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골 백로
정창수
치악산이 내려와 앉은
학성동 역전골목 흙 화랑
석이는 연가를 읊으며
계단을 이리저리 일으켜 세웠던
끈적이는 십여 년의 삶에 거품 털고
미셸 14×7을 데리고
소초길 초입으로 옮겼단다.
태장동 소일로를 넘어오라 하여
성호아파트 고개를 넘는데
뒤통수를 후려치는 작은 간판
절반을 활엽수 잎이 삼키고 있어도
분명한 원주시립화장장이었다.
국민장으로 내 마르지 않은 눈물
더하여 가슴 흔들어 울컥울컥 인다.
어스름한 삼십년 전의 그 이름
황망했던 그날로 넘어진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죄송스럽다.
한없이 처절한 존재로 짓눌림은
한계를 벗어나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던 그 시절이 가련해진다.
태워져 없어진 줄 알았는데 단지
흩어졌을 뿐 이름은 그대로이다.
흥양리 1678에서 조각난 그리움들
하나하나 모아 퍼즐을 맞춘다.
온다든 소나기마저 천둥번개와 같이
충청도로 가는가.
이래저래 취하고 취해야한다.
새벽이슬이 질펀한 들, 그를 찾으려
화장장 화로 앞 잔디밭에 서서
막걸리 잔을 기우려 만남을 청 한다.
하도 벅차오르는 미안함에 등을 돌려
보석골에 눈길을 뒀는데, 보란 듯
그 곳엔 무수한 영혼들이 하얀 날갯짓하며
야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도 앉아 있을 것이라 목메어 부른다.
그는 그대로 인데 왜 우린 변해야하는 걸까.
불러도 대답은 없고, 혹여 나의 이름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하여 더욱 서럽다.
2009. 6. 6
첫댓글 변해야 살 수 있는 거, 그래서 더욱 서러워지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긴 호흡의 시 한편을 만납니다. 장중한 파이프오르간의 연주를 듣는 느낌으로 한동안 읽다갑니다. 소중한 벗을 보낸 화자의 안타까움이 여리게 깔려오는군요. 블로그의 사진에 중절모가 멋들어지게 어울리십니다. 잔잔하게 행간을 오가는 기법이 예사롭지않군요. 특히 연세에 비해 엄청나게 젊은 시를 쓰시는것에 놀랍습니다. 조용할때 블러그에 한번 놀러 가겠습니다. 멋진시 감사드리며....
너무 좋은 평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잘 쓰라는 뜻으로 받아 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