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나무들은 정말 힘들게 살아간다. 나무뿐 아니라 식물도 그리고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것이 항상 긴장속에 살게해 발전하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는 그 변화에 맞추기 위해 몇 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열대나 한대지역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북반부에 속해 겨울이 상대적으로 긴 지역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는 여간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생존하기가 힘들다. 이런 저런 면을 따져볼 때 동물보다 식물이 더 힘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아열대지역에 사는 식물들 가운데 향기가 있는 꽃이 별로 없다. 일년 내내 따뜻하고 더우니 특별히 벌 나비를 유인할 향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 일년내내 꽃을 피울 수 있으니 서두를 까닭도 없다. 꽃을 피움은 열매를 맺기 위함인데 일년 내내 벌나비가 돌아다니니 애타게 그들을 부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또한 가을과 겨울철이 없으니 낙옆이 지지 않아도 되고 겨울이 없으니 비상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야 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 사는 식물에 비해 아열대지역에 사는 식물이 복받았음이 틀림이 없다.
인간이야 꽃향기가 좋아 늘 그런 향기를 뿜어주기를 바라지만 식물입장에서는 그런 향기를 만들기 위해 몇배 더 힘을 쏟아야 한다. 각 꽃식물마다 향수공장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 향수공장에서 향수를 만들어내자니 원료가 얼마나 필요하겠는가. 단순한 향기여서는 경쟁력이 없으니 옆에서 자라는 식물보다 더 강하고 자극적인 향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선택을 받아 수정이라는 과정을 거쳐 열매를 맺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봄철 꽃을 피우기 위해 식물은 겨우내내 노심초사하며 세월을 지낸다. 아주 추운 날씨를 제외하고 식물들은 뿌리를 통해 양분과 수분을 흡수하고 저장한다. 봄철에 재빨리 꽃을 피워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식물에게 겨울 날씨는 무척 중요하다. 아니 절대적이다. 움직일 수 없다는 저주를 가지고 태어난 식물이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번 겨울 한국의 날씨가 매우 혼란스러웠다고 한다.아니 실제로 그랬다. 이번 겨울 한반도 일평균 기온이 50년 관측 이래 가장 차이가 컸던 것으로 조사됐다. 기상청은 지난달인 2023년 1월 일평균 기온의 최고치와 최저치 차이는 19.8도였다고 밝혔다. 가장 따뜻했던 1월 13일 전국 평균 기온인 9.6도와 가장 추웠던 1월 25일 평균기온인 영하 10.2도 차이를 계산한 것이다.
이럴 경우 식물들의 뿌리는 혼란스러워진다. 기온이 @@@ 널뛰기식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면 식물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그야말로 냉온탕을 오가는 상황이니 정신이 아득해질 것 아닌가. 뿌리속에 장착된 정보망에 대 혼선이 빚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면 식물들의 뿌리는 오판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조금 기온이 올라가면 이제 봄일까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가 다음날 기온이 급강하하면 얼어죽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온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서도 안된다. 다른 식물들에 비해 뒤늦게 개화를 하면 경쟁력이 떨어져 도태되기 쉽다. 그 꽃 피우는 시간을 정하기가 정말 힘든 것이 바로 식물들의 삶이다. 동물들은 굴속에서 잠시 나왔다가 추우면 다시 들어가면 되지만 식물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식물은 힘들다. 특히 겨울이 긴 북반부 식물들의 삶은 고달프다. 일년 내내 따뜻하고 더운 지역 사람들보다 겨울이 긴 북반부에 사는 인간들이 더 힘들고 더 애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부디 올해도 우리 땅 식물들이 멋진 모습으로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향기로운 내음을 가득 안고 말이다.
2023년 2월 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