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스며드는 현장
예배 마치고 세진이 식구와 점심을 먹었다.
두 돌 된 딸의 예쁜 짓이 귀여웠다.
안수집사님이 벌목하다 팔뚝을 다쳤다.
나뭇가지에 찔려 근육 파열로 수술받았다.
‘참 그리스도인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사고 업체로 찍히면 일을 따 낼 수 없다’는 오야지 말을 따랐다.
산재 신청하여 충분한 치료를 해야 하는데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세진이가 열을 내서 따져 물었다.
‘목사님, 그럴 수 있어요?
아빠는 16년 일한 퇴직금 신청도 안 한데요. 영세 업체라고요.’
아빠를 설득시켜 국가가 보상한 사회보장 혜택을 받도록 일렀다.
그러다 늦게 교회로 들어왔다.
재정 부장의 전화였다.
감사 헌금 봉투가 여러 장 묶음으로 드려졌단다.
그대로 기록했지만 궁금해 물었다.
확인 결과 이사 심방 때 참석자들의 축하 금을 권사님이 헌금하셨다.
인생 황혼 녘에 편한 보금자리에서 삶을 누린 감사였다.
그날 12명이 거실과 침대에 앉아 예배드렸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찬송을 불렀다.
기도하고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라’(히 11:16)는 말씀을 드렸다.
나그네 인생길의 끝자락에서 다음 이사할 곳은 본향이었다.
허물과 죄로 지옥 갈 영혼을 하나님이 택하셨다.
중년에 예수님 영접하고 50년을 그 사랑 안에 머물렀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친정어머니 기도와 시누이 사랑의 열매였다.
살림이 단출 해 널찍한 빈 방은 빈 삶 같았다.
하지만 지난날 교회 봉사와 헌신이 컸다.
섬김과 나눔이 가장 귀한 기쁨임을 나타냈다.
점심으로 대덕 회관에서 아귀찜과 꽃게찜을 대접받았다.
음식을 포장해 갈 정도로 풍성하게 섬긴 행복한 자리였다.
권사님 손길에 힘입어 해외 선교 비를 정한 날짜에 보냈다.
교회 살림 꾸린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였다.
부족한 듯하지만 늘 톱니바퀴처럼 물려 넘어갔다.
세월이 참 빠르다.
또 한 해를 펼칠 시간,
엊그제 신협으로 교회 대출금을 바꾼 것 같은데 5년 만기였다.
대출 담당자에게 구비 서류를 문자로 받았다.
재계약도 간단치 않고 요구 사항이 많았다.
총회, 구청, 동사무소에서 서류를 뗐다.
회의록을 작성하고 서명 날인을 받았다.
안수집사님 도장 때문에 생생 병원으로 갔다.
더 나은 재활 치료 위해 딸과 아내가 우겼다.
서울정형외과로 재입원시키는데 동행하였다.
딸에게 유자청을 주며 친정에 자주 들러 예배 참석하라 권했다.
정한 시간에 신협을 방문해 내민 서류마다 자필로 썼다.
낮은 금리 조정은 어려웠다.
20년 넘은 고정 부채라 원금보다 이자가 더 나갔다.
아직 8천4백만 원이 남았다.
교회 본연의 기능인 선교와 구제 위해 어쩔 수 없는 형편이다.
추가로 납세 증명서까지 요구해 왔다.
꼬박꼬박 세금 낸 상황을 보기 위함 같았다.
담당 직원이 확인차 교회에 들렸다.
1층 예배당부터 옥상 태양광 설치물까지 구석구석 촬영해 갔다.
증거 자료로 삼을 모양이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군 복무한 임성현 청년이 첫 휴가를 나왔다.
6개월 만에 들은 전화 목소리가 밝았다.
예정보다 한 달이 늦어 기다림 끝에 약속을 잡았다.
‘목사님, 아빠랑 같이 광주 가기로 했어요. 어디서 만날까요?’
‘오전에 은행 업무 볼 일 있어.
교회로 오렴. 메뉴는 뭘 하지? 추천해 봐..’
‘어.. 염소 탕 먹을까요? 오랜만에 생각나요.’
‘그래, 좋았어. 담양 가서 먹자.
도착 시간 알려 줘. 기다릴게.. 조심해서 와라.’
‘12시 정도 도착할 것 같아요.’
성현이가 긴 패딩을 입고 차에서 내려 군인 같지 않았다.
살인 미소는 여전해 반갑게 맞았다.
‘얼굴이 포동포동해 보기 좋다.’ ‘체중이 2kg 늘었어요.’
‘고생 많았다!’ 안아 주고 등을 두드렸다.
믿음 지키며 무탈하게 지낸 것 감사였다.
달팽이 크림과 유자청을 손에 들고 왔다.
예배당을 둘러보고 식당으로 갔다.
왕성한 식욕은 변함없었다.
부대 교회에서 드럼 연주하고 또 운전병으로 빛 된 삶을 끌었다.
졸병이 들어와 불편함 없다지만 1년 남은 기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참 군인 정신을 심고 싶어 ‘서울의 봄’ 영화를 권했다.
하지만 분위기 좋은 카페에 마음을 실었다.
세컨드 원(휴심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양한 디저트와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카페였다.
대형 성탄 트리와 인형을 설치한 낭만의 장소였다.
통유리로 햇살 비췬 자리에 앉았다.
차 마시기 좋은 곳에서 임 목사님 교회 형편을 들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든든하게 세워간 목회 현장이었다.
헌신하신 분들의 미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휴심 정원을 둘러보며 잘 가꿔 놓은 나무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애인 생기면 함께 오라’는 아빠 말에 성현이 눈꼬리가 올라갔다.
내년 이맘때 제대하면 가능할 일이라 더 구체적으로 기도해야겠다.
기력이 약해 퀭한 눈빛으로 누울 자리 찾는 어머니 위해 이모가 오셨다.
다음 날 일찍 두 분을 효령 복지타운으로 모셨다.
먼저 물리 치료실로 갔다.
두루두루 이용하며 몸을 가볍게 움직였다.
점심때 근처 맛집을 찾았다.
수육과 따뜻한 국밥으로 섬겼다.
오후에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너무 좋아 흡족한 얼굴이었다.
찻집에 들려 저스트 페퍼민트를 한 잔씩 시켰다.
저녁에 두 분 모시고 아내와 함께 영화 관람을 했다.
전대 시네마에서 ‘서울의 봄’을 봤다.
긴 시간 긴장감이 흘렀다.
군사 반란 세력에 서울을 지키기 위해 충성한 자,
한편으로 무능한 지도자들에 다리가 풀렸다.
잘못된 역사의 첫 단추가 끼워진 출발이었다.
자막이 올라가 일어설 때 이모 권사님의 일갈에 놀랐다.
‘전두광! 미친 놈!! 저렇게 해 처먹고 잘 살았네!!!’
2023. 12. 9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