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당시 대영제국은 글로벌 표준화의 필요성을 느껴 세계로 탐험가들을 보냈다
그들의 성과중에 하나가 동해가 한국해(Sea of Corea)로 표기된 아래 지도이다.
1615년 | 고딘호 헤레디아의 아시아도 [한국해(MAR CORIA)] |
1647년 | 로버트 듀들리경의 동아시아지도 [한국해(MARE DI CORAI)] |
1650년 | 필립 브리에트의 지도. Ocean ORIENTAL |
1697년 | 장 밥디스트 타베르니의 일본열도지도.한국해(MAR DE CORRER) |
1705년 | 프랑스 지리학자 기욤드릴(Guillaume DELLSLE)이 황실아카데미의 후원을 받아 제작한 인도-중국지도. [동해 또는 한국해 (MER ORIENTALE OU MER DE COREE)] |
1747년 | Green이 편집한 [애스틀리]판 신탐험항해 및 여행기집 (New General Collection of VOYAGES and TRAVELS)의 제4권의 지 도에서 한국해(SEA OF KOREA)로 표기됨. |
1748년 | 프랑스에서 제작한 중국지도. 한국해(Mer De Coree) |
1777년 | 이탈리아의 안토니아 차타교수의 아시아 국가지도. 한국해(MARE DI COREA) |
1778년 | 대영백과사전(중국편). 한국해(SEA OF COREA) |
1780년 | 러시아인 보웬의 러시아지도에는 한국해. |
1785년 | 스페인 마드리드국립도서관 소장지역과 국가들로 구분된 아시아지도는 한국해(MER DE COREE)표기. |
1794년 | 영국에서 제작된 아시아섬들과 지역. 한국해(COREAN SEA) |
1794년 | 런던에서 새뮤얼 던이 제작한 로비 휘틀사 발행 지도에는 한국만(GULF OF COREA) |
1796년 | 런던에서 조지 니콜이 제작한 세계지도에는 한국해(SEA OF COREA)로 표기. |
1805년 | 프랑스 지리학자 드조쉬(드릴의 후계자)의 아시아 전도에는 한국해 또는 일본해(MER DE COREE OU DU JAPON).한국해는 큰 활자로 표시하고, 그 밑에 작은 활자로 일본해 명기. |
1808년 | 캡틴쿡의 탐험로를 표시한 런던에서 제작된 세계 지도에는 한국해(COREAN SEA)로 표기. |
1831년 | 영국에서 제작된 볼드윈과 글래독의 아시아지도에는대한해협(Str. Of Corea)으로 표기. |
1845년 | 영국의 월드에 의해 제작된 세계지도에 한국해(SEA OF COREA)로 표기 |
1794년 | 가쓰라가와(桂川甫周)가 작성한 아세아전도(亞細亞全圖)에 조선해(朝鮮海)로 표기. |
1810년 | 다까바시(高橋景保)의 신정만국전도(新訂萬國全圖) 에 조선해(朝鮮海)로 표기. |
1847년 | 까사쿠(箕作省吾)의 신제여지전도(新製輿地全圖)에 조선해(朝鮮海)로 표기. |
1872년 | 하시모토의 대일본사신도에 조선해(朝鮮海)로 표기. |
1935년 | 가이조출판사’의 일어 번역판 걸리비여행기 下권 조선해(朝鮮海)로 표기. |
1705년 프랑스 지도 ▼"Simplified Map of Japan's Periphery" drawn by Takahashi Kageyasu,
a well-known Japanese cartographer, describes the sea area located
to the east of the Korean Peninsula as the "Sea of Joseon"
(name of the last Korean dynasty). ▼
프랑스 선장 라페루즈가 지도에다 ‘일본해’라고 썼습니다.
라페루즈 그는 누구인가?
# 호주의 운명의 순간
1788년, 8일 간격으로 유럽의 두 선단이 보타니 만에 도착했다
(Two separate European fleets visited Botany Bay). 1월 18일에 도착한
영국 선단은 아서 필립 선장이 이끈 11척의 죄수선단이었다.
그로부터 꼭 8일 후에, 라페루즈 백작이 이끄는 프랑스 선단이 도착했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라페루즈가 하루라도 먼저
도착해서 프랑스 식민지로 선포했다면 지금의 호주는 어떤 모습일까?
라페루즈는 1787년 5월, 제주도 인근의 대한해협과 동해를 거쳐서
사할린 쪽으로 항해하면서 울릉도를 발견한 최초의 서양인입니다.
정조 11년.
그런데 불행하게도 라페루즈가 지도에다 ‘일본해’라고 썼습니다.
The chart of Lape'rouse's discoveries
in the Sea of Japan and Sea of Okhotsk
루이 16세의 명으로 아시아의 동북 해안을 탐험하던 프랑스의 해군 대령인
라 페루즈(Jean-Franc,ois de Galaup, comte de La Perouse , (1741~1788)가
부솔(La Boussole 500톤)호와 아스트로라베(L' Astrolabe 500톤)호선단을 이끌고
세계 일주 항해를 하던 도중 .. 1787년 정조 11년 5월에
우리 나라 남해안과 동해안을 탐사, 1787년 5월 27일 서양인중 울릉도를 최초로 목격,
동승했던 천문학자 다줄레의 이름을 따 다줄레 섬(Isle Dagelet)이라 명명하였으며,
이 이름은 1950년대까지 세계지도에 오르게 되었다.
La perouse당시 울릉도의 어민들은 폐루즈의 탐사대를 목격하고 봉화불을 밝히는 등
신속히 대응한 것으로 보이며, 라페루즈의 탐험대는 울릉도 상륙 일보전에 철수하여
독도는 보지 못하고 항로를 북쪽으로 하여 타타르 해협으로 향하고 만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탐사 활동만 하고 지나쳐서인지 조선 왕조 실록에는 이들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 있지 않다.
울릉도 탐사 경위는
「The voyage of La Pe'rouse around the world 라페루즈의 세계 탐험기」에 실려 있는데,
이 책은 1791년 4월22일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명에 의해 출판 작업에 착수, 1797년
프랑스 국립인쇄소에서 출판됐다.
항해 일지 형식의 이 탐험기에는 울릉도 탐사 경위가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남해안과
동해안의 해안선을 실측하여 작성한 해도, 제주도 남부 해안 및 울릉도의 실측 지도가 수록
되어 있다. 이는 1668년「하멜 표류기」 이래 서양인이 한국을 직접 목격, 관찰하고 과학적으로
측정하여 기록한 최초의 자료이다.
1507년 지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제뭘러가 펴낸 ‘지리학 입문’에서 신대륙의 이름을
‘아메리카’로 붙인 데서 비롯됐다. 이를 두고 1999년 4월 NY 타임즈는
‘1천년 내 최대의 실수(Millennium Mistake)’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지독한 오류는 그렇게 시작된 것과 같이 라페루즈의 오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일본이 동해를 ‘일본해’라고 주장할 때 주로 사용하는 통계지도가
19세기 지도에 집중되어 있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Sea of Corea를 Sea of Japan 으로 바꿔서 일본이 훌짓건데
내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해가 아닌 동해라서 세계적으로 별로 안쓰이는건 아닌가 싶음
East Sea(동해)보단 Sea of Korea(한국해)로 주장하는게 서양인 정서적으로 더 설득력있는듯
간도, 대마도 다 찾아오자!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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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입장은 그런데 동해 명칭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지는건 사실 우리나라 기준에서만 동쪽일 뿐이도 동해라는건 어느바다에도 쉽게 붙일수있는 이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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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뭐가들은거냐 병신새끼 ㅉㅉ어차피 존나유치한 말장난이니까 니이름은 빨갱이김정은으로해라 그럼 ㅇㅇ
나도 그 의견은 찬성. 동해라는 이름을 고집하기 보다는 최악의 사태인 일본해로 표기되는 것을 막는게 더 좋았다고 본다.
왜??존나 유치한 말장난좀한거뿐인데?
대마도에 사람 사냐 ㅇㅇ?
ㅇㅇ
서해 옐로우씨 동해 블루씨 남해 그린씨 일본 태평양쪽 바다 전부다 레드씨 해라.
고지도 조사하면 일본해가 훨씬 많다더라
그거야 쪽발이들이 먼저 외국하고 교류해서지.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하기 전엔 조선이라는 나라는 서양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나라였을테니까.
그러니까 이미 정착된걸 어떻게 바꿔
고지도로 조사하면 한국해가 제일 많다. 그당시에는 일본이란 개념이 없었을테니까. 그런데 일본 개항하고 1900년대 들어서고, 수로기구 만들면서 일본해가 급 많아진거다.
corea라고쓰는새끼들좆나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