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과 해바라기
임기순
담장 따라 쫄로리 해바라기가 노릿하게 익어가던 어느 날,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이 아빠가 아이와 엄마와 함께 원을 직접 방문하여 입학상담을 받고 싶다는 전화였다. 코로나 이후 더 급격한 출산율 저하로 어린이집들의 폐원 소식이 잇따라 보도되는 때인지라, 입학상담은 너무도 기쁜 소식이었다.
약속된 시간보다 30여 분이나 이른 시각에 한 사내아이와 아빠가 들어왔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친절히 그들을 맞이했다. 그사이 아이는 낯선 기색은커녕 쏜살같이 보육실로 달려갔다. 아이 엄마가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잠시 뒤에 올 거라 말하고는 아이 아빠는 불안한 듯 아이 뒤를 따른다.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며 보육실에서 노는 아이를 지켜본다. 전화 상담을 할 때 아이가 말이 좀 늦다고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언어발달 지연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여 아이와 대화를 해 보려고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무 대답이 없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며 불러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아빠도 덩달아 아이의 어깨를 툭툭 치며 대답을 부추긴다. 그제야 아이의 시선은 딴 곳을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른다. 순간, ‘자폐아! 이 일을 어쩐담? 아니겠지. 섣부른 판단부터 하지 말자.’며 자폐성 아이의 특징인 눈맞춤 여부를 확인하려고 연거푸 이름을 불러보았다. 역시 시선도 맞추지 않고 외마디로만 ‘와와와!’ 허공을 향해 소리치며, 뿔난 송아지처럼 날뛰었다.
아이를 달래어 상담실로 들어서는데 창밖 너머로 등이 구부정한 웬 할머니가 힘겹게 걸어온다. 그제서야 전화상으로 동행하겠다는 엄마는 아이 엄마가 아닌 할머니라는 걸 알게 됐다. 흩어져있던 조각들이 하나둘 맞춰지기 시작하면서 지난날 함께 했던 자폐성 아이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그중 이 가정과 비슷한 할머니 손에서 자란 한 남아와의 일이 떠올랐다.
등원을 하면 그 남아의 일과는 두 가지 행동의 연속이었다. 놀고 있는 반 친구들의 교구를 가로채어 던지기를 반복하는 일과, 놀이를 말리면 곧장 벽 쪽으로 달려가 자신의 머리를 벽에 박으며 울부짖는 것이 전부였다. 교사는 그 아이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달래고, 다른 놀이를 제안해 보지만 매번 허사였다. 빼앗아 던지고 도망치고 소리치고…. 이런 반 분위기 탓에 다른 어머니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장애아동 통합보육’에 대한 학부모의 이해를 돕고자 몇 차례 면담과 교육도 해 보았지만, 이해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끝내 무리 지어 퇴소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그 당시 우리 어린이집은 마치 심한 파도에 일렁이는 한 편의 조각배 같았다. 양육자와의 주기적인 상담이 절실했지만 아이 엄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아빠는 장거리 운송일로 가뭄에 콩 나듯이 집을 찾으니 상담은 어려웠다. 그 대신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불쌍한 손자를 잘 봐 달라고 애원하곤 했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나를 할머니가 깨운다. “애미가 새끼는 팽개치고 집 밖으로만 쏴 댕겨 애가 저 꼴인데 선상님이 우짜든동 우리 손자 쫌 잘 거둬 주이소.”라며 아이 엄마를 원망하는 말을 불쑥 꺼낸다. 아이 아빠는 서둘러 말을 가로챈다. 남의 가정사를 내가 속속들이 알 바는 아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조금은 궁금해진다. 할머니 말처럼 엄마의 무관심과 양육방식이 문제였을까. 과연 이 아이를 품어줘야 할지, 아니면 장애아 전문시설로 안내하는 것이 좋을지 갈등이 마구 인다. 이런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아빠는 입소를 간곡하게 허락해 달라며 조심스레 입을 연다. 아이를 잘 키워 보려고 이사도 하고, 육아휴직까지 받았다며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마음속엔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더 많은 줄이 그어진다. 이 아이가 들어갈 반에는 이미 많은 손길을 요구하는 또다른 아이가 있지 않은가. 지쳐서 파김치가 된 교사의 얼굴과 좋은 환경을 운운하는 엄마들의 아우성이 빗발처럼 내리꽂힌다. 바로 앞에는 새우등을 한 할머니의 측은한 눈빛과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놀이에 몰입한 아이의 얼굴이 가슴을 파고든다. 명분을 찾아 피해 보려던 마음이 이 조손祖孫의 모습이 번갈아 겹치면서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잠시 마음속에 펼쳐 든 검은 우산을 접고 그들과 웃으며 현관을 나선다.
담장 해바라기 아래 올망졸망 피어있는 꽃들이 비로소 보인다. 키 크고 강렬한 빛의 해바라기만 예쁘게 보아왔는데 각기 다른 꽃들이 어우러져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손을 뻗어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던 나팔꽃이 해바라기를 타고 오르며 방싯 웃고 있다. 차갑고 힘없는 손일지라도 누군가 잡아 이끌어준다면, 저처럼 온기溫氣가 전해져 너른 세상을 함께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꽃들이 사는 세상도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이의 입소가 간절하지만 흔쾌히 반겨주는 곳이 없었나 보다. 여러 곳을 상담했지만 번번이 입소 문턱을 넘지 못했다던 아빠의 하소연이 가슴 아프게 귓전을 맴돈다. 어린이집은 드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딛는 아이들의 첫 출발지이다. 차별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꿈을 펼치고,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꽃을 심고 가꾸려 한다. 한 알의 보잘것없는 씨앗도 심고 정성을 들이면, 그들 본연의 자태와 향기로 ‘다음’이라는 아름다운 시간을 예약해 주기에.
첫댓글 마음 속 검은 우산을 접은 대목에서부터 감동의 물결이 일렁입니다. 아이와 부모가 행복해지는 어린이집 원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