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역사속의 美人과 10代 美人을 알아봅니다!
1. 개 요 : ⑴, ⑵.
⑴. 2011년 05월 09일 오늘은 우리나라의 歷史 속에 기록되어 전해오는 絶世佳人들을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歷史 속에 살아 숨 쉬는 미인들을 열거해 보면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했고 비류와 온조 두 아들과 함께 백제를 건국한 실질적 여왕 소서노가 그 첫째 이며 물론 미인이라기보다는 두 나라를 이룩한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여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리며 드라마 속에서 소서노역을 맡았던 Talent 한 혜진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⑵.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구려의 2대왕 유리왕은 소서노에게 남편을 빼앗긴 주몽의 첫째부인 예씨를 어머니로 두고 기구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고구려의 2대왕에 올라 결혼 후 일년 만에 왕비 송씨가 죽자 계비로 하희와 치희를 들이는데 두 여자가 날마다 시기하며 싸움을 하다가 치희가 집을 나가자 유리왕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 '黃鳥歌'를 남겼습니다.
翩翩黃鳥(편편황조) 훨훨 나는 꾀꼬리들이어,
雌雄相依(자웅상의) 너희들은 암수 서로 화합하는데,
念我之獨(염아지독) 나 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誰其與歸(수기여귀) 그 누구와 같이 노닐거나.
或者는 먼저 세상을 떠난 왕비 宋氏를 그리워하며 지은 詩라 하고 중국인이었던 치희와 고구려 명문가의 딸인 하희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신세를 恨歎한 詩라 하기도합니다. 이 기록속의 하희를 역사속의 미인으로 이름을 올리는 이도 있습니다.
2. 내 용 : ⑴, ⑵, ⑶, ⑷, ⑸, ⑹, ⑺, ⑻, ⑼.
⑴. <삼국사기(三國史記)>의〈高句麗 본기〉중천왕(中川王) 조(條)에는 중천왕의 소비(小妃)인 ①관나부인이 얼굴이 아름답고 두발(頭髮)이 길어 왕의 총애를 받게 되자 왕후 연씨(椽氏)는 왕에게 “지금 위(魏)나라에서 천금을 주고 장발을 구한다 하니 장발미인을 위나라에 보내면 다시는 우리나라를 침범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여 관나부인을 왕의 곁에서 멀리 떠나보내려 하였으나 이것을 들은 관나부인은 왕이 사냥에서 돌아올 때 가죽 주머니를 들고 나와 맞으며 “왕후가 나를 여기에 넣어 바다에 버리려고 하니 집에 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여 왕후를 모함하였으며 왕은 거짓임을 알고 노하여 貫那夫人을 가죽 주머니에 넣어 서해(西海)에 던지게 하였습니다. 고국천왕 왕비 우씨는 남편이 죽자 권력을 미끼로 첫째아우인 발기를 제치고 과감히 남편의 둘째동생인 연우(山上王)와 결탁해 결혼과 함께 권력과 부를 누렸으며 미인이며 담대한 성격 이였습니다. 山上王이 皇后 우씨의 눈을 피해 궁 밖에서 만난 후 녀 인 山上王의 다음왕인 東川王의 어머니를 더 미인이라고 합니다.
⑵.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48 열전 제 8 '도미(都彌)'편에 ②도미(都彌)의 처(妻)의 아름다움과 굳은 절개를 말하고 도미는 가난한 평민이었으나 의리를 아는 사람이었으며 그 아내는 아름답고 행실이 곧아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으며 蓋婁王이 이를 듣고 도미의 아내를 탐내 도미를 불러다가 "부인의 덕은 정절이 제일이지만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좋은 말로 꾀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 드물 것이다"라고 말하자 도미는 "사람의 정은 헤아릴 수 없지만 신의 아내 같은 사람은 죽더라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아내에 대해 확신을 보였으나 이를 시험하기 위해 蓋婁王은 都彌를 잡아두고 가까운 신하를 왕으로 꾸민 후 도미의 아내에게 보내 "都彌와의 내기에서 이겨 너를 궁녀로 삼게 되었으니 너는 내 것이다"라고 속였으나 도미의 아내는 몸종을 자기처럼 단장시켜 들여보내 왕의 일방적인 횡포에 맞섰으나 자신이 속았음을 알게 되자 화가 난 蓋婁王은 都彌의 두 눈을 뺀 다음 멀리 보내버리고 도미의 아내를 범하려 했으나 도미의 아내는 몸을 씻고 오겠다며 궁을 탈출해 강가에 이르러 더 이상 갈 수가 없자 하늘을 우러러 크게 울자 어디선가 조각배 한 척이 밀려와 올라타니 배가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렀는데 눈먼 도미가 거기에 살아 있어서 극적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갖은 어려움 끝에 고구려 땅에 도착해 그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월탄 박종화의 都彌夫人 說話를 바탕으로 '아랑의 정조'라는 短篇小說을 남겼습니다.
⑶. 百濟의 또 다른 미인으로는 고구려 태자였던 안장왕과의 인연으로 연애전쟁을 일으키게 했던 빼어난 미모의 한주가 있습니다. 국경을 뛰어넘은 아름다운 로맨스는 <三國史記> ‘잡지’ 지리 편, <세종실록> 지리지, <新增東國輿地勝覽>, 그리고 丹齋 申采浩가 <해상잡록>이란 책을 인용한 <조선상고사>에 실려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는 향가에 新羅時代의 사료는 많이 있습니다.
⑷. <三國遺事>에 전하는 설화에 한국 歷史속의 최고의 미인인 ⑤수로부인은 신라 제33대 성덕왕 (聖德王) 때 강릉태수(江陵太守) 순정공(純貞公)의 아내로 남편이 강릉으로 부임하는 도중 벼랑에 핀 철쭉꽃을 꺾어 달라고 하자 소를 몰고 가던 늙은이가 헌화가와 함께 꽃을 바쳤으나 임해정(臨海亭)에 이르러 해룡(海龍)에게 붙들려 바다 속으로 잡혀가자 백성들이 해가(海歌)를 불러 다시 육지로 나왔으나 絶世美人이어서 깊은 산과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신물(神物)에게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동해의 아프로디테(Aphrodite)라고 부릅니다.
⑸. <화랑세기>는 미색과 재능으로 40여 년간 新羅皇室을 주무른 절세의 미모와 절정의 색공(色功)으로 세종에게 시집을 갔음에도 화랑 사다함의 연인으로 정분을 나누었으며 眞興王과 동륜태자 금륜태자(진지왕) 3부자와 모두 연을 맺었고 그 다음 임금인 眞平王과도 관계를 가졌다고 하고 김별아 장편소설 ③미실과 드라마 선덕여왕 속 미실에서 4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신라 최전성기의 진흥왕이며 이외에도 국경과 신분을 초월하여 사랑을 나눈 서동요 속의 ④선화공주 신도 흠모해 범하지 않을 수 없었던 처용가 속의 처용의 아내 신라 사륜왕조차 탐내던 유부녀인 도화녀 한국의 최고의 고승 원효(元曉)대사를 파계시킨 과부 요석공주 김유신의 사랑과 배신을 함께 맛보아야 했던 천관녀 등이 신라를 대표하는 미인들이지만 신라의 대표적 미인은 선덕여왕이며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뛰어난 정치력으로 신라 귀족사회의 존경을 받으며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군주입니다.
⑹. 高麗時代에 고려를 건국한 태조 王建의 손녀로 고려 제5대 왕 경종의 왕비였으며 제7대 穆宗의 모후인 천추태후는 12년간의 섭정으로 고려의 운명을 짊어졌던 자유롭고 당당했던 정치가였지만 유학자들은 그녀를 불륜한 여자로 보고 있으나 현대의 사가들은 고려 전통을 되살려 고려의 自主精神을 되살리고 유연한 외교 전략으로 외세의 침입으로 부터 고려를 지켜낸 여성 정치가로 평가하며 고려 오백년을 통해 가장 강력한 政治權力을 행사한 고려 최고의 여걸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원나라에 공녀(貢女)로 끌려갔다가 원나라의 황제 순제의 황후까지 오른 ⑥기황후도 고려의 대표미인으로 들 수 있으며 <원사(元史)>의 후비열전에는 기황후의 모습을 그는 영특한 성품과 살구 같은 얼굴 복숭아 같은 뺨 버들 같은 허리를 가지고 있었다. 라고 소개한 원나라 여인이었으며 원의 쿤란 태자의 청혼을 받았으나 기황후의 반대에 반원주의자인 恭愍王과 정략결혼을 하였지만 恭愍王을 도와 도탄에 빠진 고려를 위해 정성을 다한 노국공주도 고려의 미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⑺. 朝鮮時代 스캔들의 히로인인 ⑦어우동은 천하의 색녀(色女)로 유부녀였지만 수 많은 유생들이나 조관들과 정분을 나누었으나 儒敎社會였던 조선에서 용납될 리 없어 그녀는 결국 사형되었으며 ⑧장록수는 제안대군의 여종이었으나 용모가 뛰어나고 가무에 능해 燕山君의 총애를 받았고 왕의 총애를 이용하여 국사에 관여하여 연산군의 실정을 부추기다 결국 중종반정에 의해 참형을 받았으며 숙종의 총애를 받던 ⑩장희빈은 仁顯王后를 폐출하고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가 다시 희빈 으로 강등되었다가 결국에는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인박명(美人薄命), 미인박복(美人薄福).
⑻.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기생 성산월은 너무 아름다워 요괴로 오인 받을 정도로 성산월의 미모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고 하며 계월향은
선조 때 조선팔도에 명성을 떨첬던 평양의 명기로 1592년 壬辰倭亂으로 평양성이 함락되자 적장 고니시 유키나까에게 체포되어 적장이 총애하게 되는데 애당초 조선의 명장 김경서 장군의 애인이었던 桂月香은 거짓으로 마음을 주는 척 하면서 김경서 장군의 평양성 공격일시에 맞추어서 적장을 대취하게 만들면서 성문을 개방하여 적장도 살해하고 평양성도 수복하게 되는 결정적 수훈을 세웠습니다. 평양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김경서 장군을 만난 계월향은 그간 적장에게 수모를 당한 죄책감을 사죄하고 나간 후 자결하였다 하니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긴 만해 한 용훈이 그를 흠모하며 桂月香 에게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⑼. 우리나라 미인 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인이 바로 ⑨황진이로 사서삼경은 물론이요 시 서 음률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그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음 이덕형이 황진이가 머문 곳에는 사흘 동안 향기가 있었다 하며 동네 총각은 황진이를 연모하다 相思病을 앓다 죽었으며 살아있는 생불이라 추앙받던 지족선사를 파계시켰고 도도한 품성의 종실 청년 碧溪水를 조롱하였으며 중국 사신 蘇世讓이 넋을 잃었다 하고 당대 최고의 지성 화담 徐敬德을 흠모하여 그를 유혹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사제지간을 맺은 후 자신 黃眞伊와 朴淵瀑布 그리고 화담선생을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칭했다는 일화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말해줍니다.
3. 결 론 : ⑴, ⑵.
⑴. 우리나라 미인들에 대한 내용을 살펴 알아보니 미인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外的 아름다움도 重要하지만 內面의 아름다움(眞, 善, 知慧의 아름다움)이야 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임이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知慧와 德으로 政治的으로 또는 軍事的으로 業績을 남기기도 하고 藝術的 재능으로 風流를 즐기면서 당당하게 살아온 아름다움이야 말로 그들을 몇 백 년 아니 몇 천 년 이 지난 오늘 날에도 미인으로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⑵. 또한 웅녀, 유화, 樂浪公主, 허 황옥, 平岡公主, 연 수영(최초의 女將軍), 眞聖女王, 문정황후, 申師任堂, 許蘭雪軒, 論介, 昭顯世子 비 강씨, 임 윤 지당(朝鮮時代 최고의 여성 性理學者), 明成皇后 等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歷史는 여성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많은 미인들이 빠졌을 것입니다. 드라마 배역을 보면서 상상해본다 善德女王하면 이 요원, 천추태후하면 채 시라, 黃眞伊하면 하 지원, 善花公主하면 이 보영 等이 떠오릅니다.
4. 感謝 합니다 ! 2011年 05月 10日 10:45. 우리나라 역사속 10대 미인은 첨부 하였습니다.
5. 國家報勳廳 記者 및 文化財廳 文化財지킴이 宋 哲 孝(珍國).
Z.한국미인(10대미인).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