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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1 <예썰의 전당> [53회] 왕이 된 남자, 주세페 베르디 2부. 2023년 5월 20일 22:25 방송 방송 다시보기
◎ KBS1 <예썰의 전당> [52회] 왕이 된 남자 주세페 베르디 - 1부
201family | KBS1 <예썰의 전당> [52회] 왕이 된 남자 주세페 베르디 - 1부 - Daum 카페
오페라의 왕 주세페 베르디는 이탈리아의 통일을 염원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감정을 노래로 표현했다. 특히 누구나 평범한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그런데 화려한 성공만 있을 줄 알았던 주세페 베르디에겐 뼈아픈 실패도 있었다고 한다. 오페라의 최고의 작곡가이자 누구보다 대중을 먼저 생각한 주세페 베르디에 대한 누구도 몰랐던 이야기들을 풀어본다.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는 9세기 이탈리아의 대표적 오페라 작곡가. 〈리골레토 Rigoletto〉(1851)·〈일 트로바토레 Il trovatore〉(1853)·〈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1853)·〈운명의 힘 La forza del destino〉(1862)·〈돈 카를로스 Don Carlos〉(1867)·〈아이다 Aida〉(1871)·〈오텔로 Otello〉(1887)·〈팔스타프 Falstaff〉(1893)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베르디의 중기생애에 사보이에 가 있는 동안 베르디는 자신의 이름을 친숙하게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3편의 오페라 〈리골레토 Rigoletto〉·〈일 트로바토레 trovatore〉·〈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를 작곡했다.
〈리골레토〉에서 그는 음악에 극이 밀착되어 나타나게 함으로써 발전을 이루었다.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구분도 거의 없어져 레치타티보는 아리오소(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중간 성격을 갖는 半선율적 악곡)의 경향을 띠게 되었고, 아리아도 엄격한 형식성에서 벗어나 앞선 부분이나 뒷부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다.
이제 음악적 관심은 주로 일련의 2중창에 주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리골레토〉에 나오는 유명한 4중창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4중창은 사실상 2중으로 구성된 2중창으로 한쪽에서는 질다와 리골레토의 2중창이, 또다른 쪽에서는 공작과 마달레나의 2중창이 동시에 불려진다. 격렬한 영웅적 행동이 묘사되어 있는 〈일 트로바토레〉는 또다른 종류의 음악을 들려준다. 열정적으로 분출되는 선율은 섬세한 면은 덜하지만 강력한 힘을 발산한다. 이와는 대조적인 양식으로 친밀한 분위기와 서정적인 정서를 그린 〈라 트라비아타〉는 진정 위대한 작품이다.
이러한 경향은 실러의 〈간계와 사랑 Kabale und Liebe〉을 각색한 〈루이자 밀러 Luisa Miller〉(1849)에서 이미 실험되었다.
이들 세 작품으로 얻은 생애 중반의 성공은 난관을 극복하고 이루어진 것이었다. 당시 베르디는 검열관들에게 강한 혐의를 받고 있었으며, 〈리골레토〉의 모체가 되는 위고의 시극 〈임금님의 난행(亂行) Le roi s'amuse〉은 정치적으로 금기시된 왕 살인미수 사건을 다루고 있었는데 그것은 왕권을 모독하는 저주와 다름없었다.
왕을 1단계 낮추어 공작으로 바꾸고 여러 가지 수정을 거친 후에야 그 대본은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라 트라비아타〉는 또다른 문제가 있었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동백 아가씨 La dame aux camélias〉의 내용 때문에 파리에서 심각한 스캔들을 겪고 있었으므로 이를 오페라로 개작한 베르디의 작품은 처음에는 17세기 의상을 입고 공연되었다. 그러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노래 주제로 일관한 이제까지의 오페라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드러냈다.
더욱이 건강한 프리마 돈나를 폐병 환자인 여주인공 역에 기용함으로써 베네치아에서의 초연은 여지없이 실패했다. 베르디는 이에 대해 평소 성격대로 간결하게 언급했다. "나의 잘못일까? 아니면 가수들의 잘못일까? 시간이 밝혀줄 것이다."
베르디는 이제 국제적인 명사가 되었으며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그의 예술에도 반영되었다. 1855~70년 주로 5막 구성에 발레를 포함한 화려한 오페라를 요구하는 파리인들의 기호에 맞는 작품을 파리 오페라단과 그밖의 극장들을 위해 만드는 데 몰두했다. 항상 후원자들이 요구하는 바를 기꺼이 제공하려 했던 양심적인 장인이었던 베르디는 비록 지나치게 화려한 것을 바라는 파리 오페라단의 요구에 고민했지만 마이어베어식의 규모를 따른 '그랑 오페라'를 작곡했다.
새로운 양식으로 작곡한 첫 작품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 Les Vêpres siciliennes〉(1855)는 〈리골레토〉와 〈라 트라비아타〉의 음악적 질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스크리브의 대본 역시 이 작품의 질에 영향을 끼쳤는데, 이 대본은 도니체티를 위해 쓴 것을 새로 단장한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극장들을 위해 만든 2편의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 Simon Boccanegra〉(1857, 베네치아)와 〈가면 무도회 Un ballo in maschera〉(1859, 로마)는 그랑 오페라의 영향을 덜 받은 작품이며, 인간 본성을 해석하고 관현악적 색채를 잘 구사하는 베르디의 풍부한 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분위기가 침울하고 줄거리가 지나치게 복잡하지만 〈시몬 보카네그라〉는 대부분 초기 오페라들처럼 단지 선율에 의지하고 정서에 호소하는 극적 감동으로써가 아니라 등장인물에 대한 섬세한 연출로 주목을 끌었다. 스웨덴 왕 구스타프 3세 암살사건을 각색한 〈가면 무도회 Un Ballo in Maschera〉는 보다 나은 극적 요소가 잠재해 있었지만 다시 검열이 개입해 그 사건을 다루지 못하게 했으므로 결국 18세기의 스톡홀름에서 17세기의 청교도들이 거주하는 보스턴으로 무대가 옮겨지게 되었다.
이것이 베르디가 부딪친 마지막 외국 검열이었다. 1860년 이탈리아는 교황령에서 벗어나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되었고, 새로운 국가의 정치적 개척자였던 카보르 백작은 정치 세계 밖의 저명한 이탈리아인들로 구성된 의회를 구성하려는 열망을 가졌다. 베르디는 마지못해 하원에 출마하기로 동의하고 토리노에 있는 의사당에 출석하기는 했지만 정치권에서 능동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으며 1861년 카보르가 죽자 사임했다.
1862년 런던 박람회에서 이탈리아 작곡가들을 대표해서 시인이자 작곡가인 아리고 보이토의 가사로 칸타타를 작곡했다.
같은 해 그랑 오페라 〈운명의 힘 La forza del destino〉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연되었고, 1867년에는 실러의 비극을 각색한 〈돈 카를로스〉가 파리 오페라단에서 공연되었다. 다시 세심한 인물 설정과 관현악 처리에서 발전이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이러한 특징들은 〈아이다 Aida〉에서 최고조로 발휘되었다.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이집트 총독이 위촉한 이 작품은 1871년 카이로에서 초연되었다. 〈맥베스 Macbeth〉에서와 마찬가지로 베르디는 이 작품을 위해 세부적인 시나리오를 썼다. 안토니오 기슬란초니가 그것을 운문 형태로 바꾸었으며 종종 베르디의 지시를 받았다.
1867년에 로시니가 죽자 베르디와 12명의 동료 작곡가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정신의 고향인 볼로냐에서 연주될 진혼곡을 위촉받았다.
그러나 그 계획은 주 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베르디가 보기에는 이 작품의 지휘를 맡은 안젤로 마리아니도 이 일에 전념하지 않은 듯했다. 자신의 일이 방해받는 것을 참지 못했던 베르디는 당대 최고의 이탈리아 지휘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마리아니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로시니의 출생지인 페사로에서 있었던 로시니 기념제를 준비하고 감독하면서 베르디의 심사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분쟁은 베르디에게 명예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하루살이 임금님 Un Giorno di Regno〉을 거부했던 라 스칼라와 그 청중들을 평생 증오했듯이 그 불쌍한 친구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마리아니와의 불화는 그가 카이로에서 있었던 〈아이다〉 초연을 위한 지휘를 거절함으로써 더욱 깊어졌다.
그는 자신의 병을 이유로 들었고, 사실 암과 투병중에 있었으며 1873년 결국 숨을 거두었다. 베르디가 마리아니의 정부인 테레자 슈톨츠를 가로챘다는 비난을 퍼부은 피렌체 신문의 독설적인 중상모략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했다. 슈톨츠는 〈아이다〉가 이탈리아에서 공연되었을 때 아이다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마리아니가 죽고난 몇 년 후 그녀와 보다 친밀한 관계로 발전해 부인과의 사이에도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1873년 베르디는 나폴리에서 〈아이다〉 공연을 기다리며 현악 4중주를 작곡했는데 이 작품은 성숙기에 작곡된 유일한 기악곡이다.
같은 해에 이탈리아의 애국 시인인 알레산드로 만초니가 죽자 진혼곡을 작곡했는데 로시니를 위해 작곡했던 진혼곡의 마지막 악장을 그 작품에 포함시켰다.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1853)
● KBS 중계석 [글로리아 오페라단 -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1부] 지휘 - 카를로 팔레스키 /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 도비니 - 김세환, 뒤폴 - 이상빈, 그랑빌 - 이준석, 안니나 - 신선영, 가스통 - 김재일, 플로라 - 양송미, 제르몽 - 김동섭, 알프레도 - 최원휘, 비올레타 - 홍혜란, 주세페 - 김우중, 메신저 - 장문용 외 / 제 1막 - 비올레타 집 거실, 제2막 1장 - 파리 근교의 시골집
베르디의 다른 오페라와 달리 남녀의 순수한 사랑에 초점을 맞춘 〈라 트라비아타〉는 한국에서 최초로 공연된 오페라이다.
'축배의 노래'
◦ 알후레도: 마시자, 마시자, 이 밤에 꽃으로 장식된 잔을 들고 잠시 동안 환락에 취하도록. 마시자, 사랑을 북돋우는 흥겨운 전율 속에, 그 눈이 내 마음에 대해 전능의 힘을 휘두르니까. 마시자, 사랑은 입맞춤을 좀 더 뜨거운 잔에서 얻으리라.
◦일동: 마시자, 사랑은 입맞춤을 좀 더 뜨거운 잔에서 얻으리라.
◦비올레타: 여기 모인 여러분들 속에서라면 흥겹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는 자는 모두 어리석은 바보짓을 할 뿐입니다. 즐깁시다, 순식간에 꺼지기 쉬운 것은 사랑의 기쁨, 피었다 덧없이 지는 한 송이 꽃, 두 번 다시 즐기는 일은 없어요. 즐깁시다, 뜨겁게 흥겨운 음악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일동: 아, 즐기자, 술잔과 노래와 웃음이 밤을 아름답게 꾸민다, 이 낙원 속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비올레타: 살아 있는 동안은 마냥 즐겁게.
◦알후레도: 아직 사랑해 본 적이 없어서겠죠.
◦비올레타: 사랑과 인연이 없는 자에겐 쓸데없는 소리에요.
◦알후레도: 이렇게 되는 것도 내 숙명이죠.
◦일동: 아, 즐기자, 술잔과 노래와 웃음이 밤을 아름답게 꾸민다, 이 낙원 속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라 트라비아타〉 주인공 비올레타의 실제 모델, 마리 뒤플레시스((Marie Duplessis, 1824~1847)/
1958년 런던왕립오페라극장 〈라 트라비타〉 공연에서 비올레타 역을 맡았던 마리아 칼라스
◦ 초연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오페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담은 아리아/ 소프라노 가수의 꿈 비올레타/ 버림받은 여자의 헌신과 사랑
◦1막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2중창, ‘축배의 노래(Libiamo ne' lieti calici)’
◦1막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2중창, ‘빛나고 행복했던 어느 날(Un dì, felice, eterea)’
◦1막 비올레타의 카바티나와 카발레타, ‘아, 그인가... 언제나 자유롭게(Ah, fors'è lui... Sempre libera)’
◦2막 제르몽의 아리아,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Di Provenza il mar, il suol chi dal cor ti cancellò?)’
◦3막 비올레타의 아리아, ‘지난날이여, 안녕(Addio, del passato bei sogni ridenti)’
◦3막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2중창, ‘파리를 떠나서...영원한 이별이여(Parigi, o cara, noi lasceremo... Gran Dio!)’
* 〈일 트로바 토레 Trovatore〉(1852)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는 4부 드라마로 구성되었으며, 1409년 스페인의 비스케이 지방과 아라곤 지방의 내전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중 가장 박력 있고 열정이 넘치는 작품으로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베르디의 빅3로 꼽히는 작품이다. 특히 몇 개의 멜로디가 미국과 유럽에서 잘 알려진 대중적인 오페라이다.
◦ 누가 만든 비극인가/ 완벽한 균형과 조화/ 형과 동생의 운명비극
◦ 2막 ‘집시’ 1장, 아수세나의 칸초네 ‘불꽃은 타오르고(Stride la vampa)’
◦ 2막 2장, 백작의 카바티나와 카발레타 ‘그대의 미소는 아름답고...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Il balen del suo sorriso...Per me ora fatale)’
◦ 3막 ‘집시의 아들’ 2장, 만리코의 카발레타, ‘타오르는 저 불꽃을 보라(Di quellapira)’
◦ 4막 1장, 레오노라의 카바티나 ‘사랑은 장밋빛 날개를 타고(D’amor sull'ali rosee)’
*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Les Vêpres Siciliennes〉(1848~1853)
베르디의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1282년 부활절, 시칠리아 섬의 수도 팔레르모와 그 주변을 배경으로 하는 5막 대작 오페라이다. 이 작품은 베르디의 다른 오페라에 비해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드물다. 작곡가의 원숙한 시기에 작곡되었으나 찬탄과 동시에 비평을 받는 작품이다. 그러나 ‘신포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오페라의 서곡은 독립적인 관현악 작품으로 연주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 베르디에 대한 경애로 살아난 오페라/ 피바람 날리는 학살의 현장/ 역사의 흐름에 내몰린 부자와 연인의 슬픔/ 서곡(신포니아)
◦ 3막 1장 아리고, 몽포르테의 이중창, ‘진정한 동정심으로 끌렸을 때(Quando al mio sen per te parlava)’
◦ 5막 엘레나의 아리아, ‘고맙습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Mercé, dilette amiche)’
* 〈가면무도회 Un Ballo in Maschera〉(1859)
극적인 음악과 서정적인 음악이 잘 어우러진 〈가면무도회〉는 베르디의 중기 작품 중에서도 탄탄한 줄거리를 가진 작품이다. 비극적인 전체 분위기에 희극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무거운 오페라의 감초 역할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알렉산더 로슬린(Alexander Roslin, 1718~1793), 〈구스타프 3세(Gustav III, 1746-1792)〉(1777)
구스타프 3세(Gustav III, 1746-1792) 즉위식
◦ 실화를 소재로 한 역사극/ 검열과의 타협/ 명예를 위해 목숨을 버린 왕/ 오페라의 감초
◦ 1막 1장, 오스카르의 아리아 ‘빛나는 별을 보세요(Volta la terrea)’
◦ 1막 2장, 구스타보의 칸초네 ‘이번 항해도 무사할까(Di’ tu se fedele)’
◦ 1막 2장 5중창, ‘농담이 아니면 엉터리(È scherzo od è follia)’
◦ 2막, 아멜리아의 아리아 ‘내 사랑을 잊을 수 있다면(Ma dall'arido stelo divulsa)’
◦ 3막 1장, 아멜리아의 아리아 ‘내가 죽기 전에 먼저(Morro, ma prima in grazia)’
◦ 3막 1장, 레나토의 아리아 ‘너야말로 영혼을 더럽히는 자(Eri tu che macchiavi quell'anima)’
◦ 3막 2장, 구스타보의 로만차 ‘그대를 영원히 잃어버린다 해도(Ma se m'è forza perderti)’
* 〈아이다 Aida〉(1870~1871)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장군 라다메스와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장엄하고 화려한 음악과 장대한 무대장치가 돋보이는 대작 오페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11월에 국립 오페라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1908년 오하이오, 클리브랜드에서 공연시 〈아이다〉 포스터
2007년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원형 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페스티벌 공연 장면
2011년 이스라엘 Masada 공연
1881년 〈아이다〉 파리 공연에서 지휘하고 있는 베르디
◦ 이집트 유적에서 대작 오페라로/ 이국적인 분위기와 장엄한 음악이 어우러진 완벽한 드라마/ 다음 세상을 기원하며 이승에 이별을 고하다
주요 음악
◦ 1막 1장, 라다메스가 아이다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아리아 ‘정결한 아이다(Celeste Aida)’
◦ 1막, 아이다의 아리아 ‘이기고 돌아오라(Ritorna vincitor)’
◦ 2막, 합창곡 ‘개선행진곡(Vieni, guerriero vindice)’
◦ 3막, 아이다의 아리아 ‘오 나의 조국이여(O patria mia)’
◦ 4막, 라다메스의 아리아 ‘죽음은 아름다운 것(Morir! Si pura e bella)’
◦ 4막, 라다메스와 아이다의 2중창 ‘이 땅이여, 안녕(O terra, addio)’
* 〈오텔로 Otello〉(1880~1886)
베르디가 작곡한 비극 오페라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원작을 오페라에 맞게 각색하여 이아고의 계략에 초점을 맞췄다. 원작보다 전개 속도가 빨라 극적 긴박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 한 남자의 계략이 만든 비극/ 셰익스피어에 대한 존경과 사랑/ 이탈리아 오페라의 미래를 담은 작품/ 테너가 평생 올라야 할 가장 높은 산
◦ 1막, 오텔로와 데스데모나의 사랑의 2중창 ‘밤의 정적 속으로 소란은 사라지고(Già nella notte densa s'estingue ogni clamor)’
◦ 2막, 이아고의 아리아 ‘나는 잔인한 신을 믿는다(Credo in un Dio crudel)’
◦ 2막, 오텔로와 이아고의 2중창 ‘대리석 같은 하늘에 맹세한다(Sì, pel ciel marmoreo giuro)’
◦ 4막, 데스데모나의 아리아 〈버들의 노래〉 ‘쓸쓸한 들판에서 노래하며 우는... 아베 마리아(Piangea cantando nell’erma landa... Ave Maria)’
◦ 4막, 오텔로의 아리아 〈오텔로의 죽음〉 ‘나를 두려워 마라(Niun mi tema)’
베르디의 후기생애에 1870년대에 베르디는 그의 활동에 절정을 맞았으며, 일찍이 외국에서 공연했던 그의 오페라들은 검열없이 이탈리아에서 공연되었다. 그는 부세토 근교의 농장으로 은퇴해서 오페라 리허설에 기울였던 것 이상으로 농사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베르디의 악보를 출판했던 티토 리코르디는 가장 큰 돈을 벌어다주는 작곡가가 영예롭게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오텔로〉의 마지막 장면. 죽은 데스데모나에게 다가가는 오텔로/ 출판업자 줄리오 리코르디는 아리고 보이토라는 대본가를 베르디에게 소개해 보이토는 자신이 각색한 《오텔로》 대본에 베르디는 새로운 영감을 받고 다시 작곡활동을 하게 된다.
그는 몇 년 전 젊은 패기로 베르디를 비평하고 공격했던 아리고 보이토의 협력을 얻었다. 보이토가 셰익스피어의 〈오텔로〉를 각색한다는 제안은 베르디의 마음을 끌었지만 그는 먼저 불만스러운 〈시몬 보카네그라〉의 대본을 개작해줄 것을 보이토에게 요청했다. 〈오텔로〉를 오페라로 만드는 계획은 구체화되었고 1887년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74세에 베르디는 이전의 그 어떤 대본들보다도 뛰어난 대본을 손에 넣었다. 〈오텔로〉의 극적 내용은 연속적이고 탄력적인 음악에 녹아들어 있었고, 그 음악은 등장인물의 모든 성격과 동작을 낱낱이 반영하고 있었다.
〈오텔로〉의 유럽 순회공연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후 베르디는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었노라고 선언하고는 다시 한번 산타가타로 은퇴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원작으로 오페라 1편을 더 만들게 된다. 보이토는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 The Merry Wives of Windsor〉에 〈헨리 4세 Henry Ⅳ〉의 내용을 보충해 각색한 희가극 〈팔스타프〉의 대본을 만들었고, 베르디는 거기에 놀라울 정도로 빈틈없는 음악을 붙였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인 이 작품은 1893년 라 스칼라에서 공연되었고, 55년 전 같은 극장에서 맛보았던 참담한 실패를 설욕했다. 〈팔스타프〉 이후 베르디는 합창음악으로 관심을 돌려 〈아베 마리아 Ave Maria〉와, 단테의 〈신곡 Paradiso〉에서 가사를 가져온 〈동정녀 마리아의 찬가 Laudi alla Vergine Maria〉에 실험적인 곡을 붙이기도 했다. 그는 이 작품들은 〈슬픈 성모 Stabat Mater〉·〈주 찬양 Te Deum〉과 더불어 〈4곡의 교회 음악 Quattro pezzi sacri〉이라는 제목으로 1898년에 출판하고 나서 더이상 작곡에 손을 대지 않았다. 1897년 부인의 죽음으로 오랜 동반자 관계가 깨어지게 되자 건강이 점차 악화되었으며, 부인이 죽은 지 4년이 채 못 되어 그 또한 세상을 떠났다.
베르디의 고향 부세토에 있는 베르디 동상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53회] 왕이 된 남자, 주세페 베르디 2부,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