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가의 후손을 찾아서
--고 주시경 선생의 후손--
'조광(朝光)'은 이번 호부터 우리 사회에 많은 공헌을 끼치고 돌아가신 명가의 후손을 찾아뵙고 고인의 이야기와 또 그 뒤의 일을 듣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일 먼저 '한글'의 아버지로 우리 머리에 깊이 새겨진 주시경 선생의 맏아드님 백산 씨를 찾았지요.
씨의 댁은 아현리라고 하나 낮에는 늘 죽첨정(竹添町) 옥산당(玉山堂) 간판점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그리로 갔습니다. 오후 두 시의 바람이 몹시 따사합니다. 자동차 창고 같은 집 2층 나무 층계를 밟아 올라가서 유리창에 '페인트'로 무슨 글자를 쓰고 있는 젊은이에게 주백산 씨가 계신 데를 물었습니다. 사무실도 아닌 듯싶은 그 방 한 구석 아무렇게나 깎아 만든 나무 의자에서 무엇을 쓰고 계신 이가 그분이라는 것이므로 나는 곧 찾아간 뜻을 말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널마루 위에 화로도 아니고 스토브도 아닌 작은 양철 화로 같은 것에 숯불이 핍니다.
"정말 댁을 찾아가야 할텐데 늘 안 계시다고 해서 이렇게 일 보시는 데를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천만에요. 저의 집은 보시나마나 상상하시는 대로 그저 그렇습니다."
"옛날 일을 다 기억하십니까?"
"생각나는 것도 있고 잊어버린 것도 있습니다."
"주 선생님이 언제 돌아가셨지요?"
"서른아홉에 돌아가셨습니다. 벌써 스물세 해가 되었죠."
씨는 얼굴을 흐리시다가 다시 말을 이으십니다.
"지난 11월 6일에 배재 학교 강당에서 환갑 기념제라고 해서 아버지의 친구와 제자 여러 분이 모여 식을 거행한 일이 있지요."
"선생이 남겨 놓으신 유품 중에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책입니다."
"그 책을 지금 다 보존하셨습니까?"
"보존하느라고는 하는데 여러 분이 빌려 가신 것도 많습니다."
"선생이 저술하신 서적은 없습니까?"
"'조선어 문법'과 '말의 소리'라는 두 책이 있습니다."
"선생이 생존 때에 늘 하시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를 제가 열한 살 먹던 여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너무 어릴 적 일이라 태반 잊어버렸습니다만 아직껏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은 몸을 건강하게 하라던 말씀입니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이 건전하다고 하시면서 모든 기거 동작을 꼭 규율을 지키게 했습니다. 밥 먹는 거나 잠자는 거나 밥의 양까지도 늘 일정하게 하셨으니까요. 그리고 일요일이면 으레 등산하는 것을 잊지 않게 하셨습니다."
"지금 그래 아버님의 뜻을 좇으십니까?"
"좇아야만 하겠다고 늘 마음엔 두고 있습니다만 보시는 대로 생활이 이 모양이 되다 나니 마음뿐에서 그치고 맙니다. 저는 그저 평범한 사나이인 까닭인가 봐요. 저의 아버지는 그렇게 곤궁한 살림을 하시면서도 늘 사회를 위하시는 마음이 크셔서 돌아가시던 날까지도 한글 문법을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아버님이 세상 떠나시던 날까지 기록한 일기책을 뒤져 보면 거기는 하루도 자기를 위해서 사신 날이 없었던 것 같습디다."
"그 일기책을 지금 가지고 계십니까?"
"제게 없습니다. 최남선 선생에게 가 있습니다."
"선생이 사시던 집에서 지금 사십니까?"
"아니지요.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적에 살던 집은 지금 남산 밑, 옛날 동문 밖 '창골'이라는 데였지요."
"그 집은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모르지요. 본래 좋은 집이 못 됐으니까 헐렸는지 무너졌는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지!"
씨는 지나간 날을 한참 회상하는 양으로 아무 말씀 없이 햇발이 비낀 유리창을 멀거니 바라보십니다.
"선생의 유언을 생각하십니까?"
"병환이 나셔서 곧 돌아가시느라고 유언도 없으셨답니다."
"선생의 유족들은 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어머님은 10년 전에 돌아가시고 큰누님은 사직동에서 사시고 작은 누이동생은 도렴동에서 살림을 하고 제 남동생은 지금 조선일보사에 있고 저는 이렇게 간판업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이 살아 계실 적의 일화를 기억하십니까?"
"아까도 말씀했지만 제가 너무 어려서 돌아가신 탓으로 별반 모릅니다. 요마적 기념제 때에 신봉조 선생님이 아버님의 일화를 물으시길래 제가 아는 것은 두서너 가지밖에 없고 해서 제 큰고모님한테 편지로 물어보았더니 회답이 오기는 왔으나 식이 지난 뒤에 와서 그날 저녁엔 이야기를 못하고 말았지요"
"그럼 기억나시는 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
"그 편지가 제게 있으니 필요하시면 갖다 쓰시지요." 하고 씨는 맏고모님한테서 왔다는 편지 그대로를 내게 주십니다.
모친 이 씨께서 꿈속에 신령이 나타나 흰 꿩 세 마리를 주면서 말씀하시되 이는 너희 동방 인재의 지극한 보물이라고 하기에 받아 쥐었더니 홀연히 천지가 불빛으로 변하므로 놀라 깼는데 그 달부터 네 아버지를 잉태하니라.
어렸을 때 항상 내게 업혀서도 울지 않고 보채지 않으며 조금도 괴롭히지 않으므로 동네 사람들이 안순(安順)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느니라.
대여섯 살 때에도 놀며 하는 노래가 "어서 커라. 어서 커라. 할 일이 있으니 어서 커라." 하고 매일 중얼거리길래 동네 사람들이 물어 가로되 "네 할 일이 무엇이뇨?" 하면 "내 할 일이 많소이다." 하고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할 뿐이었느니라.
여섯 살 때부터 힘 자라는 대로 살림 기구들을 정돈하고, 늘 흉년이어서 식량이 될 나물을 캤는데 질경이 작은 것까지 캐거늘 그 연고를 물은즉 배가 주리어 멀리 못 가고 앉아서 캤다고 하니라. 일곱 살 때 밝은 달이 중천에 높이 솟았거늘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달 따러 갔는데 다른 아이들은 가다가 모두 돌아왔으나 혼자서 산을 넘어갔느니라.
너의 아버지는 무한히 자비하였느니라. 식량이 되는 풀을 뽑아 가지고 어머님께 어서 갖다 드린다고 바삐 돌아오다가 거리에서 배 주린 과객이 달라고 하매 모두 주고 다 먹은 후에 어머님한테 와 그 사실을 말하였느니라.
어려서부터 의복을 단정히 하고 형과 동생까지 단정하게 해 주었느니라.
여덟 살 때에 나무를 찍어다 지게를 능히 만들었느니라.
아홉 살 때에 짚신을 삼아서 팔아 쌀 한 말을 사다가 가족의 주림을 면하게 하였느니라. 어느 날 동네 어른이 점심하라고 사 준 엿 한 덩이를 먹지 않고 가지고 와서 밤에 여러 형제가 잠든 후에 모친께 드렸느니라.
열두 살에 서울로 상경하게 되매 동네 동무들을 찾아가 "내가 상경하니 너희들 여러 친구들에게 내 동생 시강, 내 형 시류 씨를 부탁하니 잘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느니라.
이것이 백산 씨의 고모님께서 보내신 편지 중에 씌어 있는 주시경 선생의 어릴 적 일화입니다.
나는 그 글발을 다 내려 읽고 너무 감격해서 백산 씨의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위인의 생활은 어릴 적부터 다르다는 것을 다시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남기고 가신 자손들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리라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백산 씨가 지금 사랑하는 부인과 귀여운 두 따님의 생활을 위해서 그날그날 헛되이 보내신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씨의 말씀이 한마디가 뜻 없지 않은 것을 나는 잘 알았습니다.
[조광(朝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