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인근의 묵방산은 완주 구이면과 정읍 산외면이 경계하는 옥정호 구 운암대교 우측에 마암초교 뒷산과 아중역 뒷쪽의 등 두개의 묵방산이 있다.
묵방산(墨房山)은 먹 묵(墨)자로 먹방이라고도 하는데 화실 또는 서재 등을 의미하며, 풍수를 아시는 분들이 신선이 독서를 즐기는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의 명당자리에 주산등을 묵방산이라 표기한단다.

코스: 아중역~행치봉~두리봉~묵방산~응봉산~묵방산~숯재~재전저수지~재전리~왜막실(9~12km)
왜막실에서 아중역으로 원점회귀시에는 동네길과 동부우회도로를 6km정도 걸어서 가던지 버스나 택시 교통편을 이용해야하는데 버스는 자주 없다.


행치봉(246m )전망대에서 본 아중저수지와 뒤로 기린봉과 승암산 그리고 멀리 모악산이 보인다.

행치마을-행치는 은행나무(杏) 고개로 금상동으로 넘어가는 길로 충북 음성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생가도 행치 마을인데,
3면이 산에 둘러 쌓여있고 서쪽만 평지인데 전라선 철도가 지나가기에 고립된 마을이다.

금상리-금상리에는 태조 이성계의 넷째아들이며 태종 이방원의 바로 윗 형인 회안대군 이방간의 묘가 있다.
2차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이 황해도로 유배를 보내고 전주 이씨의 풍패지향 전주로 유배지를 옮긴 뒤에 이곳에 살다 묻혔단다.
금상리는 금상(이방간)이 계신곳 또는 묻힌곳에서 유래한 것같다.


전주시양묘장 갈림길

생태체험학습원이 있어서 행치봉 주변나무들은 이름표가 붙어있다.



두리봉 가는길- 약간의 보슬비로 조망의 기복이 심했다.


두리봉(斗利峰)은 434.9 m의 봉우리로 왜막실 뒷산이며 유래는 알수없다.



묵방산 가는길과 재전마을 갈림길


묵방산 정상- 조망이 좋을 때는 동북쪽으로 만덕산,연석산,운장산,위봉산 등이 잘 보이는데 확인을 못했다.
표지석은 전주시에서 설치를 했기에 실제 정상은 소양쪽에 있는데 그쪽은 표지석이 없으며, 표지석에 우측으로 화살표 표시를 해서 많은 분들이 정상을 헷갈려라 한다.

만덕산

매봉산 또는 매 응(鷹) 응봉산(응암산)과 멀리는 송광사가 있는 종남산





매봉산 가는길과 정상(478m)

응암리

참나무 분재-뱀이 꽈리를 틀고 머리를 들고 있는 듯한 형태

응봉과 묵방산 사이에 상수리


숯재


재전저수지와 묵방산




왜막실-왜막실(倭幕實)은 정유재란 당시에 왜군이 군막사를 짖고 머물렀던 마을에서 유래한다는데 아중리 아하리 재전리 용계리 등의 부락이 있으며 왜망실이라는 표기도 많이 사용하며, 서울의 "잠실"처럼 마을 이름에 "실"은 골짜기(谷)를 뜻하며 효자동 "서곡"처럼 "곡"자의 옛말이란다.
그 당시에 일부 왜군들은 그곳에 정착해서 귀화해 "전주 김씨"의 조상이 되었으며 "왜막실 김씨"로도 불리는데 "쪽발이 김씨" 라고 비하하는 이들도 있었단다.
모악산에 시조묘가 있는 북한 김일성 집안의 전주 김씨와는 연관은 없어 보인다.




일출암(日出庵)- 효자인 진묵스님과 어머니의 모기일화가 유명하며 주지 석인스님은 불교계 유명한 분들에게 사사를 받아서서화와 불화의 실력이 뛰어나 해마다 전시회를 한단다.
석인스님은 수묵화나 사군자도 하지않고 필력으로만 형상을 떠나 비형상의 상을 그리며 편액 전각 등을 많이 한단다.
일출암 편액은 진묵대사가 쓴것 이라한다.

일출암에서 본 묵방산- 일출암 동북쪽으로 묵방산이 보이는데 정상 우측 숯재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볼수 있단다.
석인스님은 글을 쓰기전에 묵방산을 바라보며 묵(먹)을 갈것 같다.

아중역- 아중역은 역의 기능은 폐쇄됐으며 일반인들에게 임대를 해서 갈비탕집과 커피숍이 들어섰다.

아중리에서 본 석양- 일반적으로 전주시청에서 아중역사이의 마당재 넘어, 모래내에서 안골지나 우측을 아중리라 부른다.
그러나 원래는 아중역과 돔나이트 근처 그리고 아중저수지를 경계로 동쪽을 아중리라 했단다.
초포면의 우방리(牛方里)와 용진면의 아중리(牙中里) 일대를 전주시에 편입하면서 두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우아동"이라 명했으며, 아중저수지에서 돔나이트 블록, 전주역 지나 봉동 굴다리까지를 포함한단다.
아중리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지역은 기린봉의 뒷쪽이라 인후(麟後)동이라 한다.
첫댓글 보슬비내리는 숲이 신비해보이네요. 왜막실의 오래된 돌담길도 정답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