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 2장 27절 상제께서 어느 날 류찬명에게 말씀하시되 “너는 나로 하여금 오래 살기를 바라는도다” 하시고 글 한 수를 외우셨도다.
稚子哭問母何之 爲道靑山採藥遲
日落西山人不見 更將何說答啼兒
또 다시 남원(南原) 양 진사(楊進士)의 만사를 외워 주시니 다음과 같으니라.
詩中李白酒中伶 一去靑山盡寂寥
又有江南楊進士 鷓鴣芳草雨蕭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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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의 <권지>에 들어가있는 구절이다. <권지> 안에 들어가 있는 구절을 볼 때마다 떠올리는 성사의 말씀이 있다. 아래와 같다.
(아래)
행록 1장 32절 상제께 김 형렬이 “고대의 명인은 지나가는 말로 사람을 가르치고 정확하게 일러주는 일이 없다고 하나이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실례를 들어 말하라고 하시므로 그는 “율곡(栗谷)이 이 순신(李舜臣)에게는 두률 천독(杜律千讀)을 이르고 이 항복(李恒福)에게는 슬프지 않는 울음에 고춧가루를 싼 수건이 좋으리라고 일러주었을 뿐이고 임란에 쓰일 일을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고 아뢰니라. 그의 말을 듣고 상제께서 “그러하리라. 그런 영재가 있으면 나도 가르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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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께서는 분명히 '가르친다' 라는 약속을 하셨다. 위의 예문에 의하면 성사께서는 율곡과 같은 역할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시다. 그리고 이순신과 이항복과 같은 영재는 지나가는 말로 가르쳐주는 것을 알아들어야한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권지 2장 27절> 에는 성사께서 류찬명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오래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는 2종류의 시를 읊어주셨다.
(1) <2종류의 시> 감상
稚子哭問母何之 어린아이가 울면서 어머니가 어디에 갔는지를 물으니
爲道靑山採藥遲 푸르른 산[靑山]에 약초를 캐러 가 늦노라고 하더라
日落西山人不見 해는 서산에 지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更將何說答啼兒 장차 무슨 말로 저 우는 아이를 달랠 수 있으리오
그리고 다시 남원(南原) 양진사(楊進士)의 만사(輓詞: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인 ‘만양상사(輓楊上舍01: 양진사를 애도하며)’를 외워 주셨다.
詩中李白酒中伶 시로 유명한 이태백도, 술로 유명한 유령(劉伶)02도
一去靑山盡寂寥 청산에 한번 들어가고 나더니 아무런 소식도 들려주지 않더라
又有江南楊進士 이제 또 강남의 양진사도 (청산에) 들어가 버렸으니
鷓鴣芳草雨蕭蕭 자고새는 푸른 풀 위에서 슬피 울고, 비만 소소하게 내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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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째 시에는 <엄마를 찾고 있으나 엄마가 보이지 않아서 우는> 아이를 달랠 수가 없음을 안타까이 여기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리고 2번째 시에서는 왜 우는 아이를 달랠 수 없는지에 관하여, 그 이유가 설명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2번째 시의 내용에 의하면 李白 도 劉伶 도 그리고 楊進士 도 日落西山人不見 의 人에 해당된다. 여기서 楊進士 는 < 又有> 가 붙어있는 것으로 판단해보건대, 특별취급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又有江南楊進士) 楊進士 는 < 江南> 이라는 단어로 추정해봐야 하는 사람이다. 시로 유명한 이태백도 아니고, 술로 유명한 유령도 아니다. 그러니까 유명한 것으로는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시감상을 하다보니 우당께서 그리신 <심우도> 가 생각난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2) 日落西山(人不見)
日落西山人不見 해는 서산에 지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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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落西山 이라는 표현이 있다.
日落(西山) 하려면 반드시 日出 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치상 그렇다는 것이다. 유식하게 이야기하면 <음양>의 원리상 그렇다고 이야기하면 된다. 神出鬼沒 도 마찬가지 표현이다. 神出 하면 鬼沒 하는데 鬼沒 하려면 먼저 鬼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神出 이전에 神은 伏 하고 있어야 한다.
<日落西山> 을 이해하려면 복희8괘를 보아야 한다.
(2) 3가지 종류의 방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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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3가지 종류의 방위도 중에서 해(日) 가 東西 방향에 있는 것은 복희8괘이다. 해(日) 는 8개의 소성괘 중에서 離宮(東) 에서 뜬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西쪽(坎宮)으로 진다. 日月 의 움직임이 없다면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성사께서는 아래처럼 이야기하셨다.
(아래)
예시 21절 그리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문왕은 유리(羑里)에서 三百八十四효를 지었고 태공(太公)은 위수(渭水)에서 三千六百개의 낚시를 버렸는데 문왕의 도술은 먼저 나타나고 태공의 도술은 이때에 나오나니라” 하시고 “천지 무일월 공각(天地無日月空殼) 일월 무지인 허영(日月無知人虛影)”이라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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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地 와 日月 과 ( 知)人> 의 관계에 관하여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 知)人 은 생명체를 상징한다. 天地人 이라는 3才 사이에 日月 을 끼워넣으신 것이다. 그러면 성사께서는 日月 을 왜 끼워넣었을까? 를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日月 의 움직임이 없다면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기에 日月이 뜨고 지는 방향인 東西 방위를 大方 으로 성사께서는 묘사하셨다.
(참고)
공사 1장 18절 상제께서 군항으로 떠나시기 전에 병선에게 “영세 화장 건곤위 대방 일월 간태궁(永世花長乾坤位 大方日月艮兌宮)을 외우라”고 명하시니라. 군항에서 종도들에게 물으시기를 “바람을 걷고 감이 옳으냐 놓고 감이 옳으냐.” 광찬이 “놓고 가시는 것이 옳은가 생각하나이다”고 대답하거늘 상제께서 다시 종도들에게 오매 다섯 개씩을 준비하게 하시고 배에 오르시니 종도들이 그 뒤를 따랐도다. 항해 중 바람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심하게 요동하는도다. 종도들이 멀미로 심하게 고통하므로 상제께서 “각자가 오매를 입에 물라”고 이르시고 갑칠로 하여금 종이에 싼 안경을 갑판 위에서 북쪽을 향하여 바다 위에 던지게 하였으되 그가 북쪽을 분간하지 못하여 망설이고 있는지라. 상제께서 다시 갑칠을 불러들여 “왜 얼른 던지지 못하느냐”고 꾸짖으시니 그는 그대로 아뢰었도다. 상제께서 “번개 치는 곳에 던지라”고 이르시니 그는 다시 갑판에 올라가니 말씀이 계신 대로 한 쪽에서 번개가 치는지라 그곳을 향하여 안경을 던졌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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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 은 붉은 글씨로 표시했다. 그러니까 大方日月 은 달리 이야기하면 東西 방위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東西 방위에 위치한 宮 의 이름이 艮兌宮 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大方日月艮兌宮 을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東西 방위에 兌宮이 있는 것은 문왕8괘방위도인데, 그 짝이 震宮 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성사께서 말씀하신 방위도는 정역8괘 방위도가 된다. 성사께서는 새로운 후천의 <東西방위>의 宮을 설명하기 위해 기존의 2가지 방위도(복희8괘방위도, 문왕8괘방위도) 를 모두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상략)
厥有四象包一極 九州運祖洛書中
道理不暮禽獸日 方位起萌草木風
開闢精神黑雲月 遍滿物華白雪松
男兒孰人善三才 河山不讓萬古鍾
龜馬一道金山下 幾千年間幾萬里
胞連胎運養世界 帶道日月旺聖靈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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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의 <龜馬一道金山下> 가 그런 뜻입니다.
채지가에서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락서산> 하면 月出東山 한다고.....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f78gm8UOS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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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설명하면서, '하나를 둘이라 않고 셋을 셋이라 않고 저것을 이것이라 않고 앞을 뒤라 안하며' 라고 했는데, 님은 박성구가 별세한 사실을 이 믿음의 "셋"이라고 여기고 싶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셋"은 아직 눈으로 보이지 않는 사실에 대해 믿음을 주라는 것입니다.
만일 박성구가 별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런 태도가 바로 하나(죽은 사실)를 둘(부활)이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것을 이것이라 않고 앞을 뒤라 하지 않는 것이 도움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구의 부활보다 성사의 부활을 믿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제안해 봅니다.
적어도 성사께서는 당신 자신이 출세한다고 하셨으니까요.
이제야 이야기할 맛이 납니다. 글 하나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