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팔이 형
" 어제, 옥녀가 고기 싸 준 사람 누구야? 장사장!"
"누구긴요. 옥녀 누나 옛날 애인이죠."
"뭐야! 생긴 건 꼭 제비 처럼 생겼드만....."
"왜요, 잘 생겼잖아요"
늙은 병사가 40 년 만에 옥녀를 만나고, 밤에 천곡동에서 놀다 온 다음 날 아침, 어판장에서 고기 상자를 두고 옥녀와 그가 씨름 하는 것을 외팔이 형이 본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도 유심히도 보았나 보다. 남자 답게 생긴 그의 얼굴을 두고 딴지까지 걸고.
소문이 맞는 모양이다. 외팔이형이 옥녀를 좋아한다는.
외팔이형의 나이는, 나보다 서너살 위인 것 같고, 키가 작고 까마잡잡하다. 태백 탄광에서 일 하다 화약 폭발로 외팔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불쌍한 사람이다. 묵호항 근처에 살고 있는 거 같기는 한데, 거주지가 불확실 하다.
들리는 소문에는 교회에서 지낸다는 말도 있고.
그가 외팔이가 되고 탄광에서 일도 못하고, 묵호항에서 마른 오징어 장사를 하다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바람이 나 있었다.
그는 현장을 급습하여 두 년놈을 죽이고 15 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묵호항으로 오게 되었다.
외팔이형은 묵호항에서 제일 유쾌하고 시원시원 할 것이다. 가끔 사소한 일 때문에 큰 소리가 오가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는 묵호항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틀담의 곱추' 가 있는데, 그것은, 프랑스 노틀담 성당에서 살고 있는 곱추의 이야기다.
파리 시민들은 노틀담 성당에 살고 있는 그 곱추를 마치 벌레 보듯이 피한다.
그는 누구도 가까이 가기 힘든 더러운 외모를 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와 달랐다. 노틀담의 곱추는 성당의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의 더러운 얼굴에서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를 더럽다고 외면을 해도 그는 늘 웃고 있었다.
시민들은 그의 그런 미소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노틀담 성당의 기둥에는 그리스어로, '예넹케' 라는 말이 세겨져 있다.
그 말의 뜻은 우리말로 굳이 해석하자면,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 보다도 더한 긍적적인 언어다. 즉, 자기의 어떠한 삶이라도 전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노틀담의 곱추는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그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거다.
삶이란, 그런 거다. 받아 들인다는 것, 산을 오르면서의 한걸음 한걸음의 고통을 음미하면서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는 것.
'예냉케'라는 의미는 불교에서의 '해탈'의 의미와도 통하는 말 같다.
인문학이라는 말을, 아마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찰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면, 아마 위의 두 사람, 묵호어판장의 외팔이와 노틀담 성당의 곱추의 살아가는 방식이야말로 인문학적 삶이 될 것이다.
지식인들의 입에 발린 인문학 이론 보다도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우리는 인문학의 진정한 의미와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을 거 같다.
그래서, 삶이란 묵묵히 고통을 받아 들이며 살아가는 민초들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道는 못나고 힘들고 약하고 불쌍한 곳에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 동안 식자들이라고 믿어왔던 자들의 입바른 소리, 혹은 그들의 이론에 굳이 귀 기울일 필요는 없을 거 같다.
그저, 묵묵히 삶을 한 걸음씩 살아가면 그만 이다. 애꾸 외팔이처럼.
"동생아, 나 어제 애 먹었다. 외팔이 저 새끼 때문에"
"왜요?"
"끝나고 집에 갈려고 하는데, 좀 보자고 해서 따라 갔는데, 근데, 식당 들어가자마자 술 부터 벌컥 마시더니 따지는 거야."
"뭘요?"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외팔이형의 숨겨진 사랑이 그만 터져 버린 것이다.
"외팔이, 저 인간 어쩐지 나에게 잘 해주더니.....생선 내장도 버려주고....하여간 사내 놈들이란..."
"외팔이형 어판장 사람들에게 다 잘해주잖아요."
"뭐라는 줄 알아? 그때 청주 사람 있잖아. 그 사람 애인이 맞냐고....하더라 기가 막혀서..."
"애인 맞잖아요. 누나도 좋아 하잖아요."
"애인은 무슨 얼어 죽을 애인......이제 혼자 사는 게 편해..."
"그럼, 그 목도리는 왜 받았어요?"
"목도리는 좋드만....."
나의 농담에 옥녀도 역시 농담이었다.
"그래서 외팔이형과 어떻게 되었어요?"
"내가 욕을 퍼부었더니, 술 마시더니 울고 자빠졌잔아..얼마나 창피한지..."
"그래요? 하하하, 그 형 순정파네........"
"순정파는 무슨......지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불쌍해서 잘 해주었더니...."
두 사람 다 착한 사람들이다. 비록, 세상에 찌들어서 사랑 같은 건, 개나 던져줄 것이지만, 가슴 속에서 따듯한 정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어떡하긴 먼저 와 버렸지. 밥도 못 먹은 거 같아 밥 먹으라고 찌게 하나 시켜주고........."
"밉다면서 밥은 왜 사줘요."
"사람 미운 건 미운거고, 배 고픈건 배고픈거지. 나도 배고파봐서 알아."
"그나 저나 요즘 누나, 남자 복이 터졌네...."
옥녀와 나는 농담을 하면서도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두 남자를 마다 할 수 밖에 없는 옥녀와, 청주 사람과 외팔이가 애닯다.
그것은 묵호항 어판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