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 金世煥(1916 ~ 1977)】 " 일제 군사교련 반대 및 독립운동 결의"
1916년 9월 12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동면(東面) 용산리(龍山里)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 현 중앙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동교 학생들이 조직한 중앙반제동맹(中央反帝同盟)에 참여, 활동하였다.
중앙반제동맹은 1933년 10월 중앙고보생 한동정(韓東正) 등이 주도하여 만들었다. 1930년대 전반 학생운동은 주로 독서회와 반제동맹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중앙반제동맹은 1931년 일제의 만주침략 후, 이에 반대하여 반제·반전운동을 벌이는 실천적 운동 조직이었다.
중앙반제동맹이 결성되자 그 뜻에 동조하여 장현진(張鉉進)·하명식(河明植)·전민수(田民秀)·이건호(李建鎬)·유인수(劉仁洙)·김인석(金仁石)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그리고 각 학급에 반제동맹원을 두고 사회주의를 선전하였으며 동지를 확보해나갔다. 1933년 11월, 학생 간 분규가 일어나자 중앙고보 측은 해당 학생들을 퇴학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하였다. 이에 동맹원들과 함께 퇴학생들의 복교를 주장하며 전교생의 동맹휴학을 이끌어 냈다.
1934년 3월 중앙반제동맹 활동을 위해 동지 확보 및 사회주의 선전, 2주마다 1회 토요일에 회합할 것을 제시하였다. 또한 유연(柳衍)과 함께 외부 연락을 담당하여 회합을 주도, 결속을 다졌다. 이 일로 1934년 5월 초 유연·이능규(李凌圭)와 함께 경기도 경찰부에 체포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이후에도 동맹원들과 비밀 회합을 지속하며 군사교련에 반대할 것과 독립운동을 결의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일제 경찰의 압박과 감시가 심해지자 1934년 6월, 조직을 해체하고 개인 연락을 통해 비밀리에 조직을 존속시켰다. 1935년 2월부터 ‘전교오르그위원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같은 달, 중앙고보 4학년 정양원(鄭良元)·김학수(金學秀)가 부당하게 퇴학당하자 중앙반제동맹 회원과 함께 주도하여 학원 연대 투쟁을 시작하였다. 자필 연대퇴학원서를 작성하는 한편 중앙고보 교장과 교사들의 해산 명령에도 교실 문 앞을 막고 퇴학 취소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때 종로경찰서에서 20여 명의 경찰이 출동하여 100여 명의 중앙고보 학생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 과정에서 중앙반제동맹 조직과 활동이 드러나 1년 이상 미결 구류상태로 일제 경찰의 심문을 받았다. 1936년 10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미결구류일수 300일 본형산입)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