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음 블로그를 열심히 하던 때가 있었다. 맨 처음 이메일 개설을 다음에서 했기에 블로그도 자연스럽게 다음을 이용했다.
네이버가 다음을 제치고 1등으로 올라선 후에는 다들 네이버로 옮겨갔지만 나는 계속 다음에 머물렀다. 일종의 의리 비숫한 감정 때문이었다.
조만간 다음 블로그가 없어질 거라는 소문에도 나는 다음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다음 블로그가 아예 문을 닫는다면서 티스토리로 옮기든지 백업을 받으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가기 싫은 티스토리로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비공개 글이라며 옮길 수가 없다고 한다.
이게 대체 뭔 소린가 해서 다음 고객센터에 연락을 했으나 연결이 안 된다. 다음 측에 도움을 청하는 이메일을 보냈으나 며칠이 지나도 답신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컴을 잘 아는 조카한데 부탁을 했으나 그도 방법을 모르겠단다.
블로그에 비공개 글이 많이 있긴 했어도 왜 공개로 올렸던 게시물까지 비공개로 전환이 되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아무 답변도 해결 방법도 알려주지 않는 다음이 너무 원망스러웠지만 어쩔 것인가. 아직 공개로 남아 있는 일부 게시물만 티스토리로 옮겼다.
그때 많은 게시물이 사라졌다. 지난 20년 가까이 세계 각국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나서 쓴 감상문들이 죄다 날아갔다.
티스토리도 믿음이 안 가서 게시물을 틈틈히 네이버로 옮겼다. 네이버에 개설만 해놓고 묵혀둔 블로그가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살아 남은 게시물이 3천 개쯤 된다. 다음 블로그에 1만 개 가까운 게시물 있었으니 엄청 많이 날아간 셈이다.
어제 저녁 네이버 블로그에 들어가 옛날 글을 읽었다. 꽤 잘 쓴 글들이 눈에 띈다. 이거 내가 쓴 거 맞어? 어디서 배낀 거거나 표절한 글이 아닐까?
나는 배낀 글이나 인용한 것은 반드시 표기를 할 정도로 글쓰기에 철저하다. 그래서 내가 쓴 글임에는 확실하다.
그런데 글쓰기도 변하는가 보다. 지금은 밀도가 떨어지고 자꾸 길어지기만 하니 말이다.
어제 읽은 예전 글을 옮기고 싶은 유혹을 느꼈으나 이내 단념했다. 일기 쓰듯이 그날 쓴 것만을 올리겠다는 내 스스로의 다짐 때문이다.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2004
어제는 벽돌책이었기에 오늘은 아주 얇은 책을 다루고 싶었다. 독일 출신의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 <깊이에의 강요>다.
독일도 문학 강국이라서 쟁쟁한 작가들이 즐비하다. 파우스트로 유명한 괴테, 헤르만 헤세, 브레히트, 카프카 등이 생각난다.
독일 문학이 다소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평이 있는데 쥐스킨트 작품은 아주 재미있게 읽히는 특징이 있다.
내가 읽은 작품으로는 <향수>, <좀머씨 이야기> 등이다. 쥐스킨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향수는 나중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어제 읽은 나의 옛글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 소설과 비교하는 글이었다.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은 <콘트라베이스>라는 모노 드라마를 기억할 것이다.
이 작품도 쥐스킨트가 쓴 희곡이다.
어제 다룬 벽돌책 코스모스는 700페이지가 넘었는데 오늘 <깊이에의 강요>는 고작 7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소설이다.
그러나 작품 속에 담긴 주제는 굉장히 묵직하다. 소묘를 아주 잘 그리는 여성 화가 이야기다.
그녀의 전시회에 한 평론가가 방문했다.
작품을 본 평론가 말이 <당신은 재능도 있고 작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작가는 이 말을 듣고도 곧 잊어버렸다.
며칠 후 신문에 이 평론가의 비평이 실렸다.
<젊은 여류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고 작품들이 첫눈에 호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작품에는 깊이가 없다>.
이 비평을 읽은 작가는 자신이 그린 소묘와 완성된 작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깊이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 날 모임에 참석했는데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신문에 실린 비평을 읽은 후였다.
<그녀에게는 깊이가 없어요. 작품이 나쁘지는 않은데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네요>. 평론가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들 깊이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이후 그림 그릴 생각이 없어졌고 멍하니 앉아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
깊이가 있는 그림을 그리려고 했으나 손이 떨려서 그릴 수가 없다. 그녀는 울면서 소리쳤다.
<그래 맞아, 나는 깊이가 없어>.
이후 그녀는 불면에 시달렸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외출도 하지 않고 집안에서만 지냈다.
몸은 점점 뚱뚱해졌고 알콜과 약물 과다로 빠르게 늙어 갔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전부 꺼내 구멍을 내고 갈갈이 찢었다.
화가는 절망한 나머지 결국 높은 빌딩에서 뛰어 내려 삶을 마감했다.
그녀가 죽은 후 그녀에게 깊이가 없다고 했던 평론가의 글이 신문에 실렸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예술가가 작품에 대한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장래가 촉망되는 그녀에게 대중들은 깊이를 강요하며 너무 무자비한 요구를 했다>.
평론가는 작가의 죽음 후 본인 관점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녀의 작품에는 깊이가 있고 삶의 열정과 치열함이 담겼다고 한다.
깊이가 없다는 평을 듣고 자신감을 상실한 화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데도 말이다.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는 아주 짧은 소설임에도 깊이가 있는 작품이다. 반면 작가 쥐스킨트는 완전 베일에 가려진 특이한 사람이다.
쥐스킨느는 1949년 생으로 아직 생존해 있는 작가다. 소설 <향수>가 45개국에 번역되어 소개될 정도로 유명해지면서 그도 일약 스타 작가로 떠오른다.
독자의 관심은 당연 작가로 향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은둔 생활을 했다. 시상식에 가기 싫어서 문학상을 거부할 정도였다.
자기 사는 곳을 발설한 사람은 오랜 지인일지라도 손절을 했단다. 그가 쓴 소설 좀머씨 이야기가 자전적 작품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깊이에의 강요는 쥐스킨트의 다른 작품 3편과 함께 묶은 소설집이다. 그러나 책 두께가 100페이지 정도로 아주 얇은 책이다.
긴 소설이 부담스러운 사람이나 복잡한 거 싫어하는 사람한테 제격이다. 또 깊이를 강요하지도 않으니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깊이가 없는들 또 어떤가. 깊이란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것이라 타인이 재단할 일이 아니다.
저자인 쥐스킨트도 본인 작품을 두고 깊이를 논하지 말라는 평론가들한테 보내는 암시인지도 모른다.
내가 작가는 아니지만 나처럼 깊이 없음을 인정하고 살면 죽을 일은 없다. 길기만 하고 깊이가 없는 오늘 내 글은 여기까지다.
첫댓글 현재 사회의 허위의식과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는 인간군상을 특유의 블랙 유머와 냉소로 날카롭게 담아 낸 책이라고 "깊이에의 강요"에 대해 Al가 평을 해주네요. ^^*
아하~ 그렇군요.
저는 오늘 점심시간과 저녁 퇴근 후까지 이 글을 쓰고 다듬어서 올리느라 진을 뺐는데 AI 비평이 훨씬 낫네요.
그래도 제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있기에 AI가 부럽지는 않습니다. 저한테 글쓰기는 쓰면서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답니다.ㅎ
수피님, 평화로운 저녁 되세요.
글도 말도 칼보다 무섭다를
보여주는 글이네요
작품뿐 아니라
평가는 조심해야지요
납량특집 맞네요
죽음까지 부른 평가한마디
와~ 정아님 댓글이 바로 정곡을 찌르는 말입니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정아님 댓글 읽고 나서 작가도 이것을 말하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평가를 하더라도 깊이를 따지기보다 용기를 주고 격려를 하면 작가도 더욱 분발할 테지요.
무릎을 치게 하는 정아님의 멋진 댓글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유현덕 아휴 푼수댓글을 이리 두둥 띄우시면
담부턴 댓글손 부끄러바
투닥투닥 몬해여 ㅋㅋ
진짜 많이 배움주는 글
사랑합니다
돌아서면 잊지만요 ㅋㅋ
화가를 쥐락펴락하는 평론가의 펜끝이 얼마나 치명적인 살상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소설이네요.
문학이든 미술이든 영화든 각종 공연 예술이든,
평단의 반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와 예술가들의 고충이 크지요.
그런데 그 평론가들은 자신이 신랄하게 까내리는 그 작가들처럼 창작은 못하거든요.
저는 그게 좀 아이러니라는 생각을 가끔 해요.
이 여름에 현덕님 덕분에 문학과 지성의 향기 속에 납량이 잘 됩니다. ^^
감사할 따름이고요,
날아간 현덕님의 귀한 글들, 넘 넘 넘 아깝기 짝이 없어요오오~~~~
에휴.. ^^
작가와 평론가에 관한 달항아리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예술 창작을 하는 작가들이 평론가를 가장 무서워한다고 하데요.
반면 평론가들의 외면을 받는 작가 또한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묻히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 설정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대작가들은 그동안 쌓은 프리미엄이 있어서 평론가들도 눈치를 본다고 합니다.
그만큼 대작가일수록 어떤 비평이든 감당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제 글로 인해 달님이 조금이나마 문화의 향기를 느끼신다면 보람 있는 일입니다. 이글을 오늘 점심 때 올리려다 마무리를 못해 저녁에야 올렸답니다.
다음 블로그 사건은 다음에 쓸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언급한 사연은 극히 일부이거든요.
시원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ㅎ
쥐스킨트 작품이 나오는 군요 좀머씨를 읽고 오랜 날이 지나 향수를 접했는데 같은 작가가 맞나 할정도로 ..
작가 사유 공간이 드넓어서 그저 감탄만 했지요. 현덕님 덕분에 잊었던 문학의 향기를 맡게 됨을 감사히 여깁니다 감사합니다.
아하~ 운선님도 쥐스킨트 작품을 좋아하셨나 보군요. 역쉬, 하면서 답글 답니다.
오늘 납량특집으로 향수를 쓰려고 했다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좀 덜 알려진 깊이에의 강요로 정했답니다.
짧아서 다시 읽기에도 편했구요.ㅎ
향수든 좀머든 이 작가 특유의 인물 묘사가 저는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사회 부적응자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솜씨에 감탄했답니다.
항상 응원을 해주시는 운선님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나이들면서 점점 책도 안 읽게 되고, 글 쓰기도 귀찮아져서... 처음에는 주저리주저리 길던 네이버 블로그의 글이 점점 짧아지더니... 이제 그마져도 거의 쓰지 않게 되어 개점휴업 상태 !
그런데... 현덕님은 깊이는 없는데 글이 길어지기만 한다구요 ?
그나저나 여전히 열심히 책을 읽으시고 (깊이 있는) 긴 글 쓰기를 즐기시는 현덕님 존경합니다 ~^^
솔모롱이님 안녕하세요. 네이버 블로거였다니 더 반갑습니다. 저도 요즘은 블로그 활동을 예전처럼 하지 못한답니다.
그저 일기나 쓰고 비공개 글 창고로 활용하는 정도랍니다.
저는 지금도 책을 읽을 때가 제일 즐겁고 사는 맛을 제대로 느낍니다. 독서를 하고 싶어도 시력이 안 좋아 못하는 사람도 있다잖아요.
긴 글 읽고 댓글까지 주신 솔모롱이님 감사합니다. 존경까지 한다는 것은 너무 황송한 일이구요.ㅎ
그저 제 글로 조금이나마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더운 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아주오래전에 읽었지만
다소 충격?적이 었던
내용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슴에, 본문에
언급된 책, 좀머씨 이야기에 솔깃~
자전적 소설이었군요.
단편 이었기에 읽기는
수월 했지만 특이하고
밍밍한 전개 속에서
책장을 덮고 나서도
무언가 내내 놓지 못한
끈을 쥐고 있는듯한 느낌,
" 타인은 지옥이다"
철저히 혼자, 홀로 살아낸
좀머씨, 그러나 그는
스스로의 감옥에 자신을
가두었던 것은 아닐까...
타인이든 자신이든
일정부분에 객관적인
시선을 갖지 못하면 결국
불행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지닌 벽... !
지는해님께서 좀머씨 이야기를 읽으셨던 모양입니다. 좀머씨에 관한 느낌을 아주 적절하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다소 염세적인 사람이라 좀머씨처럼 어두운 사람한테 유독 눈길이 간답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면서도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를 동시에 생각했더랬습니다.ㅎ
작품도 작가도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기에 누군가는 쥐스킨트 작품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같은 작품을 읽은 느낌을 지는해님과 댓글로 소통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네요.
어차피 세상을 살아가려면 타인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적 시선과 자기 중심잡기를 적절하게 조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공감 댓글 주신 지는해님 고맙습니다.
어느것에나 휘둘리지않고
초연하게 살면 좋으련만 쉽지않으니ᆢ
생각하게 되는글
잘 읽었습니다
둥근해님도 오셨군요.
저도 가끔 휘둘리면서 살지만 제 중심은 잡고 가려고 합니다. 소설 속 화가도 살짝 구부러지면서 꿋꿋하게 버텼으면 되련만 그만 삶을 포기해서 안타깝지요.
제 글로 둥근해님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더운 여름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답글 달고 점심 먹으러 갑니다.ㅎ
기대하며 열심히 다 읽었는데,
납량물 이 아닌 것 같은데요 ㅋ
안광이 지배를 철 해야 되는건가
아니면, 행간을 못 읽는것인지...
향적님께서는 어떤 것이 납량물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저한테 납량물이란 꼭 귀신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에어컨 바람까지는 아니겠지만 저의 납량특집이 누군가한테 이 더운 여름을 나는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답니다.
제 글이 향적님한테는 납량물이 아닌 모양이니 더 무서운 곳을 찾아 가시기 바랍니다.ㅎ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평론가의 펜은
이제 죽음의 원인을
대중에게 전가시키는군요.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요, 아니면 가책을 못 느끼는 걸까요.
요즘 한번 도마에 오른 사람은 공론으로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붙이고
막상 불행한 사건이 터지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세태와도
비교가 되네요.
다음엔 납량 특집
무슨 책이 등장할까요.
기대할게요.
아주 진지한 의견을 주셨습니다.
플로라님의 댓글 의견이 바로 쥐스킨트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비평을 받는 작가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평가의 독설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잘 알려주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플로라님은 문장에 대한 독해력이 뛰어나신 분처럼 보입니다. 작품을 읽고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이 바로 독서의 힘이겠지요.
다음 편은 곧 이어질 겁니다. 플로라님의 건강한 날들을 기원합니다.
영화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책을 찾아 읽었던 경험치 1인
독일영화 향수, 유리병 속의 아름다운 여인 사체 지금도 선명히 떠오르는 납량 특집 맞네요
마리님, 답글이 늦었습니다.
마리님도 영화와 소설을 모두 접한 분이시군요. 저는 소설로 먼저 만났지만 영화 또한 나름 인상 깊게 봤던 작품입니다.
원래 이 글은 향수를 쓰기 위해 도입부에 다음 블로그 사건부터 꺼낸 것인데 중간에 막혀 진전이 안 되더군요.
그렇다고 옛날 글 옮겨오기는 내키지가 않고,, 이것이 즉석 글의 묘미이기도 합니다. 마리님, 항상 좋은 날들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