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슬기로운 삶을 살지도 않은 채
농촌에서 소를 키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아주 재산형성의 지름길 이었습니다. 소를 키우기 위해 쏟는 정성은 참 대단해서 외양간을 항상 깨끗하게 청소하고 분뇨는 치워주고 건초를 넣어주어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여물(마른볏짚 썬 것)을 푹 삶아서 데워주고, 아주 고운 볏짚을 잘 골라 튼튼한 노끈으로 방석처럼 만들어 등과 배를 덮어주는 옷을 입혀줍니다. 사람은 발이 따뜻해야 하고, 개는 코가 따뜻해야 하고, 돼지는 주둥이가 따뜻해야 하듯이 소는 등과 배가 따뜻해야 잠을 잘 잔다고 합니다.
요즘 애완견에 예쁜 옷을 입혀준 것을 보면 옛날 소에게 옷을 입히던 기억이 나서 슬며시 웃기도 하는데 소가 코를 뚫어 코뚜레를 만들면서 이제는 소를 길 들도록 훈련을 시키는데 그 때 멍에를 얹어주지만 소는 멍에를 메지 않으려고 고개를 흔들고 뒷발질을 하고 앙탈을 부리게 됩니다. 멍에를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 없지만 멍에를 메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끙게’라는 바퀴 없는 나무 등걸에 돌이나 무거운 것을 달아매고 그것을 마당이나 길로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어려서 끙게를 탈 수 있는 것도 선택되는데 이 때 소가 달리거나 요동을 치면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멍에는 소의 뒷목에 걸쳐져 있어서 모든 끄는 것의 무게와 힘을 뒷목에 걸리게 하여 무거운 것을 끌고 다닐 수 있는 장치입니다. 소가 멍에를 벗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소의 앞발과 등에 같이 묶어서 벗지 못하게 합니다.
소가 마땅히 없는 집에서는 사람들이 멍에를 메고 밭을 갈고 소와 같은 멍에를 멜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메는 멍에는 아주 작고 어깨에 걸쳐서 메게 만들었는데 이스라엘에는 소가 흔치 않아 사람들이 멍에를 많이 져야 했습니다. 예수님께 목수로서 멍에를 많이 제작하시고 깎아 주시면서 멍에에 대해 가르쳐 주신듯합니다. 멍에와 같은 것이 바로 지게입니다. 짐을 지고 나르는 데 옛날에는 지게가 제격이고 짐을 얹어 등에 착 달라붙어 몸에 잘 맞아야 등짐을 질 수 있듯이 지게와 멍에는 일단 몸에 잘 맞아야 짐을 질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이 우리를 대신해서 멍에를 메고 지게를 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멍에와 지게 지는 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시는데 이는 다른 말로 ‘수용(受容)하는 자세’라고 하며 곧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주어진 그대로 잘 받아들이고 잘 식별해서 뱉을 것과 마실 것과 품을 것과 떼버릴 것을 구별해야 하는 지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내 몸에 맞도록 고쳐야 하기에 큰 것은 줄이고, 작은 것은 늘이고, 맵시가 나지 않는 것은 맵시를 만들고, 균형을 맞추고 형태를 조절해야 하는 것으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도 때로는 억지로 너무 힘겨운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산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제 나이를 먹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곰곰이 생각하니 나는 참으로 미련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주님은 오늘 분명히 멍에와 지게를 가볍게 지는 방법을 설명하시고 당신에게서 배우라고 하십니다. 그건 십자가가 아니라 짐을 가볍게 지는 방법으로 온유함과 겸손함은 모든 무거운 짐을 가볍게 질 수 있는 지혜로 기쁘게 그리고 즐겁고 행복하게 짐을 지고 간다면 한결 가벼워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지는 짐을 내게 주어진 짐을 억지로 지고 무거움을 느끼고 가면 정말 힘이 들고 조금도 기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직장에서 어렵게 일하면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고 그 어려운 일들을 주님께 봉헌한다면 그 어려움은 다 없어질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 때,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이 모든 어려움과 가난을 봉헌한다면 더욱 가벼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있으니 짐이 점점 무거워지고 더욱 힘들어서 지치고 멍에가 무겁다고 느끼고 조금도 쉴 틈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나는 그 일을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고귀한 성덕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짐은 아주 가벼워 질 것인데 나는 젊어서 그 모든 일을 끌어안으려고만 하였습니다. 흔히 축구에서 처음부터 공을 잡고 골인까지 혼자 하려는 바보와 같이 미련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았습니다. 주님께 의탁한다는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봉헌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내가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으로 억지로 하기 싫은데 모두 나의 짐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억지로 일을 하려니까 모든 것이 잘 풀리지 않으니 그래서 언제나 힘들고 원망으로 세상을 살았던 것입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25-31
25 “너희는 나를 누구와 비교하겠느냐?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고 보아라. 누가 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 그 군대를 수대로 다 불러내시고
그들 모두의 이름을 부르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크시고 권능이 막강하시어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28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29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30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31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축일12월 13일 성녀 루치아 (Lucy)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 연도 : +314년
같은 이름 : 루시, 루시아, 루씨아, 루키아
성녀 루치아(Lucia)는 시칠리아(Sicilia)섬의 시라쿠사(Siracusa)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배워 신심 깊은 아이로 성장했으나 불행히도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직 어린 소녀였던 성녀 루치아는 스스로 하느님께 동정을 서원했는데, 어머니조차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어머니 에우티키아(Eutychia)는 한 귀족 청년의 청혼을 허락하며 딸의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원했다. 그러나 스스로 동정을 서원했던 성녀 루치아는 자신의 결심을 어머니에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오로지 기도에만 매달렸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불치의 병에 걸리자 성녀 루치아는 카타니아(Catania)에 있는 성녀 아가타(Agatha, 2월 5일)의 무덤에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간절히 기도하였다. 기도의 은총으로 어머니의 병이 치유되자 성녀 루치아는 동정으로 살고 싶은 뜻을 밝히고 어렵게 어머니의 허락을 받았다.
동정 생활을 허락받은 성녀 루치아는 자신의 결혼 지참금마저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자 성녀 루치아에게 청혼했던 젊은이는 자신의 소유가 될 재산이 사라진 것에 분개해 성녀 루치아가 그리스도인이며 로마제국의 법을 어겼다고 고발하였다. 이때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절정에 달한 시기였기에 성녀 루치아는 즉각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배교를 강요하며 심한 고문을 가하는 재판관 앞에서 “당신이 황제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듯 나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당당히 자신의 신앙과 의견을 피력했다. 재판관은 도저히 그녀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매음굴로 보내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여러 남자와 소 떼까지 이용해서 성녀 루치아를 끌어내려 했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녀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재판관은 성녀 루치아를 불에 태워 죽이려고 했으나 나무에 불이 붙지 않아 그 또한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박해자는 긴 칼을 성녀에 입속에 찔러 넣어 죽였다고 한다.
빛을 의미하는 ‘룩스’(Lux)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진 성녀 루치아는 이런 모진 고문을 받을 때 눈알이 뽑히는 형벌까지도 받았다. 그러나 천사의 도움으로 뽑힌 눈알을 돌려받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성녀 루치아는 이름 그대로 어둠을 밝히는 빛나는 동정 순교자로서, 시력이 약하거나 시력을 잃은 이들과 눈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특별한 공경을 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교회 미술에서 성녀 루치아는 순교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나 칼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두 눈알이 담긴 쟁반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오늘 축일을 맞은 루치아 (Lucy)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