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ucifixus - 프롤로그
http://cafe.daum.net/Europa/1AT/7223
*Crucifixus - 1
http://cafe.daum.net/Europa/1AT/7243
*Crucifixus - 2
http://cafe.daum.net/Europa/1AT/7281
*Crucifixus - 3
http://cafe.daum.net/Europa/1AT/7328
*BGM
Mit Vrouden Quam Der Engel - 작곡가미상 (중세성가곡)
산티아고의 기적 中 15번 트랙 - 작곡가미상 (중세 여자수도회에서 불려졌던 곡)
기왕이 진퇴양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때즈음에도 '성지수복'이라는 명분아래 많은 십자군들이 하나둘씩 소규모로 증원되기 시작했다. 상파뉴백작 앙리와 오스트리아공작 레오폴드 5세가 이끄는 적지않은 규모의 지원군들도 도착했는데, 그로인해 아크레진지의 십자군은 전멸을 가까스로 면하고있었다.
그리고 1191년, 십자군의 요새화된 참호에 부패한 동물과 사람들의 시체로 인해 역병이 퍼져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을 칠때즈음, 드디어 프랑스의 경건왕 필립2세가 군대를 이끌고 상륙하게 된다. 그때의 역사 기술에 의하면 '그가 마치 신의 천사라도 되는 듯, 성가와 눈물이 홍수를 이루었다' 라고 한다.
아크레에 도착하는 경건왕 필립2세(우)와 사자심왕 리처드1세(좌). 후세의 상상화이다.
그리고 뒤이어 저 유명한 플렌테저넷의 사자심왕 리처드1세가 병력을 이끌고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쉽게 함락될 아크레가 아니었다. 무슬림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뒤에는 살라딘의 군대가 있었으므로, 십자군은 성벽의 일부분을 함락했더라도 본 진영에 살라딘의 군대가 밀고들어와 위급하단 신호로 깃발이 높게 들어올려지면 점령했던 성벽을 포기하고 다시 진영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하지만 사자심왕의 별칭은 괜히 생긴것이 아니듯, 곧 용감한 영국의 왕은 끊임없는 공격 끝에 아크레를 함락시킨다.
그리고서 명예로운 퇴각을 제안한 살라딘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슬림포로 2500명 전부를 효수시켜버리고선, 아크레를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분명 아크레함락에 있어 리처드1세의 공은 적지않게 컸지만, 모두가 피를 흘려 쟁취한 성공에 그는 너무나도 당연한듯이 소유권을 주장했고, 이 '무쌍의 어리석은 군주'에게 역정을 느낀 오스트리아공작등은 군대를 회군해 유럽으로 돌아갔고, 필립2세 역시 소수의 잔존 프랑스군만을 부르고뉴공작에게 지휘를 맡긴 후 유럽으로 돌아가게된다.
--------------------------------------------------------------------------------------------------------------------
"아야, 이런 돌팔이같으니라구!"
"거 가만좀 있지 못하겠소? 상처가 제대로 보여야말이지!"
"딱 봐도 보이는구먼, 늙은이가 노망이 났나!?"
벌써 꽤 오랜시간동안 마티유와 이발사는 저렇게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류할 마음은 들지않는다. 저게 바로 마티유니까. 이제는 익숙해져 친근하기까지 하다만, 상대방의 입장에선 저렇게 무례하고 몰상식한 녀석은 처음이겠지.
"얼마요?"
"당신은 그저 고약을 발랐을뿐이니 10데나로, 저 종자놈은 싸맨 천을 갈고 찢어진것을 꼬메고 한것 다 포함해서 40. 합으로 50데나로 주시면 되겠소."
"뭐?! 이정도는 나라도 하겠는데, 생 도둑이 따로 없구먼!"
마티유가 벌컥 화를 내며 일어나자, 나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고서 이발사에게 돈주머니를 건네며 물었다.
"혹시 입을만한 옷이 있소? 보시다시피 이런거지꼴을 하고 다닐순 없어서 말이오."
이발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맨입으론 못주겠다는 말이겠지.
"돈은 주겠소. "
능구렁이같은 이발사는 그제서야 헛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자신의 아내를 큰소리로 불렀다.
곧 2층에서 중후한 여인이 내려왔고 그는 그녀에게 입을만한 옷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20데나로정도면 충분하겠소? 당장 입을 옷만 있으면 되오."
"충분합니다. 헌데, 근처에서 전투라도 벌어졌소? 어째들 꼴이 그 모냥이 되셨소?"
"강도를 만났소, 그게 다요."
이발사는 길게 내려온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버릇인냥 자꾸 헛기침을 했다.
길거리에 거지들이 넘쳐흐르는 것은 나르니역시 아멜리아와 크게 다를바 없었다.
식량을 구할수 있는데로 구해보았으나, 그저 빵 몇덩어리와 조금의 포도주만 구할수 있었을뿐, 여분이 있다고 하여도 주인들은 팔기를 꺼려했다. 이유인즉슨 '한창 징발로 인해 식량이 부족할 판인데, 여분의 것까지 손을 댄다면 우리들이 배를 곯게 될지도 모른다' 라고 한다. 각국을 뒤흔든 성지수복의 여파는 한가로운 시골의 마을에도 영향을 끼쳤고, 많은 젊은이들과 사람들이 그 명분아래 유대로 향하고 있었다. 영주와 기사들, 종자들, 순례자들, 그의 가족들과 심지어 부랑자와 창녀들마저도 십자군의 대열에 참가해 그 열정은 식을줄 모르고 들끓었다.
"아들의 옷인데 맞으려나 모르겠네."
인상좋은 이발사의 아내는 옷들을 들고와서는 입혀보고선 '꼭 맞네!'하고 손뼉을 치며 좋아라했다.
"아들의 옷을 이렇게 줘버려도 됩니까?"
순간 그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며 굳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화가난 듯 뒤로 돌아 아무말도 않고서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여편네하고는!"
이발사는 그의 아내의 뒷모습에 대고 욕찌거리를 퍼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 아들놈은 성지를 향해 떠난지 한해가 넘었다오."
"당신의 아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고맙소. 그 녀석이 십자군에 참여하겠다고 말했을때 , 나는 녀석을 말리지 않았다오. 사지로 가는 아들놈에게 나는 주님의 영광과 성지회복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라고 말했지. 그리고 녀석은 꼭 성지수복을 하고 명예롭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오. 비록 종자이긴 하지만 녀석은 여느 기사못지않게 늠름했지. "
주름이 깊게 패인 그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퍼져나갔다. 그는 마치 눈앞에 아들이 보이는 듯 촉촉한 눈으로 허공을 조용히 응시했다.
"아들이 자랑스럽겠소. "
"오, 말도 마시오. 당연히 자랑스럽고 말고. 그처럼 늠름한 모습은 본적이 없었다오."
그때 갑자기 그의 아내가 부엌문을 벌컥 열고서 꽥 소리질렀다.
"그래서 하나남은 아들놈을 영광이랍시고 전쟁터에 내보냈나요?!! 당신은 미쳤어요, 다 미쳐돌아가는 세상!!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말이나 지껄이고 엄한사람들만 다 죽게 만드는 저 교황이란 놈부터 잡아족쳤을 거예요!"
"아니, 저 여편네가 정신이 나갔나, 큰일날 소릴 하구그래!!!"
이발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부엌으로 달려들어갔고, 이내 고함소리와 식기구들이 여기저기 부딪혀 튕겨져나오는 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나는 조용히 마티유를 데리고 길거리로 나와 말에 올라탔고, 그는 조금은 작은 새 튜닉이 불편했는지 이리저리 몸을 꿈틀거리다 결국에는 튜닉을 옆부분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보다 도련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를 말인가?"
그는 다시금 몸을 꿈틀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저 부부말입니다. 만약 도련님이 중재를 하셔야만 한다면 누구편을 드시겠습니까?"
글쎄.. 중재라.. 확실히 그의 아내는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 하지만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라도 느낄수있는 그런 감정일뿐, 어찌 악한감정이 들어있다고 할수 있겠는가. 아아.. 문득 어머니가 떠오르는 구나.. 그 고우신 얼굴과 온화하신 그 미소, 항상 내게 웃으시며 머리를 쓸어넘겨 주시던 그 어머니의 손길이 갑자기 너무나도 그리워지는구나..
집을 떠난지 두계절이 지났고, 가족들의 소식은 알수가 없으며, 그들 역시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르게되니 이것이야 말로 생이별이 따로없구나. 이 순례의 길은 너무나도 고되고 힘이 든다. 한치의 앞도 예측할수 없으며, 위험만이 도사리고있는 , 어쩌면 그런 이길을 계획하고 갈것을 결정한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아니지. 주님의 뜻을 의심하여선 아니된다. 이 끊임없는 의구심 또한 시험, 그것에 굴복하고서 회의감을 느낀다면 헤쳐왔던 이 모든 것들은 헛수고가 되어버리며, 나를 지탱해주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불경하다.
생각은 너무 깊게 하지말자. 그저 내가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다. 한치의 의심없이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갈때에, 주님께서는 당신이 그러셨듯, 나를 물위로 걷게 만드실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하게 만드시리라.
그때 갑자기 어디에선가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파이프와 호른이 경쾌한 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길거리에선 아이들이 꺄르륵거리며 그쪽을향해 무리를 지어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마티유와 나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그쪽으로 말을 몰아갔다.
그것은 십자군원정대의 출발이었다. 꽃잎들이 길거리에 흩뿌려졌으며 사람들은 저마다 창문을 열거나 길거리에 나와 그들에게 환호했고, 높이 들어올려진 십자가 깃발에 군중들은 저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외며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누군가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들, 누군가에게는 둘도없는 반려자, 누군가에게는 형이거나 동생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태어날 아기를 위한 아버지였던 그들은 십자가아래 하나로 모여 늠름한 모습으로 성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자식들의 출정에 두손을 마주잡으며 눈물을 흘렸고, 아내들은 남편의 팔과 랜스에, 혹은 목에 직접 수놓은 손수건이나 천조각을 묶어주었다.
"저들을 따라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도련님?"
마티유는 무언가 생각이 난듯 내게 물었으나 그것은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닌듯 했다.
"저들이 비록 수십에 불과하다곤 하나, 그들뿐만 아니라 하인들과 창녀들까지 따라가는데 성지까지 도달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것이다. 차라리 둘이서가 훨씬 더 행동에 제약이 없고 빠르지. 자네는 안전을 생각한 모양인데, 저렇게 규모가 있을수록 더 눈에 띄기 쉽다네. 만약 , 정말 만약에 아멜리아에서 전령이 와 '저자가 현상수배범이요'라고 한다면 저들이 내 편을 들것같은가, 선량한 아멜리아시민들의 편을 들것같은가?"
"제 생각이 짧았군요."
마티유는 머리를 긁적이며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해는 어느덧 중천을 넘어 조금 기울었고, 나르니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고 말았다. 또한 역시나 아멜리아에서의 일을 망각해선 안되었다. 마티유와 내 생각은 아멜리아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자는 것에 만장일치를 두고있었으므로, 나르니를 떠나지않을 이유가 없었다.
"상처는 대충 치료해놓았고, 옷도 갈아입었고. 그리고 음식도 로마에 도착할때까진 어떻게든 될것같으니 이제 출발하시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지."
나르니는 주교령답게 도시 전체의 건물중에 유독 성당만이 눈에 띄게 컸다. 다른 집들이 크지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성당은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었음에도 웅장한 자태를 내뿜고 있었으며,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는 하늘을 향해 더욱더 높이 솟아올라있었다.
"조금은 의외입니다."
마티유는 말에 오른채로 성당을 둘러보며 말했다.
"뭐가 말인가?"
"도련님처럼 신앙심이 깊으시면 적어도 이곳을 들렸을때 무언가라도 하실줄 알았습니다. 고해성사라던가, 뭐 하다못해 성당에 들려 기도라도 말이지요."
"자네말처럼 그랬어야 했네. 하지만 저길보게. 성당은 이미 원정대를 축복하는 인파로 가득차있잖은가? 내 생각에 저 미사로 인해 오늘 하루종일 성당은 조용해질 틈이 없겠고, 그 사이에 살인죄를 고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지."
마티유는 웃음을 터뜨리며 '맞습니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군요' 라고 말하고선 포도주를 입에 넣고 헹구듯이 입안에서 돌리고는 꿀꺽 삼켰다.
"나으리, 자비를!!.."
그때 어디에선가 불쑥 튀어나온 부랑자가 우리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흙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서 나를 향해 두손을 벌렸다. 어느도시에나 볼수있을 법한 거지였다. 단지 다른점이 있다면 , 그 거지는 구걸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로 많아봐야 13살을 넘기지 않아 보였다.
그때 말을 탄 한 무리가 반대편에서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얼핏보아도 선두에서 달리고있는 자는 귀족으로 보였고, 3명의 경무장 경비병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이 반대편에서 오는 것이 무슨 문제였겠는가. 그들은 단지 용무가있어 이 길을 지나가는 무리일 뿐이다. 단지 문제는 그 어린소년이었다. 길은 말들이 비켜서 가기에 너무나도 좁은 협소한 폭의 길이었고, 그들은 빠른속력으로 이쪽으로 말을 달리고있었다. 그리고 말머리를 돌려 길옆으로 비켜선 우리는 그 어린 소년이 여전히 길 한가운데에 고개를 숙이고 손을 벌리고있음을 깨달았다.
"꼬마야!! 길옆으로 비키거라!"
마티유가 외쳤지만 이미 늦고말았다. 반대편의 무리는 속도를 줄이지않고 그대로 달려왔고, 다행히 그 소년은 말에 치이진 않았으나 선두에서 앞서 달려오던 귀족의 말이 놀라는 바람에 그 귀족은 낙마하여 흙바닥을 뒹굴고 말았다.
그야말로 대형사고다.
"이런 벌레같은 새끼가!!!.."
흙을 털고 일어난 귀족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말에 얹어두었던 길다란 칼을 꺼내들고 두려움으로 차마 일어나질 못하는 그 어린소년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구경났어?! 가서 할일들이나 마저해!!"
뒤따라오던 경비병무리는 말에서 내려 모여든 군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그 중 한명이 황급하게 달려가 귀족을 제지했다.
"죽이시는건 안됩니다 ! 성당에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교는 좋게 보지않을겁니다."
약 30대초중반으로 보이는 그 귀족은 들고있던 칼을 땅에 그대로 박아넣고서 거칠게 장갑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이내 말 채찍을 들고서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곧이어 소년의 울음섞인 비명이 거리를 가득메우기 시작했다. 귀족은 머리를 두손으로 감싼채 엎드려있던 그소년의 등을 끊임없이 채찍으로 후려쳤고, 얼마나 세게 내려쳤는지 소년의 등은 살갗이 벗겨지고 그로 인해 튄 살점들로 인해 주변의 땅에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나에게 끊임없이 외친다. 그것은 점점 고조되며 고동질치는 심장소리와 한데 어우러져 귀족의 채찍에 그 소년이 비명을 지를때마다 한층 더 거세지기 시작했고, 곧이어 팔팔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에, 저러다가 애가 죽겠어.'
'멍청한 녀석 , 그러기에 왜 길한가운데서 그모냥을 하고있어서 이런 봉변을 당하지?!'
주변에서 주민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방관자다. 그저 손을 놓고서 그 더러운 입만을 놀려 무참하게 짓밟히는 소년을 동정할 뿐, 그들은 아무것도 할수없다.
누군가가 나서야만 한다.
"그만 하는게 어떻습니까? 저 아이도 그정도면 잘못을 뉘우친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용기를 낸것은 내가 아니었다.
옆에서 아무말않고 지켜보던 마티유가 갑자기 앞으로 나서 귀족이 채찍으로 다시 그 소년을 내리치려는 찰나에 그의 손을 움켜쥔것이었다.
"손 저리 치우지 못해, 이 더러운 놈아?!"
이런 바보같은 !!..
그는 뒷일을 생각치도 않은채 감정을 앞세워 나가고 말았다. 귀족은 움켜잡힌 손을 뿌리치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그럴수록 마티유는 더욱더 힘을 줘 그 손목을 움켜잡았고, 귀족은 화가 머리끝까지 폭발하여 반대편 손으로 마티유의 얼굴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하지만 그 손 역시 마티유의 반대편손에 잡히고 말았고, 귀족은 두손을 모두 잡힌채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댔다.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아닐수 없었으나 , 동시에 앞서의 사고가 대형사고였다면 이번에는 감히 상상치도 못할일이 터져버렸다.
"네놈들은 대체 뭘하고있는거야?!!"
그제서야 멍하니 넋을 놓고있던 경비병 셋이 저마다 칼을 꺼내들고 마티유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천한놈이 저 분이 누구신줄 알고 그런 짓을 하는게냐?! 그 손 놓지못할까?!"
마티유는 콧방귀를 피식 뀌더니 '놓아주지 뭐'라며 잡은 두손을 확 놓아버렸다. 순간 안간힘을 써대던 귀족은 반동으로 인하여 뒤로 나자빠져버렸고, 그는 다시 일어나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죽여버려!! 그냥 저새끼를 죽여버리라구!!"
경비병들은 서서히 마티유의 주변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다. 그가 도망칠 길은 없었으며, 그는 심지어 무기를 꺼내들지도 않고있었다. 그 순간 마티유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으리, 저 소년이 감히 당신의 앞길을 방해한 것은 죽어마땅한 죄입니다. 하지만 저 소년을 보십시오. 나이가 어리니 철도 없겠고, 아무것도 모를 나이가 아닙니까? 이제 그만하심이 어떠신지요?"
"네가 감히 누구라고 큰소릴 치는 것이냐?!!!"
그 때였다. 전무후무한 일이 갑자기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디에선가 지켜보던 늙은 주민하나가 마티유의 말에 '그말이 옳소' 라고 외쳤고, 그 소리는 메아리쳐 되돌아오듯 곧이어 주변의 모든 주민들이 소리쳐 마티유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늙은 주민은 바닥에 엎드려 정신을 잃은 그 소년을 품에 껴안고서 머리를 쓸어넘기며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아아.. 그 일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던 그 장면은 곧 엄청난 폭발효과를 일으키며 퍼져나갔다. 그 모습을 본 주변의 모든 주민들이 너나할것 없이 집밖으로 뛰쳐나와 그 소년을 감쌌고, 분노 어린 눈과 함께 귀족무리들을 쏘아보며 저마다 웅성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주민들은 곧 모이고 모여 군중이 되기 시작했고, 귀족과 경비병들은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라한채 주민들에게 둘러쌓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긴장감은 극에 달했으며, 어찌나 그 소란들이 컸던지 미사를 보고있던 주민들마저 성당에서 하나둘씩 구경하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길을 만들어라, 주교님이시다!!"
반대편에서 몰려온 수십명의 무장병사들이 주민들을 거칠게 밀어붙이고서 길을 만들었고,
곧이어 사제들을 이끌고서 주교가 나타났다. 한손에 지팡이를 든 주교는 예복과 주교관을 그대로 쓴채로 말에서 내려
흙바닥을 아랑곳하지않고 경비병들로 인해 만들어진 길을 통해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 난장판은 도대체 뭐란말인가! 일이 이지경까지 되기까지 자네는 대체 무엇을 했나?!?!"
"미사도중인 성당에 경비대를 집중시켜놓았기에 그 밑까진 신경쓰지 못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좌하."
주교를 졸졸 따라오던 경비대수장은 연신 허리를 숙이며 주교의 갖은 비난과 힐책을 송두리째 받아내고있었다.
그는 변명으로써 그것을 무마해보려 안간힘을 썼으나, 이내 주교는 가던길을 멈추고 무섭게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앞으로 이딴식으로 일을 할거면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밖에 나가 농노자식들처럼 밭이나 일구게.이제 앞으로 두번다시 이런 용서를 바래선 안될것이야. 알겠나?!"
"면목없습니다,좌하."
"천한것들이란!.. 이 빌어먹을 시궁창냄새를 도무지 견딜수가 없군!"
그는 낮은목소리로 말했으나, 그것은 실상 뒤편에 있는 나에게까지 들릴정도로 큰 소리였다.
주교는 능숙한 정치가였다. 그는 위선으로 똘똘뭉친 사람이었을지언정, 대중앞에 어떻게 행동을 해야할지 알고있었다.
금방까지 오만상을 찌푸리며 욕지거리를 퍼붓던 주교는 그 귀족을 보자 대뜸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살바토레 오르시니, 주님의 훌륭한 종이자 고귀한 오르시니가문의 일원인 그대를 이런일로 다시 보게될줄은 몰랐소."
살바토레라 불리운 귀족은 고개를 살짝 숙여 그에 화답했다.
"그건 그렇고 이건 다 무슨일이오?"
"존경하는 주교님, 다른게 아니라.."
"피차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이 일이 한창이었던 우리 영광스러운 십자군을 위한 미사를 방해할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소?"
귀족은 홍당무가 되어 쩔쩔매며 정신을 잃은 소년을 쏘아보았다.
"저 소년이 제 말을 가로막아 저를 낙마하게 만들었습니다. 귀족으로써 저런 천한놈을 벌할 권리는 충분하여, 그에맞게 처벌하고있었으나 저 놈이.."
젠장, 마티유 좀 숙이는걸 보여주란 말이다.
그는 고개를 빳빳히 들고, 이야기하는 주교와 귀족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도대체 저런 뚝심은 어디서 나오는지, 그는 정작 숙여야 할때가 어느때인지 알지를 못하고서 그저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고있었다.
"그 소년은 단지 구걸을 하기위해 고개를 숙이고있느라 말이 오는 줄 몰랐습니다."
살바토레는 그 말에 발끈하여 바락바락거리며 마티유를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이 천한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놀려?! 저 놈은 귀라도 먹어서 말이 달려오는 소리도 못들었단 것이냐?!"
그때 누군가가 나지막히 말했다.
"저 아이는 귀머거리에요 . 듣지 못한지 꽤 오래 되었어요."
사람들은 다시 웅성대기 시작했고, 그야말로 살바토레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멍하니 그 소년을 쏘아보며 말을 잇질 못했다.
"아아.. 주여!.."
그때 주교가 피범벅이 되어있는 그 소년에게로 다가가 가슴에 성호를 긋고서 목에 걸어진 십자가를 높이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소년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다.
일순간 소란스럽던 주민들 전부가 무릎을 꿇고서 주교를 따라 가슴에 성호를 긋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 풍경이었다. 마을 대부분의 주민은 그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러 몰려들었고, 경비병들도 주민들도 너나할것없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주여' 혹은 '자비를 베푸소서'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도를 끝마친 주교는 두사람 앞에 서서 나지막히 말했다.
"무릎 꿇으시오."
"아니, 주교님. 대체 이게 무슨??.."
"세상에, 살바토레 제발 하라는데로 하시오!!"
살바토레와 마티유는 여전히 서로를 노려본채 주교앞에 무릎을 꿇었다.
주교는 이윽고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의 머리위에 각각 손을 얹고서 큰 소리로 말했다.
"liberare dono tuus peccatum. In Nomine Patris, et Filli et Spritus Sancti , Amen"
(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리고 주교는 주변에 모여있는 인파를 향해 말했다.
"이번일은 단지 사고일뿐이오. 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권능아래 용서를 받았고, 감히 귀족을 향해 대든 저 남자나, 어린소년을 과하게 벌한 살바토레 경도 모두의 죄악은 용서받았소. 이로써 서로에게 보복은 없을 것이며 나쁜 감정또한 눈녹듯 사라질 것이요, 이제 그들의 죄는 그 누구의 입에서도 언급되지 않을것이오. 이제 모두 각자 해야할 일을 하러 가십시다."
인파들이 해산되어가는 가운데, 살바토레는 주교의 면전에 대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내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이 공개적 모욕을 숙부께서 그냥 넘어가진 않으실겁니다."
주교는 그에 대해 너털 웃음을 터뜨리며 나지막히 말한다.
"살바토레 경, 이 곳은 교회의 사유지요. 다시한번 말한다면, 이곳은 내 관할이지 , 당신의 관할구역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 주교자리에 나를 앉히는데 가장 큰 지지를 해주신분이 바로 당신의 숙부이신 오르비에토 백작님이시고, 더해서 말한다면 이곳은 교황령이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소?"
그리고 이번에는 주교가 살바토레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즉 , 나는 당신네들 귀족의 권위보단 교회의 권위에 더 신경을 쓴단 말이지. 나는 당신의 숙부이신 오르비에토백작님보다 상위군주인 교황성하를 섬긴단 말이오. 뭐 불화를 일으키자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당신이 성당에서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하나둘씩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면 당신도 내 행동을 이해할 것 이오."
살바토레는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며 굳어졌다. 주교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그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껴안은 상태에서 그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인다.
"알아들었으면 당장 내 땅에서 나가주시겠소?"
살바토레는 씩씩거리며 주교를 밀치고서 땅바닥에 침을 퉤 뱉더니 경비병들을 이끌고 이윽고 그 모습을 감추었다.
주교는 대인배라도 되는 마냥 그 모습에 다시한번 어깨를 으쓱이며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 이름이 뭔가?"
주교는 마티유를 손짓해 불렀다.
"마티유입니다, 좌하."
"그냥 마티유? 가문명은 사용하지 않나?"
"천한 종자가 무슨 가문이 있겠습니까. 기억도 나지않으며 중요치도 않습니다."
주교는 껄껄웃으며 마티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천한신분으로써 감히 귀족에게 반기를 든 자네를 십자가에 메달아 죽여도 모자랄판이지만, 나는 자네의 그런 멍청하리만큼 용감했던 행동을 높이 사네. 그리고 실로 요즘 내 주변엔 쓸만한 놈들이 부족한 실정이지. 내년이나 올해안에 나는 추기경으로 추대될 수도 있으며, 만약 내가 추기경이 된다면 더욱더 믿음직스럽고 용감한 자를 필요로 한다네. 내 밑에서 일을 해볼생각은 없는가?"
마티유는 그제서야 두번째로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일행이 있으며, 순례중인 몸입니다.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순례라.. 그래, 순례길을 막을순 없겠지. 하지만 생각해보게. 모두가 스스로의 고행길과 순례길을 가지고있다네. 예루살렘은 확실히 성스러운 도시이며 성스러운 땅이지. 그러나 하나님은 모두에게 응답하지 않으신다네. 자네는 자네가 그 땅에 감으로써 찾고자했던 것을 찾으리라 확신하는가?"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관대하신 제안에 너무나 죄송하오나, 거절해야만 하겠습니다,좌하."
"글쎄, 자네가 인생에 있어 두번다시 없을 제안을 거절한것이라 생각이 드네만, 그것은 자네의 마음가기에 달려있겠지."
주교는 손을 거두고서 뒤돌아 경비병들에게 손짓했다.
경비병들은 한줄로 서서 천천히 거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마티유는 주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내게로 돌아왔다.
"순례중이라?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구먼."
"때로는 거짓말도 필요하잖습니까?"
"나르니의 영웅이 하시는 명언인데, 아무렴 아닐까."
그는 대꾸하지않고 쓸쓸한 웃음만을 지으며 말에 올라탔다. 또 한번의 소란은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고, 그로인해 그만큼 로마로의 도착은 지체되고말았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돈은 부족해질것이며, 어두운밤에 또다시 위험한 숲길을 여행해야할 우려도 있었다.
이 이상 나르니에 머물순 없었다.
마티유와 나는 말을 몰아 그길로 나르니성문을 빠져나왔고 , 곧이어 좁은 오솔길에 들어섰다.
천천히 져가는 노을은 하늘을 집어삼킨듯 그 푸르던 하늘을 노랗게 물들였고, 우거진 수풀사이로 난 조그마한 길을 따라 우리는 로마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르니를 떠나고 후로부터 마티유는 심각하게 생각에 잠긴 듯이 보였다.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버릇처럼 마시던 포도주는 입도 안댄지 꽤 되었다. 슬슬 걱정이 되어가던 찰나에 그가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주욱 생각해왔습니다만, 신이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요?"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도련님도 제가 무신론자인 것을 아시잖습니까. 그런데 아까는 단지 뭔가 좀 남달랐습니다. 저는 되도록이면 이성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아까처럼 제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큰일이 벌어질것을 이미 알고있었지요. 분명 도련님도 제 갑작스런 행동에 화가 나셨을겁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일이 좋게 마무리되지만 않았더라면, 그것이 여정에 어떠한 지장이라도 크게 가져왔다면 나는 주저않고 마티유를 크게 야단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멍청한 행동에 대해 두고두고 말하며 얼마나 그가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해줬을테지. 하지만 일어나는 모든일을 지켜보던 나는 마음이 바뀌었다.
글쎄, 나도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년이 동정됬고, 한편으로 겁쟁이며 방관자들이라 생각했던 그 마을주민들이 동정됬다. 그저 가진힘이 없는 천한신분인 죄로 부정한일이 일어나도 지켜볼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 그들은 이미 길들여지기라도 한듯 무력하기만했다. 중간에라도 달려가 마티유를 제지하지않았던 것은 한편으론 그의 행동이 그가 아니라 내가 했어야하는 행동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실로 살바토레의 화난 얼굴은 봐줄만 했다.
"참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끊임없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가서 도와야만 한다고. 저 소년을 구해내야만 한다고 끝없이 제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제 몸은 제 이성을 뛰어넘어 스스로 움직였습니다. 저는 해야할 말을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제가 해야할 행동과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고, 저는 그것을 단지 따랐을 뿐입니다."
"세상에, 마티유. 자네 무슨 계시라도 받은 사람같군."
그는 한동안 다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부탁이있습니다, 도련님."
"무엇이지?"
"저희가 여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로마에 도착하면 저를 위해 시간을 좀 투자해주실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세례를 받고싶습니다. 하지만 도련님이 함께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저는 알지 못합니다."
"자네 진심인가?!!"
아무말이 없자 재차 다시 물어보려던 나는 그의 굳건한 표정을 보고 그가 진심이란것을 확신했다. 은은한 감동이 마음에 조용히 퍼져왔다. 이제 그는 목적을 가지게 될것이다. 단지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그저 돈을 위해 예루살렘에 가는것이 아닌, 한사람의 순례자로써, 한사람의 성도로써, 그리고 주님의 자녀로써 여행을 하게 될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벅찬 일이란 말인가. 주님께서 또 한사람을 주님의 자녀로 만드시길 계획하셨으니, 지금 내 가장 최측근이랄수 있는 마티유는 더이상 무지몽매한 무신론자가 아니게 될것이며, 그로 인해 그는 구원을 받을지니.
"자네 아까 경비병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두렵지 않던가? 나는 자네가 죽을수도 있다고 일순간 생각했다네."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티유는 굳은표정을 풀고 히죽 웃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단지 조금 떨리기는 했지요."
그는 그제서야 물부대에 담은 포도주를 벌컥벌컥 마시고선 소매로 입을 쓰윽 닦았다.
로마로 가는 길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격언이 있듯 로마로 가는 길에는 아멜리아에서 나르니를 거쳐 이곳으로 올때처럼 수풀과 산악지형만이 있는것이 아니었고, 드문드문 혹은 자주 부락들과 조그마한 근교의 마을들이 형성되있는 것을 보았다. 덕분에 우리는 굳이 숲속에서 야영을 하지않아도 되었고, 돈만 준다면 푹신한 침대와 갓구워진 빵과 와인을 맛볼수있었다.
마을들은 수수했고, 사람들은 일상속에 녹아들어 저마다의 할일을 찾아 묵묵히, 때로는 소란스럽게 하루들을 보내고있었다. 이제는 서서히 가을로 접어들어가는 계절속에 날씨는 찌는듯한 더위대신에 조금은 선선한 바람을 내보내기 시작했고, 저녁에는 일교차가 심해 쌀쌀한 날씨가 지속됬다. 잠시동안이었지만 간만에 찾아온 조용한 평화에 마티유와 나는 처음으로 여유를 즐기며 그 시간들을 만끽했다. 이런날만이 계속 된다면 .. 앞으로의 여정도 이토록 평화롭다면, 근심과 걱정 모두를 내려놓고서 그저 이루어내기만 하면 될진데 , 그렇게 될수 있을지 확실치가 않다.
눈앞의 한걸음을 어디로 뗄지조차 감히 예측할수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그리고 로마의 거의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나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언덕에서 조그마한 부락을 내려다 보고있었다.
얼마 앞에는 여자가 소달구지를 멈춰세우고 무언가를 말하고있었고, 딸으로 보이는 어린소녀는 풀밭에 앉아 그모습을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하늘은 드문드문 보이는 구름을 빼면 너무나도 청명했고, 그 하늘과 푸른숲은 하나로 녹아들어 가을인데도 마치 봄인냥 따뜻한 인상을 풍겨왔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처음으로 가족에게 편지를 쓰기로 결정하고서 깃털펜을 들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어느덧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며 청명한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저를 감싸는게 느껴집니다.
저는 건강히 잘 지내며 여정을 계속하고있습니다.
지금은 로마의 근교이며, 곧 로마를 거쳐 메시나로 향할것이고, 그곳에서 유대로 가는 배를 탈 것입니다.
단지 이 로마근교의 풍요롭고 행복한 정경을 보니 문득 너무나도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 그리움에, 이 편지를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동안의 여정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깊은 슬픔 또한 저를 잠식해왔었으나,
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꿈꿔오던 그 길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을 나아갈것이며 내 사랑하는 형님과는 다른 방법으로 저희가문의 명예를 드높일 것입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것은 가족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지지입니다. 단지 한마디 말이라도 저에겐 억만금과 같으며
저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됩니다. 고향 땅과 성에 있는 제 방과, 심지어 저를 받들던 하인마저 그리울정도로 모
든것이, 모두가 그립습니다만, 저는 그것을 버텨낼수있을 것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께서 생각보다 괜찮은 종자를 제게 붙여주셨기에 지금까지 안전하게 여행할수 있었습니다.
그럼 기회가 된다면 다시 편지를 쓰겠습니다.
사랑을 담아 레몽 드 블루아 .'
"밀랍을 구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방법이 생각났는데 , 진흙은 어떻습니까? "
"반지와 편지를 진흙으로 더럽히란 말이냐?"
"아니면 그저 끈으로 묶어 보내실수도 있습니다. "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공식적인 편지도 아니니, 끈으로 하자꾸나."
마티유는 그 편지를 선술집주인에게 전해주고나서 터벅터벅 돌아왔다.
"이제 출발하시는 겁니까?"
"그래야겠지. 쉴만큼 쉬었고, 먹을만큼 먹었으니 출발하는것 외에는 달리 할일도 없잖은가?"
그래, 이제 가야한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있는 도시중의 도시, 모든 가톨릭의 중심인 교황성하께서 계시는 곳, 수많은 성인들과 수많은 왕들이 거쳐간 , 그리고 저 먼 옛날의 눈부신 로마제국의 중심지이자 수도였던, 로마를 향해 .
4편은 짧은감이 있습니다. 바로 5편을 로마를 위한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인데요.
그만큼 여기저기서 많은 자료들과 그때당시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던가, 최소한 그때 당시 시대에 근접한 시대의 로마의 자료를 찾아보려 꽤나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ㅠㅠㅠ
르네상스시대와 고대로마제국시대의 로마의 자료는 발에치일정도로 많은 반면, 중세의 로마는 찾아보기가 힘들더군요.
마음을 놓고 차분히 써나가보려구 합니다.
소설내에서의 상황이라던가 어떠한것들이 궁금하신게 있으시다면 쪽지나 메일로 보내주시면 바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추가로 대부분의 분들이 아실테지만 혹시나 의아해하실분들을 위해 두가지 고증자료를 말씀드리고자합니다.
1.이발사: 중세시대에서는 성직자들이 대부분 의사의 역할을 병행했다고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들은 외과를 제외한 것들을 대부분 담당했으며, 외과부분은 천한것으로 취급받음에 따라 이발사, 목욕탕주인등이 도맡아서 했다고합니다.
그들은 상처를 꼬매고, 붕대를 감는 등등 신체상 외과가 처리할부분을 담당하여 했습니다.
2.중간의 라틴어: 이 부분은 저도 영화나 드라마등을 보면서 많이 의아했던 점인데요. 실제로 중세나 예전 성직자들은 미사를 집도할때 중요한 성경구절을 포함한 미사의 대부분을 라틴어로 진행했다고 합니다. 라틴어는 오랜전통을 가지고 있는 언어로써 본디 미사에는 저 옛날에'아멘'이라는 히브리어를 제외하면 모든 언어가 그리스어였지만, 로마제국시대로 넘어오게 되면서 모든미사가 당시의 주 언어인 라틴어로 바뀌게 됩니다. 그로인해 그 명맥과 전통을 유지하기위해 중세에는 모든 미사가 라틴어로 행해지게 됬다고합니다. 그래서 라틴어를 공부한 귀족등등의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사람들은 미사를 들어도 무슨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끝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읽어주신다기에 항상 힘을 내고 있습니다 :)
|
첫댓글 꿀꿀재미. 어서 예루살렘으로갑시다!
보통 한편 잡기시작하면 최소 4시간에서 많게는 거의 8시간이상까지 걸리기도합니다 ㅠㅠ 쓴다고 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정작업을 거쳐 올라오고있습니당 ㅠㅠ 마침 방학이라 시간이 넘쳐 다행이지요. 시작햇으면 끝을 봐야겠지요. 지속적인 관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