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어린 양이 뛰노는 나라: 이사야 5-1] 극상품 포도나무
이사야 5장 강해 일부
요절: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4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맺기를 원하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물질적인 축복을 받고 자신이 있는 곳에서 승리하여 머리가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열매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고 했을 때 이 열매가 부나 성공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오늘 이사야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정의와 사랑과 거룩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정의와 사랑과 거룩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을 향한 노래)
1절을 보면 이사야는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위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내가 사랑하는 자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합니다. 이사야는 자신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하나님의 포도원에 대해서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자합니다.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무지를 깨우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로 지어서 이스라엘 전 지역에 알리고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반복하여 노래함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내면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심히 기름진 땅에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심히 기름진 땅에 포도원을 만들었다는 것은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이주시킨 것을 의미합니다. 본래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에게 본토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손지 야곱 때에 이스라엘은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은 사백년이 지난 후에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가나안 땅이 심히 기름진 땅이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떠난 메소포타미아나 이스라엘이 떠난 이집트는 공통적으로 사대 문명의 발생지입니다. 이곳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나일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입니다. 반면에 가나안 땅은 어떻습니까? 국토의 면적은 강원도만한 작은 땅입니다. 북부 지방은 연 강수량이 800mm 정도 오지만 남부 지방은 200mm뿐이 오지 않는 건조한 땅입니다. 평균 400mm 정도의 비가 옵니다. 북쪽 지방만 비옥한 땅일뿐 토질도 석회암 현무암, 사암과 같은 바위가 많고 남부는 반은 사막 땅입니다. 척박한 땅입니다. 심히 기름진 땅이라고 하는데 기름도 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은 이스라엘이 척박한 땅이지만 옛날에는 심히 기름진 땅이 아니었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포도열매를 꿰어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일조량이 많아 포도만 잘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때에 가나안에는 기근이 들어 애굽으로 피난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를 볼 때 가나안 땅이 애굽보다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땅을 심히 기름진 땅이라고 하였을까요?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이 신앙생활하기 좋은 땅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심히 기름진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극상품 포도나무가 들포도를 맺음)
2-4절을 보면 하나님은 극히 기름진 땅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극상품 포도나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극상품 포도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극상품 포도나무는 최상의 포도나무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 극상품 포도나무가 재배되었습니다. 극상품 포도는 크기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맛도 뛰어납니다. 이스라엘 지방의 포도는 한국의 거봉이나 머루 포도나 킴벨 포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맛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처럼 극상품 포도나무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극상품 민족이 될 수 있었을까요? 가장 뛰어나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서 극상품 포도나무인 예수님이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지입니다. 우리는 본래 들포도 나무입니다. 하지만 극상품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으면 우리도 극상품 포도나무로 변화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극상품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점차 예수님에게서 생명력을 공급 받아서 우리도 극상품 포도나무로 변화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단지 복을 받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종자가 바뀌게 됩니다. 들포도가 극상품 포도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은 심히 기름진 땅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울타리를 만들고 망대를 만들었습니다. 짐승이나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방패와 산성이 되셔서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술틀도 만들었습니다. 포도를 가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극상품 포도를 맺고 가공할 수 있는 환경을 더할 것이 없게 완벽히 만들어 주셨습니다.
극상품 포도나무에서 극상품 열매가 맺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들포도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열매는 이사야서에 보면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정의와 사랑과 순결의 열매)
7절을 보면 하나님은 극상품 포도 열매인 정의와 공의의 열매를 맺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들포도인 포악과 부르짖음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정의는 바르고 옳게 사는 것입니다. 경제 정의가 있는 사회는 뇌물을 받지 않고 정당한 방법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입니다. 정치 정의는 평등과 자유가 있는 정치입니다. 사회 정의는 사회에서 인권을 존중하고 법 앞에서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십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당시는 정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투기로 돈을 벌어서 경제 정의를 망가뜨렸습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권력자에게 아부하며 불의를 책망하지 못하였습니다. 재판관은 뇌물을 받고 돈 있는 자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사랑의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이사야 3장 15절입니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 유다는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고아나 과부와 같은 약자들에 대해서 사랑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것을 착취하고 괴롭혀서 얼굴에 맷돌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성령의 열매도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랑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해야합니다. 먼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해야합니다. 죄악에 대해서는 미워할지라도 죄를 지은 사람은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합니다. 사람들과 원수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십자가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지가의 사랑으로 사랑해야합니다.
기독교사를 공부하면 기독교인들이 반인간적인 잔학한 행위를 한 것에 놀라게 됩니다. 그들은 세례를 다시 받는 재세례파를 무자비하게 죽이고 성찬이 예수님의 피와 살이 아니라 상징이라고 한다고 사람을 죽이고 성경책을 본다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덜 중요한 교리 때문에 가장 중요한 사랑을 버렸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이스라엘은 또한 거룩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이사야 1장 21절입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하나님은 신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도덕적인 타락입니다. 그들은 거룩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친족 간에 부끄러운 일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짐승과도 부끄러운 짓을 하였습니다. 남자끼리 여자까리 동성애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함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거룩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성적으로 깨끗해야합니다.
(황폐케 되는 이스라엘)
5,6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들포도를 맺자 담을 헐고 울타리를 걷습니다. 이곳에 이민족이 침략하게 합니다. 앗수로와 바벨론에 의해서 침략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은 황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를 도끼로 쩍어버립니다.
왜 우리가 극상품 포도 열매를 맺어야합니까? 왜 우리가 정의와 사랑과 거룩함의 열매를 맺어야합니까? 왜 반드시 맺어야합니까? 열매를 맺지 않으면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맺지 않으면 한 번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쳐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면 사랑과 공의와 순결의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아십니다. 그들의 내면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잘못된 나무를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려면 극상품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께 믿음으로 붙어 있어야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열매를 맺기 위해서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력을 공급하여주시고 이런 열매를 맺게 하여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
천안 UBF(말씀사랑교회)
성경 66권 유튜브 강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