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걱정이 부쩍 많아졌다. 물가는 오르는데 통장 잔고는 제자리걸음이고, 건강은
예전 같지 않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겠다.
TV를 켜면 걱정거리, 신문을 봐도 걱정거리, 거울을 봐도 걱정거리였다. 가끔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걱정이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날도 그런 생각을 하며 전철에 올랐다. 다행히 붐비지않아 군데군데 빈자리가 있있다.
몇 정거장 지나자 단아한 인상의 할머니 한 분이 내 옆에 앉았다.
희한하게도 처음 보는 분인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걱정이 많으신가 봐요."
나는 깜짝 놀랐다. 얼굴에 걱정이라고 써 붙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았을까.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어깨에 잔뜩 메고 계시잖아요."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할머니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다들 안 보여서 그렇지, 걱정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닌답니다."
그리고는 작은 명함 하나를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걱정재활용센터'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건데, 궁금하면 따라오세요."
왠지 수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따라가고 싶었다. 보석항아리 사건 이후로는 웬만한
이상한 일에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전철역 뒤편 골목으로 들어가자 오래된 건물이 하나 나타났다.
녹슨 간판에는 분명히 걱정재활용센터라고 적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깜짝 놀랐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모두 커다란 보따리나 상자를 들고 있었다.
직원이 말했다. "접수는 이쪽입니다."
"무슨 접수요?" "걱정 접수요." 직원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선생님 것도 올려놓으세요." 그러더니 내 어깨 뒤쪽을 가리켰다. 그 순간 깜짝 놀랐다.
정말로 내 등에 커다란 자루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검은 자루였다.
나는 얼떨결에 자루를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직원이 숫자를 확인했다. "37그램."
"겨우요?" "네. 작은 걱정입니다."
나는 조금 기분이 상했다. 내 걱정이 얼마나 크고 많은데 겨우 37그램이라니.
그때 옆 사람의 자루가 올라갔다. 저울이 크게 흔들렸다.
"127킬로그램." 직원이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무슨 걱정이길래 저렇게 무겁습니까?"
직원은 담담히 말했다. "아내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잠시 후 또 다른 사람의 자루가 올라갔다. "231킬로그램." "손자가 백혈병입니다."
또 다른 사람. "318킬로그램." "30년 운영한 가게가 문 닫게 생겼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무거운 걱정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나는 37그램짜리 걱정을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처럼 끌어안고 있었다.
직원은 내 자루를 집어 들고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렸다.
거대한 기계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걱정 자루가 분쇄기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반대편 출구로 반짝이는 작은 조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직원이 그 조각들을 작은 주머니에 담아 건넸다. "가져가세요."
"이게 뭡니까?"
직원은 짧게 웃었다. "재활용된 결과물입니다."
그 이상은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를 받아 들고 센터를 나섰다.
센터를 나서는데 아까 전철에서 만난 할머니가 멀리 서 있었다. 나는 서둘러 다가갔다.
"할머니!"하고 불렀다.
그런데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와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작은 조각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색깔도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무엇에 쓰는 건지 알 수 없어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며칠 뒤, 마트에서 충동적으로 사려던 물건을 내려놓고 나오는데 묘하게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에는 누군가의 실수를 너그럽게 넘긴 나 자신에게 스스로도 놀랐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별것 아닌 일에도 웃음이 자주 났다.
문득 서랍을 열어보았다. 조각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며칠 뒤 또 하나가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마지막 남은 조각을 햇빛에 비춰보았다. 그 안에는 아주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여유' 나는 깜짝 놀라 다른 조각들을 찾았지만 이미 모두 사라진 뒤였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아마 그 조각들에는 감사, 용기, 겸손, 웃음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다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 조각들은 이미 내 삶 속 어딘가로 재활용되었으니까.
<오늘의 팝송> Open Arms / Journey
저니(Journey)는 록밴드로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됐다. 1981년 7집 'Escape'를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1983년 8집 'Frontiers'를 앨범차트 2위에 올리면서 인기밴드로 이름을 날렸다.
대표곡으로 'Who's Crying Now','Don't Stop Believin', 'Open Arms', Separate Ways (Worlds Apart)'
등이 꼽힌다.1987년 해체되었다가 1995년 재결성되었다.
Open Arms는 저니(Journey)가 1981년 발표한 7집앨범 'Escape'에 수록됐다. 사랑의 재회와 화해를
노래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싱글차트 2위를 기록했다. https://youtu.be/Cyr_-PMjDNU
'
첫댓글 좋은 내용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당찬인생님.
좋은 하루 되세요...
오홍~~~~!!
어른이 읽는 동화
넘 멋진 내용입니당
걱정~다 내 할탓
전 다 내려놓고 삽니다
하늘가는 그 날까지
우리 모두 걱정이란 놈
버리고 살자구여
화이팅입니다
이따 뵈어요 ~~♡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벙개에서 뵙겠습니다..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걱정 재활용 센타
걱정
그냥은 안버려지니 재활용센타에라도 갖다 주어야지요.
비유가 재미있습니다.
재활용해서 버리면 여유만이 남습니다.
사람사는데 걱정이 없을 수는 없지만
걱정에 지나치게 빠져 사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니방장님.
동화가 사라지는 시대, 비온뒤님의
어른동화가 널리 읽혀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자리님.
행복한 오후 되세요...
재미있는 소재네요
걱정은 모두 하나님께 드리면 되는데
실은 전 걱정이 하나도 없답니다
믿으실까요?
감사합니다. 베베님.
맘편히 사는게 최곱니다.
어른이 읽는 동화..그리고 걱정재활용센터..
제목부터가 시선을 끄네요.
걱정도 재활용하는 시대로군요.
70이 넘어 마음을 비우니
요즘은 저도 위에 베베님처럼
별 걱정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비우기가 어렵지...
비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좋은 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백명민님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