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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 실렸던 글입니다.
공식 잡지나 언론에 실린 것은 아니구요.
Fichte의 독일 국민에게 고한 이란 글의 절반이 이 말의 주체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긴 글이긴 하지만 요즈음의 내 관심사의 일부입니다.
말에 대한 단상들
언어의 변화---말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새악시란 말은 참 고운 말이다. 발음도 좋고 아주 정겹게 들리는 말이었다. 새색시는 더욱 아름다운 말이었다. 우리 말 중에서 아름다운 말을 고르라면 꼭 들어가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옛날 이야기다.
술취한 흑인 병사가 바지춤을 헤치면서 아무데서나 “헤이! 색시없어. 색시, 색시”라고 하기 시작하면서 색시란 말은 나쁜 말이 되었다. 요즈음 길가는 처녀를 붙잡고 “이봐요, 색시!“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해 보라, 기차나 비행기의 여승무원에게나 음식점에서 음식 제공하는 여자에게 ”색시“했다가는 좋은 대접은커녕 성희롱으로 신고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어릴 때 본 영화로 스토리도 기억나지 않는데 영화 시작에 자막으로 나온 말이 아직도 기억나는 영화가 있다. 독일영화인데 미군 상대의 유흥업소 여자에 관한 영화였다. 영화 시작 전에
“Fräulein이란 말은 참 아름다운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처녀에게 Fräulein이라고 부르면 욕이다.”
대개 이런 내용이 나오고 영화가 시작된다. 이 말은 “처녀”란 뜻이다. 그것도 아주 귀엽다는 듯 아가씨에게 접근할 때 호의적으로 쓰던 말이었다. 고등학교때 독일어에서 어떤 단어의 뒤에 -lein이나 -chen이 붙으면 그 발음이 마음을 간질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중에도 Fräulein과 Mädchen은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런데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군이 진주하고 그들이 독일 사회에 교류하면서 어감이 달라졌다. 하룻밤 잠자리 상대를 찾는 미군들이 아무에게나 “Hay Fräulein!"하고 부르기 시작했다. 점차 이 말은 미군 상대의 매춘부를 뜻하는 말로 그 쓰임새가 바뀌었다. 그러니 독일인끼리 전에는 흔히 이름을 모르는 처녀들을 부를 때 그 상대가 사무원이건, 식당의 웨이트레스건, 아니면 길가는 데 길을 물으려고 여자를 돌려 세우려고 부르던, 이 말은 아무도 껄끄럽게 여기거나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말을 배울 때쯤에는 이미 이 말들이 독일에서는 함부로 입에 올리기 힘든 단어가 되었다는 말이 된다. 이제는 여자에게 이 말을 쓰면 욕으로 듣게 되었다.
내가 비에트남에서 본 일도 마찬가지다. 그 나라는 1950년대 초부터 대 프랑스 전쟁을 했고, 그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베트콩과의 전쟁으로 전선아닌 곳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미국의 참전과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나라의 군대가 그 땅에 들어갔다. 꽁가이란 말은 우리의 새악시 또는 아가씨란 말과 같은 뜻이다. 좋은 말이었다. 역시 외국 군인들이 많아지면서 나쁜 말이 되었다.
이렇게 좋은 뜻이나 어감의 말이 어떤 계기에 입에 담지 못할 나쁜 말로 취급되는 일이 많다. 언어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무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언어의 저질화, 황폐화를 막는 일은 어떤 말이 뜻하는 바가 변질됐다고 그 말을 버리고 자꾸 새 말을 대신 쓰지 말고 가능한 한 그 말의 교유한 속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노력이 없이 쉽게 다른 말을 쓰는 경향이 크다는 생각이다.
잘 알려진 가곡 가고파의 가사인 이은상의 시 가고파는 다음과 같다.
가고파
노산 이은상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린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 보고 저기 가 알아 보나
내 몫엔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안겨.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
일하여 시름 없고 단잠 들어 죄 없는 몸이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 동무 노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이나 깨끗이도 깨끗이.
이 아름다운 시가 바뀌었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국어 교과서에서 본 것인지 음악시간에 들어서 알게 된 것인지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으나 그 때에는 이 시에 나오는 “동무”란 단어 대신 “친구”라고 돼 있었다. 음악을 가르치시던 이흥렬선생님이 동무란 말이 훨씬 더 좋다고 말씀하셨다. 노래를 잘 하시는 분은 한번 불러보시기 바란다.
“어린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로 불러 보고
“어린 제 같이 놀던 그 친구들 그리워라”로 불러보시면 그 흥이 다름을 알게 될 것이다. 육이오를 전후한 사회에서 아버지도 “아버지 동무”, 선생도 “선생동무” 아내를 부를 때도 “여보”라기 보다 “이보라우 아내 여성동무”라고 부르던 꼴을 본 다음이니 노래가사나 국어 교과서에 동무란 말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시 시를 읽어 보시기 바란다. 전체 시에서 딱딱한 말은 친구란 말 하나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고향이란 말이 한자에서 온 말이긴 하나 친근감이 있는 단어다. 동무의 친근감, 발음상의 부드러움, 참으로 정감있는 말이다. 그러나 친구는 아무리 엮어 보아도 친근감은 주지 않는다. 딱딱하고, 꼭 거래하는 것 같고, 녹지 않는 사탕과 같다.
지금은 노래에도 시에도 원래대로 동무로 바뀌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말의 뜻의 바뀜
언어는 이렇게 언어 외적인 이유로 그 쓰임새나 느낌이 바뀌는 수가 있다. 1950년대에 우리는 사회주의란 말은 공산주의와 동의어쯤으로 취급했기에 이 말을 못 썼다. 그래서 주장은 분명 사회주의이면서도 자기는 사회주의자라고 하지 않고 “진보주의자”라고 했다. 조봉암의 정당은 분명 사회주의를 표방한 정당이었다. 그런데 그 때는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와 같다고 생각했으므로 사회주의 정당 대신 진보당이라고 했다. 물론 이 때 정당창당을 앞두고 내부분열이 있었다. 표방이념이 민주사회주의냐, 아니면 사회민주주의냐를 가지고 싸웠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 말이 그 말 같은데 사회주의자들은 분명히 다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제적 사회주자들도 이 두 이념을 가지고 서로 다투었다. 조봉암이 이들 두 파의 싸움을 중재하고 정치권이나 일반 국민의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도 고려해서 진보당이란 명칭을 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혁신당으로 하자는 주장도 있었는데 이 말도 혁명이라는 어감이 있어서 곤란하고, 어감 좋고, 앞으로 발전한다는 뜻의 진보라는 말을 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문제는 여러모로 심각하다. 진보에 해당하는 progressive란 말에는 어떤 정치적 주의나 주장은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정치적으로 좌파라든지 사회주의란 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 말의 번역어인 “혁신적”, “진보적”이란 우리말에는 역시 좌파나 사회주의의 뜻은 없다. 그런데 자유당시절 사회주의란 말을 못 쓰는 바람에 사회주의 정치를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를 진보주의자나 혁신주의자라고 칭했다. 그 후로 진보나 혁신이라는 말에는 사회주의라는 뜻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진보나 혁신은 좋은 말이다. 좋은 뜻으로의 개선, 개혁, 미래지향적이란 뜻이 들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진보주의나 혁신정당이란 말은 꼭 양두구육과 같아서 겉으로는 그 말의 좋은 점을 취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19세기의 구닥다리 사회주의적 생각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좌파 수구패거리들이 겉으로는 진보라고 주장하여 국민을 혼란시킨다. 구 쏘련에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 진보적이었고 결국 국가의 붕괴를 초래한 공산사회주의자들이 보수-수구였다. 미국, 뉴질랜드에도 진보당(Progressive Party)이 있긴 있으나 사회주의 정당은 아니고 개혁을 주장하는 정당들이다. 그나마도 유명무실하다.
말은 이렇게 뜻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양심선언”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말의 본 뜻은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의 주의, 주장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주장이 탄압을 받는다. 그래서 그 사람은 끊임없이 권력기관의 감시와 때로는 고문까지 받는다. 그런 압박에 견디다 못한 그가 할 수없이 자기주장을 더 이상 말 못하고 권력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말을 바꿀 수밖에 없어진다. 이런 가능성이 있을 때 그는 양심선언이라는 것을 해 놓는다. 자기는 변절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즉 “지금까지 나는 A가 옳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 내가 이 주장을 굽히고 반대가 옳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내 뜻이 아니라 나도 인간이기에 고통에 못 이겨 그런 말을 한 것이다”라고 양심선언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조건이 있다 그의 주변사람이 그의 신념을 인정해야 한다. 그가 그런 신념을 꺽지 않을 사람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가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음도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선언을 권위있는 사람 앞에서 해야 한다. 대개는 성직자들이 증인이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양심선언을 했다고 신문에 보도되었지만 오직 한번 가톨릭농민회사건에서 오원춘씨가 한 것만 양심선언이다.
“내가 양심에 걸고 맹세하는데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진실이다”라면서 남의 약점을 폭로하는 것은 양심선언이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떤 말의 뜻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양심선언이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걸핏하면 양심선언했다고 떠든다.
말은 약속이다. 배를 놓고 “나는 이것을 사과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언어의 명징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같은 말을 놓고 이렇궁 저렇궁하고 다툰다. “아 내 뜻은 그게 아니고”라고 도망가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신과 용어에 contamination이란 말이 있다. 정신분열병에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현상이 많다. 말의 혼란이다. 정치에서는 그대로 정치현실의 혼란으로 드러난다. “내 뜻은 그게 아니고”란 말은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한다. 어떤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건 오해야! 내 뜻은---”하고 누가 말하면 “아하! 내가 오해한 줄 알았더니 정해를 했구먼”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말은 분명한 뜻으로 써야 한다. 어떤 말에 다른 뜻을 부여하려면 분명한 이유와 그 사용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생각은 사회주의면서 진보란 말로 얼렁뚱땅해서는 안된다. 수구패거리들이 자기들의 부정을 감추려고 보수라고 자칭하는 것도 안 될 일이다. 그래야 토론이 된다.
말의 귀천?(諺文眞書?)
“말의 인프레”란 용어가 성립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말의 변천, 용어의 격상(?) 등에서 우리민족의 부정적인 사대주의를 보는 사람이다. 한 25년전 쯤에 정신과의사 정동철 선생은 책을 내면서 출판사 직원과 말의 쓰임새를 두고 의견의 충돌이 있었는데 결국 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 때 책이 어린이 성교육에 관한 책이었다. 그래서 쉽게 남자의 성기는 “자지”, 여자의 성기는 “보지”라고 표기하였다. 그랬더니 쌍말을 책에 쓸 수 없다고 해서 결국 이상한 외국 말로 썼단다.
한심한 민족이다. 자지는 쌍스러운 말이고 페니스는 고급스러운 말이고 음경은 아주 귀족적인 말인가? 그 물건이 옛날 젊잔 빼는 사회에서는 신사가 내놓고 말할 물건이 아니어서 그렇지 그 단어가 천박한 것이 아니다. 자지가 쌍말이라면 페니스도 음경(음침한 작대기라니!)도 쌍말이다.
옛날에는 시내버스에 차장이 있었다. 차장이 차장(車長)이 아니고 차장(車掌)이다. 차의 우두머리가 아니고 차의 손바닥이란 뜻이다. 이것이 직업을 천대하는 말이라고 해서 안내양이 되고 시내버스는 안내양이지만 고속버스는 안내양이 아니고 스튜어디스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시내버스도 그래야 한다고 하다가 이제는 그런 직종이 거의 없어졌다. 기사도 마찬가지다. 운전수가 운전기사가 되더니 이제는 운전이 붙으면 안 되고 기사래야 한단다. 그렇게 호칭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들이 하는 일이 달라진 것이 없다. 나는 지금도 비행기 승무원이 “여승무원, 남승무원”이면 되지 왜 "Steward, Stewardess"라야 되는지 모르겠는 사람이다. 이런 일은 부지기수다.
순수한 우리말로 된 것은 아랫것, 한문으로 된 것은 중간 것, 로마자로 된 것은 고급스러운 것, 이런 관념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이런 관념들은 생활현장에서 실제로 나타난다. 내가 먹은 국수중 가장 비싼 것이 9,000원짜리다. 내가 국내에서 먹어본 스파게티중 제일 싼 것이 9,000원쯤 된다. 짜장면으로 가면 차이가 더 커진다. 내가 대강 알아 본 바에 의하면 고급 삼선짬뽕에 들어가는 재료값이나 해물스파게티에 들어가는 재료나 값은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삼선 짬뽕을 15,000원 내라면 비싸다고 난리를 치면서 별것 아닌 해물 스파게티 한 접시에 우리 동네에 있는 그들 말대로 소위 “파스타집”이라면서 알아듣지도 못할 이상한 로마자로 이름붇친 구멍가게 같은 식당에서는 최하가 12,000원이다,(최근에 8,500원짜리 집이 하나 생겼다), 그런데도 젊은이들로 붐빈다. 싸다면서 모인다. 국수는 천하니 싸야 하고 스파게티는 고급이니 비싸야 한다는 말인가? 한국에서 못사는 사람이 끼니를 때우는 가장 헐한 음식이 국수(라면)라면 이태리에서 못사는 사람들이 헐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이 스파게티다.
한글보급에 앞장섰던 한국브리타니카의 사장이던 한창기씨가 한 말이 생각난다.
“김일성이 우리를 침범하려고 판 지하도는 ‘땅굴’, 우리가 힘들여서 뚫고 그래서 좋은 시설인 땅속 철길은 ‘지하철’, 좋은 것은 한문이나 로마자 이름으로 하고 나쁜 것은 순수 우리말로 이름을 짓는 이 정신을 고쳐야 합니다.”
그러니 김일성이 판 땅굴은 “김일성지하도”, 서울의 지하철은 ”땅속철길“로 해야 하지 않을가! 요즈음 아파트 이름을 보면 속이 부글거린다. 늙은 시어머니 찾아오기 힘들라고 외우기 힘든 영어 이름을 부친다지만 정신을 외국에 팔아먹는 행동들이다.
말의 주체성을 살려야 한다.
정부부서나 단체의 이름바꾸기
대한민국의 의사면허증은 여러 가지다. 보건부장관이 준 것, 보건사회부장관이 준 것, 보건복지부장관이 준 것, 보건복지가정부장관이 준 것, 다시 보건복지부장관이 준 것, 모두 다섯 종류다. 일본이나 미국의 행정부는 창설이후 많은 기능, 역할, 업무, 조직의 변화가 있었어도 개국당시의 이름을 거의 바꾸지 않고 있다. 일본 후생성은 1938년에 내무성에서 독립했다가 2001년에 일본 행정부 개편에 노동성을 흡수하여 후생노동성이 되었다. 그래도 그들은 일을 잘한다.
이렇게 우리는 어떤 일이 잘못되면 그 이름부터 바꾸기를 잘한다. 방첩대가 보안사령부로, 다시 기무사로 바뀌고 중앙정보부는 얼마나 여러번 이름이 바뀌었나. 그래서 그들의 하는 일이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개인의 호칭으로 넘어가자. 일본인들은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일반적으로 사람을 칭할 때 "oo상“이다. 서로 알게 되어 직업을 알게 된다든가, 학위를 알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호칭을 부친다. 우리나라에서는 ”XXX씨“라고 부르면 큰일 난다. 사람을 무시했느니, ”네가 뭔데 나를 씨라고 부르느냐?“는 등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다. 미국에서 "Mr Smith"하고 부른다고 시비를 받는 일은 없다. 사장부인도 ”OOO상“ ”Mrs Smith"다. 우리나라에서 사장부인에게 "XXX씨 혹은 부인“했다가는 사표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길거리에 넘치느니 사장이요 사모님이다.
말은 어떤 사물의 표상이다. 그 사물의 본질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본질을 바꿀 생각은 안하고 말만 번드르하게 바꿔서 문제가 해결된 척한다. 그런 것의 예가 걸핏하면 바뀌는 사회단체의 명칭, 정부부처의 이름들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 정신과의사들이 과의 명칭, 병의 명칭을 바꾸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정신과 전문의가 되던 심신의학 전문의가 되건 마음병 전문의가 되던 우리가 하는 일은 같다. 정신분열병이라고 하던 마음이 갈라진 병이라고 하던 그 병은 그 병이다. 다만 그 명칭이나 용어가 본질을 현저히 왜곡시킬 때에는 물론 고쳐야 한다.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로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말을 살려야 한다.
우리말로 새로운 말 만들자
70년대에 detente란 말이 국제관계문제에서 새로운 말로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잘은 모르지만 한자를 이용해서 새 말을 만들었다. 우리도 그래서 “동서화해(東西和解) 또는 동서화해무드”란 말로 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서 일본이 자기들이 만든 말이 어색하다고 그냥 “데땅뜨”로 쓰기로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인가 우리나라에서도 동서화해는 데땅뜨의 뜻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우리도 데땅뜨로 쓰기로 했다. 그 뒤로 동서화해란 말은 없어지고 언론이 모두 데땅뜨로 썼다. 그 새로운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데땅뜨와 detente가 같은 말일가?
70년대에 발간되던 “뿌리깊은 나무”란 잡지는 한글전용이었다. 그 잡지에 몇 편의 글을 발표하면서 우리말의 무궁무진한 쓰임새를 알게 되었다. 한글만으로도 얼마든지 뜻을 표현할 수 있다고 알게 되었다. 그 때 한일관계에 관한 특집에서 어떤 일본 특파원이 한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건성건성 쉽게 사는지 모르겠다. 일본에서 Philosophy란 말을 철학(哲學)이라고 번역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토론과 일반인들의 의견을 들었는지 아느냐”고 할 때 정말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는 그냥 일본을 따라 철학이라고 쓴다.
말은 자꾸 새롭게 생겨난다. 새롭게 이름을 부처야 할 사물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쉽다고 일본인이 한자를 써서 이름을 부첬다고 따라 쓸 일이 아니다. 우리말로 우리말답게 새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Computer는 일본말로 전산(電算)이고 중국말로 전뇌(電腦)다. 우리는 그냥 컴퓨터다. 자동차는 일본에서는 自動車고 중국에서는 汽車다. Cinema는 일본에서는 영화(映畵)고 중국에서는 전영(電映, 電影?)이다. 우리는 지금 무비 또는 씨네마란 말을 많이 쓴다. 같은 한자도 우리말과 일본말과 중국말에서 쓰임새가 다른 수가 많다. 한자로 만드는 신조어도 우리 쓰임새에 맞추어야지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이 먼저 만들었다고 그냥 따라가서는 안 된다.
생각은 말로 한다. 말이 남의 것에 종속되면 생각도 그에 따라간다. 우리 선배들은 나라는 없어졌지만 말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한글 살리기를 위해 감옥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우리말이 제대로 살아야 우리의 생각이 제대로 살아나고 그래야 우리민족이 남의 손가락질을 안 받는다.
첫댓글 공감되는 바가 많은 좋은 글,잘 읽었습니다.아가씨란 말도 아주 예쁜 말이었으나 지금은 나쁜 이미지로 변해 버렸어요.그리고 골프장 이름이 모조리 영어로 바뀌고......
매우 흥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컴퓨터 신조어가 쏟아져 나오면서 엄청난 언어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나는 해외 교포의 한 사람으로 자식들, 손자들의 언어생활을 대책없이 바라보면서 착잡한 심정입니다. 며느리의 한국어 실력이 턱없이 모자라 손자들과 하는수 없이 영어로 얘기를 해야하니 그 불편함이란...
거기에 사시는 이창진 박사의 둘째 며느리가 독일 여자인데 한글을 배워서 시부모에게 편지를 보냈드래요.'시아버님,그리고 법적인 어머님....'으로 시작된 편지를 읽고 배꼽 빠지게 웃었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三津은 한국인 며느리이니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