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직장에서 돌아와 어머니로부터 영희의 결혼에 대하여 들으신 아버지가 본인이 싫다는 결혼을 왜 당신이 나서서 그 야단이냐고 하시는 말에 당신이 그러니까 저 애가 분수없이 날뛰는 것 아니냐며 ‘아버지가 되어서 좋은 상대를 골라 시집보내려는 어미를 생각해서 딸을 설득한 생각은 않고’ 하며 어머니가 언성을 높이기는 바람에 두 분이 다투시고 그것이 어머니를 더 자극하여 어머니는 영희의 결혼 준비를 서둘기 시작했다.
영희는 당황했다.
말로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지만 일이 진전되어 막판에는 끌려가서 할 수 없이 결혼식장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지만 기철과의 관계가 확실해지면 이 모든 사태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우선 기철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철과 화영이 사이의 발생한 일들을 모르는 영희로서는 기철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연애 감정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만약 기철이 단순히 연애 감정으로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고 결혼을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고 만약 그것이 사실이 되고 어머니가 기어이 화영과 결혼을 시키려고 하면 자기는 집을 나가는 도리뿐이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해 본다.
그래서 며칠 후 기철을 만난 자리에서 어렵게 자존심을 꺾고 어머니가 화영과 자기를 5월 초에 결혼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얼굴 붉히며 하는 영희의 마음은 쑥스럽고 초조했다.
그 말을 들은 기철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한편 그 말을 들은 기철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영희 어머니가 자기를 탐탁하게 생각지 않아도 어떻게 영희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강제로 결혼을 시킬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경제적인 면을 무시하지 못하는 어른이라도 결혼은 한 사람의 장래가 결정되는 것인데 어떻게 딸의 생각을 무시하고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이러다 정말 영희를 화영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하던 기철은 화영의 비열한 행동에 반감이 생기고 그 유들거리는 얼굴이 떠오르며 이렇게 억지로 화영에게 영희를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만난 지 채 사 개월도 되지 않아 결혼을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고 영희와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을 진작부터 가지고 있었던 기철은 영희의 이야기를 듣고 영희가 어머니가 자기를 강제로 화영과 결혼시키려고 한다는 말을, 그것도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것은 기철의 생각이 어떤지를 알기 위함이라는 확신을 가지며 이것으로 영희의 속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기철은 이 사태가 어쩌면 나와 영희의 결합을 앞당겨 주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준비하여 영희만 좋다면 영희와 화영의 결혼 날로 정해진 5월 초에 자기와 영희의 결혼식 날로 해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우선 자기가 영희에게 프로포즈를 하여 영희의 승낙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철은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호들갑을 떠는 것보다 실제 행동으로 표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철의 반응을 본 영희는 실망했다.
영희의 말을 들으면 그럴 수는 없다고 기철이 흥분하고 화를 내며 ‘그래 영희씨는 어머니 뜻에 따라 정말 화영이란 사람과 결혼 할 것이냐’고 하면 ‘아니다. 나는 화영과 결혼할 생각이 전연 없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나의 뜻을 모르느냐?’라고 대답해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고 한편으로는 기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기철은 조금 놀라는 눈치더니 헤어질 때까지 거기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화가 나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엔 관심이 없다는 것인지 기철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영희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철의 그런 행동으로 기철이 지금까지 자기를 좋아한 것은 단순한 연애 감정이었지 결혼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영희는 기철의 행동에 야속함을 느끼며 남자들은 모두 자기의 이 속만 차리는 이기적인 동물들이라는 생각이 들며 별별 이야기까지 다 하며 자기 속을 내보인 자기만 바보가 되었다는 마음에 헤어질 때 화도 나고 창피한 마음도 들고 서글프고 쓸쓸했다.
“기철씨는 내가 화영씨와 결혼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요?”
하고 다시 한번 물어보고도 싶지만, 그 질문을 받은 기철이
“그것을 왜 내게 물어요, 두 사람이 하는 결혼을?”라고 하면 쑥스럽고 더욱 멀쑥해질 것 같아 참으며 이제 기철과 만남도 끝내야겠다고 속으로 맹세를 했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이제 기철이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튿날은 일요일 기철이 영희에게 전화를 했다. 만나자고
전날에 기철의 행동에 많이 서운함을 아니 실망을 한 영희는 망설이다가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기철을 만나러 나갔다.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을 어제 그런 행동을 한 기철이 왜 보자고 하는지 궁금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헤어지기 전 한 번을 만나야 할 것이니 오늘 기철을 만나 이 만남에 종지부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지며 그러면 이것이 기철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철을 만나러 나갔다.
그래서 약속 장소에서 기철을 만난 영희의 행동이 자연 평소와 달랐다.
전과같이 기철을 반기지도 않고 말도 냉소적이고 사무적이 되었다.
그런 영희의 마음이 자기의 어제 행동으로 영희가 많이 실망했다는 것을 눈치챈 기철은 속으로 웃으며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영희를 어렵게 달래어 교외에 분위기 있는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집으로 따라 들어가며 좀 색다르게 마지막을 마치려고 하는가 보다고 영희는 생각했다.
점심을 마치도록 특별한 말이 없는 기철의 행동에 더욱 저기압인 영희를 근처에 조용한 숲으로 데리고 간 기철은 미리 준비한 포장한 작은 선물상자를 영희에게 건넨다.
“무엇이에요?”
기철이 처음 주는 선물을 받으며 영희는 의아해 한다.
혹시 절교하자는 의미의 마지막 선물인가 하는 마음도 들고 그래서 머뭇거리는 영희에 손에 선물을 쥐어 주며
“풀어보세요.” 한다.
상자를 푸는 영희의 손이 이유 없이 떨린다.
상자 속에는 앙증맞은 에메랄드 귀걸이가 들어있었다.
“어머나! 예쁘네요.”
영희가 환한 웃음을 웃으며 즐거워하던 영희는 어제 일이 생각나 다시 시무룩해진다. 혹시 것이 이별 선물이 아닌가 하고 그러면 받지 않으려고 귀걸이를 든 소를 내밀며
“고맙지만,”하고 말하려는데
그런 영희를 바라보던 기철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영희의 그 손을 잡으며
“영희씨! 에메랄드는 순결을 뜻하고 계절적으로는 5월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오는 5월에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한다.
기철이 자기를 사랑하고 그래서 어쩌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어제 그런 일을 겪은 후 기철이 이렇게 청혼을 하자 어리둥절하던 영희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부끄러워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
그리곤 가만히 기철의 손을 잡고 기철의 손에다 입술을 댔다. 승낙의 표시로
잠시 기쁨 마음이 가라앉은 영희가
“그런데 왜 어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시무룩해서 사람의 마음을 애타게 했어요?”
하고 어제의 섭섭했던 마음을 표하자
“영희씨가 못 보아서 그렇지 나는 많은 말을 했는데요. 표정으로.”
“아니 내가 점쟁이인가요. 표정을 보고 사람 마음을 읽게.”
“그러가요. 하! 하! 하!”
“기철씨는 그런 능력이 있어요?”
“물론 나도 그런 능력은 없지요. 하! 하! 하!.”
“자기도 그러면서 호! 호! 호!”
이렇게 한참을 웃고 떠들던 영희가 갑자기 심각해지면서 걱정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런데 어머니를 어떻게 설득하지요?”
“최선의 노력을 다 해보아야지요. 하지만 영희씨만 나를 믿고 따라와 준다면 나는 자신 있어요.”
“나는 물론 기철씨를 믿고 따라갈 거예요. 어떤 경우라도.”
영희가 다부진 결의를 나타내며 대답한다.
“그럼 됐어요. 내일부터도 어머니를 만나서 설득해 보아야겠네요.”
기철은 우선 자기 부모님의 승낙을 받는 것이 먼저로 생각하고 어제 집으로 돌아갔을 때 부모님께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내일 그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와 부모님께 인사를 시키겠다고 했다.
평소에 기철을 믿고 있던 부모님은 기철이 급작스럽게 서두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이유를 묻지 않고 기철의 의사를 존중해 주시고 영희를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도 반갑게 맞아 주시고 두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셨다.
영희는 기철의 부모님이 베풀어 주시는 자상한 배려와 잔잔한 환영에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행복을 느끼며 자기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주말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