하고 街路燈을 架設하여 마을을 밝게 하고 老人會館을 建立하도록 支援주선(周旋)하여 주었으며 마을 앞 耕地整理를 할 수 있도록 上部에 建議施行하여 줌으로써 勞動力이 부족한 농촌에 機械化營農을 할 수 있게 하여 마을 住民에게 希望을 갖게 하여 所得增大를 期하고 生活安定을 가지도록 하여 주신 面長任의 고마움과 感謝한 마음을 잊을 수 없어 洞民一同이 精誠을 모아 그 거룩하고도 훌륭한 爲民功績을 오래도록 기리기 爲하여 이곳에 이 碑를 세우다
마을 길가에 토종 민들레가 곱게 피어 꽃받침이 꽃을 감싸고 있다(외래종은 꽃받침이 꽃에서 벌어짐)...11:01:59
노인회장님 말씀대로 마을 길가의 빈집이 많이 보이고 개짓는 소리도 없다....11:04:41
본향 출신 젊은이들이 귀향하여 소목장을 마을에서 떨어져 운영하고, 앞쪽에 고속국도에 차량이 지나다닌다...11:09:47 * 소목장이 골짜기 속에 7개가 보인다.
예쁜 백구 2마리가 牛舍 안에서 목청껏 짖어대고, 송아지와 어미소들은 편안하게 쉬고 있다....11:11:08
배나무 과수원이 많고, 세력 좋은 소나무가 우뚝하게 서 있어서 자랑스럽다...11:11:43
봉우재에서 내려오는 마을 입구에 오래 묶은 팽나무가 서 있다...11:14:51
* 보호수
지정번호 : 11-24-17-11-1 지정일자 : 1982.10.26. 수종 : 팽나무
수령 : 150년 수고 : 15m 나무둘레 : 140cm 소재지 : 공검면 역곡리 산28
반바지가 전봇대에 붙여 놓은 숭덕지맥 봉우재(165m)에서 땀을 식히며 휴식을 한다....11:21:57
미세먼지가 약해지면서 함창 들판과 점촌 시가지가 잘 보인다...11:36:27
배나무 과수원길을 내려오며 밝아진 날씨에 기분이 상쾌하다...11:39:35
용곡보건지소에 도착하여 귀가 준비를 한다...11:46:34
* 龍谷 診療所 竣工 記念碑 西紀 2011年 11月 11日
함창 장날이라서 두부집에은 마당에 대기자가 많아서, 친절한 옛고을 추어탕으로 따뜻하게 먹었다...12:56:10
첫댓글 毒感으로 한 週日을 休登하고 모처럼 咸昌 新興里에 到着하니 이 큰 마을은 아직도 起床하지 않은 듯 沈默 뿐이다.龍谷診療所에 駐車하고 마을 안 길로 進入하니 연신 빈 집뿐이다.蛇行路를 따라 올라서니 끝간데 없는 咸昌平野는 微細먼지에 잠겼고 희끄무레한 아파트는 店村인 것 같았다.路邊에는 돼지감자가 늘렸으나 外面받고 있다.봉우재에 올라서니 지난번 2次 立春寒波때 暴雪被害 입은 老松이 군데군데 目擊된다.재선충 感染에,暴雪被害까지 겹치니 氣勢좋던 老松은 秋風落葉 身世가 되고 말았다.해맞이 東山에서 한숨 돌리고 頂上을 向하니 解冬된 듯 登山路는 폭신하다.이윽고 五峰山 頂上에 서고보니 眺望은 어렵고 薰風에 氣溫까지 올라가니 上衣를 脫衣한체 모처럼 力谷里 方向으로 길을 잡는다.그러나 이 길은 큰 古墳들이 송두리체 盜掘당한 凶한 모습이 연이어 出沒하여 俄然窒塞한다.古寧伽倻國 時節의 王族 古墳이라고 하여 南山古墳群으로 알려진 遺蹟地가 이렇게 放置되고 있는 모습에 憤怒가 일어난다.力谷里 고갯마루에는 더 많은 雪害木이 나뒹굴고 있었다.100餘戶가 상당한 力谷里는 新興里보다 더 沈默에 잠겨있었고 會館에서 만난 老人會長은 75호가 老人들 뿐이라는 悲慘한 現實을 吐露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