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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자주 쓰는 신앙적 언어 중에 은혜, 구원, 십자가 진리 생명이란 단어가 있고 그리고 “거룩” 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거룩은 히브리어로(קֹדֶשׁ:코데쉬)읽는데 “분리” 혹은 “구별”이란 뚯입니다.
가장 친근한 신앙적 언어로써 000 성도라고 부릅니다. 성도(聖徒)한자표기는 거룩할 “성” 무리 “도” 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목사나 평신도나 다 거룩한 성도입니다. (친구 목사이름 김성도 가끔! 목사라고 부르다가 성도님 부르면 예! 성도입니다 농담)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룩”에 대해 특별히 당부한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백성을 향하여 레위기 19:2....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말씀 하셨습니다. (레위기11:44)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거룩하니까 너희도 거룩해야 돼~~ 그런데 왠지 부담감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까?
사실 우리가 거룩을 생각하면 왠지 엄숙하고, 세속과 동떨어진 높은 산 위의 수도원에서 금욕하는 수도사를 생각하게 되고 엄숙한 예배당의 분위기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일상의 삶과 분리된 성도의 태도가 아닙니다. 거룩의 본질은 ‘구별됨’이지만 그 구별됨은 성전 안이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세상 속 ‘행실’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말의 거룩이 익숙해져 있습니다...... 화려한 기도문과 깊이 있는 교리 지식을 거룩한 말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정작 삶의 현장에서는 세상의 방식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거룩을 말하면서 행실에서는 구별되지 못해 정직하지 못한 거래, 이기적인 타인과의 관계, 유혹 앞에 쉽게 무너지는 도덕성은 거룩한 성도로써 큰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청교도 영성을 소유한 신학자 J.C. 라일(J.C. Ryle)은 말하기를 “거룩함은 천국에 가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천국에 갈 자들의 영적 건강 상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한 도시에 성품이 온유하고 정직하기로 소문난 목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세상은 온통 속임수로 가득한데, 어떻게 항상 손해를 보면서도 정직하고 거룩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청년이 물으니까 목수는 작업하던 통나무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통나무 뒷면을 깎을 때도 하나님이 곁에서 보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남들은 보이지 않는 구석이라며 대충 넘어갈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 바치는 예배당입니다." 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한 행실이란 빛나지 않는 구석, 아무도 보지 않는 일상의 순간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거룩한 행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함께 읽은 본문 원 수신자인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금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 예수님을 부르지만 그들에게 부닥치는 삶의 현실은 극심한 박해와 핍박, 생계의 위협,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하나님” “예수님”을 부르짖는 부르짖음의 진정성은 전혀 다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고난받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해 의외의 권면을 선포합니다. 그것은 "더 나은 생계 대책을 세우라" 든지 아니면 "현실적인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라"는 그런 격려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고난과 핍박이 오면 올수록 삶의 현장에서 더 모든 행실로 거룩한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15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이제 사도 베드로의 격려 편지속에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자가가 되라고 편지했는데 거룩한 행실이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13-14절....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먼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살았던 당시 유대인들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달리거나 힘써 일하려면 반드시 옷자락을 끌어 올려 허리 띠로 바짝 묶어야 했습니다. 만약 허리띠가 흘렁하면 옷자락이 내려와 보행하는데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인 의복을 이야기해서 죄송한돼요 지금 여름이니까 반바지를 입지요 그런데 자주 입은 반바지가 벤드로 되어 있는데도 끈이 있어 당겨 묶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잘하다가도 끈을 당겨주지 않으니까 허리춤 밑으로 내려가는거예요 불편하니까 잠시 서서 다시 당겨 입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했습니다...... 신앙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에서 살아도 세상과 구별되게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살아야 돼!! 믿음으로 선포하며 깨어 있는 부르짖음이 있어야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지만 세상 친구도 있지요 혹시 술 자리에 동석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저도 오라고 해서 동창회 자리에 가 봤더니 밥을 먹고 그 다음 술은 기본이지요 그런데 친구들이 그래요 저 승권이는 목사니까 술 안 먹는다 그런데 제가 아니야 나도 한잔 하자~~ 그러겠어요 그들과 동요 되어서는 안되지요 구별되어야 하지요!! 세상 자리에서 저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동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C.S. 루이스(C.S. Lewis)......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룩은 매주 일요일 성전 안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매일 일상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모든 행동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행실은 '세상과의 격리'가 아니라 '세상 한 가운데서의 내 마음을 믿음으로 고정시키는 자세임을 믿습니다.
다음, 14절.......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욕망을 부추깁니다. 남들보다 더 가져야 하고, 내 뜻대로 상황을 통제해야 하며, 순간의 편안함과 쾌락을 좇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본능적 욕망을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사욕(私慾)'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지 못할 때'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적 진리에 무지했던 예수 믿기 전 그 시절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 교부인 어거스틴은 그가 쓴 고백록, 참회록, 하나님의 도성은 기독교 서적중 유명한 책입니다. 이런 책들은 그가 예수를 영접하고 인생의 후반기 때 쓴 책인데 어거스틴의 생애의 전반기인 33세가 될 때까지는 아주 방탕하고 음란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쓴 참회록에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 때” 자신이 얼마나 음탕하게 살았다는 것을 아주 뼈저리게 느끼면서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하는 마음의 이야기를 책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나이 16살 때부터 이미 음란 방탕한 삶을 살기 시작했고 나이 19세가 됐을 때는 창녀와 같은 여자에게서 사생아를 낳고 버리고 도망을 가기도 했고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방탕하고 음란한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마니교라는 이단 교리에 빠져서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무질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집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고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자기를 향하여 부르신 음성으로 인식을 했습니다. 이웃집 아이들이 손에 들고 읽으라, 손에 들고 읽으라는 그 노랫소리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향해서 성경을 펴서 읽으라는 소리로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뛰어 들어가서 성경을 펼쳐서 읽기 시작하는데 제일 먼저 이 어거스틴의 시선이 꽂힌 말씀이 있습니다.
롬13:12-14.......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이 어거스틴의 가슴에 비수처럼 꼽혔습니다. 그는 하나님앞에 회개하고 자신의 지나간 33년의 삶을 청산하고 세상 정욕의 삶을 버렸습니다.
솔직히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지금 해도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내 유익과 감정을 최우선으로 삼는 모든 이기적인 성향이 있어요 이것이 사욕입니다.
우리가 이 사욕을 본받고 따르는 한, 결코 거룩한 행실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욕은 항상 '나'를 향하지만, 거룩은 '하나님과 타인'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14절 서두에 그리스도인을 '순종하는 자식'으로 권면합니다. 마치 자녀가 부모를 닮아가듯, 구원받은 신앙인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부르신 거룩한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행실은 내 의지나 도덕적 능력으로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사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본받기로 예하고 순종하는 데서 부터 시작됨을 믿습니다.
다음, 17절....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거룩한 행실이 외모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겉모습에 쉽게 속고 매료됩니다. 화려한 직분, 유창한 기도, 오래된 신앙의 경력, 겉으로 보이는 경건한 태도는 종종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시선과 전혀 다른 기준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겉으로 포장된 '외모'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증명되는 마음 중심과 실제 삶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명확히 선언합니다.
말씀을 지금 저와 여러분이 듣지만 지금 시대는 외모가 곧 스펙이자 신분이 된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사니까 성도들 조차 거울 앞에서의 불안을 쉽게 떨쳐내지 못합니다.
30대 한 청년있었는데 어릴 적부터 외모에 대한 비교와 평가 속에서 자랐습니다. 외출 전 몇 시간씩 옷을 고르고, 피부 상태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좌우되는 삶이었습니다. 교회에 갈 때도 남들에게 예쁘고 단정하게 보이는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중요했습니다. 남들보다 잘 꾸민 날에는 은연중에 교만함이 생겼고, 그렇지 못한 날에는 깊은 열등감과 우울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 삼상16장 7절 말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읽는 중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타인의 인정을 하나님보다 더 갈망하는 '외모 우상 숭배'를 저지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은 청년은 진심으로 하나님앞에 회개하고 세속적 기준에 맞춰 자신을 학대했던 죄를 고백한 간증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외모에 치중하는 거룩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연기'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거룩한 행실은 외적인 포장을 하나씩 깎아내는 결연한 결단에서 시작됨을 믿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세상의 헛된 행실에서 구별되는 것은 대속(구원)함을 받은 근거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흠 없는 보혈이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18-19절....."너희가 알거니와 너희가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세상의 값어치는 은이나 금, 돈과 자산으로 결정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의 금은보화가 아니라,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값으로 치르셨습니다.
내가 어떠한 은혜로 구원받았는지, 그 십자가 보혈의 무게를 아는 사람은 결코 세속적인 가치관에 자신을 방치할 수 없습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막막한 문제 속에서도 길을 내시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혈의 공로를 기억한다면 인간적인 걱정을 내려놓고 담대히 거룩한 행실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 살길 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행실은 세상을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한가운데 살아가면서 보혈의 은혜로 죄악과 염려에 휘둘리지 않는 삶이 되도록 죄악을 선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15절....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명령하며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21절 마지막 말씀 읽습니다.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소망과 믿음은 세상의 화려한 프로그램이나 나의 지식과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사도 베드로는 격려합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거룩한 성도로써 거룩한 행실로 살기를 원한다면 마음의 허리를 바짝 동이고 근신하시기를 바랍니다......외모로 취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나를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보혈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소망이요 믿음임을 믿습니다.
이제 주일예배후 거룩한 예배장소에서 거룩함의 행실로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삶의 현장 일터와 가정, 사업장 관계속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