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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문제는 영희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희는 기철의 부모님이 쾌히 승낙하셨고 영희 아버지도 영희의 의견을 어느 정도 존중해 주신다는 생각이 미치자 어느 정도 용기가 났다.
며칠 후 용기를 내어 기철은 영희와 약속한 날 저녁 영희의 논문이 끝나고 나서는 거의 방문하지 않았던 영희네 집을 한 달여 만에 찾았다.
그리곤 영희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영희와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기철의 행동에 제일 당황한 이는 어머니이다.
기철이 이렇게 빨리 이런 식으로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우리 영희는 결혼할 사람이 따로 있고 결혼 날짜도 받아 놓은 상태니까 그리 알아요.”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자 영희도 기철의 곁에 무릎을 꿇으며
“어머니 우리 결혼을 승낙해 주세요.”
하고 말한다.
“너희들 둘이 짜고 이러면 내가 승낙할 줄 알아? 어림없어.”
“어머니! 제가 어머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희씨는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그리고 영희씨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영희씨를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글쎄 우리 영희는 결혼할 사람이 따로 있다니까. 말을 못 알아듣네. 양가에서 협의하여 결혼 날짜도 잡았어. 그러니 속 차리고 다른 사람을 알아봐요. 공연히 애쓰지 말고.”
“어머니! 그것은 어머니와 화영씨가 독단적으로 정한 것이지 나 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에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는 화영씨와 결혼하고픈 생각이 조금도 없어요.”
“철없는 소리 말아. 이미 정해진 것이고 너를 위해 에미가 정한 것이니까 잔소리 그만하고 조신하게 결혼 준비나 해. 쓸데없이 이런 일로 진 빼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리고 기철이 자네도 철없는 애 꼬드겨서 일 만들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어요”
어머니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오늘은 이만 물러갑니다. 그렇지만 어머님이 승낙하실 때까지 매일 오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날은 물러났다.
처음부터 너무 심하게 졸라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그리곤 정말 매일 같이 영희네를 찾아가서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결혼을 승낙해 달라고 청했다.
이삼일은 그냥 넘겼으나 시간이 길어지자, 영희 어머니는 짜증이 나서 기철에게 ‘어른의 말을 무시하는 파렴치 한’이라는 심한 말까지 하고 나중에는 기철이 오면 문을 열어 주지 않거나 어떻게 영희의 도움으로 기철이 집으로 들어오더라도 피하고 만나주지를 않았다.
어머니의 그런 행동에 영희는 기철에게 무척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자기에 대한 기철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 같아 영희의 마음은 더욱 깊게 기철에게로 기운다.
처음부터 각오한 기철도 영희 어머니가 그러면 그럴수록 영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친밀하여지고 거의 매일 어머니를 찾는다.
마침내 영희 어머니가 화영에게 연락해서 해결을 좀 하라고 했다.
화영은 어머니와 의논하여 영희와의 결혼 날짜를 정한 후로도 혹시 하는 생각에 걱정하고 있으면서도 양가 부모의 합의로 결혼 날짜까지 잡아 놓았으니, 영희가 다른 생각은 못 할 것이라는 생각과 결혼 준비로 바쁘기도 했지만, 특히 병원에 수술환자가 밀려 영희를 찾는 것이 다소 뜸했다.
그런데 그 며칠 새 영희와 기철 간에 일이 급진전 되어 기철이 영희와 결혼하겠다고 하며 거의 매일 집으로 찾아와 조른다는 것을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혹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불안해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자, 황당하기도 하고 이번에는 어떤 형태로든 결말을 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희네 집을 찾았다.
화영이 어머니와 미리 연락하여 기철이 찾아온 시간에 영희네을 방문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화영의 방문에 당황하였지만, 특히 영희와 기철은 이런 자리에 화영이 나타나니 무척 황당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마침 집에 계시던 아버지가 무슨 일을 이렇게 만드느냐며 어머니를 보고 걱정을 하시며 이 일은 당사자들이 해결하여야 한다며 하시며 적절하게 처리하시었다.
아버지의 배려로 다른 사람들은 화영과 기철과 영희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도록 자리를 비워주어 세 사람은 거실에서 마주 앉았다.
처음에는 어머니도 자리를 같이 하겠다고 우겼으나 아버지가 세 사람이 해결하도록 하고 제3 자는 빠지는 것이 좋다고 우격다짐으로 권했고 다른 식구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고 그 의견에 화영도 웬일인지 동의를 했다. 조그만 자존심이 발동한 것인지 아니면 영희네 식구들에게 자기의 아량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자리를 잡자 화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기철씨! 당신은 밸도 없소. 어머니가 그렇게 반대하시면 그만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오. 더욱이 다른 사람과 결혼할 여자 집에 와서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조르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경우요?.”
화영의 말이 한결 점잖아졌다.
영희도 있고 자리를 비웠다고는 해도 같은 집에 있을 영희네 식구들이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다.
“염치가 없는 사람은 당신이군요. 화영씨 당신이야 말로 이곳에 나타나면 안 되는 사람 아닌가요. 영희씨가 분명하게 의사를 밝혔을 텐데.”
기철의 대꾸다.
“처음부터 영희씨는 나와 결혼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소.”
“거짓말 말아요. 내가 언제 화영씨와 결혼한다고 했어요.”
옆에 있던 영희가 반박한다.
“그래! 물론 말로는 표현 안 했지만, 우리의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침묵하고 있었다는 것은 승낙한 것이나 다름없잖아?”
“화영씨가 언제 나하고 직접 이야기했어요? 화영씨를 좋아하는 우리 어머니하고만 그런 이야기를 해서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그런 말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분명히 내 의사를 말씀드리고 반대했어요. 이번에 결혼 날짜를 잡고 결혼 준비를 하는 것도 나하고는 말이 안 되니까 우리 어머니를 꼬여서 하게 한 것 아니에요.”
“꼬이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화영의 언성이 높아진다.
“말꼬리 잡고 그러지 맙시다. 사실이 아니요.”
기철이 거든다.
영희의 반박에 할 말이 없어 큰소리를 냈던 화영은 기철의 가세에 수그러진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냥 물러설 화영이 아니다.
“영희씨 어머니는 영희씨보다 세상을 더 많이 사신 분이야. 그리고 영희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원하시는 분이고 그런 분이 기철이 아닌 나를 선택한 것은 내가 영희씨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은 나도 알아요. 그래서 어머니의 배려에 감사드려요. 그러나 어머니와 내가 생각하는 관점이 달라요. 그게 문제죠. 나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찾으려고 해요. 그러니 화영씨는 화영씨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런 사람을 찾아보셔요.”
“영희씨는 정말로 나의 사랑을 받아 줄 수 없단 말이야?”
“그래요. 나와 화영씨와는 서로 생각의 차이가 심해요.”
화영은 영희나 기철을 설득해 보라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왔다가 오히려 영희의 굳은 의지만 확인하는 결과가 되었다.
하긴 지난번 이벤트 때 이미 영희의 마음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머니와 독단으로 결혼 준비를 하였지만 그래서 화영은 은근히 화가 났다.
자기만 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왜 영희에게 이렇게까지 무시당하며 사랑을 구걸해야 하나 지금도 자기 주위에 자기가 손을 내밀기만 기다리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유독 영희만이 자기를 언짢게 본다.
한편에서는 오기로라도 정복해보자는 생각과 한편에서는 내가 창피하게 왜 이러고 다녀? 별것도 아닌 여자에게, 하는 생각이 든다.
귀하게 자란 화영의 생각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이때 기철이 이런 말을 한다.
“화영씨! 내가 화영씨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영희씨의 생각을 확실히 아셨으니 이제 영희씨를 놓아주십시오. 영희씨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영희씨가 자기의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당신이 그 행복이란 말이오.”
“그것은 영희씨가 분명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화영씨가 물러나면 내가 화영씨 몫까지 영희씨를 사랑하여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당신이 내 입장이라면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소.”
“아닙니다. 나라도 쉽게 포기할 수 없겠지요. 그동안의 세월과 정성이 얼만데. 아니 그보다도 화영씨의 사랑이 아직도 뜨거운데 그것을 넘으려면 많은 인고가 필요하겠지요. 가슴 쓰린. 그러나 싫다는 사람을 붙잡고 실랑이는 벌이지는 않겠습니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니까요. 아니 그렇게 해서 얻은 사랑이 행복할까요?”
“행복은 살면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아니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불안한 행복이지요. 확신할 수 없는. 두 사람이 이상이 맞지 않으면 어쩜 끝까지 불행할 수도 있는. 하지만 처음부터 행복하게 결합 되는 결혼은 대부분 끝까지 행복할 수 있는 것이고 혹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극복할 수 있지 않겠어요.”
화영은 생각에 잠겼다.
기철의 말이 옳은지 모른다.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받아야 하나?
영희 정도의 여자는 내 주위에 많다.
그런데 나를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는 영희의 주위에서 어정거리며 이런 대접을 받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동안 영희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나는 결국 영희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 여기에 매달리면 내 꼴만 우습게 된다.
그래 이제 나만 우습게 되는 이런 어리석은 짓을 더 이상 그만 두자
더구나 이렇게 나보다 더 사랑하는 남자를 가진 여자와 결혼해서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결혼을 하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두 사람이 사소한 일로 부딪칠 때마다 오늘까지의 일들이 과거의 환영으로 문득문득 떠올라 우리를 망쳐버릴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한 화영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그 집을 떠났다.
이튿날 화영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와 영희와의 관계를 없었던 일로 해 달라고 했다.
“이 사람아! 그러면 이제까지 나는 무엇이 되는가?”
어머니의 꾸지람에
“죄송합니다. 그동안 어머님이 보여주신 사랑에 보답을 못 하게 돼서. 참으로 어머님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하는 것이 화영의 대답이었고 그 후로도 가끔 어머니를 밖에서 만나 점심도 사드리고 선물도 했다.
화영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화영과의 일이 이렇게 끝나자, 어머니는 더 이상 영희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게 되고 그동안 어머니가 화영과의 결혼식을 준비해 왔던 관계로 영희를 결혼시키려고 준비한다는 소문이 여기저기 나 그 소문에 맞추느라 영희와 기철의 혼사는 급진적으로 진행되었고 기철이 목적한 대로 화영과 어머니가 잡아 놓았던 5월 초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론적으론 날짜까지 거론하며 결혼을 시켜달라고 한 화영의 말을 듣고 어머니가 화영과 영희의 결혼을 서두른 것은 영희와 기철의 생각을 확고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고 화영을 영희에게서 원만히 떨어지게 하고 또 이들의 결혼을 앞당기게 하는 것이 되었다.
결혼 초에는 영희도 자기의 전공을 살려 기업체에 취직했었지만, 첫아이를 낳고는 퇴직하고 전업주부가 되어 가정생활과 아이들의 양육에 전념하였고 기철도 공사 현장 생활을 주로 하는 토목기술자이지만 처를 사랑하고 가정에 충실하여 가정이 점점 풍요로워지며 기철이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별 어려움 없는 행복한 생활을 했다.
아들애가 고등학교 사춘기에 잠시 공부를 등한히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말썽을 부렸지만, 정성 된 영희의 보살핌으로 얼마 안 되어 다시 정신을 차려 아들과 딸 두 아이가 다 착하게 자라주었고 이상하게도 딸아이는 아버지를 무척 따랐다.
영희를 만나게 되고 사귀고 결혼하기까지 일들을 생각하며 기철은 혼자 미소 지으며 지금까지의 결혼과 가정생활은 나름대로 성공했었다고 생각했다.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지키미님!
무혈님!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잘읽었습니다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