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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 外編 12篇 天地篇 第11章(장자 외편 12편 천지편 제11장)
[제11장 해석]
자공子貢이 남쪽 초나라를 여행하고 진晉나라로 돌아올 때 한수漢水의 남쪽을 지나다가 한 노인이 야채밭에서 막 밭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땅을 파서 길을 뚫고 우물에 들어가 항아리를 안고 나와 밭에 물을 대고 있었는데 끙끙대면서 힘은 많이 쓰지만 효과는 적었다. 자공이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기계가 있는데 하루에 백 이랑이나 물을 댈 수 있습니다. 힘은 아주 조금 들이고도 효과는 크게 얻을 수 있으니 어르신은 그걸 원하지 않으십니까?”
밭일하던 노인이 얼굴을 들어 자공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는건데?”
자공이 대답했다. “나무에 구멍을 뚫어 기계를 만들되 뒤쪽은 무겁고 앞쪽은 가볍게 하면 잡아당기듯 물을 끌어올리는데 콸콸 넘치듯이 빠릅니다. 그 이름은 두레박이라고 합니다.”
밭일하던 노인은 불끈 얼굴빛을 붉혔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내 스승에게 들으니 ‘기계를 갖게 되면 반드시 기계로 인한 일이 생기고, 기계로 인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기계로 인한 욕심[기심機心]이 생기고, 기심機心이 가슴속에 있으면 순수 결백함이 갖추어지지 못하고, 순수 결백함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신묘한 본성本性[신생神生]이 안정을 잃게 된다. 신생神生이 불안정하게 된 자에게는 도道가 깃들지 않는다.’라고 했다. 내가 〈두레박의 편리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부끄럽게 생각하여 쓰지 않을 뿐이다.”
자공子貢은 겸연히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얼마 있다가 밭일하던 노인이 말했다. “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자공이 말했다. “공구孔丘의 문인입니다.”
밭일하던 노인은 말했다. “그대는 박학함으로 성인聖人 흉내를 내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고서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슬픈 목소리로 노래하여 온 천하에 명성名聲을 팔려는 자가 아닌가. 그대는 지금이라도 그대의 신기神氣를 잊고 그대의 신체를 버려야만 도道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몸조차도 다스리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스릴 것인가. 그대는 이만 가보시게. 내 일 방해 말고.”
자공子貢이 부끄러워 얼굴이 창백해져서 자신을 잊은 채 정신을 못 차리고 삼십 리나 간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자공의 제자가 물었다. “아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선생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그를 만나 보고서는 얼굴빛을 바꾸고 창백해져 종일토록 평소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셨습니까?”
자공이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에 나는 천하에 우리 선생님 한 분뿐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그 위에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선생님한테서 듣기로 ‘일은 잘 되기를 구하고, 功은 이루어지기를 구하여 힘은 적게 들이고 효과는 많이 얻는 것이 성인聖人의 도道이다.’라고 하셨는데 이제 비로소 그렇지 않음을 알았다. 도道를 확고하게 잡으면 덕德이 완전하게 갖추어지고, 덕이 완전히 갖추어지면 육체가 완전히 갖추어지고, 육체가 완전히 갖추어지면 정신이 완전히 갖추어지니, 정신이 완전히 갖추어지는 것이야말로 성인聖人의 도道이다. 〈이 성인聖人은〉 자신의 삶을 세상에 맡겨서 백성들과 함께 나란히 걸어가지만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멍한 모습으로 순박함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지라 일의 효과와 이익, 기계와 기교 따위는 반드시 그의 마음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같은 사람은 자기의 뜻에 맞지 않으면 어디에도 가지 않고, 자기의 마음이 원치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아서 비록 온 천하 사람들이 칭찬하면서 그가 하는 말이 옳다 해도 오연傲然(태도態度가 거만하거나 그렇게 보일 정도程度로 담담淡淡함)히 돌아보지 아니하고, 온 천하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면서 그의 생각을 잘못이라 해도 태연히 들은 체하지 않는다. 온 천하가 비난하고 칭찬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익손益損이 없으니 이런 사람을 일컬어 내면의 덕德이 온전히 갖추어진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 같은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처럼 남의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는 인간이다.”
〈자공子貢이〉 노나라에 돌아와 공자孔子에게 이야기했더니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노인은 혼돈씨渾沌氏의 도道를 잘못 닦은 사람이니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하며, 내면만 다스리고 외양은 다스리지 않은 사람이다. 대저 명백한 지혜로 소박한 곳으로 들어가고 무위로 순박함으로 돌아가서 본성을 체득하고 정신을 지키면서 현실의 세속 세계에서 〈특별히 표날 것도 없이 자유로이〉 노니는 사람이었다면 네가 그런 사람을 보고 놀랄 것까지야 있었겠는가. 또 혼돈씨의 도술은 〈상식적인 사람인〉 나나 네가 어찌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인가.”
[원문과 해설]
子貢南遊於楚反於晉 過漢陰見一丈人方將爲圃畦
鑿隧而入井 抱甕而出灌 搰搰然用力甚多 而見功寡
子貢曰 有械於此一日浸百畦 用力甚寡而見功多 夫子不欲乎
爲圃者卬而視之曰 奈何
曰鑿木爲機後重前輕 挈水若抽數如泆湯 其名爲橰
(자공이 남유어초하다가 반어진할새 과한음하야 견일장인이 방장위포휴러라
착수이입정하야 포옹이출관호대 골골연용력심다코 이경공과하더니
자공왈 유계어차하니 일일에 침백휴호대 용력심과이견공다하니 부자는 불욕호아
위포자 앙이시지왈 내하오
왈 착목위기호대 후중전경하면 설수약추하며 삭여일탕하니 기명위고라)
자공子貢이 남쪽 초나라를 여행하고 진晉나라로 돌아올 때 한수漢水의 남쪽을 지나다가 한 노인이 야채밭에서 막 밭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땅을 파서 길을 뚫고 우물에 들어가 항아리를 안고 나와 밭에 물을 대고 있었는데 끙끙대면서 힘은 많이 쓰지만 효과는 적었다. 자공이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기계가 있는데 하루에 백 이랑이나 물을 댈 수 있습니다. 힘은 아주 조금 들이고도 효과는 크게 얻을 수 있으니 어르신은 그걸 원하지 않으십니까?”
밭일하던 노인이 얼굴을 들어 자공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는건데?”
자공이 대답했다. “나무에 구멍을 뚫어 기계를 만들되 뒤쪽은 무겁고 앞쪽은 가볍게 하면 잡아당기듯 물을 끌어올리는데 콸콸 넘치듯이 빠릅니다. 그 이름은 두레박이라고 합니다.”
- 자공子貢 : 인명. 공자孔子의 제자. 위衛나라 출신. 성姓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자공子貢은 자字.
- 한음漢陰 : 한수漢水의 남쪽. 음陰은 산의 북쪽, 물의 남쪽을 가리킨다.
- 일장인一丈人 : 한 명의 노인. 장인丈人은 연장자에 대한 존칭. 우리말 ‘어르신’에 해당.
- 방장위포휴方將爲圃畦 : 바야흐로 막 밭일을 시작함. 포圃와 휴畦는 모두 채마밭을 뜻하고 그중에서도 휴畦는 50무畝 면적의 밭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모두 밭일을 의미한다. 위포휴爲圃畦는 밭일을 한다는 뜻.
- 착수이입정鑿隧而入井 : 땅을 파서 굴을 뚫고 우물로 들어감. 수隧는 수도隧道(평지나 산, 바다, 강 따위의 밑바닥을 뚫어서 굴로 만든 철도鐵道나 도로)로 여기서는 우물로 통하는 굴을 뜻한다.
- 포옹이출관抱甕而出灌 : 항아리를 안고 나와 물을 댐. 항아리에 물을 담아 그것을 안고 나와 밭에 물을 준다는 뜻.
- 골골연용력심다이견공과搰搰然用力甚多而見功寡 : 끙끙대면서 힘은 많이 쓰지만 효과는 적음. 골골搰搰은 애쓰는 모양. 견공과見功寡는 효과를 봄이 적다는 뜻.
- 일일一日 침백휴浸百畦 : 하루에 백 이랑의 토지에 물을 댈 수 있다는 뜻. 침浸은 물을 댄다는 뜻으로 앞의 관灌과 같은 뜻.
- 위포자爲圃者 : 밭일하던 사람. 곧 노인.
- 앙이시지卬而視之 : 얼굴을 들어 자공子貢을 봄. 앙卬자가 앙仰으로 된 판본(道藏本, 趙諫議本, 覆宋本)이 있으며 앙仰의 뜻.
- 설수약추挈水若抽 : 잡아당기듯 물을 끌어올림. 설挈은 끌다[제提]는 뜻. 추抽는 잡아당긴다는 뜻.
- 삭여일탕數如泆湯 : 콸콸 넘치듯이 빠름. 빠르기가 뜨거운 물이 끓어 넘치듯 함. 삭數은 빠르다[질疾]는 뜻.
爲圃者忿然作色而笑曰 吾聞之吾師
有機械者必有機事 有機事者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 則純白不備 純白不備 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吾非不知 羞而不爲也
(위포자 분연작색이소왈 오는 문지오사호니
유기계자는 필유기사하고 유기사자는 필유기심하니
기심이 존어흉중하면 즉순백이 불비하고 순백이 불비하면 즉신생이 부정하나니
신생이 부정자는 도지소부재야라하니 오비부지언마는 수이불위야하노라)
밭일하던 노인은 불끈 얼굴빛을 붉혔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내 스승에게 들으니
‘기계를 갖게 되면 반드시 기계로 인한 일이 생기고, 기계로 인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기계로 인한 욕심[기심機心]이 생기고,
기심機心이 가슴속에 있으면 순수 결백함이 갖추어지지 못하고, 순수 결백함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신묘한 본성本性[신생神生]이 안정을 잃게 된다.
신생神生이 불안정하게 된 자에게는 도道가 깃들지 않는다.’라고 했다. 내가 〈두레박의 편리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부끄럽게 생각하여 쓰지 않을 뿐이다.”
- 분연작색이소忿然作色而笑 : 불끈 얼굴빛을 붉혔다가 웃음. 막 화를 내려다가 이내 웃어 버리는 모양. 분연忿然은 성난 모양.
- 유기계자有機械者 필유기사必有機事 : 기계를 갖게 되면 반드시 기계로 인한 일이 생김. 機事는 기계로 인한 일, 곧 기계가 없으면 하지도 않을 인위적인 일을 조장하게 된다는 뜻.
- 유기사자有機事者 필유기심必有機心 : 기계에 의한 교묘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기계로 인한 욕심[機心]이 생김. 機心은 기계로 인한 마음으로 과도한 욕심을 뜻한다.
- 기심機心 존어흉중存於胸中 즉순백불비則純白不備 : 機心이 가슴속에 있으면 순수 결백함이 갖추어지지 못함.
- 순백불비純白不備 즉신생부정則神生不定 : 순수 결백함이 없어지면 신묘한 본성[신생神生]이 안정을 잃게 됨. 신생神生의 생生은 성性.
- 신생부정자神生不定者 도지소부재야道之所不載也 : 신생神生이 불안정하게 된 자에게는 도道가 깃들지 않음. “도道를 실을 수 없음을 말한 것.”(林希逸), “神性이 불안한 자는 道에 머물 수 없기 때문에 道가 실리지 않는다고 말한 것.”(陸西星). 또한 재載를 승乘으로 보아 도道가 그 위에 올라타지 않는다, 즉 도道에 의해 버림받는다고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의에 큰 차이는 없다.
- 오비부지吾非不知 수이불위야羞而不爲也 :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나 부끄럽게 생각하여 쓰지 않을 뿐임. 그런 기계가 있다는 걸 몰라서 쓰지 못하는게 아니라 알고 있지만 부끄럽게 여겨서 쓰지 않는다는 뜻.
子貢瞞然慙 俯而不對有閒 爲圃者曰 子奚爲者邪 曰孔丘之徒也
(자공이 문연참하야 부이부대러니 유한이오 위포자왈 자는 해위자야오 왈 공구지도야라)
자공子貢은 겸연히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얼마 있다가 밭일하던 노인이 말했다. “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자공이 말했다. “공구孔丘의 문인입니다.”
- 문연참瞞然慙 : 겸연히 부끄러워함. 瞞(부끄러워할 문), 慙(부끄러울 참)
- 자子 해위자야奚爲者邪 : 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자子는 2인칭. 야邪는 의문사.
爲圃者曰 子非夫博學以擬聖 於于以蓋衆 獨弦哀歌
以賣名聲於天下者乎 汝方將忘汝神氣 墮汝形骸而庶幾乎
而身之不能治 而何暇治天下乎 子往矣無乏吾事
(위포자왈 자는 비부박학이의성하며 어우이개중하야서 독현애가하야
이매명성어천하자호아 여 방장망여의 신기하며 타여의 형해라야 이서기호인저
이신지불능치어니 이하가에 치천하호리오 여 왕의라 무핍오사어다)
밭일하던 노인은 말했다. “그대는 박학함으로 성인聖人 흉내를 내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고서,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슬픈 목소리로 노래하여,
온 천하에 명성名聲을 팔려는 자가 아닌가. 그대는 지금이라도 그대의 신기神氣를 잊고 그대의 신체를 버려야만 도道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몸조차도 다스리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스릴 것인가. 그대는 이만 가보시게. 내 일 방해 말고.”
- 박학이의성博學以擬聖 : 박학함으로 성인聖人 흉내를 냄. 의擬는 비슷하게 흉내 내다는 뜻.
- 어우이개중於于以蓋衆 :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림. 어우於于는 허튼소리. “자랑하고 과장하는 모양”(司馬彪), 개중蓋衆의 개蓋는 덮는다는 뜻. 곧 민중을 위로부터 압도하여 혼란에 빠뜨린다는 뜻이다.
- 독현애가獨弦哀歌 :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슬픈 목소리로 노래함.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여 스스로 자신의 학설을 암송한다는 뜻.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스스로 자신의 말을 암송함을 말함이다.”(林希逸).
- 자비子非……이하 천하자호天下者乎까지 : 자공子貢에게 “그대는 …… 온 천하에 명성名聲을 팔려는 자가 아닌가.”라고 한 말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 구절을 바로 자공子貢을 지칭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자공의 스승 공자孔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그대는 저 박학함으로 성인聖人 흉내를 내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고서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슬픈 목소리로 노래하여 온 천하에 명성을 팔려는 그대의 스승[공자孔子]과 한패가 아닌가.”로 번역할 수도 있다.
- 여汝 방장망여신기方將忘汝神氣 타여형해墮汝形骸 이서기호而庶幾乎 : 그대는 지금이라도 그대의 신기神氣를 잊고 그대의 신체를 버려야만 도道에 가까워질 것이다. 신기神氣는 욕심에 따라 움직이는 정신 작용의 분별지分別知 즉 기심機心을 뜻하며, 타여형해墮汝形骸는 자신의 신체, 곧 육체를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서기庶幾는 도道에 가까워진다는 뜻.
- 이신지불능치而身之不能治 이하가치천하호而何暇治天下乎 : 그대의 몸조차도 다스리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스릴 것인가. 이而는 2인칭으로 여汝와 같다.
- 자왕의子往矣 무핍오사無乏吾事 : 그대는 이만 가 보시게. 내 일 방해 말고. 핍乏은 폐廢의 뜻으로 방해한다는 뜻. ‘무핍오사無乏吾事’는 앞의 제7장에 나오는 ‘무락오사無落吾事’와 같다. 무無는 금지사로 무毋와 같다.
子貢卑陬失色 頊頊然不自得 行三十里而後愈
其弟子曰 向之人何爲者邪 夫子何故見之 變容失色 終日不自反邪
(자공이 비추실색하야 욱욱연부자득하야 행삼십리이후에야 유한대
기제자왈 향지인은 하위자야완대 부자는 하고로 견지하고 변용실색하야 종일부자반야잇고)
자공子貢이 부끄러워 얼굴이 창백해져서 자신을 잊은 채 정신을 못 차리고 삼십 리나 간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자공의 제자가 물었다. “아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선생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그를 만나 보고서는 얼굴빛을 바꾸고 창백해져 종일토록 평소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셨습니까?”
- 비추실색卑陬失色 : 부끄러워 얼굴이 창백해짐. 卑陬를 “부끄럽고 두려워하는 모양.”(李頤), “안색을 차리지 못함.”(陸德明).
- 욱욱연부자득頊頊然不自得 : 자신을 잊은 채 정신을 못 차림. 욱욱頊頊은 제정신을 못 차린다는 뜻. “스스로를 잃어버린 모양.”(李頤).
- 행삼십리이후行三十里而後 유愈 : 삼십 리나 간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림. 30리는 일사一舍로 사舍는 군대가 하루 동안 행군하는 거리이다. 곧 자공子貢이 하루 종일 걸어간 뒤에 증세가 겨우 나았다[유愈]는 뜻이다.
- 향지인向之人 하위자야何爲者邪 : 아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향向은 아까. 과거의 어느 시점을 지칭한다.
- 변용실색變容失色 : 얼굴빛을 바꾸고 창백해짐. 변용變容은 얼굴을 바꿈. 실색失色은 본래의 얼굴색, 곧 화기를 잃어버렸다는 뜻.
- 종일부자반야終日不自反邪 : 종일토록 평소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함. 반反은 회복한다는 뜻.
曰始 吾以爲天下一人耳 不知復有夫人也 吾聞之夫子
事求可功求成 用力少見功多者 聖人之道 今徒不然
執道者德全 德全者形全 形全者神全 神全者聖人之道也
託生與民竝行而不知其所之 汒乎淳備哉 功利機巧 必忘夫人之心
若夫人者 非其志不之 非其心不爲
雖以天下譽之 得其所謂 謷然不顧
以天下非之 失其所謂 儻然不受
天下之非譽 無益損焉 是謂全德之人哉 我之謂風波之民
(왈시에 오 이위천하에 일인이라 부지복유부인야호라 오 문지부자호니
사구가하며 공구성하야 용력이소하고 견공이 다자는 성인지도라하니 금도불연하야
집도자덕전하고 덕전자 형전하고 형전자 신전하나니 신전자는 성인지도야니라
탁생하야 여민으로 병행이부지기소지라 망호순비재라 공리기교는 필망부인지심인저
약부인자는 비기지면 부지하며 비기심이면 불위하야
수이천하로 예지하야 득기소위하야도 오연불고하며
이천하로 비지하야 실기소위하야도 당연불수하야
천하지비예에 무익손언하나니 시위전덕지인재인저 아지위풍파지민이니라)
자공이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에 나는 천하에 우리 선생님 한 분뿐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그 위에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선생님한테서 듣기로 ‘일은 잘 되기를 구하고, 공功은 이루어지기를 구하여 힘은 적게 들이고 효과는 많이 얻는 것이 성인聖人의 도道이다.’라고 하셨는데 이제 비로소 그렇지 않음을 알았다.
도道를 확고하게 잡으면 덕德이 완전하게 갖추어지고, 덕이 완전히 갖추어지면 육체가 완전히 갖추어지고, 육체가 완전히 갖추어지면 정신이 완전히 갖추어지니, 정신이 완전히 갖추어지는 것이야말로 성인聖人의 도道이다.
〈이 성인聖人은〉 자신의 삶을 세상에 맡겨서 백성들과 함께 나란히 걸어가지만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멍한 모습으로 순박함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지라 일의 효과와 이익, 기계와 기교 따위는 반드시 그의 마음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같은 사람은 자기의 뜻에 맞지 않으면 어디에도 가지 않고, 자기의 마음이 원치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아서
비록 온 천하 사람들이 칭찬하면서 그가 하는 말이 옳다 해도 오연傲然(태도態度가 거만하거나 그렇게 보일 정도程度로 담담淡淡함)히 돌아보지 아니하고,
온 천하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면서 그의 생각을 잘못이라 해도 태연히 들은 체하지 않는다.
온 천하가 비난하고 칭찬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익손益損이 없으니 이런 사람을 일컬어 내면의 덕德이 온전히 갖추어진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 같은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처럼 남의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는 인간이다.”
- 이위천하일인이以爲天下一人耳 : 천하에 우리 선생님 한 분뿐이라고 생각함. 자공子貢의 스승인 공자를 지칭한다. 천하일인天下一人은 천하지제일인天下之第一人으로 천하에서 첫 번째 가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
- 부지복유부인야不知復有夫人也 : 다시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음. 부인夫人은 밭일하던 노인을 지칭한다.
- 사구가事求可 공구성功求成 : 일은 잘 되기를 구하고, 功은 이루어지기를 구함. 여기서는 자공으로 대변되는 유가의 주장을 비판하는 맥락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송학宋學의 집대성자인 주희朱熹는 자신의 ≪맹자집주孟子集註≫ 〈양혜왕梁惠王 하下〉의 주석에서 양시楊時의 글을 인용하면서 “무릇 일은 반드시 되기를 기약하고 공은 반드시 이룰 것을 기약하여 지모의 끄트머리에 기필하여 올바른 천리를 따르지 않는 것은 성현의 도가 아니다.”라고 하여 도리어 ≪장자莊子≫의 이 구절에 유가의 이념을 담았다.
- 금도불연今徒不然 : 이제 비로소 그렇지 않음을 알았음. 도徒를 내乃로 풀이하여 ‘비로소’로 번역.
- 집도자덕전執道者德全 : 도道를 확고하게 잡으면 덕德이 완전하게 갖추어짐. 도를 터득한 사람은 순백의 덕성을 완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 형전자신전形全者神全 : 육체가 완전히 갖추어지면 정신이 완전히 갖추어짐. 신전神全은 정신이 왕성해진다.
- 탁생託生 : 자신의 삶을 세상에 맡김.
- 여민병행이부지기소지與民竝行而不知其所之 : 백성들과 함께 나란히 걸어가지만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함. 도를 터득한 사람은 인간 세상에 자신을 의탁하여 보통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지만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따로 정한 것이 없어서 (즉 어디로 갈지를 알지 못해서), 사람들이 볼 때도 그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는 뜻.
- 망호순비재汒乎淳備哉 : 멍한 모습으로 순박함을 온전히 갖춤. 망汒은 어리석은 모습으로 망茫과 통한다.
- 공리기교功利機巧 필망부인지심必忘夫人之心 : 일의 효과와 이익, 기계와 기교 따위는 반드시 그 사람의 마음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임. 망忘은 망亡으로 무無와 통한다(林希逸).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공리나 기교를 추구하려는 생각이 없을 것이라는 뜻.
- 약부인자若夫人者 비기지부지非其志不之 : 그 같은 사람은 자기의 뜻에 맞지 않으면 어디에도 가지 않음. 지之는 간다는 뜻.
- 수이천하예지雖以天下譽之 득기소위得其所謂 오연불고謷然不顧 : 온 천하 사람들이 칭찬하면서 그가 하는 말이 옳다 해도 오연傲然히 돌아보지 아니함. 득得은 득得이라 함, 즉 옳다고 한다는 뜻이며 오연謷然은 거만하게 굴면서 관심을 두지 않는 모양으로 오연傲然와 같다.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온 송영자宋榮子와 같은 표현 “송영자宋榮子는 이런 자기 만족의 인물들을 빙그레 비웃는다. 그리하여 그는 온 세상이 모두 그를 칭찬하더라도 더 힘쓰지 아니하며 온 세상이 모두 그를 비난하더라도 더 기氣가 꺾이지 아니한다.”
- 이천하비지以天下非之 실기소위失其所謂 당연불수儻然不受 : 온 천하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면서 그의 생각을 잘못이라 해도 태연히 들은 체하지 않음. 실失은 실失이라 함, 즉 잘못이라 한다는 뜻이며, 당연儻然은 무심한 모양.
- 천하지비예天下之非譽 무익손언無益損焉 : 온 천하가 비난하고 칭찬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익손益損이 없음. 칭찬하건 비난하건 그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뜻.
- 시위전덕지인재是謂全德之人哉 : 이런 사람을 일컬어 내면의 덕德이 온전히 갖추어진 사람이라 함. 자공子貢이 노인을 극찬한 말.
- 아지위풍파지민我之謂風波之民 : 나 같은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처럼 남의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는 인간임. “풍파는 쉽사리 시비에 동요됨을 말한 것이다.”(선영宣穎)
反於魯以告孔子 孔子曰 彼假修渾沌氏之術者也
識其一不知其二 治其內而不治其外
夫明白入素 無爲復朴 體性抱神 以遊世俗之間者
汝將固驚邪 且渾沌氏之術 予與汝何足以識之哉
(반어노하야 이고공자한대 공자왈 피는 가수혼돈씨지술자야니
식기일이오 부지기이하며 치기내하고 이불치기외하나니라
부명백입소하야 무위복박하야 체성포신하야 이유세속지간자라면
여장고경야아 차혼돈씨지술을 여여여 하족이식지재리오)
〈자공子貢이〉 노나라에 돌아와 공자孔子에게 이야기했더니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노인은 혼돈씨渾沌氏의 도道를 잘못 닦은 사람이니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하며, 내면만 다스리고 외양은 다스리지 않은 사람이다.
대저 명백한 지혜로 소박한 곳으로 들어가고 무위로 순박함으로 돌아가서 본성을 체득하고 정신을 지키면서 현실의 세속 세계에서 〈특별히 표날 것도 없이 자유로이〉 노니는 사람이었다면
네가 그런 사람을 보고 놀랄 것까지야 있었겠는가. 또 혼돈씨의 도술은 〈상식적인 사람인〉 나나 네가 어찌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인가.”
- 가수혼돈씨지술자야假修渾沌氏之術者也 : 혼돈씨渾沌氏의 도道를 잘못 닦은 사람이다. 여기 가假는 진가眞假의 가假. 혼돈渾沌은 내편 〈응제왕應帝王〉편에 보이는 우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거기서는 일체의 감각기관이 없는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혼돈은 미분화未分化의 종합체로서 자연 그 자체를 비유한 것이며 도道의 존재 양식을 말한다.
- 치기내治其內 이불치기외而不治其外 : 내면만 다스리고 외양은 다스리지 않음. 내內와 외外에 대하여는 〈제19편 달생達生〉편에 보이는 내면內面(정신)만 기르고 외면外面(육체)을 소홀히 하다가 호랑이에게 그 육체[외外]가 잡혀 먹힌 선표單豹의 이야기를 참고.
- 명백입소明白入素 : 명백한 지혜로 소박한 곳으로 들어감. 밝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소박한 경지로 돌아간다는 뜻.
- 무위복박無爲復朴 : 무위로 순박함으로 돌아감. 무위를 지켜 순박함을 회복한다는 뜻. 자연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 체성포신體性抱神 : 본성을 체득하고 정신을 지킴. 참된 본성을 체득하고 정신을 지킨다는 뜻.
- 여장고경야汝將固驚邪 : 네가 그런 사람을 보고 놀랄 것까지야 있었겠는가. 장자莊子 철학哲學의 아류亞流 같은 위포노인爲圃老人(밭일하던 노인)처럼 혼돈씨渾沌氏의 도道를 잘못 닦은 사람을 보면 놀랄지 몰라도, “대저 명백한 지혜로 소박한 곳으로 들어가고 무위로 순박함으로 돌아가서 본성을 체득하고 정신을 지키면서 현실의 세속 세계에 〈특별히 표날 것도 없이 자유로이〉 노니는 사람을 만나 보았더라면, 어찌 놀랄 것까지야 있었겠는가.”라는 뜻. 여汝는 ‘너’이고 장將은 여기서는 강조强調의 조자助字이고 고固는 반드시[필必]의 뜻.
- 여여여予與汝 하족이식지재何足以識之哉 : 나나 네가 어찌 충분히 알 수 있겠는가. 나나 너 같은 속인이 어찌 그런 혼돈씨渾沌氏의 술術을 알 수 있겠는가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