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신문에는 소위 '1면용 이름'이란 것이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활약을 하거나 그러한 사유 등으로 일약 스타로 거듭난 케이스의 선수를 말하는데, 이들은 자신의 알려진 이름을 통해 신문사에 판매부수 증가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오랜 시간 슬럼프에 허덕일 때에도 그렇지 않은 무명선수라면 절대 받을 수 없는 '고귀한' 관심마저 받는다. 가끔씩 신문에서 'XXX 3일째 홈런포 침묵'이나 'XXX 4타수 무안타' 'XXX 3경기 연속 안타' 따위의 제목을 접할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이는 별것 아닌 내용이지만 이들은 '1면용 이름'의 특혜를 사실상 받고 있다. 물론 아무나 '1면용 인물'이 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종범. 그도 대표적인 '1면용 이름'에 해당한다. 93년 9번타자 겸 유격수로 프로에 데뷔한 그는 이듬해 '4할 타율과 200안타'를 타겟삼아, 전대미문의 활약을 선보이며 당당히 1면용 인물에 등극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2004년, 이제 그도 어느 덧 노장 소리를 듣는 35살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공·수·주 3박자를 고루 갖춘 천재 유격수에서 지난 2002년 외야수로 전격 전향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그의 야구 인생의 일부를 도려내본다.
◇ 딱 4개만...
몬스터 시즌을 보냈던 지난 94년, 그는 타율 0.393 196안타 84도루 등 경이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시즌 최다안타 및 최다도루 등의 기록을 대번에 갈아치우며 천재의 칭호를 얻었다. 한국프로야구 역대 시즌 최고타율은 82년 백인천(당시 MBC)이 기록한 0.412지만, 이는 프로 원년에 나온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타율도 사실상 역대 최고기록에 해당한다. 더욱이 그는 수비 부담이 가장 큰 유격수였다.
그러나 그는 고작 안타 4개가 모자라 200안타와 4할 타율을 모두 놓쳐야 했다. 당시 이종범의 타율은 0.393(499타수 196안타). 124경기에 출장했던 그의 안타수는 전경기에 출장했던 당시 이 부문 2위 서용빈(157개· LG)을 크게 앞지르는 수치였고, 타격 2위였던 김응국(0.323· 롯데)에게도 7푼 가량 앞서는 고타율이었다. 특히나 그 해 3할 타자는 겨우 8명 뿐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가 자신의 499타수 가운데 적어도 100타수당 1개의 안타씩만 더 기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한국프로야구에서 200안타와 4할 타율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눈 앞에서 놓친 것이다. 사실 안타 4개는 운(運)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차이다.
행운의 불규칙 바운드, 기록원의 판단, 구장 사정(인조잔디 여부) 그리고 상대 투수의 능력(에이스급 투수가 등판했는지의 여부)에 의해 충분히 달라질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신(神)이 아니었기에 운의 영역을 뛰어넘지는 못했고, 결국 4할 타율과 3할 타율의 미세한 차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 양심에 털난 이종범 ?
지난 해 6월 21일 두산과 기아의 경기가 벌어진 잠실구장. 16000여명의 유료관중이 입장한 그 경기에서 이종범은 그야말로 원맨쇼를 펼쳤다. 그 날 경기는 손에 땀을 쥐는 상황의 연속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9회말 두산의 득점 찬스를 이종범이 정확한 홈송구로 무산시킨 것이었다. 4-3으로 앞선 상황에서 맞이한 기아의 정규이닝 마지막 수비.
그러나 기아는 마무리투수 진필중이 선두타자 최경환에게 우전 안타를 허용, 무사 주자 2루의 실점 위기에 처했고, 뒤이어 나온 김동주에게 중전 안타를 허용, 사실상 연장전 분위기가 드리워졌었다. 그 순간, 중견수 이종범은 공을 잡자마자 홈으로 송구했고, 이는 노바운드로 포수의 미트에 정확히 꽂혔다. 홈으로 대시하던 2루 주자 최경환은 태그아웃이었다. 완벽한 보살(assist)이었던 것.
그래서 나온 말이 "자기는 단타로 1루에서 홈까지 들어오면서, 외야에서 포수미트까지 다이렉트로 스트라이크 꽂아버리는 양심에 털난 이종범"이다. 유격수였을 때도 그랬지만, 외야수로서의 그의 수비 능력도 전혀 흠 잡을 데 없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경기였다.
◇ '카제노 코(kazeno ko)' , 바람의 아들로써
일본 프로야구 시절 불리운 그의 별명은 다름아닌 '카제노 코' 즉 '바람의 아들'이었다. 빠른 발로 "나고야의 잠자는 용을 깨우라"는 특명을 끝내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빠른 발은 분명 그만의 특화된 상품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프로필을 보면, 도루와 관련된 기록이 잔뜩 쌓여 있다.
신인 최다도루(73개,93년)
한 시즌 최다도루(84개,94년)
한 경기 최다도루(6개,93년)
최다 연속도루(29개,97년)
KS 통산 최다도루(13개)
30-60클럽 세계최초 가입(97년)
지금처럼 슬러거가 많지 않았던 90년대 초중반에는 사실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도루였다. 최근에는 체력적인 요소와 부상에 대한 위험부담으로 인해 도루를 자제하는 추세지만, 도루의 가시적인 효과는 상당 수준이다. 성공률만 높다면 1루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도루를 시도하여 득점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의 하나인 것이다.
2002년 최악의 부진을 딛고 지난 해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그는 올해도 역시 강력한 도루왕 후보로 손꼽힌다. 특히 파워마저 겸비한 그는 지난 해 43개의 2루타를 작성, 이 부문 역대 타이기록을 올린 바 있어, 올 시즌 그의 활약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2루타를 치는 것은 파워가 중점이 되지만, 빠른 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파워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거북이 타자'인 이동수(전 두산)는 2루타성 타구를 치고도 2루에서 아웃된 적이 여러번 있다.
이종범은 잘 치고 잘 달리는, 이른바 파워와 스피드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다. 이를 평가하는 항목인 파워스피드 넘버(PSN)에서도 이종범은 국내 프로야구 단일시즌 최고 기록을 보유중이다. 그는 97년 유격수 최초로 30홈런을 기록함과 동시에 64도루를 양산해내며, PSN 수치 40.85를 기록한 바 있다.
매년 수많은 화제를 몰고 다니는 그가 올 시즌에는 어떤 화제를 만들어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의 조그만 행동도 큰 이슈가 될 수 있다. 그가 1면용 이름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