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사고 -
기철의 상념은 다시 사회생활로 옮겨간다.
3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다.
그 중에도 기철이 과장 때인 1982년 10월경 진천 저수지 및 수로 공사에서 생겼던 안전사고는 지금도 생각하면 우울한 마음이 된다.
기철이 도로공사를 그만두고 대영에 과장으로 입사한 지 2년쯤 돼 대영에서 수주하여 시공한 진천 저수지 및 수로 공사 때 일이다.
진천 저수지 및 수로 공사는 농업진흥공사에서 발주한 관개배수 사업의 일환으로 진천에 저주지를 만들고 그 저수지에 연결되는 용수로를 만들어 충북 진천 북부지방 일대에 있는 농경지에 농사용 물을 대주는 관개배수로 공사를 시공하는 것으로 이 공사는 농업진흥공사 충북지사에서 시행하는 공사 기간이 36개월의 공사이었다.
지금 농어촌 공사의 전신인 농업진흥공사는 지금의 농어촌 공사와 같이 농수산부 산하의 공공기관으로서 저수지나 양수장을 만들고 거기에 연결되는 용수로를 만들어 전답에 관개하고 경지정리를 하여 농업의 기반을 개선하는 사업이나 리아스식 해안이 많은 우리나라 해안에 방조제를 만들거나 야산을 개간하여 농토를 늘리는 등 우리나라 농촌을 개선하는 사업을 하는 공공기관이다.
대영에서 수주하여 공사하는 진천 저수지 및 용수로 공사도 이런 농업진흥공사 사업의 하나로 미호천 0공구라고 명명된 공사이다.
공사는 저수지 공사와 용수로 공사가 같이, 병행하여 시행되었고 그렇게 2년여 동안은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던 초가을 어느 날 준공까지 일 년여를 남겨 둔 때쯤이었다.
기철은 미호천 0공구의 마지막 하는 설계변경의 최종 결재를 받기 위해 농업진흥공사 충북지사가 있는 청주에 나가 변경된 부분의 설계승인을 받기 위해 지사 근처에 여관방을 하나 얻어서 충북지사에 드나들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설계변경은 공사 발주 시 농업진흥공사에서 설계한 설계도를 가지고 현장에서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설계보다 나은 공법이 발견되거나, 현장을 살펴보니 설계가 현장 여건과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면 현장 여건에 맞추어 설계를 다시 하여 발주자의 승인을 받는 작업으로 설계변경이 승인되어야 설계변경 된 부분의 공사를 할 수 있다.
저수지 공사도 터파기 공사 시 터파기하여 노출된 지반이 설계 시 예상했던 암반과 다르면 설계변경이 하여야 하지만 저수지에서 시작되는 관개수로 공사는 산과 계곡을 지나고 넓은 농경지 주위를 돌아가는 긴 수로이고 현지 측량 후 설계하여 사업을 시행하기까지 3, 4년 걸리기 때문에, 설계 시 현장 시공 시 현장 여건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설계변경이 많이 생긴다.
또한, 설계변경은 공사 중 발견된 위와 같은 사항을 시공사 주도로 설계변경 도서를 만들어 발주청에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설계변경 시 1차로 시공사에서 만든 설계도서를 가지고 발주자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달라지는 경우가 생기면 그에 따라 도면 및 내역서를 변경 하여야하기 때문에 발주처에서 거리가 멀리 떨어진 현장은 대개 설계변경 막바지에 이삼일은 발주처 근처의 여관에 있으면서 수시로 발주처를 드나들면서 또는 발주처에서 마련해준 발주처 청사 내 사무실에서 일하며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서로에게 편하기 때문에 설계변경 막바지에는 대개 그렇게 한다.
그래서 기철도 이때 청주 여관에 나가 있었다.
기철의 현장은 청주에서 30여 Km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관 생활이 이틀이 지나고 설계변경 업무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가는 삼 일째 오후 4시경 충북지사에서 마련해준 회의실에서 설계변경의 마무리 작업으로 발주처와 시공사 간 협의 된 내용대로 변경된 도면에 따라 내역서를 작성하고 있는 기철에게 충복지사 감독사무실에 기철의 현장을 담당하여 감독하고 있는 감독이 회의실로 찾아와 기철의 현장에서 기철을 찾는 전화가 왔다고 받으라고 한다.
전화를 받으러 가면서 기철은 설계변경 상황이 궁금한 소장이 전화를 한 줄 알고 오늘 아침에 여관에서 충북지사로 들어오기 직전 업무보고로 설계변경 된 사항과 공사비 그리고 오늘이면 마무리가 되어 내일이면 설계변경이 끝나고 현장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보고해 알고 있을 텐데 회의실과 감독사무실이 멀리 떨어져 있어 전화 받기가 불편한 것을 아는 소장이 무엇이 궁금한지 또 전화했다고 속으로 툴툴거리며 감독사무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 바꾸었습니다.”
하는 기철의 말에
“과장님! 큰일 났어요. 현장에 사고가 났어요.”
저쪽에서 대뜸, 이렇게 다급하게 말하는 사람은 공사 현장 사무소의 총무를 하는 한 대리이다.
“아니, 사고라니 무슨 말이야?”
예상치 못한 한 대리의 전화, 그것도 사고가 났다는 전화에 놀라 묻는 기철의 말이 높아진다.
“호청 용수간선 3호 터널 공사 중 터널 입구에서 흙이 무너지며 작업 인부들을 덮쳤는데 한 사람이 흙에 묻혀 죽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 터널은 얼마 크지도 않는데 터널 입구 흙이 무너져 사람이 죽다니?”
기철이 그렇게 묻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호청간선은 이름은 간선이지만 진천 저수지에 직접 연결되는 진천 간선에서 분기되는 작은 수로로 흐르는 수량이 많지 않은 수로이며 호청간선 3호 터널은 호청간선에 시공되는 세 번째 터널이라 거의 말단부에 있는 터널로 수로 터널 중 제일 작은 터널이라 터널 높이가 1.50m이고 폭이 1.2m 정도 되는 터널이어서 굴착 토량이 얼마 되지 않아 경운기를 개조한 딸딸이라는 것으로 굴착 토량을 운반하는 정도의 작은 터널이다.
여기서 용수로라며 터널은 무슨 터널 하고 의문을 가질 독자의 의문을 풀기 위해 용수로의 구조를 대강 설명한다.
용수로는 저수지에서 내보내는 물을 관개가 필요한 농경지까지 배달하는 수로로 먼 곳에 있는 농경지까지 가려면 벌판도 지나지만 어떤 때는 산을 뚫어야 하고 또 어떤 때는 계곡을 지나야 한다.
그래서 들판을 지날 때는 흙으로 만든 윗변이 긴 사다리꼴 개수로나 같은 들판을 지나는 수로라도 유량이 많고 유속이 빠르면 콘크리트로 만든 U형 개거로 수로를 만들고 산을 뚫을 때는 터널이 되고 낮은 구릉을 지날 때는 토사를 절개하고 Box를 시공하는 암거를, 그리고 계곡을 지날 때는 교량(농업토목에서는 이것을 수로교라 한다)이나 역사이폰(농업토목에서는 이것을 잠관이라고 한다.)놓게 된다.
일반 계곡을 지날 때는 수로교를 계곡이 농경지인 경우는 잠관을 시공하는 것이 통례이다.
호청간선 터널도 야산을 지나는 곳에 설치되도록 계획된 구조이다.
그리고 기철이 현장에 있을 때 터널 입구에 공사용 입구를 만들고 있었으니, 지금쯤은 아무리 빨리 일이 진행되었다 해도 이제 굴착을 시작했을 텐데 거기서 사고가 발생했다니 의문이 생길 수뿐이 없다.
터널 입구 공사라는 것은 터널의 굴착을 시작하기 전 터널의 입구가 될 부분에 터널 입구 경사면의 붕괴를 막고 사람과 장비가 드나들면서 일을 할 수 있는 문을 터널 단면에 맞추어 세우는 것으로 이 시절 호청간선 터널같이 규모가 작고 또 입구의 경사면이 높지 않은 경우는 대개 생소나무 기둥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터널을 굴착 하다가 터널이 붕괴되었다면 몰라도 혹 입구가 붕괴되더라도 붕괴된 토량에 사람이 묻혀 사망할 정도로 많은 붕괴 토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니 기철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때 한 대리가
“소장님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한다.
전화기를 바꾸는 소리가 나고 이어 소장이 목이 쉰 소리로
“박과장! 지금 한 대리 이야기를 들어서 알겠지만, 현장에서 인사 사고가 발생했다. 조금 후에 시신을 실은 엠브랜스가 청주 시내에 있는 도립병원으로 도착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뒤처리를 부탁한다.
공사 과장은 경찰이 현장 조사를 하고 있어 자리를 비울 수 없고 또 유가족과 회사가 사고 보상 협의가 끝날 때까지 경찰서에 가 있어야 하고 나는 현장을 피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유가족을 달래는 일을 박과장이 해주어야겠다.”
소장의 말을 들으며 ‘정말 현장에 사고가 났구나. 아니 어쩌다가 그렇게 큰 사고가 났나’하고 생각한 기철이
“말씀은 알겠는데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인지?”
하고 물었다.
“그냥 초상집 분향소를 지킨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 내 소재는 밝히지 말고. 그 사람들이 내 소재를 알면 나를 찾아와서 난리를 칠 것이야. 그러면 문제도 복잡해지고 유가족과 보상 문제 협의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그리고 본사에 사고 보고도 하고 또 본사와 보상 문제도 협의해야 해서 나는 당분간 피해 있으려고 한다.”
“어디 계실지 알려주지도 않으셨잖아요.”
현장관리에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소장이 형사적인 책임은 공사 과장에게 장례 현장은 공무과장인 기철에게 맡기고 자기만 피하려는가 하는 생각에 기철의 반응에 조금 날이 선다.
“그래! 박과장도 모르는 것이 낫겠지.”
“그러면 분향소에 저만 갑니까?”
“아니다. 현장 직원들이 대부분 가겠지만 모두가 기사 대리들이니 다른 사람들보다도 박과장이 현장을 잘 지켜야 할 것이다.”
이런 경우를 처음 당하는 기철은 소장의 말을 들으며 당혹스럽고 얼떨떨하고 왜 이런 일을 나에게 시키는가 하는 생각에 피하고 싶었지만 당장 회사를 그만두지 않은 한 직속상관인, 소장의 지시니 안 들을 수도 없다.
그래서 우물 주물
“알겠습니다.” 했다.
“한 시간 후 도립병원으로 가보아라. 그때쯤이면 시신과 사람들이 도착할 것이다. 참, 그리고 충북지사도 사고 보고를 해라. 일단 구두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통화하는 동안 들어서 대강 내용을 짐작한 감독 사무실 안이 어수선해지며
“박과장 무슨 일이야?”
하고 이구동성으로 묻는다.
박과장이 충북지사 공사담당 계장에게 사고 내용을 보고하는 동안 주위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쳐다보며 귀를 기우린다.
“어떻게 그런 사고가 발생한 거야?”
보고를 받은 계장이 다시 묻는다.
“지금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경황 중이라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추후 확실한 내용을 알아서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하고 사무실을 나와 회의실로 돌아오며 발생한 사고로 죽은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떻게 처신하여야 하는 것인지 막막한 기분만 들고 더욱이 유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인데 하며 그들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니 기철은 참으로 난감한 생각이 든다.
가끔 TV에서 그런 경우를 보았지만, 그것이 사실이 되어 이렇게 자기에게 닥칠 줄은 몰랐다.
슬그머니 겁이 나고 마음 같아서는 어디로 도망을 가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회사의 과장이라는 사람이 아니 그것보다 7살 된 아들과 4살 된 딸아이의 아빠로서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인 가장으로서 그렇게 책임 없는 짓을 할 수가 있는가?
첫댓글 즐~~~~감!
잘보고 갑니다..
무혈님!
끊임 없는 성원에 감사드리며 늘 즐겁고 행복한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초롱님!
감사합니다.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