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자연풍
손 원
한더위에 에어컨 없는 실내는 덥고 땀이난다. 땀을 식히려고 무엇인가를 찾는다. 종이 조각이라도 있으면 손에들고 얼굴에 바람을 일게 한다. 가끔 부채라도 눈에 띄면 정말 반갑다. 어린시절을 이렇게 보냈다. 당시 대부분의 시골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이렇게라도 더위를 식혀야했다. 집안에 그늘이라도 있으면 그 곳에서 쉬고 식사까지 했으며 바람기 없는 방에는 밤중에 잠자러 들어가는 정도였다.
내 어릴때 살던 집 마당에는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여름 한 더위때면 그곳에서 더위를 피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했고, 어머니가 마련한 저녁도 그 곳에서 먹었다. 특히 더운날 저녁을 마당의 나무아래서 먹던 뜨거운 수제비가 별미였다. 형제들이 멍석에 누워 밤하늘 초롱초롱한 별을 보며 별자리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곤했다. 어릴적 여름밤에 보았던 별들은 전등빛 처럼 밝게 느껴진다. 그때 보았던 별자리가 지금도 선명하게 떠 오른다. 별자리 모습이 바가지에 길다란 자루가 달린 것을 똥바가지 별이라고 하면 형은 그것이 북두칠성 이라고 했고, 사각형 바가지 넖이의 일곱배 북쪽의 선명한 별은 북두칠성이라고 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칠석날을 손 꼽아 기다리는 견우성과 직녀성을 알려 주기도했다. 마당나무 아래는 온종일 시원한 바람이 일어 가족의 소중한 휴식터가 되었다.
여름이 더운 것도 바람 탓이고 시원한 것도 바람 탓이다. 사계절의 기후도 바람의 영향이 크다. 다만 우리가 선호하는 바람이 있고 싫어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지 바람은 수많은 성질을 가진 무체물이다. 그러한 바람에는 다양한 온도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바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간사한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바람의 온도 즉 기온을 간직한 바람을 찾는다. 그 바람이 만족하지 못하면 바람에 영향을 주어 보기도 한다. 쾌적한 바람을 얻기 위해 우리는 태고적 부터 기구를 사용하여 왔다. 널따란 나뭇잎, 부채가 그것이고 문명의 혜택을 받고 부터는 선풍기가 등장했고 요즘은 에어컨까지 일반화 되었다.
무엇보다도 적절한 기온의 자연풍이 좋다. 한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을 가린 무성한 잎이 달린 나무그늘이 좋고, 찬바람이 부는 계곡이나 바닷가가 좋다. 반면에 한 겨울 추위 때는 따뜻한 남녁바람이 좋다. 집을 지을 때도 더위와 추위를 생각해서 설계를 한다. 최대한 바람의 소통을 좋게 해서 쾌적한 환경을 도모한다. 요즘같이 고층건물 속의 주거공간에는 이러한 환경을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이런거 까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냉난방시설을 하면 쉽게 해결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식 건물의 내부의 연중온도는 일정하다. 전기나 화석연료로 실내 온도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들끓는 축구장 만큼이나 넓은 마트를 보더라도 온종일 시원하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을까를 생각만 해도 겁이나기도 한다. 이러한 에너지 소모는 외화를 유출하고 탄소배출을 늘려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부존자원 낭비와 지구 환경 파괴에 아랑곳하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절약과 환경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더운 여름을 이기기 위해 부채 하나쯤은 지니고 다녀보자.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우리집에는 부채 여남은개는 보관하고 있었다. 굳이 사지 않아도 사은품으로 받아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부채는 거실에도 안방에도 나의 승용차에도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 부채를 사용해보고 그래도 덥다면 선풍기를 틀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외출하고 돌마오면 바로 에어컨을 튼다. 지난 해 부터 손주를 돌보기에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역시 좋기는 했다. 집안온도를 쾌적하게 하니 땀흘릴 일이 없고 아이들도 잘 놀아서 우선은 좋았다. 하루 24시간을 에어컨을 작동시키는 날도 있을 정도였다. 전기요금외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초복즈음에 식구 모두가 감기에 걸린것이다. 젖먹이까지 목감기로 병원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지나친 에어컨사용으로 채온 조절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모처럼 종일 비가 내렸다. 창문만 열어도 시원하다. 자연풍으로 숨쉬기도 편안하다. 이런날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여름 더위가 줄어들면 농작물 생육이 나빠진다. 특히 벼는 고온다습해야 잘 자라고 병충해도 없다. 그렇다면 여름 한 철은 더워야 하지 않겠는가? 무더위를 피하는 방법도 지혜로워야겠다. 자연풍을 많이 쐬면 절약도 되고 환경을 개선할 수가 있고 무엇보다도 건강에도 좋다. 가능하다면 자연풍을 즐기자. 부채를 구해보고 창고에 넣어 둔 선풍기를 꺼내도록 하자. 웬만한 더위를 감당 할 수가 있다. 자연풍으로 감기에 걸릴 일도 없을 것이다.
요즘 도시의 밤하늘에는 별은 희끄무레한 연무에 가린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덜하지만 시골의 밤하늘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들은 예전처럼 온통 하늘을 수놓은 초롱한 별들을 볼 수가 없다. 그만큼 지구 환경에 문제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 같다. 대기는 온실가스로 가득차서 유해한 공기를 들이 마시고 있는 것이다. 대기가 깨끗하다면 호흡기 질병도 감소할 것이다. 잘 모르긴 해도 과거에는 코로나 19같은 호흡기 질환은 없었을 것이다. 있었다고 하더라도 금방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부채와 선풍기는 자연풍을 일으킨다. 충분히 만족하지는 않을지라도 우리 모두 부채와 선풍기를 곁에 두고 사용 해 보도록 하자.(2022.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