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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변경 중이던 서류를 대강 정리하여 감독사무실에 보관을 부탁하고 한 시간 후 부딪치면 부딪쳐 보리라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도립병원으로 향했다.
도립병원에 도착해보니 벌써 현장에서 도착한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과장님 오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도착한 지 얼마나 됐어?”
그중 직원 한 사람에게 물었다.
“방금 도착했습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하여야 하는 건가? 한 대리는 안 나왔나?”
“한 대리는 사고자의 사망진단을 받고 있습니다. 사망진단이 나오면 한 대리가 영안실을 잡을 것입니다.”
“그러면 기다려 보아야 되겠군. 그런데 사고는 어떻게 생긴 거야?”
사고 내용이 궁금한 기철이 다시 선임 대리에게 물었다.
“며칠 전에 시작한 호청 용수 간선 3호 터널 공사용 출입구를 세우는 공사가 오늘 오전에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래서 점심 식사 후 6명의 인부들이 터널 입구 토사 구간의 굴착을 시작하여 3시간쯤 지나서 한참 굴착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공사용 출입구에 세운 통나무가 토압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면서 터널 입구 사면이 스라이딩 되어 입구에서 작업하고 있던 인부들 위로 덤프트럭 세 대 분쯤 되는 흙이 떨어져 내렸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피했는데 막장(터널굴착단면)앞에 있던 정씨만 못 피해서 흙더미에 묻혔어요.
스라이딩은 끝나고 피했던 인부들이 정씨가 못 나온 것을 알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과 삽을 들고 덤벼 흙을 파냈지만, 흙더미 양에 비하여 터널 입구가 좁아 다섯 명 이상은 들어가 작업할 수가 없어 정씨를 구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 흙더미에서 꺼내고 보니 이미 숨이 끊겼더라는 군요.”
“터널 입구가 무너지기 전에 이슬 내린다고 흙덩이들이 흘러내리는 조짐이 있었을 텐데 몰랐나?”
“사고가 나려고 그랬는지, 아무도 조짐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정씨를 덮친 흙을 빨리 치우지 못해 정씨가 죽었다는 말이군”
“글쎄요. 떨어지는 흙의 하중으로 눌려서 그랬는지 흙을 치우는 것이 늦어서 질식으로 죽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두 가지가 다 원인이 됐는지 모르죠.”
“그런데 담당 기사는 무얼 했나? 터널 입구 굴착공사 시 현장에 없었나. 공사가 그렇게 부실하게 되는 것도 못 챙기고.”
“그러게 말입니다. 담당인 백대리님은 상당히 꼼꼼한 분으로 이런 일을 생기도록 할 분이 아닌데 말입니다.”
“장비는 어디 가고 사람들이 흙더미를 팠어?”
“오늘 아침에 터널 입구 공사가 끝났다고 용수로 현장에 수로 절개할 곳이 있어 그쪽으로 이동하고 터널 현장에는 포크레인이 없었습니다. 아마 백대리님도 그곳에 가 계셨는가 봅니다.”
“사고가 나려고 그랬군.”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한 대리가 사망진단서를 끊어 가지고 나오며 시체를 영안실에 안치했다고 한다.
장례 예식장을 잡고 대강 분향소를 차려놓고 유가족이 오기를 기다리는 기철은 조금은 겁이 났다.
그들이 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끔 TV에서 공사 현장에서 안전사고로 사람이 죽으면 유가족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부리며 관계자를 붙들고 흔들고 때리기도 하는 장면을 보며 그때는 유가족이 안 됐다는 생각 했는데 막상 기철이 그런 입장이 되니 유가족의 슬픔보다는 자기가 유가족에게 그렇게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두려움이 든다.
이런 두려움을 참으며 장례 예식장 앞마당 벤치에 앉아 사고 연고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대영 직원이 30대 후반의 여자와 같이 들어온다.
그 여자가
“영자 아빠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들어와 있다더니 그 병실이 어디에요?
여기는 병실 있는 곳이 아니고 장례 예식장이 아니에요? 왜 이런 곳으로 데리고 오는 거예요?”
하고 묻는다.
대영 직원이 병원까지 오는 동안 부인이 놀랄까 봐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은 모양이다.
부인의 물음에 더 이상 속일 수가 없어진 직원이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은 지
“아 아니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 영자 아빠가 죽다니. 영 영자 아버지가 갑자기 아파서 병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고서는?”
하고 반문하는 부인의 말소리에 놀라움과 당혹감이 배고 떨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그 상황에 당혹스럽기는 만찬가지인 직원이 크게 한숨을 쉬고 다시 천천히 설명한다.
이야기도 끝나기 전 부인이
“아이고! 영자 아버지!”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거의 정신을 잃는다.
옆에 있던 기철과 다른 직원이 황급히 부인을 부축했다.
겨우 정신을 차려 직원들의 부축을 받고 장례 예식장으로 들어가며 부인은
대영 직원들에게는 “거짓말이죠? 거짓말?”하고 거듭 묻다가 대답 못 하고 침통한 얼굴을 하는 직원들의 얼굴을 보고는
“영자 아버지! 영자 아버지가 죽다니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 아이고 영자 아버지! 영자 아버지”하고 계속 부르고 몸부림을 치며 목 놓아 울어 그 모습에 직원들도 어쩔 줄 몰라 하며 눈물을 삼키며 겨우 부축하여 영안실로 인도한다.
어찌 놀라지 않고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아침에 공사 현장에 일하러 나간다고 어린 딸에게 뽀뽀를 해주고 자기에게도 손을 흔들어 주던 남편이 저녁에 주검이 되어 누워있는데
믿기지 않을 것이고 믿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장례 예식장에 들어와 분향소에 도착하여 차려진 분향소를 보더니 그 앞에 넘어지듯 엎드려져 “영자 아버지! 나는, 나는 어떻게 하라고.” 하며 자지러진다.
그 울음 하도 서러워 지나가던 사람들도 부인을 부축했던 직원들도 눈시울이 붉히고 빈소 주위에서 서성거린다.
잠시 후 50대 중반쯤 되는 양복 입은 사람이 그 어수선하고 침통한 분위기를 뚫고 안으로 들어선다.
그 사람은 울고 있는 부인에게로 다가가 등을 두드리며 그 부인의 손을 잡는데 그 사람의 눈에도 눈물방울이 맺힌다.
그 사람을 보자 부인이
“아이고! 아저씨! 영자 아버지가 죽었다니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요?”
하고 다시 통곡한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정신 차려라. 그래야 살 수 있어.”
“나는 못 살라요. 영자 아버지 없이 나는 못살아요.”
“그래 알았다. 하지만 어찌하냐? 산 사람은 살라야지. 진정해라.”
그렇게 위로를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씨가 사는 이웃 동네 정씨의 아저씨 벌 되는 사람이 사는데 정씨와 같이 터널에서 일하던 인부 중에 마침 그 마을에 사는 사람이 있어 사고가 나자, 마을에 돌아간 그 인부가 그 정씨 아저씨에게 사고가 난 사실을 알려주었고 그 사실을 안 그 아저씨가 정씨네 집에 갔을 때 정씨의 부인은 이미 대영 직원과 같이 병원으로 출발한 후 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영자 엄마가 걱정되고 영안실 준비도 염려스러워 부랴부랴 장례 예식장으로 나온 것이다.
잠시 부인을 위로한 그 사람은 영전에 묵상하고 난 후 위패만 있던 자리에 가지고 온 망자의 사진으로 영정도 모시고 하며 분향소를 정리하고는 다시 망자에게 조의를 표하느라 그러는지 잠시 눈을 감고 영정 앞에 앉아 묵상하고 있더니 일어나 나오며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그런데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이 사람이 공사를 하고 있었다는 대영 건설에서는 아무도 안 왔어?” 한다.
영자 엄마가 대영 직원하고 먼저 나갔다는 말을 들어 자기 앞에 있는 낯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대영 직원이라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도 일부러 한번 해보는 소리다.
“저희가 대영건설 직원입니다. 현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로 정씨가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하여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일어나는 사태를 주시하며 다음 사태에 대하여 준비하는 심정으로 영안실에 앉아있던 기철이 일어나 주저주저하고 그 사람 앞으로 나서며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던 인사를 했다.
“당신이 책임자야?”
그 사람이 대뜸 반말을 한다.
그 바람에 갑자기 죄인이 된 기분이 든 기철이 적고 최대한 겸손한 소리로
“저는 책임자가 아니라 공무과장입니다.”
“공무과장이 무엇을 하는 직책인지 나는 모르겠고. 당신이 책임자야 아니야?”
“현장은 현장소장이 책임자이고 공무과장은 소장을 보좌하는 사람입니다.”
“책임자가 와야지. 당신이 와서 무얼 해? 책임자가 와서 사고에 대한 책임도 지고 사과도 하여야 하는 것 아니야?”
“그래서 제가 소장님 대신 이렇게---”
“당신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당신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질 수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망자와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하는 뜻에서---”
“누가 당신들보고 조의 표해 달라고 했어? 아니, 사람을 죽여 놓았으니, 조의는 표하여야 되겠지. 하지만 조의를 표한다고 책임도 질 수 없는 사람이 와서 무얼 해. 누가 너희보고 이런 애도 표해 달라고 요청했어? 사람을 죽어 놓았으면 책임질 놈이 와서 조의도 표하고 책임도 져야지 이게 무슨 개수작이야, 개수작 부리지 말고, 가서 소장인지 무엇인지 그 책임질 놈을 데리고 와.”
아저씨라는 사람이 거의 막 나가는 투로 말을 한다.
이러는 이 아저씨라는 사람을 보며 기철은 이 사람이 이런 일에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조문이 끝나자마자 기선을 제압하려고 큰소리를 치고 현장소장을 찾고 책임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예! 그러고 싶어도 저는 설계변경 관계로 3일 전부터 청주에 나와 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온 관계로 소장님이 어디에 계신지 모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직원이 자기 소장이 어디 있는지 모른단 말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좋게 말할 때 가서 소장을 데리고 와.”
“정말입니다. 저는 소장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자 그동안 한두 사람씩 모여든 유가족 중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젊은 사람이
“이 자식 이거 뜨거운 맛을 보여주어야 하겠군.” 한다.
“막말은 하지 말고 서로 좋게 타협하자고 이 사람들도 사고를 내고 싶어 냈겠어. 자! 당신 누구고 직책이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여러 소리 하지 말고 소장을 데리고 오던지. 소장이 있는 곳을 알려주든지 하시지. 그러면 우리가 가서 소장을 끌고 올 테니까.”
하고 아저씨라는 사람이 비꼬듯 말한다.
“예! 저는 아까도 말씀드린 것같이 대영건설 진천 현장에서 공무를 보고 있는 박 과장입니다. 그리고 몇 번을 말씀드려도 저는 소장이 있는 곳을 모릅니다.”
“이 사람 정말 안 되겠네. 그만큼 알아듣게 말했으면 알아먹어야지. 정말 혼 좀 나 보아야겠어?”
아저씨라는 사람이 다시 언성을 높이고 열을 내기 시작했다.
기철은 처음 당하는 일이라 겁이 났지만 태연한 척하고 침묵했다.
아니 할 말이 없다.
정말로 소장의 소재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유가족에게 시달릴 것을 예상하고 소장이 자기의 소재를 가르쳐 주지 않았구나. 결국, 이 소동을 나 혼자 당하여야 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자식! 정말 혼 좀 나야겠군.”
하며 옆에 있던 아까 그 사람이 느닷없이 기철의 엉덩이를 걷어찬다.
엉덩이를 얻어맞은 기철은 많이 아프고 무서웠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별로 아프지 않은 척하며 참고 그 사람을 노려보며 서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사람들에게 두려워한다는 모습을 보이면 더욱 행패가 심해지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시달림이 시작되는구나 어떻게 이 곤경을 벗어나야 하나?’ 하는 궁리를 해 보지만 방법이 없다.
다행인 것은 구타가 계속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하기야 구타를 해서 멍이 들거나 다치거나 하는 문제가 생기면 보상 협상에서 자기들에게 불리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가 보다.
유족들의 서슬에 겁을 먹고 있던 직원 중에 한 사람이 기철이 맞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서며
“박 과장님은 정말 소장님이 계신 곳을 모릅니다. 며칠 전부터 청주에 나와 계셨습니다.” 한다.
“그러면 사무실에 전화해서 소장이 어디 있는지 알아 와.”
옆에서 다른 사람이 소리친다.
기철은 말을 하지 못한다.
전화해도 소장의 위치를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고 현장을 피하여 숨은 사람이 다른 직원들에게 소재를 가르쳐 주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래! 당신이 정말 소장 있는 곳을 모르면 당신이 가서 전화해서 소장이 어디 있는지 알아 와.”
아저씨라는 사람이 다시 끼어든다.
“현장에 전화해도 모른 겁니다. 우리 직원들 대부분이 이곳에 와 있어 현장은 비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잘 아는 놈이 소장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잔소리 말고 가서 소장 놈이나 찾아와.”
소장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는 기철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무어 이런 놈이 있어 내 말 안 들려?”
하고 달려들더니 기철의 멱살을 잡고 끌면서
“이 자식들이 사람을 죽어 놓고 개수작 부리고 있어, 내가 너희들 짓거리 모를 줄 알아? 이런 식으로 해서 유가족들이 지치게 하여 보상 문제를 대강 마무리하겠다는 짓거리인 줄 우리도 다 알아, 그러니까 개수작 부리지 말고 나하고 같이 가서 전화해 너희 소장한테.”
역시 예상했던 것 같이 이 아저씨라는 사람은 이런 일에 경험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한 푼이라도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고.
그 사람에게 멱살을 잡힌 채 기철은 병원 내 공중전화 박스가 있는 곳까지 끌러왔다.
유가족 중 몇 사람이 같이 따라왔다.
전화박스에 오자 기철을 전화박스 내로 밀어 넣으며
“전화해. 현장에 하던지, 너희 소장에게 하던지, 어떻게 해서든지 소장이 있는 곳을 알아내서 이곳으로 오라고 해. 만약 소장이 안 나타나면 너는 우리 손에 죽을 줄 알아.”
이제는 막말에 협박까지 한다.
기철은 전화박스에서 몇 군데 전화했다.
이렇게 된 마당에 기철도 성의를 다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할 것 같아서다.
현장 사무실과 현장에서 회식하면 자주 가던 음식점 몇 곳과 일이 있어 청주에 나오면 잘 가던 여관 등에, 그러나 전화를 받는 곳에서는 모두 소장을 며칠째 못 봤다거나 안 왔다고 한다.
물론 몸을 피한다는 소장이 그런 곳에 가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기철은 밖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되도록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했다.
기철이 전화박스를 나오자, 통화 내용을 들어서 알고 있던 그 아저씨라는 사람이 다시 기철의 멱살을 잡으며
“이것들이 수 쓰네, 그런다고 우리가 속아 넘어갈 줄 알아. 너 오늘 우리한테 혼 좀 나봐”
하고 기철을 다시 영안실로 끌고 간다.
영안실에 도착하자 아까 기철의 궁덩이를 찼던 사람이
“아저씨 어떻게 됐어요?”
하고 묻는 고는 기철이 소장이 있는 곳을 모른다며 안 가르쳐 준다는 그 아저씨라는 사람의 말을 듣곤 느닷없이 그 사람이 기철의 빰을 때린다.
순간적으로 날아오는 손을 보고 기철이 피하는 바람에 손바닥이 기철의 얼굴을 스치며 기철이 쓰고 있던 안경이 떨어져 땅에 구른다.
빰을 맞은 기철은 빰이 아픈 것보다 빰을 맞고 안경이 떨어져 나간 것에 정말 화가 나서 그 사람을 노려보며 안경을 주을 생각도 못 하고 있다.
그것을 본 아저씨라는 사람이 당황해하며 얼른 안경을 주어 기철에게 끼워 주며
“그러니까 소장이 있는 곳을 말해주면 이런 일이 없잖아.” 한다.
기철의 안경이 깨지기라도 했으면 자기들에게 이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 때문이리라
폭행으로 안경이 깨졌다면 눈을 다치게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고 그 아저씨라는 사람은 기철의 행동으로 보아 정말 소장의 위치를 모른다고 생각을 하는지 한참을 노려보다가
“오늘은 이쯤으로 끝나지만, 내일도 소장인지 뭔지 하는 놈 안 나타나면 그때는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
하고 영정 앞에 기철을 앉히고
“너는 오늘 잠도 자지 말고 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속죄하는 마음으로 빌어.” 한다.
이렇게 해서 첫날은 18시쯤 시작한 실랑이가 22시쯤 끝났다.
일에 진행을 보며 편안하지 못한 자세로 그때까지 영정 앞에 있던 직월들도 기철이 영정 앞에 앉자 모두 같이 앉아 고개를 숙인다.
어떻게 말릴 수도 없어 기철이 시달리는 모습만 보아야 했던 직원들은 기철에게 미안했던가 보다.
영정 앞에 앉아서 기철은 생각한다.
유가족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침에 웃으며 일하러 간다고 하고 나온 사람이 저녁에 주검으로 변했으니 그들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충격에 빠졌을 것이고 심장을 도려내는 슬픔에 잠겼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가져오게 한 동기가 어찌 되었든 그 빌미를 준 사람들이 죽이도록 미울 것이다.
그러나 기철의 생각인지 몰라도 이들의 행위는 조금 지나친 것 같다.
죽은 사람에게 대한 애도 보다는 보상에 더 마음을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상을 끝내자 바로 소장을 찾으며 책임 문제를 거론하며 보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아닌가.
기왕에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이 살려면 보상이라도 많이 받아야 한다는 심사인가 보다.
어쩌면 현실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한다고 실제적인 책임도 없는 사람에게 심하게 행동하여 얻을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분이 풀리고 산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상금을 더 받아야 하려는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기철은 무릎을 꿇고 앉아 영정을 보며 서글픈 생각이 든다.
유가족들에게 시달림을 받는 것이 서글픈 것보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 죽은 사람보다 보상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
차라리 이들이 어쩌다 사고가 나게 해서 사람을 죽게 했느냐고 따지고 원통해 하며 참으로 죽은 사람을 슬퍼한다면 욕을 먹고 조금 구타를 당하면서도 같이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위로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사람이 죽어서 누워있는 앞에서 한쪽에서는 보상금을 덜 주려고 하고 한쪽에서는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하는 행위들이 기철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그날 저녁은 그렇게 깊어지고 늦게까지 밤을 지키던 기철은 영정 앞에서 쪼그리고 누어 새우잠을 잤다.
그러나 선잠이 들었더라도 옆에서 큰소리가 나면 저녁에 동안에 유가족에게 시달린 심신에 그 큰 소리가 유가족이 자기에게 소리치는 것 같아 놀라 깨기 때문에 깊은 잠은 잘 수가 없었다.
다음 날 10시쯤 다시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기철의 생각으로 10시까지는 유가족끼리 장례 절차라든가 보상비 받아내는 방법 등을 의논도 하고 대영 본사가 서울이라니 혹 서울에서 사람이 내려온다면 걸리는 시간이 있으니 기다려 보자는 심사이었는지 몰라도 그때까지는 조용하더니 아침 10시가 넘으면서 다시 유가족들이 술렁인다.
사람이 죽었는데 대영에서 달랑 과장인지 무언지 하는 놈 하나 보내 놓고 책임 있는 자가 와서, 사과하거나 보상 문제를 의논하지 않는다고 괘씸한 놈들이라며 화를 내고 욕을 하며 소장을 데려오던지 있는 곳을 대라고 또 난리를 부린다.
다시 멱살을 잡고 흔드는 사람 궁둥이를 발로 차는 사람 심지어는 또 뺨을 때리는 사람까지 있다.
그런 시달림을 고스란히 받으며 기철은 아무 말을 할 수가 없다.
실제로 소장이 있는 곳을 모르기도 하지만 그들의 소행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되어 오기가 생긴 기철로서는 혹 소장이 있는 곳을 알아도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답답하기는 기철도 마찬가지다.
어제 하루만 장례 예식장에서 고난을 받으면 오늘은 어떤 결말이 날 줄 알았는데 오늘도 또 유가족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으니, 기철의 마음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기철도 의문이 생긴다.
공사 현장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회사에서는 기철을 대표로 보내 놓고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너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유가족들의 횡포가 좀 뜸할 때
“이러한 때 본사에서 아무도 내려오지 않는가?”
하고 총무 한 대리한테 물어보았다.
도로공사에 있다 시공회사로 와서 처음 당하는 일이라 아니 난생처음으로 당하는 일이라 기철은 상식적인 것을 물은 것이다.
“본사에서는 내일이나 모래 쯤 보상 담당 직원이 내려올 것입니다.”
“직급이 무엇인데?”
“차장이나 부장이 올 것입니다.”
“사장이나 임원은 안 오나?”
“그런 분들은 이런 곳에 오지 않지요. 그런 분이 이런 곳에 오면 유가족들의 횡포도 심해지고 또 보상에 대한 요구가 높아져서 보상 협상도 잘되지 않아 안 오십니다.”
“그런가?”
그렇게 대답하며 사람의 죽음 앞에 도의적인 책임이나 예의는 없고 보상의 적고 많음에 회사나 유가족 모두가 더욱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며 냉혹한 현실이라는 생각과 그러면 본사 보상 담당 직원이 오기 전까지 내가 이렇게 시달려야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기철의 기분이 씁쓸해진다.
오후가 되며 대영 직원을 족쳐야 보상비를 많이 받을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아직도 보상에 대한 어떤 말을 듣지 못한 것이 불안해서인지 유가족의 행위가 점점 거칠어진다.
그러면서 말씨름 하다 화가 나면 한 대 때리기도 한다.
그래도 계속적인 구타를 하거나 심하게 때려 상처를 입히지는 않는 것은 다행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아무리 자기들이 피해자라도 기철을 구타하여 상처가 나거나 멍이 들거나 하면 자기들에게 불리한 것을 아는지 대부분 멱살을 잡고 흔들거나 밀고 당기고 하며 사람을 몹시 성가시게 한다.
“아무리 이래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소장이 나나 다른 직원들에게 연락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도 정말 소장이 있는 곳을 모릅니다.
어쨌거나 조만간 우리 회사에서 보상 관계를 협의하러 사람이 올 것이니 그때 여러분의 요구를 확실히 하면 될 것 아닙니까. 나에게 이렇게 하지 마시고 말입니다.”
시달리던 기철이 이렇게 말했다.
“보상담당자가 언제 오는데?”
“그것은 저도 잘 모릅니다.”
“그래 그러면 너는 무엇 하러 여기 왔냐?”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친다.
“저는 같은 현장에 근무하던 사람으로 고인에게 예를 표하러 왔습니다.”
“예 좋아하네, 예를 표한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와?”
“고인이 저희 현장에서 희생된 것에 대하여는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나에게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자식 말하는 것 좀 봐, 그럼, 생사람을 잃은 우리의 마음은 누가 보상해?”
‘당신이 슬프고 당혹스러운 것은 알지만 내가 그분을 우리 현장에 끌어들었습니까? 내가 그분을 죽게 했습니까? 같은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도의적인 책임으로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해 온 사람에게 이렇게 하는 것은 지나친 행동이 아닙니까? 정 답답하면 당신들 중에도 우리 현장 위치를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없다면 진천에 가서 물으면 얼마든지 알 수가 있으니 그렇게 현장에 찾아가서 물어보면 소장이 어디 있는지 더 잘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왜 내게 보상 문제을 말합니까. 사고가 났으니 보상 담당 직원이 보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오지 않겠습니까. 그때 원하는 것을 요구하면 되지 왜 죄 없는 사람을 붙들고 이러십니까.’
이런 말들이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려는 것을 이런 말을 해서 유가족을 흥분시켜봤자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아 참으며
“죄송합니다. 그 점에 대하여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고 기철이 대답한다.
“그러니까 소장이 있는 곳을 대.”
“왜 자꾸 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시달리는 것이 싫어서라도 안다면 벌써 말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며 하루가 가고 그만큼 시달렸는데 소장이 있는 곳을 대지 않는 것이 정말 소장이 있는 곳을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저녁이 되면서 유가족들의 횡포가 잦아진다.
밤 24시가 될 무렵 총무 한 대리가
“박 과장님 밖으로 나갑시다.” 한다.
“왜?”
“여관에 가서 좀 쉬시죠. 과장님 어제저녁에 한잠도 못 주무시는 것 같던데 또 오늘 낮에 그렇게 시달렸으니 고단하실 텐데 오늘 저녁은 여관에 가서 편히 쉬시죠.”
“그래도 괜찮을까?”
“괜찮을 겁니다. 우리가 죄인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어제저녁 박과장이 유가족에게 시달리는 것에 신경이 쓰이고 간간이 울고 소리 지르는 유가족들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인지 오늘 저녁은 대영의 직원들이 슬금슬금 거의 다 나가고 박과장과 한 대리 외에 대리급 직원 두 사람만 남았다.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직원이
“과장님 그렇게 하세요. 여기는 저희들이 지키고 있을 테니.” 한다.
그래서 한 대리와 같이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하고 들킬까 봐 무척 조심하며 어두운 곳에 몸을 숨기며 영안실을 빠져나와 여관으로 가면서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도둑질하는 것도 아닌데 이게 무엇을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관에서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우니 피로가 몰려 몸은 무척 고단한데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동안 생각키우지 않던 죽은 정씨의 얼굴도 떠오른다.
정씨는 현장에서 일한 지가 오래돼 가끔 공사 진척 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을 나가보는 기철도 정씨의 얼굴을 알고 있다.
부지런하고 선한 사람이었는데 참으로 안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가장을 잃은 남은 가족들이 걱정스럽다. 영안실에서 보니 정씨는 유족으로 5살 난 딸과 부인이 있는 데 아무것도 모르고 장난만 치는 어린 딸이 참으로 안 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영안실로 보내 놓고 소장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공사 과장은 정말 지금 경찰서에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다가 늦게야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의외로 일찍 눈이 떠졌다.
여관에서도 긴장 상태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아침에 세면을 하고 있을 때 한 대리가 전화를 받으란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감사합니다
장마가 시작 되는 것 같습니다 비 피해 입지 않도록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