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어느 고을을 상상해보자. 새로 부임한 원님이 행차한다.
깃발이 앞서고 포졸들이 길을 튼다. 사람들은 길가에 엎드린다.
원님은 가마 위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겉으로 보면 모두가 그를 존경하는 듯하다.
그러나 가마가 지나간 뒤, 사람들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흘러나온다.
"또 벼슬아치 하나 왔구먼."
짧은 한마디지만 그 안에는 존경보다 냉소가 담겨 있다.
벼슬아치의 탄생
'벼슬아치'는 벼슬을 가진 사람, 곧 관리를 뜻한다.
앞 장에서 보았듯 '-아치'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비하의 뉘앙스를 띠게 된 접미사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 말이 장인이나 상인이 아니라 관리에게까지 붙었다는 사실이다.
사농공상의 질서에서 관료는 가장 높은 계층이다.
원칙대로라면 가장 높은 자리를 뜻하는 말과 꼬리에 붙으면 천하게 여겨지는 접미사가
만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관리를 '벼슬아치'라 불렀다.
왜 그랬을까. 이름은 누가 만드는가? 답은 간단하다.
이 말을 만든 주체가 관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사용하며 퍼뜨린 말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탐관오리가 끊이지 않았다. 관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성행했다.
많은 관리들이 부임하자마자 본전을 뽑으려 했다.
그 비용은 결국 백성의 몫이었다. 세금이 늘어나고, 부역이 늘어나고, 없는 죄도 만들어졌다.
백성들의 눈에 이런 관리들은 이상한 존재였다.
입으로는 백성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벼슬을 이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챙겼다.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장사꾼보다 돈 계산에 더 밝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했다. "저 사람들도 결국 벼슬로 장사하는 것 아닌가."
그 냉소가 이름이 되었다.
벼슬아치. 벼슬을 권력이라기보다 이익으로 여기는 사람.
권력을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는 데 쓰는 사람. 그런 시선이 그 말 속에 스며들었다.
가장 위험한 조롱
권력이 강할수록 사람들은 직접 욕하기 어렵다.
원님 앞에서 대놓고 욕했다가는 곤장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언어에는 우회로가 있다. 사람들은 별명을 만들고, 비꼬는 표현을 만들었다.
공식 명칭 대신 다른 이름을 붙였다. '벼슬아치'가 바로 그런 말이었다.
"당신들이 그렇게 높다고?"
"당신들도 결국 자기 이익을 챙기는 장사치보다 더한사람들 아니냐?"
이것이 백성들이 권력자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직접 대들지는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로는 저항할 수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칼보다 말이 오래 살아남는다.
말 속에 숨어 있는 평등의 감각
흥미로운 것은 이 말이 가진 역전 효과다. 조선 사회는 사람을 끊임없이 구분했다.
양반과 상민, 관료와 백성,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
그러나 '벼슬아치'라는 말은 그 구분을 무너뜨린다. 백성들은 관리를 특별한 존재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끌어내렸다.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더 높은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그 말 속에 담겨 있었다.
이 말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다. 조롱인 동시에 저항이었다.
왜 '벼슬아치'란 말은 살아남았을까
많은 관직 이름들은 사라졌다. 이방, 호방, 좌수, 별감등등.
지금은 역사책에서나 만난다.
그런데 벼슬아치는 살아남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제도가 만든 말이 아니라 감정이 만든 말이었기 때문이다.
제도와 관청, 직책은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을 향한 사람들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부당한 권력을 보면 분노하고, 위선을 보면 냉소하며, 특권을 보면 의심하는 마음.
벼슬아치는 바로 그 감정을 담고 있다. 그래서 조선이 망한 뒤에도 살아남았다.
권력은 바뀌지만 감정은 남는다
오늘날 우리는 벼슬아치라는 말을 자주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다. 고위 공직자의 비리가 뉴스로 나오고,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한 사건이 터질 때면 사람들은 여전히 이 말을 꺼낸다.
"저런 벼슬아치들."
그 순간 사람들은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언어를 쓰고 있는 셈이다.
권력은 시대에 따라 모습을 바꾸지만, 권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말은 감정을 저장한다. 그리고 감정은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벼슬아치'라는 단어는 단순한 옛말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을 향해 던진 백성의 오래된
질문이다.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권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가.
조선은 사라졌고, 원님도 탐관오리도 역사책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벼슬아치'라는 말은 아직 살아 있다.
어쩌면 권력의 얼굴은 시대마다 바뀌어도, 그 권력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사람들의 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팝송> Turn! Turn! Turn! / Byrds
Byrds는 1960년대에 활동한 미국 록 밴드다.1965년에 발표한 Turn! Turn! Turn!은 이들의 대표곡이다.
세상은 순환하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내용의 노래다.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곡이다.
https://youtu.be/W4ga_M5Zdn4
첫댓글
벼슬아치란 말이
지금의 세대에도 어디엔가는 적용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본 어게인님. 좋은하루 되세요...
네~~한 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자연이다2님.
좋은 하루 되세요...
요즘은 아치라는 말 보다 정치질 순사질 선생질 질 이란 어휘에
그 자리에 있는 자신을 향해서도 하더군요 직업에 대한
자조 섞인 심리에서 일까요 먹고 살만하니까
원하는 자리에 앉아서도 그 자리에 자긍심 느끼는 사람이
적더라구요 세상은 넓고 즐길 것은 많다 라는 마인드가
대세라서 일까요 평생 직장이 없어지는
오늘도 글과 음악 감사합니다.
~질’은 동작을 나타내는 접미사이지만 경우에 따라
말씀하신대로 비하적 의미로 쓰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운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